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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5회 초인들의 세계 Ch 34. 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21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진은 본격적으로 화두를 꺼냈다.

  “정신지배와 정신 간섭에 대해 가르쳐드리죠.”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약물 혹은 술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둘 다 쉽게 구할 수 있죠. 그리고 그것들을 복용할 시 정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죠. 가장 원시적이고 손쉬운 정신 간섭의 예시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손바닥 위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뇌 신경계의 구조를 정밀하게 표현한 영상이었다.

  “약물은 무작위적이고 불규칙한 반응을 일으키죠. 그리고 인간이 유도하고자 하는 결과를 정밀하게 유도해낼 수 없어요. 장기적으로는 뇌가 망가지고, 정신 또한 망가지게 됩니다.”

  붉은색으로 보이는 점들, 곧 약물 분자들이 홀로그램 지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이윽고 여러 가지 병리적 정신 현상들이 홀로그램의 뇌 사진 위에 표현되었다. 구태여 시청각 자료로 보여주지 않아도 일반적인 상식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첨단 정신 기술은 훨씬 복잡하고 정밀하죠. 특정 생각을 하는 기전을 일일이 알아내어 뇌의 특정 생각 관련 세포에만 외부 간섭을 가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시점에 정확하게 원하는 형태의 효과만을 일으킨 뒤에는 부작용 없이 깔끔히 소멸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마음을 온전히 다룰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행할 수는 있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여러 기술적 수단들이 동원되었단다. 양자 통신, 상위 차원계 통신, 파동 통신, 뇌 의학, 초소형 기계, 차원 간섭, 확률 파동 등. 자세한 원리들이 공개되자 청자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거부감이 떠올랐다. 진은 두 가지 감정을 즉각 읽어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윤혁은 진이 설명을 마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도저히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 항변마저 예측한 진은 빙긋 이죽거렸다.

  “타인의 정신에 간섭하다니요!”

  “그렇죠. 그렇기에 우리도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씁니다. 그것도 철저한 검증을 바탕으로 시행하죠. 가급적이면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죠. 하지만 때로는 그 기술이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필요악이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범죄자들의 주체하지 못할 흉악 범죄 욕구를 다스린다거나. 그 외에도 공공선의 명분으로 내세울 만한 상황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그 정도 명분들로는 윤혁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턱도 없었다.

  “정신 간섭 능력, 특별히 정신지배 능력이 극한까지 발달하면 분명 지도자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처음에는 정의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의 존엄성을 송두리째 위협해버릴 수 있어요.”

 

  떠나오기 전 기도실에서 어르신께 들었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는 악한 영들이 인간의 마음을 괴롭히는 각종 수단에 대해 알려주었다. 보통은 신학자들이 고찰하는 주제였지만, 천재 과학자였던 그는 영적인 관점과 현대 과학적인 접근을 한꺼번에 접목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영(靈)들의 세계는 물리적 세계보다 고차원적인 세계라고 보면 된단다. 그곳의 존재들에게 있어서 물리적 세계란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야. 마치 우리가 평면 퍼즐을 손쉽게 다루듯 말이다.”

  그분은 영과 물리계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가르쳐주셨다.

  “그들은 지식으로나 힘으로나 물리적 세계를 마음대로 휘젓고도 남을 거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지. 아주 작은 초끈에서부터 거대한 상위 차원의 세계까지.”

  “그러면 왜 악한 영들은 이 작은 행성인 지구에 손쉽게 간섭하지 못하죠?”

  곧이어서 노인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창조주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그분은 천사가 아닌 인간을 땅의 청지기로 삼으셨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건 악마건 어떤 영적 존재도 물리적 우주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지. 별과 은하를 부술 큰 힘은 주셨지만 그걸 사용할 권한은 박탈하신 게지. 너도 알다시피, 참새 한 마리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죠.”

  재깍 돌아온 대답에 어르신은 청년을 기특하다는 눈초리로 보셨다.

  “참새가 아니라 입자 하나조차도 마찬가지란다.”

  “원자 하나 조차도요?”

  “그래. 그 정도로 그분의 ‘금제’는 철저하지. 그렇기에 악마들은 신실한 의인들을 죽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만일 그게 허락되었다면 진작 죽였겠지. 아니 불신자들을 죽여서 지옥으로 데려갔을 게다.”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그들은 우회로를 사용해야만 했지.”

  청년은 눈치 빠르게 노인의 의중을 알아챘다.

  “그게 바로 정신 간섭인가요?”

  “그것도 한 가지 통로지. 마음과 영에 닿을 가능성이 있는 간섭이니까.”

  어르신은 열정적으로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물리적 간섭력을 써서 뇌에 직접 간섭할 수만 있으면 그들로선 최고겠지만, 우리로선 다행스럽게도 그 작용은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있지. 우리가 먼저 열쇠를 써주지 않는 이상 그들의 능력 집행은 제한되어 있단다.”

  “열쇠라면 약물 중독, 음주, 명상 등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것도 매우 좋은 예시란다. 다른 방법으로는 속삭임을 통한 세뇌가 있지. 악한 생각들을 주입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제약이 있어. 인간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지식은 받아들이지 못하거든. 예컨대 악마가 너에게 우주적 섭리에 관한 지식을 주입해 주려 해도 네 지식 용량 때문에 튕겨 나간단다.”

  그래서 보통 악령들은 이미 타겟이 알고 있는 사악한 지식, 신을 향한 불신앙의 씨, 유혹받기 쉬운 취약점을 골라내어 집중적으로 공략한다고 한다. 대단히 치사하고 저열하고 추한 방법이긴 하지만 인간들을 상대로 대단히 잘 먹히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수천 년 이상 꾸준히 애용됐단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간 쪽에서 먼저 문을 열어주는 것이지.”

  이러한 이유로 노인은 인간이 정신계 테크놀로지를 얻는 것을 경계했다.

  “만약 과학 기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뇌에 침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기술을 곁에서 약탈하거나 하이제킹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사탄으로서는 인간들이 성문을 제 발로 열어주는 고마운 일이 아닐까 싶구나. 분명 온 인류를 조종하기에 손쉬운 수단이 되겠지.”

 

  그때 들은 가르침이 생생하게 생각난 윤혁은 등골이 오싹했다.

  진의 증언은 그 어르신이 가르쳐주셨던 것과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아니 인간은 비단 정신이라는 영역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게 모르게 여러 분야에서 악마에게 틈을 열어주었으리라. 예를 들자면 인공 생명체의 창조라던가, 아니면 상위 차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문제잖아?’

  그때 상념에 엄몰 된 윤혁의 회상을 끊고 진이 말을 걸어왔다.

  “만약 당신이 과학자가 된다면 꽤 윤리적인 사람이 되겠군요. 내심 부럽습니다. 호기심보다 윤리를 먼저 생각하는 그 굳은 신념이 말입니다. 조롱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나는 알면서도 지식에 대한 본연적 욕구 때문에 유혹을 이기기 어려울 때가 많죠.”

  첫인상과는 꽤 다른, 진중하고 의외인 고백이었다.

  “당신도 어느 정도는 지금 인류의 행태에 경계심을 느끼는 것입니까?”

  “약간은요.”

  진이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도시 쪽을 응시했다.

  “하지만 나의 책임은 아버지를 도와 기술을 진보시키는 것입니다.”

  후드티를 벗자 고운 반곱슬의 금발이 맑게 찰랑거렸다.

  “그래서인지 알면서도 자꾸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과학 자체는 중립적이며 사용자의 선택만이 문제이다. 진은 이런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애써 책임감을 회피해왔었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대가로 인류가 벌인, 그리고 앞으로 벌일 온갖 기행들은 외면하면서 말이다.

  윤혁은 속으로 진은 누구의 편인지 의문을 가졌다.

  ‘형도 그렇지만, 이 사람도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그가 과연 자신에게 단서를 내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정보를 더 줄 수는 있습니다.”

  다시 한번 뻔뻔스럽게 생각을 읽어주는 진.

  “정보라니, 무얼 말입니까?”

  윤혁은 일부러 생색내며 모른 척했다.

  “우리 숙부님이 궁금해하시는 수많은 것들요.”

  진은 혹할 만한 제안을 던졌다. 흔쾌히 큰맘 먹고 도와주겠다는 투로. 윤혁은 진이라는 인간을 신용해도 될지 신중하게 점검하며 짚어보았다. 저자는 왜 저런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그는 형의 부하가 아니었던가? 왜 저런 변칙적인 행동을 보이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역시 초인의 정신세계는 특이해.’

  그때 진이 결정타가 될 회심의 일격을 던졌다.

  “예컨대 우주 식민지에 거주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도 아시고 싶으시겠죠?”

  “당신은 어떻게 그쪽 세계를 알고 계시죠?”

  곧장 걸려드는 순진한 숙부님의 귀여움에 진은 피식 웃었다.

  ‘그야 이 몸이 지구 바깥에서 태어났으니까.’

  하늘도시에서 태어나 우주에서 자라온 자, 무궁한 은하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경쟁하여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 끝에 이 자리까지 온 장본인. 진은 언젠가 숙부에게 충격적인 역사를 들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천천히 간을 보며 조리할 필요가 있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럴 거면 암시를 주시지나 마시지.”

  “하하,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으니 지금은 이야기하기 곤란합니다.”

  진은 입술을 비죽이는 윤혁을 흡사 친한 친구처럼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두 번째로 만날 약속 시간을 정해드리죠.”

  지금으로부터 며칠간은 카이젤과 진 사이의 기술 교류가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닷새 뒤에는 카이젤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러 지구 밖으로 나가 일주일간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그때야말로 그의 시선을 피할 유일한 기회였다. 마침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절대적 제어력을 조금 회피할 수 있는 ‘그 장소’의 세팅도 거의 완료되었다. 숙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앞으로 6일 뒤에 이 장소에서 봅시다. 그때는 아주 자세히,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죠. 미리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해두지 않으면 아마 숙부님 정신력으로는 감당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윤혁은 마지못해 약속에 동참하기로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은 저자를 신뢰할 수 없어. 좀 더 지켜보자.’

  그래도 당장 추가로 대화를 나눠봐도 손해 볼 것은 없을 성싶었다.

 

 

 

 

 

 

*****

 

 

 

  근 며칠간 카이젤은 진이 고안해낸 프로젝트들의 실현 방안, 개선책, 응용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의 두뇌가 명석해도 혼자서 모든 아이디어를 생성하기에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종종 그에게도 교류라는 것이 유의미했다. ‘그 씨앗’을 개화하는 ‘꿈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전까진. 그때까지는 동료 초인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진의 새로운 프로젝트 중 세 가지는 전부 대규모 공사를 필요로 했다.

  첫째는 항성을 에너지원이 아닌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컴퓨터로 개조하는 것, 이른바 ‘태양의 영감’이었다. 둘째는 암흑 에너지를 매개체로 하는 광범위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인 ‘다크넷’으로 범 우주 시대를 대비한 새 플랫폼 후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행성을 침식하는 거대 인공 생체 조직들을 여러 항성계에 걸쳐 한꺼번에 연결함으로써 은하계 너비를 감시하는 인공 신경망을 구축하려는 ‘하이브 브레인’ 프로젝트였다.

  “죄다 예전 같았으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겠군.”

  “타임필드 기술을 이용한다면 며칠 내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우주상에서 실효성 입증도 완료했기 때문에 간단한 프로토타입(원형)을 건설하기만 한다면 곧바로 양산 및 개량도 가능하겠죠.”

  “그래. 어쨌든 수고했군.”

  진의 너스레에 카이젤이 너그러운 평가를 주었다.

  “약속대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네게 제어권을 대여해주도록 하지.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마. 단, 이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간접 부산물과 기술에 대한 권한은 인류연합이 보유한다.”

  “감사합니다.”

  현재는 개인의 특허권이라는 개념이 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아이디어를 공개한 시점에서 다른 초인에게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니까. 처음 생각하는 것이 어렵지, 모방은 쉬웠다. 진은 아이디어를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차라리 가장 진보된 실력을 지닌 자에게 오리지널 기술의 권한을 넘기는 쪽이 훨씬 이익이었다.

  “다른 것들은 그만그만한데, 이것 하나는 쓸 만하군.”

  카이젤은 거대한 연구용 홀의 11시 방향에 위치한 물체를 가리켰다. 액체도 고체도 기체도 아닌 기묘한 상태의 혼합 물질이 빛의 공간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진이 가져온 여러 샘플 중 하나를 카이젤이 완성시킨 작품이었다.

  “생명체의 ‘의지’를 ‘현실’로 실체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제 슬슬 연구에 박차를 가할 단계 아니겠습니까? 그 추세에 맞춰 개발한 특수 물질인데 이걸 가공해서 아버지가 공식을 새겨 넣는다면 ‘의지’의 힘을 증폭시키는 데 유용할 겁니다.”

  사실 카이젤도 일전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천 가지 정도 고안한 바 있었다.

  “내가 고안한 버전들과는 좀 다르군. 원료 자원은 어디에서 추출했지?”

  “아버지가 아직 안 다녀오신 은하계의 외곽부입니다. 적색 초거성의 심장, 몇몇 소형 블랙홀 표피부, 그리고 중성자별을 매개체로 사용해서 인공 생성을 유도했습니다. 일단 샘플을 가져왔으니 굳이 그곳에 안 가시더라도 원소 공식만 알아내시면 실내에서도 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카이젤은 진이 제공한 샘플을 찬찬히 살피며 분석했다. ‘의지의 실체화’는 아직은 머나먼 장기 프로젝트지만 언젠가는 손에 넣을 계획이었다. 적어도 첫 단추는 나쁘지 않게 맞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강윤혁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때 진에게서 나온 돌발 질문에 카이젤은 잠깐 손을 멈추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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