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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93회 초인들의 세계 Ch 36. 기술적 특이점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29 | 회차평점 0 0

 

 

 

 

*****

 

 

 

  원거리 한정 타임머신을 응용해서 건설, 개발, 자원 채굴에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 자체는 참신한 아이디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때 때마침 현 세기에 들어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기술상의 특이점이 발생했다. 물체 혹은 물질을 복제하는, 속칭으로 분신술이라고도 불리는 기술의 등장이었다.

  “시범을 보여드리죠. 말로 해서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시뮬레이션 우주의 심도가 더 깊어졌다. 사방의 공간이 우주와 전혀 다른 신비로운 아공간처럼 변했다. 보아하니 차원의 개수도 더 증가한 것 같았다. 윤혁은 휙휙 바뀌는 시뮬레이션 우주의 생동감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신술을 어떤 원리로 시행한답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었습니다.”

  진은 직접 공간을 바꾸어 과거 기술들의 원리를 재현해보았다.

  “첫 번째 방법은 앞서 말한 타임머신을 응용하는 것. 아마 상상해본 적은 있을 겁니다. 과거로 어떤 물체를 보내면 동일한 개체가 둘로 증식하게 되죠. 이와 같은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 같은 개체가 증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구의 과거로 보내는 데에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인기(無人機)라면 가능합니다.”

  “편법이었군요.”

  “물론 ‘기본 역사의 인과율’에 훼손을 안 주는 선에서만 가능하죠.”

  “그래도 그 정도면 엄청나게 대단한 업적이잖습니까.”

  물체를 마음대로 무제한 불린다면 그것보다 대단한 일이 또 있을까?

  “다만 이 경우에는 다른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동일 개체가 같은 공간에 공존할 때 발생하는 도플갱어 패러독스가 그것이었죠. 둘의 공존이 인과율에 모순을 일으켜 한쪽이 소멸하지 않도록 하려면 별도의 기술 및 이론 확립이 필요했습니다. 연구자들이 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죠.”

  과거의 물체와 현재의 물체를 공존시키려는 모순만 잘 해결하면 이런 증식 과정을 무한정 반복해서 하나의 똑같은 물체를 수없이 늘릴 수도 있으리라.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그런 경악스러운 일이 어찌어찌 성사되긴 했다니, 놀라웠다.

  “다만 이러한 인과율 문제를 해결해도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었죠.”

  이 기술은 시공간 연속체의 불안정성을 축적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이 제안되었죠.”

  진은 다른 시연을 시작했다.

  “원리 자체는 첫 번째 분신술과 비슷합니다. 어떤 일정 구획에 결계를 만든 후 그 구획 내부의 시간만 강제적으로 역행시킵니다. 그 후 역행된 시간대의 공간과 원래 시간대의 나머지 공간을 강제 융합시킵니다.”

  하나의 물체를 원래 있던 위치에서 멀리 옮겨놓는다. 그리고 난 다음 원래 물체가 있었던 좌표의 시간만을 과거로 되돌린다. 물체가 남아있던 시점으로. 그다음, 불연속적인 두 좌표의 시간을 강제로 하나로 융화시킨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물체가 두 개로 증식한 채 남게 된다. 이를 반복할 때마다 두 배씩 늘어나니 서른 번이면 최소 십억 이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 방법도 시공간의 불안정을 유발하긴 했지만, 앞선 방법보단 덜했죠.”  

  진은 공간을 오려내고 다시 붙이는 이 과정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시뮬레이션 속이라고는 하지만 기겁할 만큼 두려운 장면이었다. 작은 구체 하나가 어느덧 벌레처럼 늘어나 주위를 가득 메워버린다. 무한 분신술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공간 연속체에 무리를 아예 안 주는 방법이 더 나았죠.”

  그래서 그런 방법을 탐색하던 중 세 번째 분신술 원리가 발명되었다.

  “바로 지금 보시는 이것처럼 말입니다.”

  현시대의 주된 워프 방식은 3차원 우주와 겹쳐서 움직이는 평행 ‘막’의 고속 이동을 활용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개발되기 이전에도 여러 가지 원리로 순간이동 연구가 시도된 바 있었다. 그중 하나는 물체를 입자 단위로 쪼개어 완벽한 데이터로 만든 뒤 정보 상태로 전송하여 다시 물질로 복구하는 방식이었다.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금방 폐기되었지만, 실험 자체는 충분히 이루어져서 완성 직전에 이른 상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폐기된 기술은 복제라는 새로운 용도로 재활용되었다.

  “물체를 데이터로 바꿔 전송한다는 방법에서 착안해서 한 물체를 여러 개로 복제할 실마리를 찾았죠. 알다시피 데이터라는 것은 원래.”

  “무한 복제가 가능하죠.”

  데이터를 통해 물체를 만들어낸다니,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네. 하지만 실체화의 성공률이 너무 낮다는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물체를 데이터로, 데이터를 복제 데이터로, 복제 데이터를 다시 물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큰 비용이 소모되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다소 비효율적인 전략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런 ‘데이터 변환 복제’는 과학 기술이 극도로 도약하기 전까지는 효율성 문제 때문에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이 세 가지 방법 이후에는 효율적인 복제 기술들이 다수 등장했다.

  “상위 차원의 존재가 입증되고 그것이 실용화되면서부터는 물체 복제 기술 역시 상위 차원을 응용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죠. 여기는 거의 수백 가지 서로 다른 원리의 기술들이 있으니 일일이 다 설명하기는 어렵겠군요.”   

  이번에는 아예 ‘네 번째 방법’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현재는 수천 종류의 다양한 방법이 극도로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죠.”

  확실히 물체를 복제해낸다는 개념은 경이로운 사고 전환이었다. 안정적인 전략만 갖추어지면 인류의 경제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는 건 손쉬운 일이 된다. 결국, 인류의 자산이란 생산력의 문제와 직결되니까. 그런 무한 복제가 가능케 되었으니 인류의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은 수천 번도 넘게 개변하였으리라.

  “원거리 타임머신에 이어 물체 복제술까지 완성된 덕에 원래라면 만 년 이상 소요되었을 문명 건설을 단 몇 년으로 압축할 수 있었죠. 참고로 다중우주와 상위 차원을 응용한 물질, 물체 복제 생산은 아버지의 아이디어이고 그분이 직접 완성해낸 것입니다.”

  문득 윤혁은 성경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민중들의 탐심을 단칼에 거절했던 그리스도. 그와는 정반대로 오병이어 기적을 적극적으로 흉내 내어 거대한 제국을 세운 초인들의 왕. 위버멘쉬는 대체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중일까?

  “최근에는 저와 아버지와 합작하여 안정적인 물질 복제를 하는 프로토콜도 완성했죠. 시공간 영향도 제로(0)이고 생산 효율도 극도로 높습니다. 경제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했죠. 복잡한 물체에까지는 적용하지 못하지만 물, 대기, 토양, 희귀 자원 등에는 얼마든 가능하며 그 외에도 적용 범위가 무궁무진합니다.”

  “자원 부족이라는 단어는 옛날이야기가 되겠군요.”

  이제는 반대로 질량 에너지 보존 법칙이 깨어져 우주 속에 폐기물들이 축적되는 게 문제이려나. 아니지. 물질과 에너지를 외부 차원에서 가져올 수 있다면 역으로 폐기물들과 불필요한 열에너지를 외부 차원에 던져버림으로써 사실상의 소멸을 유도할 수도 있겠지. 이제는 엔트로피의 쓰레기장이 지구, 우주에 이어 상위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셈이었다.

  “자, 강윤혁 씨. 슬슬 우주 개발의 최종 장을 보려고 합니다.”

  진은 우주 개발 역사의 비밀을 풀어줄 마지막 한 페이지를 펼쳤다.

  “어쩌면 당신이 원하는 힌트를 얻을 수도 있으니 집중하시죠.”

  다시 한번 주위 공간이 밝게 빛나더니 배경이 밝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

 

 

 

  진은 이제 기계들의 지배 원리에 관해 이야기를 펼쳤다.

  그렇지 않아도 윤혁도 은근 배우기를 원했던 주제였다.

  “아버지께서 나머지 네 명의 경쟁자보다 먼저 우주 쪽 인류의 잔재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의 우위도 우위지만, 무엇보다도 기계들을 지배할 강력한 율법을 개발하셨기 때문입니다.”

  기계 법률, 다른 표현으로 ‘기계들의 율법’.

  그것은 단순한 기계어나 성문법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만물 이론’이라고도 칭해지는 각종 첨단 물리학들의 정수를 총동원한 역작이었다. 범 차원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통신 기술이자 응용 버전 정신지배 능력이었고 동시에 궁극의 소프트웨어였다. 초끈 기반이든 변형 초끈 기반이든 양자 기술 기반이든 원시적인 전자기파 기반이든, 어떤 모듈의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도 기계 율법의 강제 침식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 기능의 우열과는 무관하게.

  “인류연합의 권력이 100% 그분에게만 집중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그것은 들었습니다.”

  군사력이건 경제력이건, 자동화 시스템에 노동력 대부분을 의존하는 현 인류는 절대로 카이젤 한 명을 이기지 못한다. 과거처럼 황제가 백성들의 무력과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한 지배자의 개인 소유 무력 및 노동력이 전 백성의 총합을 가뿐히 능가하는 원리. 기계 율법은 여기에 지대한 이바지를 했다.

  “유성운 씨에게 들은 말입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아셨죠?”

  “저희 중 일반인들에게 오지랖이 넓은 건 그 사람과 저 정도니까요.”

  “저희라면?”

  “최상위 초인 중에서도 특별 위치인 스물네 명의 측근 말입니다.”

  ‘스물네 명이나 된단 말이지?’

  윤혁이 다른 생각에 잠긴 틈에 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어서 계속하겠습니다.”

  진 앞에 은하계 역사 지도가 펼쳐졌다.

  “아버지는 기계 율법을 통해 식민지들의 확실한 단일화를 이룩한 후 본격적으로 은하 전체를 확실하게 장악할 생각이셨죠. 먼저 연습용으로 우리 은하를 개척하고 좀 더 시간이 흘러 준비가 완료되면 그 바깥까지 정복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의 순서였습니다.”

  지도 위에 실제 정복 프로세스가 낱낱이 나타났다.

  “2세대가 처음 고안한 원거리 타임머신 기법, 3세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발된 ‘물질 복제’, 여기에 더해서 아버지와 초인들이 고안한 각종 첨단 기술들을 더해지면서 대대적인 대우주 개척과 문명 발전이 개시되었죠.”

  허나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생명체와 기계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완성한 막강한 행성 침식 모듈, 상위 차원으로 이어지는 포탈, 기존 한계를 무너뜨린 초고성능 엔진, 희귀 자원의 채취, 신물질의 개발, 상위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이계 입자의 채취, 확률함수의 조작 기술, 광학적 제약을 무시한 초미시•초광역 관측 기술까지, 온갖 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발명과 발견이 범람했다.

  이 같은 무수한 기술들의 보조에 힘입어 인류연합은 대우주 개척 시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절은 그야말로 고대 설화 속 영웅담에 비견되는 위대한 과학 승리의 시대였다.

  ‘아니, 이건 어떤 신화도 명함을 못 내밀 지경인걸.’

  철저한 유일신론자인 윤혁조차 가히 ‘신화’라는 감상이 절로 들 지경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등장인물 프로필>

 

- 이유진 -

 

강윤혁의 친어머니.

흑발흑안의 평범한 인상과 외모의 소유자. 겉보기에는 눈에 띄거나 탁월한 구석이 없어보이는 전형적인 소시민 여성. 하지만 그녀의 참된 매력은 외적 요소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가족들 모두의 모본이 되는 신실하고 정직하고 온유한 품성의 소유자. 윤혁이 가장 존경하는 어른 중 하나이며 그의 인격과 신앙관과 세계관과 소명 의식과 정신적 뿌리의 형성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인물.

전통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인간적인 내면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자비로운 사람. 놀라운 업적을 쌓은 경력은 없으나 한 가정을 일으켜 세운 성실한 여인. 지금의 남편을 신을 믿는 믿음의 길로 인도하였고 결혼 뒤에는 그를 어엿한 가장 겸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 든든히 세워준 공신이다.

성한을 처음 안 시점은 중학교 시절. 참고로 작중 교육 체계는 현 시점과는 많이 다르며 편의상 공용어 고유 명사를 대체할 용어가 없어서 ‘중학교’라 표현했으나 실제로는 현실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통째로 아우르는 개념의 교육 기관이다.

그녀와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약 여덟 살. 소녀 시절부터 성한을 좋아하긴 했으나 나이 열여섯의 어엿한 청소년을 바라보는 여덟 살 소녀의 감정이므로 연정보다는 순수한 동경의 감정에 가까웠다. 졸업 이후로는 당연히 서로를 보지 못했다. 물론 일방적인 바라봄이었기에 성한으로서는 유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1부 시점에서 남편의 나이가 약 일흔이므로 그녀도 나이가 육십대 초반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22세기, 이미 지난 백여 년간 인류의 과학 발전으로 인하여 인류 전 세대의 대대적인 의학적 개량과 완전화가 축적된 시기이기에 오늘날보다 노화의 속도가 1.5배 정도 느리다. 참고로 이는 피코머신은 고사하고 나노머신이나 다른 노화 억제 치료를 배제하고도 인류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당연히 유진 역시도 21세기에 비교하면 40대 중반 정도의 외모와 신체 나이를 소유하였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성한의 경우 초인의 육체 때문에 아예 20대 초반의 외모이기에 남편과의 나이 괴리는 약간 존재한다.

1부 시점 윤혁의 나이가 22세임을 고려하면 성한과 유진이 첫 아들(성한이 존재를 몰랐던 사생아를 제외하면)을 낳은 시점은 그들이 사십대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산이지만 역시 수 세대에 걸친 인류 보편적 유전자 강화 덕택에 다행히 별다른 의학적 문제는 없었다.

참고로 이들은 재회한 시점은 윤혁을 가진 시점보다 7년 전이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4년의 만남의 기간은 둘이 가까워지고 성한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뒤 정식으로 유진과 교제하고 결혼 언약을 맺기까지의 기간의 총합이므로 생각보다 신속하게 진행된 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아이를 갖기까지는 3년이 걸렸는데 여기에는 또다른 복잡한 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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