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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8회 초인들의 세계 Ch 35. 루디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25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소녀에게는 번역 장치가 없었다. 윤혁에게는 히브리어를 번역해줄 장치가 있었고 그의 말을 변환해줄 장치도 있었으나 편의상 둘은 별도의 합의도 없이 공용어로 대화했다. 공용어는 지구상 모든 인간이 손쉽게 다룰 줄 아는 언어였고 세상 모든 언어의 어휘를 함축한 가장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구조의 언어였기에 의사소통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우리 고향에서도 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여러모로 역사나 처지가 비슷하니까 그랬겠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던 중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했다.

  루디아가 소속된 촌락은 섬의 서부 해안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평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은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한집에서 지내는 공동체를 기본 단위로 하였다. 종교적 이유로 발생한 난민인 만큼 한 혈육이 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 섬에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다들 어려운 삶을 사셨던 분이야.”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윤혁에게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쫓겨 다니는 삶,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생, 편견과 멸시의 태도,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아픔. 놀랍게도 선진화되었다는 현대 사회에서도 최근까지는 이런 일이 남아있었단다. 법적으로는 만민의 인권이 보호되고 경제적으로는 만민이 풍족히 누릴 만큼 발전한 시대임에도 말이다.

  ‘종교적 이유라서 더욱 그런 건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선뜻 납득 되지 않았다. 물론 21세기쯤에는 난민화된 특정 종교 추종자들이 세계 곳곳을 침식하여 국경과 문화 질서를 황폐하게 만든 시절도 있었다. 초대째 위버멘쉬도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느라 많은 단계에 거쳐 고생했었다지. 하지만 지금 눈앞의 소녀와 그들의 공동체는 도무지 그런 치명적 위험성을 내포한 집단과는 공통점이 없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집단에 자비를 베풀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도 다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굳건히 버텨내시지.”

  루디아의 말을 듣고서 윤혁은 절로 숙연해졌다.

  한편, 그녀의 거주 공동체가 머무는 집에 들어가 보니 과연 여러 사람이 동거하고 있었다. 혈연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하나의 가족이나 매한가지인 듯했다. 그녀는 윤혁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간략하게 각 식구를 소개해주었다. 물론 식구들이 윤혁을 오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공을 들여 윤혁을 소개했다.

  아렌과 얀은 공동체의 최고령 어르신들로 둘 다 제법 연세가 있는 기품 넘치는 남성들이었다. 말투와 행동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아렌은 난민 시절부터 루디아가 속한 공동체를 맡아 이끄는 높은 어른이었고 그녀에게도 버팀목이 되는 분이셨다. 얀은 아렌의 젊은 적 친구 사이였는데 둘 다 이스라엘에서 방출된 난민으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최근 얀이 가족들을 잃은 뒤 이 섬에서 합류했다.

  루디아의 말로는 40대 무렵 성인 남성 셋이 더 있다는데 며칠간 일을 하러 인근 이웃 마을을 방문하는 중인지라 윤혁이 방문했을 당시에는 자리에 없었다.

  “새로운 손님이 오셨구먼. 반갑네.”

  “맞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윤혁은 루디아의 가족에게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아렌에게 공손히 인사드렸다. 켄과 마찬가지로 아렌의 주름진 얼굴에는 여러 시련을 견디고 넘어왔음을 보여주는 훈장이 은은하게 보였다.

  섬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상당수 이스라엘 출신이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세계 곳곳에서 어려움을 피해 달아난 이들이 합류하였지만, 최근에는 그런 이들은 거의 다 바깥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실상 섬 전체가 유대인의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섬에 거하는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나그네에게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본인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얻은 체험적 교훈 덕분이었다. 어려운 처지를 겪다가 구조의 손길을 받은 처지였기에 상대방의 작은 고생도 무시하지 않았다.

  “언니!”

  “누나!”

  “저 형은 누구야?”

  “이번에 새로 온 손님인가 봐.”

  루디아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꼬마 아이들이 방에서 나와 그녀를 반겼다. 나이는 열 살이 조금 안 돼 보였다. 넷 다 맏이인 루디아를 엄마처럼 좋아하고 따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인 윤혁에게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호기심을 갖는 눈치였다.

  “코흐, 지나, 실베스토, 웬디. 이분은 잠깐 섬에서 용무가 있는 분인데 사흘 정도 머무를 곳이 없으셔서 잠시 함께 계실 거야.”

  “아, 안녕.”

  멋쩍게 아이들을 향해서 손을 가볍게 흔들고 인사를 해 보였다.

  가장 손위인 코흐는 아홉 살 남자아이로 싹싹해 보이는 천진난만한 인상이었다. 두 여자아이인 지나와 웬디는 여덟 살. 말괄량이인 지나와는 달리, 웬디는 외부인이 무서운지 아니면 원래 내성적인지 낯을 가렸다. 그리고 일곱 살인 막내의 이름은 실베스토, 애칭으로는 실버였다. 그는 밝은 은발에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얼굴을 가진 소년이었다.

  “동생들이 많구나.”

  외동으로 자라 온 윤혁은 신기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응, 친가족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한 식구들이야.”

  “외모가 각자 달라서 그럴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럼⋯⋯.”

  당장 떠오르는 단어를 입으로 표현하기가 조금 민망했다.

  “고아 출신 아이들이 맞아. 다들 각자의 아픈 사정이 있어. 지금 겉으로는 씩씩하게 뛰어놀지만, 맘속으로는 감당키 힘든 상처가 많을 거야. 좀 더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면 좋으련만,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어 걱정이야.”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루디아의 표정은 조금 슬퍼 보였다.

  ‘어린 나이에 겪은 아픔을 잊는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한 번 세상 속에 홀로 내버려졌었기 때문에 언제 또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뿌리 박혀서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지금도 타인의 땅에 세 들어 살아가는 형편이니까 더더욱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 역시도 몹시 아련한 느낌이었다. 윤혁으로서는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안쓰러웠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사연을 들려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자신이 상처 입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할 구석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편안히 지내온 자신이 체험해보지도 못한 깊은 아픔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기에는 죄송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

 

 

 

  루디아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그녀의 동료들은 동족의 눈치와 편견 어린 시선을 피해서 깊은 산골이나 숲에서 간간이 가난하게 살아갔다. 그나마 그녀가 살던 때에는 문명의 재건과 환경의 복원이 활발히 이루어진 덕에 조금 숨통이 트인 편이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필요한 물자 정도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다. 그 이전의 혼돈 시대 같았으면 난민으로 사는 삶은 극심한 고난이었으리라.

  그녀는 난민이 된 이후로도 몇 번이나 이주해야 했고 그때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이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합류했다. 그 후로 줄곧 그녀는 거주 공동체 안에서 자라왔다. 이전의 공동체에서는 그녀가 막내였다. 그녀 손위로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었고 그들을 돌봐주시고 가르쳐주시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렌은 당시 루디아가 속한 난민 일행에서 리더 역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공동체가 대거 몰살을 당했다.

  당시 고작 열두 살이었던 루디아에는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이었다. 아직 어린 탓에 누가 어떤 이유로 그러한 악의를 품고 행동으로 옮겼는지 알지 못했다. 복잡한 정치 및 종교적 사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다. 당시의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고래 싸움에 휘말린 상태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은 감사하게도 선의의 은혜를 입어 중립 지대에 포용 되었다. 작은 섬이었지만 거주 공간과 자원은 넉넉했다. 섬 주인은 그들 말고도 곳곳에 흩어진 다른 어려운 이들을 받아들였다. 흩어진 이스라엘 난민들도 이때 대부분 이곳에 들어왔다. 그 덕분에 생계의 어려움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그렇지 못했다.

  “섬의 주인은 어떤 분이신데?”

  “아가씨께서는 친절하신 분이셔.”

  윤혁의 질문에 루디아의 표정이 매우 산뜻하게 맑아졌다.

  “물론 본인은 어디까지나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우린 알아. 아가씨의 상냥함과 고귀함을. 우리에게 값없이 터전을 허락해주셨거든.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은혜지.”

  “서로 잘 아는 사이인가 보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욱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은 아가씨를 잘 알아.”

  “사교성이 좋으신 분인가?”

  “그렇지. 내게는 좀 더 자매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시긴 하지만.”

  참고로 루디아의 증언에 따르면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분이라고 했다.

  ‘진이 언급했던 진의 사부와 동일 인물이겠지?’

  다만 루디아도 그녀의 기원이나 정체나 신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루디아가 입이 마르게 상세하게 칭찬하는 것을 보니 섬 주인과 루디아는 단순한 세입자와 주인 이상의 친분을 소유한 것 같았다. 윤혁은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 볼 수는 있을지 궁금해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공동체 식구들은 윤혁과 한 식탁에 앉아 단란히 식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상처를 안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들 웃는 표정과 친절한 말투가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매사에 감사를 고백하는 태도도 엿보였다. 어려움을 이겨보겠다고 억지로 꾸며낸 웃음도 아니었다. 윤혁은 그들이 겪었던 큰 고난의 여정에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사소한 어려움에도 쉽게 지치고 불평했던 예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방식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관습과는 약간 달랐다. 윤혁은 약간 낯설게 느꼈다. 아무래도 유대교의 여러 관습의 영향이 강해 보였다. 기독교와 영적 본질은 동일하되 문화적인 색채가 유대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식사 직전 어르신들이 대표 기도를 하고 시편과 토라의 구절을 낭송했다. 그 후 찬송가와는 조금 곡조가 다른 노래를 불렀다. 통역 장치의 도움 덕에 히브리어로 된 그 노래와 기도를 윤혁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지네.’

  이들은 일반적인 유대교 신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예수, 그들의 언어로 ‘예슈아’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땅에 왔던 왕을 2천 년씩이나 거절했던 유대인 중 뒤늦게야 그분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들이 몇몇 나타났는데, 지금 이들도 바로 그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저희처럼 주님을 모시는 분들인지요?”

  “오오, 자네도 예슈아를 주님으로 믿는 청년이로군.”

  “물론입니다.”

  “자네는 유대 민족이 아니니 그리스도인 형제겠구먼.”

  아렌 어르신이 윤혁에게 더욱더 큰 호감을 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을 자신의 영적 형제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 최근 백 년 사이 이방인 중 주님을 믿는 자들이 거의 다 사라지거나 배도했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믿는 자가 남아있었다니.”

  얀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직 신실한 소수는 남아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만.”

  메시아닉 유대인, 즉 예수를 믿는 유대인.

  그들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 이방인들의 세계에서 신앙이 희석되고 사라지는 동안 반대로 복음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작의 땅’에서는 역설적으로 참된 신앙이 성장하며 빠른 속도로 많은 열매가 거두어졌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유일한 단서라고는 로마서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예언뿐이었다(롬 9~11장).

  마땅히 첫 열매가 되어야 할 ‘시작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복음의 열매가 더디게 맺혀지자 바울은 실망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그로 인해 위안을 받았다. 그 계시란 우선 이스라엘 바깥의 온 이방인 세계에 예수에 대한 복음이 전해져 믿는 성도들이 생겨나면 맨 마지막 시대에는 유대인들에게서도 믿음의 부흥이 일어나리라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그 예언은 지난 세기 들어 사실로 입증되었다. 짧은 시간 만에 예슈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유대인들이 각처에서 들불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유대인들의 집단 회심은 어떤 의미로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서기 70년 이후 뿔뿔이 흩어져 민족들 사이에서 핍박과 멸시를 받았던 유대 민족. 특별히 그들은 기독교의 가면을 쓴 껍데기뿐인 중세 교회 세력의 핍박을 극심하게 받아왔었다. 그 탓에 원래라면 기독교나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욕을 할 만큼 치를 떨었을 유대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예수를 믿고 회개했으니 이는 가히 하나님의 개입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론 메시아닉 유대인은 여전히 수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예슈아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고 해서 모두가 참된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마치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 교회 내 이방인 교인들이 전부 다 참다운 신자인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여전히 메시아닉 유대인 중에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적 성향에 은근히 매여 있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또한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과의 화해도 아직은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의 신앙을 오해하는 일이 많았다. 유대인은 이방인 교회가 성경과 복음의 히브리적 뿌리를 무시한다며 떨떠름하게 여겼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신자들이 낡은 관습과 율법에 매여 복음을 희석한다고 여겼다. 일정 부분은 옳은 이야기였으나 많은 부분 서로를 몰라 생긴 오해였다.

  그런데도 이방인 교회가 쇠퇴하는 동안, 유대인 사이에서 반대급부의 신앙 회복이 이뤄진 것은 어느 방향으로 보건 긍정적인 징후임이 틀림없었다. 바야흐로 교회의 촛대는 서서히 시작의 땅으로 되돌아갈 기미를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그렇게 되리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방정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부에서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많이 일어나던 무렵, 그 땅 정통 유대교인들은 엄청난 경각심을 느끼고 예수 믿는 자들을 대대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1세기 중반 무렵부터 시작해 핍박이 시작되었고 조금씩 축출까지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떠돌이 생활의 지난 2천 년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이번에는 동족이 자기 손으로 동족을 몰아내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에는 예수를 믿지 않아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서 쫓겨날 형국이 되었다.

  “우리들이 고향 땅에서 쫓겨난 것은 주님에 대한 신앙 때문이었어.”

  루디아가 윤혁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족 대다수는 예슈아를 구원자이자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든.”

  그들이 겪어온 여정은 참으로 험난한 핍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그런 비상식적인 처우를⋯⋯.”

  이스라엘에서 축출된 난민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지금껏 주목하는 이들이 없었다. 당연히 그 내막 역시 세속 역사에 잘 기록되지 않았었다. 아마도 그 무렵 등장한 초인들이 세계정세의 판도를 뒤집어엎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민족의 사소한 일은 관심을 잃고 묻혔으리라. 세계사 개요를 공부해 온 윤혁에게도 메시아닉 유대인의 부당한 축출은 낯선 이야기였다.

  “단지 종교적인 문제 그 이상이기 때문이오, 청년.”

  그때 얀 할아버지가 루디아의 말에 첨언했다.

  “정치적인 사정이라도 얽혀 있었단 말씀인가요?”

  “그렇소.”

  윤혁은 몹시 그 사정이 궁금했지만, 얀은 더 세부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식구들의 사정을 캐묻자니 무례가 될 것 같았다. 윤혁은 후에 기회가 된다면 듣기로 마음먹고 잠자코 기다렸다.

  “허허, 아이들도 있는데 너무 슬픈 기억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양식을 나누지. 어려움이란 늘 있는 법이 아닌가. 지금까지 주께서 이곳으로 인도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야.”

  아렌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했다.

  “때가 되면 돌아갈 날이 올 걸세. 나는 그렇게 믿네.”

  그들은 지나온 아픔을 잊고 앞으로 갈 길을 향해 소망을 두고 있었다.

  ‘쫓겨나온 땅이지만, 그래도 그리워하는 모양이네.’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소망의 깊이를 체감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한 가지만은 알 것 같았다. 그리스도인들과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동일한 주님, 동일한 천국을 향한 소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늘의 본향에 더해 땅에도 그 본향을 상징하는 ‘시작의 땅’이라는 마음의 거처가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천국을 생각나게끔 하는 이정표가 이스라엘인 셈이었다. 이 땅의 부모님이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을 떠올리게 해주는 작은 축소판으로서의 선물이듯,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 시온이 그러한 작은 축소판이었다.

  윤혁은 그들의 소망이 가까운 시일에 성취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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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히로인의 등장 2.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시리즈는 정치적으로가 아닌, 성경적으로 / 영적으로 / 복음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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