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89회 초인들의 세계 Ch 35. 루디아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25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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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관습이며 문화며 전부 달랐지만, 루디아네 공동체와 이방인 청년인 윤혁은 금세 마음을 터놓고 우정을 쌓았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인격적인 의존,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연합(聯合)의 마음 덕분이었다. 가사를 함께 돕고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윤혁은 자연스럽게 루디아와 어색함을 버리고 말을 터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섬의 다른 주민들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항상 웃는 표정으로 이웃의 형편을 살폈다.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갈등이 생겨도 타인의 말을 정성껏 경청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항상 다른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원래 어려움을 숱하게 체험하다 보면 사람은 자연히 각박해지고 자기 안위를 앞세우는 모습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루디아는 정반대였다.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소외된 자였지만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윤혁은 저절로 본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이 없을 때마다 윤혁과 루디아는 해변을 산책하며 대화하였다. 사실 마을에는 젊은 청년이 몇 없었다. 어린아이들 아니면 나이를 많이 잡수신 분들이 대다수였다. 추측건대 좁은 섬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에 나가고픈 마음 때문에 떠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발생했다.
“이곳 사람들은 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필요한 물자를 섬 주인에게서 무상으로 받거나 물물교환을 통해 확보하거나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였다.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든 충분한, 아니 무제한에 가까운 돈과 자원을 공급받는 풍족한 현 경제 시스템에 속한 윤혁에겐 쉬이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던 이유인걸.”
루디아는 대수롭지 않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돈을 이용할 수 없어.”
“정말?”
“응, 나도 태어나서 한 번도 외부 화폐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
“하지만, 말도 안 돼. 그건 불가능한 일일 텐데?”
루디아의 증언이 믿기지 않았다. 생명에 유착되는 자본인 포인트 시스템이 유대인 난민들에게는 아예 차단된다고? 우주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마저도 통하는 시스템이거늘. 아니, 인간이면 거지건 부자건 인종, 출신, 사상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 포인트 시스템이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언제부터 포인트 시스템이 확립되었는지는 정확지 않았다. 사실 윤혁도 어느 순간부터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비슷한 아류 시스템은 있었고 그것들도 계속 개량을 거쳐왔지만, 지금과 같이 완전하고 보편적인 체제로 확립된 건 아마 십 년 안팎일 것이다.
‘당시에는 내가 어려서 정황 기억이 없는데?’
윤혁도 아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것을 써왔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여하튼 사람이라면 시민권과 무관하게 고유의 자본 포인트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거늘, 그 공명정대하기 그지없는 기회와 혜택에서 배제된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경제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난민으로 남을 이유도 없었겠네.’
거주 공간과 물자를 마음껏 마련할 수 있었을 테니까.
왜 경제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는지 그 원인은 몰라도 참으로 비인간적인 처우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모두가 풍부함을 누릴 때 홀로 그 가운데에서 제외당하는 운명은 너무도 잔혹한 것이었다. 이 불쌍한 난민들은 그나마 섬 주인의 호의마저 없었다면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루디아는 경제를 포함해서 세계를 운영하는 시스템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니 그녀 또한 유대 민족이 왜 부당한 대우에 처해졌는지 그 원리는 알 턱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윤혁이 바깥세상의 시스템 이야기를 들려주자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양 신기해했다.
비교적 안전한 시대와 장소에서 나름 누릴 것 누리고 살아왔던 윤혁은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껏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나섰던가. 그 역시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덧 대화가 무르익자 그들은 서로가 소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둘은 만난 지는 불과 사흘이었으나 속마음을 터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상대였다. 오히려 서로가 사는 세계 사이에 아무 접점이 전혀 없다는 점 덕분에 이웃을 대할 때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가족보다 더 큰 위로를 주곤 하는 법이니까.
루디아가 품은 소원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윤혁은 당연히 그녀가 현재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주민들과의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지켜내는 것을 바랄 것으로 기대했다. 혹은 무사히 정착 생활을 영위하거나 아니면 고향 땅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던가. 그러나 루디아는 예상외의 답변을 꺼냈다.
“물론 그것들도 이루어진다면 감사하겠지.”
그녀에게 있어서 소망이란 단순히 마음속으로 바라는 바가 아니라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성경의 약속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바라는 바는 성경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고향에 있는 동포들이 주님이신 예슈아 그분을 만났으면 좋겠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루디아가 말한 동포들이란 불신자 일터.’
다시 말해 그녀를 쫓아냈거나 그에 동조했던 핍박자들과 방조자들이었다.
“그들이 예슈아 속에서 참된 소망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룻, 너는…….”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쫓겨난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더 불쌍하리라. 하지만 그들은 도리어 고향 땅에 남아있는 동족들을 안타깝게 여겨졌다. 자신들은 진리의 눈을 뜨고 예슈아를 보게 되었지만, 아직 다수의 유대인은 올바른 메시아에게로 돌아오지 않은 채 눈이 멀어 있었다. 그들은 율법에 묶여 있거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혹은 무신론자가 되어 부귀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바울 사도가 기록하셨던 로마서의 예언, 아직 현재진행형일까?”
윤혁은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그녀에게 물었다.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루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 예언이 이뤄졌다면 벌써 온 유대 땅이 복음화되었겠지.”
윤혁도 교회 다니면서 어렴풋이 배운 기억이 있었다. 어떤 학자는 그 예언이 이미 완료되었다고 하였고 혹자는 아직 진행되는 중이라고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해서는 워낙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인류의 마지막 시간표를 밝혀주는 이정표가 유대인의 회개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참 어렵네.”
이전 세대에는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개 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자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이 그 시대에 올 것이라고 믿었던 목회자들도 나왔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었다. 어쩌면 유대인의 회개가 올 타이밍이 충분히 가까이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교회의 촛대가 그것이 시작한 땅으로 되돌아간다면?’
혹시 다른 민족들에게는 이제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이 들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스라엘의 회개는 루디아에게는 바라 마지않는 소원이겠지만 그 반대급부로 이방 나라들의 마음이 완악하게 변할 것을 생각하니 마냥 기뻐하기도 어려웠다.
“한쪽이 회개로, 다른 쪽은 완악함으로, 그렇게 시소처럼 움직일 운명일까?”
윤혁은 한숨 쉬며 하소연했다.
“그렇지만 꼭 이분법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루디아가 반문했다.
“어쩌면 양쪽 모두가 큰 부흥을 누릴 방법이 숨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녀는 그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깊이 알아보는 것만 같았다. 진처럼 남의 뇌 속을 파헤치는 재주는 없어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영혼의 통함이 있어서 그런지 이심전심이 이뤄지는 듯했다.
“나는 이방 세계의 신자들과 우리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루디아는 용기를 내어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쪽 사정은 썩 좋지 않아.”
윤혁이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물질만능주의에만 빠져들어 하나님 없이도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게다가 그분 대신에 눈에 보이는 탁월한 인간 지도자들을 신처럼 맹신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끼리 애를 쓴다고 거시적인 흐름을 바꿔볼 수 있을까?”
사람들이 신앙을 내다 버리는 흐름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원인은 이들 지도자 곧 초인들에게 있었다. 물론 그들이 종교를 탄압한 것은 아니었다. 방치하고 허용했다는 편이 옳겠지. 단지 그들은 사람들의 ‘의지하는 마음’을 신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한 치환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에는 충분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윤혁 본인의 이복형이었다.
“우린 둘 다 각자의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걱정하는 거네.”
그녀는 조용히 쓰라린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속한 민족은 달라도 사람 마음은 거기서 거기인가 봐.”
윤혁 역시 그녀의 마음에 공감했다. 이 순간 둘의 심령은 똑같았다. 영혼들을 위하는 마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속박에서 풀려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는 마음.
“룻.”
“왜 그래?”
“어쩌면 이건 하나의 기회일지도 몰라.”
불현듯 번개처럼, 아니 계시처럼 어떤 생각이 떠오른 윤혁.
“어떤 기회인데?”
“흐음, 말로 똑 부러지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중에서도 유독 운명처럼 특별한 만남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운명적인 인연 중에는 각자의 서로 다른 소망이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지금 하필 이 자리, 하필 이 시간에 두 사람이 만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태여 유대인과 이방인 둘로 나눠서 생각할 필요는 없어. 한 주님을 믿는다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 한쪽이 넘어지면 다른 쪽에서 지탱해주고 도와주면 되는 거야. 그렇겠지?”
루디아는 이번에도 이심전심을 이루었는지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우리들의 소원은 어쩌면⋯⋯.”
윤혁에게 번개처럼 떠오른 소망은 이것이었다.
“각자 다른 내용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로 맞닿아있을지도 몰라.”
쫓겨난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 세상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성경 말씀에 담긴 예언을 믿는다면 능히 가능성이 있으리라. 그 방법이란 메시아닉 유대인들과 남은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합쳐 세계만방 여러 나라에 다시 한번 회개가 일어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이 방법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감히 하나님의 정교한 뜻을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축출된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윤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루디아가 대신해서 그의 마음을 증언했다. 그녀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소망이 교차하며 이심전심이 더욱 깊어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령한 느낌. 텔레파시 기술조차도 이런 강렬한 교감은 자아낼 수 없을 듯했다.
‘세상 전체에 최후의 복음을 전달하고 시대의 징조를 경고하는 일.’
‘그 일을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앞장서서 감당한다면?’
대다수 교회가 배교해버린 안타까운 이 현 시국에, 시작의 땅에서부터 쫓겨 나온 자들이 그 소임을 감당한다면? 아니, 애당초 그 소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이기도 하니 마땅히 그것이 바람직하리라.
‘그리고 그들의 선교가 열매를 맺는다면?’
‘결국 돌고 돌아 이스라엘 본토에까지 복음의 물결이 전달될지도 모르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이긴 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주님과 함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리라. 두 청년은 그분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아마 주님께서는 이 일을 바라셨던 게 아닐까?”
“아마가 아니라 확실할 거야. 그분의 마음은 늘 한결같으시니까.”
“믿는 자들이 그분의 마음을 품고 잃어버린 영혼에게 다가가는 일.”
“그거야말로 이스라엘과 열방이 함께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겠지.”
윤혁과 루디아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서로의 투명한 눈을 바라보았다. 막연한 꿈이나마 이렇게 공유해보니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 둘은 당장 자신들이 대단한 일에 앞장설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나서겠다고 다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것 같아 행복했다.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8).]
신께서는 늘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법이다.
훗날에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품었던 이 날의 소망이 어떠한 결말을 만들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만남,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꿈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당장에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들에게 제공된 묵시(默示)의 진도는 아직은 여기까지였다. 그저 뚜렷하지 않은 기대감 절반에 현실에 대한 막막함 절반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아직은 안개 낀 길을 내딛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윤혁과 루디아 둘은 다음번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사흘간의 짧은 인연을 끝마쳤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하고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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