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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02회 초인들의 세계 Ch 38. 크리스마스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1.1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초청받으신 분들은 모두 도착했습니다.”

  세 비서가 카이젤의 자리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일반 업무를 담당하는 붉은 머리의 지적인 인상의 남자 데미안 룩스, 극비 업무 관련 비서인 남색 머리의 차가운 미남 레반 싱클레어, 자산 관리를 맡은 은발 은안의 신중한 여성 룬 마크로스, 셋 다 단순 비서가 아닌 S 클래스의 초인이었다. 카이젤 옆에 붙어 있기에 비서 정도로 남았지, 단독으로 활동했으면 세계를 논하고도 남을 이들이었다.

  “한 명과 두 명과 세 명과 네 명은 불참이군.”

  카이젤은 자신의 주요 부관들의 유무를 무덤덤히 힐긋 확인했다.

  “비울 수 없는 임무를 맡으신 분들이니까요.”

  곁에서 레반이 대답했다.

  “하기야 그렇지.”

  그가 말한 ‘한 명’이란 인류연합 부대표이자 그의 최고 부관인 에녹 아담즈. 그는 왕의 공무 대행이기에, 상관이 쉬는 동안에는 형식상으로나마 정무를 맡아야 했다. 워낙 원칙에 철저한 그는 오늘도 사(私)보다는 공(共)을 준수하였다.

  또 ‘두 명’이란 차기 우주 개척과 관련된 ‘바인(VINE)’ 프로젝트의 두 수호자. 그리고 ‘세 명’이란 차세대 인류 관련 ‘아크(ARK)’ 프로젝트를 맡은 아크삼형제. 이들은 말 그대로 특수 임무를 맡았기에 오늘도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그리고 ‘네 명’이란 얼티밋 워리어들로 곧 인류연합 최강의 네 전사였다. 이들은 전략 병기이니만큼 정해진 위치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한가하게 연회에서 노닥거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여기에다 일곱 명의 철인왕과 일곱 명의 로스트엠페러들까지 합하면 총 스물네 명이 되는데, 속칭 TFE(Twenty Four Elders)라고도 불리는 이 스물넷은 SSS 클래스 초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로 카이젤의 직속 부관으로써 권력과 권세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들은 현 인간 세상을 주름잡는 초인 3세대의 주축이며 카이젤 라흐블뤼크의 오른팔들이었다.

  “역시 이런 자리에 참석하기는 부담스러웠나?”

  느닷없이 카이젤의 입에서 혼잣말이 나왔다.

  “네?”

  곁에 있던 데미안은 무슨 의미인지 몰라 의아해했다.

  “아니다. 신경 쓸 거 없어.”

  연회의 주인공은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지 미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그의 눈에는 부하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는 손가락에 끼인 금반지를 쓰다듬으며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

 

 

 

  연회장으로 이동하기 몇 분 전, 카이젤이 자택에서 막 떠나 크루즈로 이동하려고 워프를 가동하던 차에 누군가가 숨을 헐떡거리며 급하게 달려왔다.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카이젤은 잠시 느긋한 자태로 멈춰 섰다.

  “잠시만요, 형.”

  “무슨 일이지?”

  불과 며칠 전 윤혁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생일 초대를 거절했었다. 선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그 자리에 참여할 다른 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왕의 생일에는 항상 귀족들이 모이는 법이니까. 더는 초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으리라.

  “저기……, 참석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할 필요 없다.”

  말은 괜찮다고 해도 내심 서운함이 묻어나왔다. 윤혁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세계 수장의 초대, 그것도 주인공이 직접 제안한 부탁. 나름 큰맘 먹고 인심을 베풀었는데 우선순위에 밀렸으니 기분도 상했겠지. 양심에 거슬릴 것은 없으나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가족에게 받는 축하를 기대했을 텐데 인간적으로도 서운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윤혁은 소소한 방식으로라도 상대에게 예를 갖추기로 했다. 비록 자신에겐 많은 것을 베풀 역량은 없었지만, 최소한 정성이라도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떠나서 가족에 대한 배려로라도. 주님이었다면 공허함에 목말라 헐떡이는 사람이라면 신분 출신과 상관 없이 기꺼이 선물을 베푸셨으리라.

  “그리 값진 건 아니겠지만요.”

  이틀 전에 급하게 골라 마련한 물건을 품에서 꺼내 들었다.

  “축하드리는 의미로 준비했어요.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나름 정성스럽게 손으로 포장한 물건.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바로 풀어 봐도 되나?”

  “네, 괜찮아요.”

  의외로 카이젤은 호쾌히 반응했다. 어차피 그에겐 물건의 절대적 경제 가치 같은 건 무의미했다. 그저 타인과 자신이 물건에 부여한 의미와 추억만 상관 있을 뿐. 그렇기에 그는 실망감이나 무관심은 전혀 없이 도리어 내심 기대감을 보이며 정성스레 포장지를 풀었다. 상자 내부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 한 쌍이 있었다. 보석 장식은 없어도 나름 매끈하게 잘 가공된 물건이었다.

  “우정 반지?”

  “뭐, 그렇다고 봐야겠죠. 같은 신물질 재질로 된 한 쌍이에요. 내부에 서로 공명이 가능한 매질이 들어있다고 하더라고요.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도 공유되는 성질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윤혁은 쑥스러워하며 얼버무렸다. 사실 동생 관점에서 대단해 보이는 그 반지의 기술도 형에게 있어서는 뻔히 원리가 보이는 조잡한 원시 기술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준비한 정성이 갸륵할뿐. 저 작고 평범한 두뇌로 며칠간 끙끙 고민하며 정성을 쏟아부었을 것을 상상하니 흥미로웠다.

  “고맙다. 잘 활용하마.”

  카이젤은 반지 둘을 모두 거둬들였다.

  “아, 하나는 제 것으로 준비한 거예요.”

  윤혁이 황급히 주섬주섬 설명하였다.

  “아, 안다. 네 것은 내가 좀 손을 본 다음에 돌려주지.”

  카이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잘생긴 얼굴에 띄웠다.

  “아하, 그럼 언제든 작업이 완료되면 제게 보내주세요.”

  “알겠다.”

  동생에게는 나름대로 지출이 큰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보기에는 값진 물건은 확실히 아니긴 하다만 아이에게는 꽤 부담이 컸으리라. 그래도 애써 준비해온 동생이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행성이나 돌맹이나 경제적 감각 차이가 별로 없으니 아무것이나 준비해도 됐을 텐데.

  “이걸로 형제만의 징표가 생겼군.”

  카이젤은 흐뭇해하며 반지를 매만졌다.

  “내가 이걸 어떻게 썼으면 좋겠지?”

  “흐음, 글쎄요? 특별한 용도가 있던 건 아닌 것 같던데…….”

  윤혁은 형의 엉뚱한 질문에 잠시 깊은 고민을 했다.

  “아! 각자 자신이 가치를 부여한 일에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번 섬에 다녀왔을 때 윤혁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유대의 오랜 전통 풍습은 아니지만, 21세기 이래로 모종의 이유로 그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한 소소한 문화가 하나 있다고 했었지. 오늘날의 유대인들에게는 형제나 친구나 부부 사이에 우정의 징표, 혹은 맹약의 증표를 물건으로 만든 뒤 실생활에서 그 물건을 요긴히 활용하곤 하는 문화가 있었다.

  ‘공동체 식구들도 그런 식으로 물건을 만들어 사용했었지.’

  보통은 큰 용도로 사용한다기보다는 먹고 자고 씻는 등의 일상적인 활동에 그런 물건을 사용하곤 한단다. 하지만 사실 그런 일상이야말로 삶의 가장 의미 깊은 부분 아니겠는가?

  분명 삶 속에서 친구와의 맹약을 형상화한 물건을 사용한다면 그 내적인 의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기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 활동이 자신의 소명이나 비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더 풍부하게 의미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그때 윤혁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문화를 보고 흥미와 감명을 받았었다. 자신도 언젠가 한 번쯤은 본받아 실천해보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쁨을 의미 깊게 증진시키기 위해. 다만, 하필 그 실천의 시작이 멀면서도 가까운 이 사람이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로군.”

  카이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름대로 잘 사용해보마.”

  그의 두뇌는 벌써부터 반지를 개조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치밀하게 고민하였다. 어떻게 개조하면 좋을까? 천체 엔진이라도 압축해서 장착해볼까? 아니면 차원 간섭 열쇠를? 사이버 월드 전체를 통제할 코드를? 수만 가지 시나리오들이 청사진처럼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어른거렸다. 그때 돌연 그의 뇌리에 탄복을 토할 만큼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 계약 기술을 고형화할 새로운 응결핵은 어떨까?’

  바로 다음 순간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다. 이게 우정 반지 따위가 뭐라고 대체 이렇게까지 진지한 의미 부여를 한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동생과의 작은 약속일뿐이거늘. 느닷없이 선을 넘어대며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워 비웃음까지 나왔다.

  ‘과하군.’

  그래도 조금 전 떠오른 기발한 발상은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가끔씩 그에게도 이렇게 한 번씩 짙은 인상을 남기는 강력한 영감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면 기어코 실천해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형제의 반지는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재탄생할 운명에 놓인 셈이었다.

  카이젤은 통제하기 힘든 흐뭇함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

  “말씀하세요.”

  그는 줄곧 하고 싶었으나 아껴왔던 말을 꺼냈다.

  “우리는 가족으로 남게 될까, 아니면 결국 적이 될까?”

  사뭇 진지하고 묵직한, 고심 섞인 질문이 귓가에 울렸다. 선물 교환 덕분에 잠시 환기되었던 형제 사이의 감정선이 다시 무거운 분위기 속에 조금씩 침몰하였다. 윤혁 역시 은연중 두려움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그의 영은 본능적으로 언젠가 이 질문을 직면하게 될 것을 예감해왔다. 타고난 지혜자인 형 역시도 동일한 것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누구든 초인들의 왕을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

  만약 다른 초인이 저런 말을 왕에게서 들었다면 필시 진땀을 흘리며 공포로 얼어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카이젤이 동생에게 내뱉은 말의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상대를 압박하기보다는 배려와 공감을 갈망하는 듯한 위장된 애원이었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적으로 돌려주지 않기를 은연중 바라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제는 정반대의 가치관 속에 뿌리를 둔 양극의 존재였으니까.

  ‘영영 다른 길을 걸을 것인가,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될 것인가.’

  윤혁은 무거운 운명적 질문 앞에서 갈등했다.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늘 그렇듯 동생은 정직했고 이런 상황에서마저도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적당히 선의의 거짓말을 해줬어도 큰 탈이 없는 상황이거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우직함 때문에 형은 더 큰 신뢰감을 느꼈다. 가슴은 쓰라렸지만. 카이젤은 졌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군.”

  그는 아련한 표정으로 반지를 제 손가락에 끼웠다.

  ‘저 아이는 결국 내가 아닌 절대자의 편에 서겠지.’

  만물을 대적하는 오만한 왕인 자신마저도 품어주고 사랑하려는 주제에 신념만은 끝까지 한 방향을 유지하는 모순적 우직함. 아마 동생 본인에게도 저주와 같은 모순점이 될 것이다. 그런 미래가 눈에 선했기에 더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래, 언제나 그랬듯 내가 다가가고자 한 목표는 하나뿐.’

  카이젤은 애써 자신의 본 신념과 야망을 붙들었다.

  “선물은 고맙다.”

  “형이 기쁘다니 뿌듯하네요.”

  “앞으로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구나.”

  “저도 그러길 기도할게요.”

  “보답으로 다음번에는 내가 선물을 주마.”

  솔직히 사양하고픈 마음이 들었으나 형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하였다. 윤혁은 손사래를 치며 농담으로 대꾸했다.

  “……너무 크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알겠다. 마침 네 생일은 4월이니 잘 됐군.”

  무엇이 잘 됐다는 것인지 살짝 의문스러웠다.

  “그때쯤 나랑 다시 보도록 하지.”

  형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동생에게 배웅 삼아 가볍게 포옹을 해주었다. 본인으로서는 나름 가벼운 포옹이었지만 상대에게는 매우 무거웠다. 동생은 그 품에서 엄청나게 단단한 느낌을 받았다. 말랑한 면이라고는 전혀 없는, 흡사 강철과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인간. 눈앞의 철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단단한 체격만큼이나 차가운 심장과 영민한 두뇌가 두드러지는 사람.

  “오늘은 더 멋있게 차려입고 오셨네요.”

  그날 형의 옷차림은 근사해 보였다. 그 어느 고귀한 귀족도 견줄 수 없는 타고난 우월함이 그의 몸에 깃든 품위와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옷이 오히려 그에게서 영광을 받는 것 같았다.

  “원래도 멋있었지만요.”

  유난히 빛나는 잘생긴 얼굴이 돋보였다. 세상 모든 얼굴로부터 아름다움을 추출해 하나로 합친다 한들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만일 그와의 영적인 거리감만 아니었다면 저 찬란한 매력도 자랑스러웠겠지. 저 멋진 사람이 우리 형이라고 사람들에게 한껏 자랑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그런 일도 가능했겠지?’

  한편, 동생에게 칭찬을 들은 카이젤은 멋쩍게 웃었다.

  “녀석도 참 실없긴.”

  이제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조심히 돌아가라. 아버지께도 안부 전하고.”

  “네.”

  대답이 끝나자마자 카이젤은 별도의 장치도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이내 주변의 공간이 흔들리며 워프 반응이 발동되었다. 단독 워프, 그 자체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윤혁은 무슨 원리의 기술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얼떨결에 윤혁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곧바로 한국의 고향 집으로 환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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