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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98회 초인들의 세계 Ch 37. 시뮬레이션 우주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1.0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이데아? 플라톤의 철학에 나오는 그 이데아 말입니까?”

  “명명은 거기서 착안한 게 맞습니다. 이데아는 현존하는 모든 시뮬레이션 우주들을 제어하고 창조하는 시스템 관리자라고 보면 됩니다. 현존 기술 전부를 함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기술력들의 한계를 초월했죠.” 

  공간이 갈라지면서 광활한 도서관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다차원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되 질서정연하게 구획이 나누어진 풍경의 시야에 펼쳐졌다. 사이버 세계와 시뮬레이션 세계, 그리고 현실 세계까지 기묘하게 조합된 듯한 이질적인 아우라가 사방에서 위화감을 자아냈다.

  그곳, ‘이데아(IDEA)’는 지금까지 목격한 시뮬레이션 우주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하위 세계들이 창출하는 지식이 냇물처럼 군데군데 흘러들어서 모인 하나의 큰 바다 같았다. 그곳은 초인들의 왕이 공들여 만든 시뮬레이션 다중우주의 중추이자 뿌리였으며 인류 지식의 정수가 응축된 핵심이었다.

  “숨 막히는 곳이네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이데아의 본체가 아닌 그 단편적 잔상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아닌 존재가 이데아에 직접 접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 정신력으로는 그 방대한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거든요.”

  “당신 같은 최상위 초인도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진조차도 그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겁에 질린 모양새였다.

  “위험한 곳이네요.”

  “저도 잘해봐야 접근 허가를 받았을 때만, 그것도 최대로 해봐야 1% 정도의 부분 접속만 가능하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혁은 두통이 신속히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시뮬레이션 우주의 심도가 깊어질수록 뇌에 조금씩 과부하가 걸렸는데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크윽.”

  윤혁에게는 식민지 주민들과는 달리 ‘시뮬레이션 우주 접속 허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초인들처럼 정신력이 높지도 않았다. 허가받지 못한 일반인의 정신력으로는 이 이상의 심도로의 여행은 무리였다. 하물며 이데아에 접촉하기란 더더욱 무리수였다.

  ‘형은 도대체 이런 존재를 어떻게 감당하는 거지?’

  이데아는 가히 역동적인 대(大) 플랫폼이었다. 끝없이 정보를 흡수하고 생성하여 자가 진화를 반복하며 한계를 스스로 초월하는 곳이었다. 그 너비는 우주처럼 지속적으로 팽창했고 깊이는 무저갱처럼 뻗어나갔다. 스스로 학습하며 진보하는 거대 도서관. 윤혁 자신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고통스럽거늘 형은 도대체 저것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감당하고 있단 말인가?

  “나가시죠. 이 이상은 저도 못 버팁니다.”

  진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네요.”

  “혹시라도 아버지가 눈치채면 곤란합니다.”

  “형이 오늘 일을 문제 삼을 수 있나요?”

  순간 덜컥 걱정되었다.

  “아마도요. 당신하고 나눈 대화는 오프 더 레코드, 비공식이니까요.”

  잘도 위험한 일에 휘말릴 뻔했구나. 윤혁은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했다.

  “형은 잘도 이런 엄청난 정보량의 공간에 무사히 접속하는 모양이네요.”

  “아마도 접속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단…….”

  진은 말끝을 흐렸다.

  ‘아예 일체화되어 한 존재가 되었다고 해야 옳겠지?’

  그는 이 부분은 설명하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크윽!”

  윤혁은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아버지를 염려해주셔서 저로서도 고맙군요.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 자리는 힘을 지닌 동시에 거대한 왕관의 막대한 질량을 감당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분께 있어서 이데아는 ‘머리를 짓누르는 강철왕관’들 중 하나입니다.”

  ‘왕관이라고?’

  아직 윤혁은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진 못했다.

  ‘게다가 왕관들이라면, 무거운 짐을 더 들고 있단 말인가?’

  석연찮은 기분을 안고 둘은 퇴각했다. 진과 윤혁은 지름길을 통해 출발했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와중에 윤혁은 혹시 길에서 다른 접속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대했다. 나아가 그 접속자가 바깥 우주 곧 하늘도시에 갇혀있는 주민들이라면 반가울 텐데. 혹시 그들의 자신들이 처한 처지를 알려주려나? 하지만 진은 눈치 빠르게도 그 속셈을 간파했다.

  “혹시라도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한 주민과 접촉하거나 대화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은 이곳에 적응조차 안 되었기에 저와 함께 머무르지 않는 이상 단순히 버티는 것조차도 무리입니다. 게다가 거듭 경고하지만, 아버지 눈에 밟힐 만한 행동은 피하는 게 좋아요.”

  실망한 윤혁의 얼굴에 시무룩함이 새겨졌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없을 때 재접속할 생각은 버리는 게 현명할 겁니다.”

  영리한 진은 미연의 시나리오마저 귀신같이 차단했다.

  “물론 따로 접속할 방법도 없겠지만요.”

  “어련하시겠어요.”

  솔직히 윤혁 자신도 더는 이런 이상한 나라에 발을 내디디고 싶지 않았다. 소설과 같은 기괴한 세계에 강제로 주입되는 기분은 생각보다 꽤 기괴했다. 현실도 아니되 가상도 아닌 이상한 장소에서 갖가지 기이한 장면들을 감상하는 것 역시 대단한 고역이었다. 부디 앞으로 진입할 일이 없기를.

  ‘플라톤은 가상 세계를 경멸했는데 정작 그의 이상향인 철인왕(哲人王)을 자처하는 자들은 가상 세계를 실체화시켜서 저런 식으로 현실에 접목해 활용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네.’

  그렇게 홀로 감상에 빠진 와중, 진이 불쑥 말을 던졌다.

  “강윤혁 씨.”

  “네?”

  “당신은 만약 지구 바깥의 인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면 그들에게 무슨 일을 행하실 생각입니까? 당신이 꿈꾸는바, 저도 궁금하군요. 저는 당신의 ‘영혼의 소망’까지는 못 읽으니, 머리와 뇌를 파헤치는 기술을 써도 그 소망을 알 수는 없겠죠.” 

  예상하지도 못했던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식민지 주민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해본 적도 없었던 터라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만일에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에게 무엇을 물어볼까? 혹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짧은 만남의 순간이 허락된다면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고 알아내야 할까?

  “만약 그들이 받는 대우가 정말로 부당하다면, 그들을 설득할 생각입니까? 그들을 충동하거나 깨우칠 생각입니까?”

  “저는⋯⋯.”

  “정치적인 접근으로 다가갈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진의 이지적인 음성이 점점 고조되었다.

  “구체적으로 묻겠습니다. 그들을 해방하고 싶습니까?”

  진으로서는 내심 자신의 바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 셈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충성하였으나 그의 모든 계획이 항상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큰 그림을 모르니 속단하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판단되는 바로는 그러했다. 자신도 속했었던 우주 출신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구속된 지금 현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바꿀 방법이 없어 아버지의 계획에 순응하고는 있었지만 아주 작은 변수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흔쾌히 그 가능성에 걸어볼 심산도 있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유익과 선이 되는 방향으로. 그는 본래 주인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주인을 돕는 협력자였으니까.

  ‘아니, 이런 내 계획조차 아버지의 계산 가운데 이미 있을지도?’

  그 거대한 손바닥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생각에 진의 입가에서 실소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라는 지구 식 표현이 떠올랐다.

  “진, 당신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윤혁이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설령 마음이 있다고 해도 제 능력으로는 그런 시도를 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겠죠. 게다가 저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걸요.”

  “다행히 스스로에 대해서는 객관화된 평을 내릴 줄 아는군요.”

  다소 기분 나쁘게 들려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윤혁은 대단한 영웅도 아니었고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권력이라고는 먼지 한 톨만큼도 없었다. 철옹성과 같은 시스템에 흠집 내기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이죠, 저는 강윤혁 씨 당신이라면 재미있는 변수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지시스템의 판단을 확인했을 때도 느꼈지만, 당신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 좀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진의 호평이 더 의외로 느껴졌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셨죠?”

  “당신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지만 동시에 그분에게 굴하지 않죠.”

  마치 거인에게 당당히 맞서는 개미와도 같은 모습.

  “동시에 그분과 묘하게 대척점을 이루는 사상을 지녔고요.”

  아주 조금 기분이 낯설었다. 진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매긴 것인가? 아니면 그가 윤혁 자신도 미처 모르고 간과한 윤혁 속의 무언가를 간파해낸 것일까? 초인의 통찰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듯했다.

  “아버지와 같은 부류인 초인들은 그분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분과 경쟁했던 자들도, 이전 세대 초인들도 마찬가지죠. 그분께는 그저 복속시킬 대상이었죠. 정치나 경제나 지식으로는, 아니 그 어떤 수단으로도 그분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뜻을 꺾을 수도 없고 패배시킬 수도 없으며 설득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죠.”

  진이 카이젤이란 존재에 관하여 내린 단호한 진단.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컨대 그분에게 변수를 주입하려면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윤혁은 숨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연약해 보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변수, 바로 당신처럼 말입니다.”

  “네?”

  윤혁은 깜짝 놀라 외쳤다.

  “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이에 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한 가지 비밀을 터놓기로 작정했다.

  “내가 태어난 세계와 동류의 세계들, 곧 지구 너머 우주의 유인 식민지인 우라노폴리스들에는 현재 최소한 총합 수십 조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부 지구의 주민과 동일한 본질을 띤 인간입니다.”

  “수십 조라고요?”

  순간 숫자를 잘못 들은 것인가 의심했다.

  “네, 역사상 지구 위를 밟아온 모든 인간의 합의 백 배를 가뿐히 넘기는 수효죠. 그러나 더 재미있는 점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을 이룬 ‘씨앗’이 처음 지구에서 선출되어 나온 지는 불과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설마 그 말인즉?!”

  머릿속에서 오늘 배운 정보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또한 그들을 구속하는 벽이 몇 겹 있습니다. 먼저는 공간적 제약, 시뮬레이션 우주를 통한 무의식의 구속, 그리고 ‘표식’을 통한 생물학적인 구금이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란 단어의 뜻은 굳이 설명이 없어도 자명했다.

  “그들은 시간 압축 기술로 만들어진 필드 속에 갇혀있습니다.”

  진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우라노폴리스 본체에는 기본적으로 시간 압축 기술이 내장되어 있었다. 바깥 세계에서 불과 수 시간이 흐를 때 그 ‘시간 감옥’ 안에서는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단다. 이 시간 압축 필드 기술은 일차적으로는 그동안 천체의 무인 개척을 위해서 쓰였지만, 이제는 다른 목적, 곧 인구 증폭에까지 이용되는 중이었다.

  “몇 쌍의 부부가 자손들을 낳고 낳아 큰 후손을 이루기까지 걸릴 시간은 막대합니다만, 그 시간을 반칙을 써서 확충할 수 있다면 단기간에 인구를 거대하게 부풀릴 수 있죠.”

  섬뜩한 이야기를 뼈에 와닿을 정도로 간략히 설명하는 진.

  “그렇게 거대한 무리가 된 민족을 소규모 인구 집단으로 쪼개어 다시 새로 만든 콜로니들에 나눠 태우고 그 안에서도 각각 시간을 압축하여 삽시간에 또 다른 큰 무리를 이루는, 뭐 그런 식의 전략입니다.”

  “설마 그런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면.”

  “네, 정확합니다. 어차피 현 인류는 은하의 자원을 잠식한 상태라 우라노폴리스를 무한정 건설할 정도의 생산력은 거뜬하니까요. 시공간이나 자원은 넉넉하니 인구를 부풀리는 것도 시간만 충분히 존재한다면 언제든 가능하죠.”

  비유컨대 인간을 마치 바이러스를 실험용 배지에서 키우듯 증식시키는 원리였다.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만 개 행성을 가득 채울 인구를 생성하고도 남을 비법. 비록 그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할 테니 자원 소모는 상당하겠지만 이미 은하의 모든 별을 통째로 침식하여 자원으로 추출해대고 물체 복제까지 상용화된 오늘날 기준으로는 아예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으리라.

  “왜 그런 일을 벌였죠?”

  윤혁이 다급히 질문했다.

  “인구수도 곧 자원이니까요. 그 사람들이 생산해내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문화와 다양한 경험을 고려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자산입니다. 그리고 엄청난 인구를 구축하면 필연적으로 그중에는 창의성이 높은 천재도 숱하게 나옵니다. 이런 인재는 인공지능으로는 쉽게 대체할 수 없죠.”

  사람을 자원으로 환산해 생각하는 두려운 사고방식에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것이 초인인가. 저 정도 광기는 기본적으로 되어야 우주 통치를 논하겠구나.

  “그런 인재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 우주 출신 초인들이죠. 결국, 우리도 방대한 인구 증폭의 부산물로서 얻어진 샘플들입니다. 수겁의 인구가 쌓이면 확률상 극소수의 초월적 돌연변이도 나올 수밖에 없죠.”

  진이 씁쓸히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비단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인구의 증가는 문명의 팽창이니 그 자체만으로 경제와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지도자로서는 그 엄청난 힘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메리트죠.”

  카이젤은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지구 인류마저 대체할 작정이었다. 이미 현재 식민지 주민들의 수는 지구 주민의 수효를 아득히 압도하는 마당. 시간 감옥에서 해방된 뒤에는 사실상 그들이 인류 전체의 주류가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런 강력한 새 인류를 대대손손 완벽히 제어하고 다스리려면 미리 철저한 길들이기를 행해둘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속박은 그 일환이기도 했다.

  ‘길들이기라.’

  지구 주민들과는 달리 우주 주민들에게는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줄이 여러 종류 있다. 오늘 진은 그중 몇 가지 예시를 넌지시 윤혁에게 알려주었다. 그중 암시적으로 잠시 언급하고 넘어간 ‘표식’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정체나 원리를 알 길이 없었기에 더욱 꺼림칙했다. 윤혁은 여기에 더 나아가 식민지 주민들에게 모종의 정신 간섭 장치도 되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심증뿐이라지만 형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당신 말을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어차피 아직은 검증할 수 없는 단계이니 진의 말만 듣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며 진실을 확인해볼 필요성이 절실했다. 물론 연약한 한 민간인의 처지에서 그런 엄청난 사실들을 파헤칠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지는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더 두려운 부분은 만에 하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였다.

  “만약에 당신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제법 골치 아픈 일이 되겠군요.”

  부디 거짓말이길 바랐다. 형을 적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무서운 인간이라는 진실과 직면하고픈 소원은 없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편안했을 텐데.

  “혹시 진 당신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겁니까?”

  윤혁이 유도신문 겸 조용히 진에게 질문했다.

  “어차피 내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진은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 사실 그는 그들을 감싼 목줄이 조금 더 느슨해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절제한 자유를 바란 건 아니었다. 도리어 모든 주민이 자유의지로 인류연합에 복종하는 시나리오를 원했다.

  ‘가능키나 할는지. 내 몽상에 불과할까?’

  정황상 인류의 지배자에게는 아직 우주 인류에게 자유를 줄 마음이 이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직 때가 아닌지도 모르지. 중간에 자신이 왕의 계획의 궤적을 바꿀 방도는 전무했다. 진 자신이 찾은 대안들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강윤혁이라면 어떨까? 그라면 전혀 발상치 못했던 길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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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길었던 미래세계 견학(?) 잠시 종료. 다음 챕터부터는 다시 크리스천 소설스러운 분위기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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