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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94회 초인들의 세계 Ch 36. 기술적 특이점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0.3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진의 말에 윤혁은 무언가를 직감하고 귀를 쫑긋 기울였다.

  “거대 인프라를 건설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까요.”

  역시나. 저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특별히 별 전체의 개조나 요새화 같은 초거대 규모 공사라면 더욱 그렇죠. 수천 또는 수만 년씩이나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아버지께서는 그렇게까지 여유롭게 진도를 뺄 생각이 추호도 없으셨거든요.”

  기다렸다는 듯 윤혁이 질문을 미끼 삼아 던졌다.

  “원거리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활용하면 되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는 생산력 효율을 극한의 단계까지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기계의 창의력과 제한된 성능의 자율 개척 모듈만으로는 온전한 별 개조가 불가능했으니까요. 지금이라면 모를까, 그때 모듈로는 무리였죠. 그뿐만 아니라 앞서 설명했던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고요.”

  “통제 상실 말입니까?”

  “네, 과거로 보낸 기계 시스템과는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렵죠.”

  “복잡한 문제네요.”

  결국, 새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경이로운 해법의 단서를 찾았다.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정 권역 내의 시간 흐름을 느리게, 혹은 빠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왕은 끝내 그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기막힐 우회로를 통해 성공시켰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 내부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다시 말해 바깥에서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움직이는 물체 내부에서는 짧은 시간만 흐르죠.”

  이건 고전 중의 고전이지라 윤혁도 어렵잖게 이해했다.

  “또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엄청나게 큰 중력이 작용하는 곳 근방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예를 들면 블랙홀 주위에서 하루를 보내면 머나먼 바깥 세계로 나왔을 때는 이미 수년이 지나 있게 되죠.”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알려졌던, 엄연한 물리적 현상. 이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 3세대 초인들은 고민했다. 자연 속에서도 일정 구획 속의 시간이 느려질 수 있다면, 역으로 어떤 일정한 구획 내에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상상하는 것 자체는 일반인에게도 어렵지 않아.’

  어떤 옛날 만화영화에서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폐쇄 공간. 주인공들은 바깥에서 하루에 불과한 시간 동안 그 방 안에 들어가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끝없이 수련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방에서 나온 직후 다른 사람들 눈에는 며칠 만에 엄청나게 강해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누구든 이렇게 한 번쯤은 ‘나에게는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망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신께서 냉철하시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씩만을 주셨기에 이러한 망상은 종종 달콤한 로망이 되어 왔다.

  솔직히 3세대 초인들 역시 이러한 아이디어를 머리로만 떠올렸을 뿐, 일정 단계를 넘지 못해 대부분은 포기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정한 스물네 시간’이라는 섭리적인 명제를 거절해버리겠다고 나선 당돌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3대째 위버멘쉬였다. 그는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수합한 뒤 몇 가지 획기적인 우주적 관측을 바탕으로 힌트를 얻어 그 로망을 현실화시켰다.

  그리고 그 성공은 우주 개발사를 촉진하는 데 제일 먼저 쓰였다.

  “그게 솔직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술입니까?”

  이제는 너무 비현실적인 기술이 난무해서 기가 찰 지경이었다.

  “불가능했다면 말을 꺼낼 이유도 없었겠죠.”

  다시 진의 이야기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원거리 타임머신을 발명한 후 초인들은 특이한 관측 결과를 얻었다.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에는 지구와 지구 바깥 우주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각기 달랐다는 사실. 지구에서 고작 수천 년이 흐른 사이에, 수십억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는 무궁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했는지는 당시로서는 의문이었다. 중력과 운동과 같이 이미 알려진 시간 변동 요인 이외에도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다른 요소가 존재한다는 가설밖에는 낼 수 없었다.

  참고로 이러한 ‘각기 다른 시간 흐름 비율’은 태초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던 현상은 아니었다. 오늘날 시점의 우주에는 더 이상 그러한 현상이 적용되지 않았다. 태초에는 그와 같이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시간 비율이 달랐으나 우주 역사가 전개되면서 점점 동기화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 우주가 동등한 속도의 시간을 갖게 된 것으로 보였다.

  “동기화된 시점은 500년 전 안팎으로 예측됩니다.”

  “아직 제대로 된 근대 과학이 등장하기도 이전이었네요.”

  “그래서 그동안은 과학자들이 이러한 우주 시간의 비밀을 알 턱이 없었죠.”

  ‘이건 너무 예상치 못한 비밀이라 충격인걸?’

  경탄스럽다고 해야 할까?

  늙은 우주론과 젊은 우주론이 이렇게 조화될 줄이야.

  “당신처럼 신의 창조를 믿는 분들에게는 호재일 수도 있겠죠.”

  진은 이번에도 윤혁이 무얼 생각했는지 훤히 읽은 듯했다.

  “아버지께서도 이런 시간 이변의 역사가 창조주의 창조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라고 줄곧 주장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렇지 않아도 창조론을 늘 주장해왔어요. 아니, 진화를 반증하고 창조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봐야겠죠. ”

  과거에는 성서를 믿는 학자들은 젊은 우주론을, 무신론자들은 늙은 우주론을 주장해왔다. 그것이 21세기 초까지의 학계의 주요 대립이었다. 양쪽 모두 석연치 않은 모순점들로 고민했었다. 그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어느 쪽도 증명이나 반증을 해낼 역량이 안 되었으니까. 이쪽에 맞추어도 모순이 보였고 저쪽에 맞추면 또 다른 모순이 보였다.

  그런데 지구와 우주의 역사 시간표의 압축 정도가 달랐다는 대발견이 개입된다면 이 두 가설 사이의 논쟁을 한순간에 종결되어 버린다. 우주 창조와 시간의 역사, 그 둘의 관계 속에 담긴 비밀을 늘 알길 원했던 윤혁으로서는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파편으로나마 창조 비밀의 편린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동시에 그런 경탄스러운 비밀을 알기까지 초인들에게 신세를 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뒤숭숭했다.

  하지만 정작 그때 당시 카이젤의 관심은 그런 해묵은 논란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고대 시절 우주의 시간 흐름과 지구의 시간 흐름을 다르게 만들었던 제3의 요인을 발견해서 직접 활용하자. 그것을 통해 강제로 일정 구획의 시간을 빠르게 흐르도록 만들어보자.’ 그리하면 수년 만에 우주급 규모의 천체 건축도, 은하 전체를 갈아엎는 개간 작업도 단기간에 해치울 수 있으리라.

  그가 바라본 비전은 정확했다.

  “그럼에도 시간 압축 기술의 근본 원리는 아직 극비입니다. ‘제3의 요인’의 기본적 원리만 알뿐, 그것이 어떻게 시간 압축 기술로 연결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버지 이외에는 손댈 수 없는 기술이기에 이런 류를 ‘언터쳐블(Untouchable)’이라고 부르죠.”

  진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튼 시간 압축 덕에 문명 발전은 다시금 크나큰 변곡점을 체험했습니다.”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수만 년 후에나 가능했을 미래를 22세기로 앞당겨 온 수준이었죠.”

  “이제는 뭘 들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네요.”

  거듭해서 놀라다 보면 지쳐서 놀랄 기운도 안 생기는 법이다.

  윤혁 역시 상세한 설명 없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대체 시간 압축이라는 그 기술의 적용 범위를 어느 규모까지 지정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항성 크기 지름의 공간 전체의 시간만 조절할 수 있다면 한 별 전체를 하루 만에 요새화시키는 것도 능히 가능하리라 여겨졌다.

  ‘거기다 개발 과정에서 엄청난 자원 획득과 방대한 생산을 이룩하겠지.’

  그렇게 얻은 자원과 생산을 기반으로 다시 게이트와 워프 중개소들을 세우고 에너지원과 엔진들을 생산해내며, 상위 차원을 침식할 통로도 더 많이 지을 수 있었으리라. 이런 연쇄를 거듭 중첩하면 은하계의 만물을 개척, 개발, 흡수하는 데 십 년도 채 안 걸렸다고 하더라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형이 왜 제로원 개발에 가장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 건지 알 것 같네.’

  워프나 타임머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간 압축 기술도 인간, 정확히는 영혼의 존재로 인해 오차가 생겼으리라. 그렇기에 지구에는 시간 압축 기술을 함부로 적용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지구 개발만큼은 정석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진행했어야 했을 것이다.

  “자원과 영토의 확보는 곧 경제력으로 직결됩니다. 경제력은 더욱 빠른 문명 발전 가속으로 이어지죠. 그리고 기술 발전은 다시금 넓은 영역의 정복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도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얼추 이제는 모든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열매들은 대부분 당신들의 소유겠죠.”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소유이지만요. 뭐, 그게 잘못되었을까요? 결과적으로는 일반인들도 이전 시대의 곱절 배로 풍족하게 누리게 되었으니 딱히 부당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만. 더욱이 그분이 직접 시스템을 지휘해 생산을 진두지휘하셨으니 권리가 그분께 귀속되는 일은 지당하죠.”

  “누가 뭐랍니까?”

  윤혁은 다시 한번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탐욕. 두 전제의 모순적 충돌로 인해 빚어진 인류의 비극 역사. 초인들은 후자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보란 듯이 전자를 뜯어고쳤다. 과거에는 생태계에 탐욕의 손을 뻗친 인류가 지금은 별을 넘어 우주의 근원을 향해서도 그 검은 손길을 뻗쳤다. 앞으로도 이 같은 확장은 거듭되겠지.

  ‘인간의 탐욕 앞에서는 시간과 공간마저도 소비 대상에 불과하구나.’

  사람들은 그저 이러한 발전 앞에 찬가만을 쏟아낼 것이다.

  장차 발생할 수 있는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누가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

  ‘그런데 처음에 힌트를 주겠다는 진의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당장 윤혁의 사고력은 거기까지 뻗을 만큼 유연하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기술의 실존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 아픈 일이었다. 평생 평범한 공부만 하며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어서 개괄적으로 그 이후의 우주 개발 역사가 보여졌다.

  기술 혁신이 이뤄짐에 따라 더는 불완전한 편법인 원거리 타임머신 따위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항성계마다 시간 압축 기술이 적용되었고 각 항성계는 완전히 개조되어 인류의 터전 겸 생산 기지가 되었다.

  자율 개발형 무인 기계 모듈들은 일종의 씨앗처럼 항성의 깊은 중심부에 심어졌다. 그것들은 물질 및 물체 복제, 침식, 에너지원 구축, 유사 생체 기술 등을 이용해 항성을 집어삼켰다. 항성이 요새로 바뀌자 기계 생산량도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이윽고 항성의 방대한 에너지를 활용한 게이트도 대거 열렸다. 인류는 게이트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별에 문명의 씨앗을 옮겨 심었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의 개척 프로세스의 기초 개괄이었다.

  실제로는 시간 압축 덕택에 수십만, 수백만 년의 시간이 도합 흘렀겠지만.

대다수 천체의 요새화가 진행되자 인류의 우주 개척 기술력은 더욱 깊은 단계까지 나아갔다. 확률 파동의 조작, 끈(string)과 막(m-brane)의 생성과 조작을 통한 허상 실체화 기술, 초거대 인공 침식 모듈인 ‘뿌리 깊은 나무’의 행성 잠식 및 개조, 장애물을 투과해 물체를 움직이는 기술, 초소형 로봇들을 통한 천체의 ‘세포군집체’로의 전환, 항성 핵을 통해 생산해낸 초거대 엔진, 신 에너지원의 채취 및 복제, 종국에는 별 전체를 엔진으로 재조작하거나 항성과 동급의 에너지를 짜내는 인공엔진을 양산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근 몇 년 사이에는 이마저 하찮게 보일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란다.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세대는 인간이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며 폭주하는 시대와도 같았다. 1세대 초인들의 때는 카인의 후손이 성을 짓고 문명을 만들던 시대에 비견되리라. 2세대 초인들의 ‘혼돈의 시대’는 홍수 직전 인류가 타락했던 시절과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3세대는 새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고대의 역사는 현시대에도 이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진은 본격적인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 프롤로그는 여기까지입니다, 강윤혁 씨. 아직 반의반도 오지 않았어요. 인류의 위대한 도약, 당신의 어휘로 표현하자면 ‘문명의 폭주’가 여기까지 가속되는 데에는 한 가지 요소가 추가로 필요했습니다.”

  심상찮은 예고에 윤혁은 막중한 압박감을 느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시뮬레이션 우주와 관련된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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