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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01회 초인들의 세계 Ch 38. 크리스마스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1.1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행사가 끝나고 자유 교제의 시간이 돌아왔다. 성한은 아이들을 돌보며 놀아주었다. 그 옆에는 행사에 초대받은 신해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는 탁월한 요리 솜씨를 한껏 발휘하여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직 복음에 관하여는 막 소개받는 시작 단계였고 신앙이랄 것도 없는 그였지만 다행히 조금씩은 마음을 열어가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공동체를 향해서는.

  ‘아이러니하다.’

  윤혁은 그 풍경을 보며 역설을 느꼈다. 젊고 잘생긴 저 아버지의 얼굴과 꼭 닮게 생긴 남자가 지금 지구 중심의 옥좌에 앉아서 은하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예전의 신해와 같은 속박된 민족들, 곧 무수한 식민지 주민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틀어쥔 채로. 그리고 왕이 입양한 일곱 아이는 왕의 수족이 되어 그의 모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성탄을 즐기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은 채 뛰놀고 있는 저 해맑은 아이들과는 상반된 모습의 아이들. 섬뜩했다.

  한편 한참 고민에 잠긴 윤혁과 대조적으로 신해는 기분이 밝아보였다. 의외로 크리스마스라는 지구 문화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종교적 모임이라서 불편해할까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니 다행이었다. 지구인들의 문화에 잘 녹아드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았다. 이대로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연다면 좋으련만.

  ‘그리고 다른 식민지 주민들도 가능하다면…….’

  “아들, 고민이 많아 보이네?”

  성한이 상심에 빠진 윤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예수님을 기뻐하는 복된 날에 왜 이렇게 내내 표정이 굳어 있니?”

  “아빠.”

  “응?”

  심상치 않은 윤혁의 목소리에 성한은 갸우뚱거렸다.

  “만약에 형을 설득할 필요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오늘따라 아들의 태도가 영 예사롭지 않았다.

  “형네 집에서 형이랑 다투기라도 했었니?”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윤혁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냥 왠지 그렇게 될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요.’

  말로 다 내뱉지 못한 생각이 무겁게 몸을 짓눌렀다. 윤혁은 자신의 처음 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옴을 느꼈다. 비록 힘이나 지혜의 대결은 아니겠지만 조만간 가까운 미래에 두 형제의 가치관이 대립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갈등을 빚게 되겠지. 두렵긴 했지만, 마냥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카이는 내 예전 모습과 상당히 닮았단다.”

  성한이 곰곰이 과거 회상에 잠겼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자질과 재능을 물려주었다면 나에게서 받은 건 야망과 집념이겠지. 그 아이의 야심에 찬 눈빛은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더구나. 그나저나 모든 것을 이미 가진 그 아이가 품을 야망이란 대체 무엇일까나?”

  그도 내심 큰아들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로서 미안하면서도 조금 부끄럽구나.”

  성한은 늘 이렇게 옛일을 고백할 때면 심지가 약해지곤 했다.

  “과거의 굴레에 묶이지 말라고 아빠가 저한테 가르쳐주셨죠.”

  “하하, 그랬지. 아들이 아빠보다 낫구나.”

  “기운 내세요.”

  아버지를 위로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울적함은 어찌하지 못하는 윤혁.

  “몇 달 지내다 보니, 저도 혼란스러워요. 형이란 사람을 잘 모르겠어요.”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형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혹은 마음을 붙이기 이전 거리가 멀었던 시절로. 가족의 관계란 것을 맺는다는 일이 때로는 이토록 아픈 일이로구나. 형의 무궁한 야망이 부디 결코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을 겨냥하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반면 윤혁이 너는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았지.”

  이번에는 거꾸로 아버지가 아들을 위로했다.

  “저는 아직도 부족한걸요.”

  “그런 점 때문에 내가 널 자랑스러워한단다.”

  온갖 고난, 실패, 과오의 대가를 감내하고서야 오만함이 산산이 깨어졌고 그 뒤로 밑바닥까지 낮아진 체험을 겪으면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시절의 아픈 경험이 빚어낸 존재가 지금의 성한이었다. 작은아들은 그런 겸허해진 모습을 고스란히 압축해 담아낸 축소판과 같았다.

  반쪽 짜리 초인에게 담긴 두 가지 양극단의 속성, 곧 ‘초월을 향한 야욕’과 이를 누르는 ‘겸손의 의지’. 이 두 힘이 외부 세상에 형상화되고 의인화된 두 결실. 둘의 갈등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삼키기 전까지는 끝없이 지속될 운명처럼 보였다.

 

 

 

 

 

 

*****

 

 

 

  지표로부터 1천 km 상공을 부유하는 거대한 공중 크루즈. 달 궤도 너머의 게이트가 아차원 반응을 일으키며 무언가를 지상에 전송하였다. 그 섬광은 크루즈 내부로 흘러 들어갔다. 곧이어 함 내부에서 텔레포트 반응을 감지했다.

  {게이트 오픈. VVIP를 안전하게 호송합니다.}

  번쩍이는 섬광이 나타났다 사라진 자리에서 키가 큰 여인 한 명이 걸어 나왔다. 빈틈없는 완벽한 검은 제복 차림새, 길고 찰랑거리는 생머리, 찔러도 피 한 방울 흐를 것 같지 않은 철두철미함, 모든 것을 깔아보는 오만한 표정, 그리고 이질적인 녹색의 눈동자. 녹색의 눈동자 안에는 붉은빛을 뿜는 소용돌이 문양이 역동적으로 중심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띤 여성형 안드로이드 다섯이 길에서 그녀를 가로막았다.

  {인류연합 인간군 전략부 소속 총사령관, 제2 철인왕 에르샤님.}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길. 여기부터는 대표님의 사적인 공간입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물리적 무장, 정신 간섭 능력, 해킹 장비, 통신 및 기록 장비, 워프 마커, 시뮬레이션 우주 접속 코드는 즉석에서 무장 해제시키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에르샤는 매서운 눈으로 로봇들을 쏘아보았지만, 그들이 누구에게 대리권을 받은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검문에 응하였다. 이런 자리만 아니었으면 감히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정신나간 기계는 용서치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홀에서 휴식 중이십니다. 연회 일정은 조만간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래, 수고하도록.”

  왕을 대리해 휴먼 솔져의 통솔권을 행사하는 것을 넘어 Ex(Extraordinary) 랭크 바이오닉 솔져 6기의 임시 제어 권한마저 위임받은 에르샤. 그녀는 명실상부 현 군부의 최정점이었다. 군대와 관련된 모든 영역은 지휘, 전략, 무장 개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몇 없었다. 그런 피도 눈물도 없는 그녀가 이번처럼 사교 모임에 나서는 일은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화려한 연회장 안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북적거렸다. 본래 이곳은 아무나 초대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인류연합 지도부와 U-Society 내에서도 상류층, 그 가운데에서도 최소 S 클래스 이상의 상위 초인들만이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리가 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야, 총사령관 씨.”

  “유리스, 그리고 스튜아.”

  보랏빛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어여쁜 여성이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인사했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 위에 밤하늘 우주의 은하수들처럼 생긴 빛 가루들이 수놓아져 형형히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청색 곱슬머리의 청초한 느낌의 다른 여성이 있었다. 옆의 동료보다 좀 더 수수하되 은은한 아름다움을 담은 옷차림이었고, 눈동자는 맑은 거울처럼 주변을 그대로 비췄다.

  보랏빛 머리의 여인은 제5 철인왕 유리스. 그녀는 인류연합의 ‘커뮤니케이션’을 관할하는 자로 기계와 인간과 이종족과 시뮬레이션 우주의 연결을 관할하였다. 그리고 그 옆의 여인은 제3 철인왕으로 이름은 스튜아였다. 스튜아는 식민지 세계들의 문화 형성 및 진화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다.

  “너무 딱딱한 복장 아니야? 이런 날이라도 좀 꾸미고 오지.”

  스튜아가 흥얼거리듯 에르샤에게 말했다.

  “언제 임무 수행에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에르샤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버지께서 썩 기분이 안 좋으셔. 에르샤도 적당히 사리는 게 좋을 거야.”

  유리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분이 아니니 평소대로만 하면 상관없어.”

  에르샤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세 여인은 서로 활동 영역이 달라 친해질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출신과 신분이 비슷한 터라 공감대는 깊었다. 명목상으로나마 카이젤의 양녀로서 한 자매이기도 했고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대다수는 3세대였지만 간간이 2세대, 드물게 1세대 원로도 보였다. 권력 다툼과 숙청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들은 자기 세대 내에서 유별나게 영악한 존재임을 증명해낸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곳에 모인 현세대야말로 최고의 엘리트들만 추린 최고 정예 집단이었기에 원로들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홀 저편에는 이미 몇 시간 전에 도착한 일곱 명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들은 지구 위의 국가들을 관리하는 메이저 섹터장, 곧 7인의 로스트엠페러들이었다. 철인왕들이 3대째 위버멘쉬의 ‘입양 자녀’들이라면, 저자들은 위버멘쉬의 ‘전우’들이었다. 한 마디로 주군이 혼돈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지구를 장악하도록 협력해준 제국의 개국 공신들인 셈이었다.

  “표정을 펴게. 고귀한 자리가 부담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시끄러워.”

  고고하게 차를 마시면서 촌뜨기 인디언에게 일침을 가하는 신수왕 일라이저. 귀족 출신인 일라이저와 달리 북미 대륙의 대표인 태양을 삼키는 늑대나 아프리카의 쿠에시에게는 이런 사교의 장이 다소 거추장스러웠다.

  한편 샤오는 자신과 같은 2세대 출신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로 아쉬워하는 모양이었다. 아들뻘의 아이들과 함께 세계를 논하는 일은 생각보다 외로웠다. 그녀는 별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와인만 홀짝였다.

  “수장께서는 아까 전부터 상석에서 별말씀 안 하고 계시는군.”

  에우로페 제국의 수장인 긴 흑발의 남성, 지크문트가 눈길을 돌렸다.

  “혹시 심기가 상하실만한 일이라도 있었나?”

  “글쎄요. 보스가 기분 가라앉는 일은 종종 있었건만 이번에는…….”

  카이젤의 모습을 보니 성운도 조금 신경이 쓰였다. 보통 일과 관련된 문제로 고민하거나 프로젝트가 생각만큼 성과가 좋지 않을 때도 저기압이 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의 기운이 감돌았다. 표정 관찰력이 기가 막히게 뛰어난 성운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감이 잡혔다.

  ‘사적인 일로 감정을 다치시고는 갈무리하지도 않으시다니.’

  참 특이한 일이었다.

  ‘레이디와의 결별 이후로 보스가 저러는 건 처음이군.’

  최근 보스에게 감정적 영향을 줄 만한 후보라고는 그때 그 젊은 청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게 없었거늘 왜 그리 관심을 기울이실까? 성운 자신에게도 동생이 여럿 있긴 했지만 공감은 되지 않았다. 원래 최상위 이상의 초인에게는 가족의 존재가 감정에 별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성운도 애교부리는 여동생과 말썽꾸러기 세쌍둥이, 숫기 없는 막내 남동생 모두에게 그저 교과서적인 좋은 형을 연기하며 평등하게 영혼 없이 대해왔었다.

  ‘강윤혁에게 어떤 이유로 관심이 꽂히신 걸까?’

  보스의 심정 변화를 분석해보고픈 탐구욕이 들었다.

  ‘앞으로 그분의 식구를 유심히 살펴봐야겠어.’

  잠시 후, 칼리드와 진도 도착했다. 둘 다 중간에 끊기 어려운 연구 및 임무를 수행하느라 방문이 지체되었다. 둘도 에르샤의 경우처럼 우주에서의 임무가 주 역할이었기에 때문에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시간을 내기 힘들었으리라.

  진은 카이젤과 최대한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괜히 엄한 말을 했다가 얼마 전 아버지의 동생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떠벌렸던 일을 질책받을까 두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아버지는 유독 강윤혁이란 인간에게 이상하리만큼 자주 휘둘리는 것 같았다. 이런 때에 하필 자신이 의도치 않게 이간질까지 했으니 미운털이 박힌다고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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