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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06회 초인들의 세계 Ch 39. 디아스포라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1.2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결됨)

 

 

 

 

  “한 가지 더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물어보아라.”

  “메시아닉 유대인들, 그러니까 예슈아를 주님으로 모시다가 난민이 된 그들은 왜 현 경제 체제를 이용하지 못하는지요? 혹시 그 이유를 아시나요?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생명을 소유한 모든 인간에게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나요?”

  이에 노인은 흠칫 놀라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이건 내 세대의 일이라기보다는⋯⋯.”

  이 대목을 말하면서 그는 양심의 쓰라림을 조금 느꼈다.

  “이번 세대 초인들이 벌여놓은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구나.”

  물론 이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노인 자신도 아주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본인에게는 문제의 원인이 된 그 사건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없지만, 결국 현존 경제 시스템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최초로 고안한 존재는 자신과 동생과 그 동료들이었으니까. 3세대 초인들이 남긴 업적은 그 말도 안 되는 이상향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뿐이었다.

  “자세한 내막은 나도 잘 모르지만, 그 사연에는 매우 골치 아픈 사람이 얽혀있단다. 솔직히 난 네가 그 사람을 몰랐으면 하는구나. 아마도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평생 만날 일은 없으련마는, 그래도 꺼림칙하구나.”

  “골치 아픈 사람이라니요?”

  “어이쿠, 우선 사전 배경 설명이 필요하겠구나. 크레센트(Crescent)라고, 지난 세기부터 중동 부근에서 벌떼처럼 일어난 한 사이비 변질 이슬람 세력이 있단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슬람이라고 간주할 수도 없지. 유대교와 기독교는 물론 정통 이슬람교까지 몰살하려 했던 광기의 악신 들린 무리니까. 그들은 혼돈의 시대를 주름잡던 괴물 중 한 축이었다.”

  저도 모르게 윤혁의 몸이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선지자, 아니 선지자를 자처하던 인물이 한 사람 존재했다. 그냥 선지자도 아니고 ‘이슬람 교리서가 예언하는 최후의 선지자’ 말이다. 내 생각에는 바로 그녀가 일을 벌였을 게다.”

  영문을 파악하지 못한 윤혁이 재차 질문했다.

  “하지만 종교가 사라져가는 게 지금 시대잖아요.”

  젊은 그로서는 크레센트라는 악명의 무게감을 이해할 턱이 없었다.

  “일개 이슬람 사이비 무리가 그런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래. 물론 그 종교 세력 자체는 인류연합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미세한 먼지 한 톨이지. 하지만 내가 방금 말한 크레센트의 선지자, 그녀는 다르단다. 그녀는 무려 카테고리 분류 불가 클래스란다.”

  ‘카테고리 분류 불가?!’

  윤혁도 진이나 성운에게서 얼핏 들은 바 있었다.

  “그래, 현 초인들에게는 등급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테지?”

  현세대 초인들의 경우 초인 개체의 지적 능력(정확히는 ‘초인의 정신’)의 수준을 구분하는 ‘클래스 평가 시스템’이 따로 있다고 했었다. 일반적인 웩슬러 지능지수 평가법으로 지능을 측정하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초인들은 통상의 지능 측정법으로는 도저히 그 한계를 가늠하지 못한다지. 그래서 그들을 평가하는 방법은 오로지 초인들에 의해서만 창작될 수 있었다.

  사실 1세대 당시만 해도 별도의 초인 등급 분류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2세대에서도 대강의 격에 따라 상중하 등급으로만 개체들을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3세대 때부터는 체계적인 개인 잠재력 평가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물론 내용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세계 수학 난제 급의 난이도를 가진 종합 과제 수만 개를 단기간에 해결해야 하는 일련의 가상현실 시험 시스템 같은 것, 혹은 그와 비슷한 류의 시험이라고 한다. 어쨌건 무한히 발산하는 초 고난도의 연속 시험을 거치면 초인 한 명의 지력과 자질의 한계치를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단다. 그 평가 이후에는 최하 F 클래스부터 최고 SSS 클래스에 이르기까지 구분이 지어진다.

  단, 이 시험에도 한계가 있었으니 시험 자체를 고안해낸 초인들의 능력은 평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평가할 시험지를 따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을 시험할 수준의 문제를 만들어 낼 인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더 뛰어난 지성만이 하위의 지성을 평가할 기준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니까.

  “그들이 바로 카테고리 분류 불가의 존재들이란다.”

  이전 세대답지 않게 노인은 현세대의 시스템을 꿰고 있었다.

  “현재 초인들의 왕이 된 네 형도 포함되지. 총 다섯 명뿐이란다.”

  “그 여인도 그중에 포함되는군요.”

  이는 대단히 심각하게 여길 일이었다. 크레센트의 선지자라는 여자는 무려 그 강력한 카이젤 라흐블뤼크에 버금가는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니까. 그런 거물이 음모를 획책했으니 유대인들의 지력으로는 상대하기에 벅찼을 것이다.

  “그녀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작당을 벌였죠?”

  “초인들이 지금의 ‘생명 유착형 포인트 시스템’을 확립하려던 시기 초반쯤에 이스라엘이라는 지역 전체에 걸쳐 모종의 음모를 발동했던 것 같구나. 그 시스템은 다섯 명이 기획한 협동 프로젝트였는데 그녀가 이스라엘 영토 한정으로 작당을 벌였던 게지. 시스템의 기획자이기도 했으니 더욱 쉬웠을 거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한 것인지 감은 안 잡혔으나 얼핏 듣기만 해도 그녀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적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적의는 자신을 낳아준 종교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택한 악신 들림이었을까?

  “마침 그때는 50년 만에 돌아온 명절이었던지라 전 세계 유대인들이 다 이스라엘에 모여 있었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녀는 애초에 그 타이밍을 노렸던 것 같다. 아니 유대인 전부가 모이도록 사전에 유도했겠지.

  그 덕에 당시 이스라엘 주민들과 유대인들은 통째로 시스템에서 배제되어 경제권을 박탈당했단다. 단순히 메시아닉 유대인들만 당한 게 아니라 국가와 민족 전체가 오염당했지.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단지 난민 형편인지라 그 고통이 크게 두드러질 뿐이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오늘날 지구상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가장 빈곤하고 왜소한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수치스러운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각종 풍부한 문명의 이기와 넘치는 재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왕따 국가가 되어버렸다.

  “인류연합은 왜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았죠?”

  윤혁이 다시금 의문을 드러냈다.

  “경제 시스템 초기 확립 당시 연합은 크레센트와의 복잡한 알력 다툼으로 매우 난처한 처지였거든. 그 이후엔 인류연합이 크레센트를 박멸해버렸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였지. 그리고 그 경제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 물리학 원리들을 기반으로 했기에 다 확립된 뒤에는 다시 개편하기가 불가능한 구조였단다.”

  노인은 자신의 지식수준으로는 그 억만 분의 일도 이해치 못한다며 솔직히 실토했다. 어느 정도의 과업인지 일반인으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대단한 네 형마저도 친구들의 도움을 빌릴 정도였지.”

  “그 정도면 말 다 했네요.”

  물론 십 대 청소년 당시의 카이젤이니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실력이 미약한 수준이었겠지만, 어쨌건 그 대단한 인간이 누군가의 손을 빌릴 정도라면 결단코 가벼운 임무가 아니었음은 자명했다.

  “그래서 굳이 힘들게 돌아가느니 그냥 이스라엘을 버리는 셈 쳤지.”

  “다시 처음부터 만들면 되지 않나요?”

  “형편이 복잡했단다. 수지타산이 안 맞았지. 게다가 아까 말했듯 이미 협력자 중 하나인 크레센트의 선지자가 배신자로 밝혀진 상황이었단다.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하면 위험 분자에게 공략당할 틈을 주는 꼴이었지. 네 형 입장에서는 온갖 리스크들의 준동을 허락하느니 작은 예외를 희생하는 게 백 번 합리적이었을 게다.”

  얼추 이해는 되었으나 서운하게 생각되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인가?’

  그렇다고 비판하자니 그 대(大)와 소(小)의 격차를 온전히 가늠하지 못하는 입장이기에 감히 누군가를 판단할 엄두가 안 났다. 정치란 것은 원래 그렇게 복잡한 역학(力學)이니까. 윤혁은 잠시 이 문제의 도의적 판단은 보류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유대 민족은 머리가 뛰어난 자들이잖아요. 게다가 초인 중에서도 유대인 출신이 있었을 텐데요. 형이 말하길 현 지구 인류 중 십만 분의 일은 초인이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산술적으로 그 나라에도 최소 수십의 초인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유대인 출신 초인들은 동족을 돕지 않았나요?”

  “얘야, 아직 초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모르는구나.”

  어르신께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초인들의 머릿속에는 국적이라는 개념이 없단다.”

  다시 그 부분에 관한 부가 설명이 시작됐다.

  확실히 카이젤이 태어난 28년 전에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3세대 초인들이 대거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10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3세대 초인이 나타났다. 선천적으로 태어나거나 후천적으로 각성하는 식으로.

  그들 중에는 당연히 드물게 이스라엘 출신 혹은 유대인 출신도 있었다. 그들은 성장 배경 상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기에 장차 올 메시아를 고대하는 민족적 정신 유산도 물려받았다.

  그러나 유대인 초인들은 스스로를 유대교나 이스라엘이라는 종교, 정치적 한계에 가둬두지 않았다. 그들은 신도 섬기지 않았다. 철저히 초인적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외국의 초인들과 교류하였고 새로운 위버멘쉬가 될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보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민족적 종교를 버리는 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유대인 출신 초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버리고 초인 사회에 합류했다.

  과연 그들이 조상들에게 배운 ‘메시아 사상’을 그들의 왕 ‘위버멘쉬’와 연결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아예 영향이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던 그들이었으나 다섯 후보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과정에서는 메시아 고대 사상이 아주 조금은 반영되었으니까.

  “위버멘쉬를 판별하는 과정에서 메시아 사상이 영향을 주었다고요?”

  얼핏 들으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 같았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서 메시아를 의식 중에 떠올렸단 말인가? 그리스도인 집안에서 태어나 ‘메시아’ 하면 예수님밖에 몰랐던 윤혁으로서는 쉬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답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네 형이 혈통 상으로는 옅게나마 유대 민족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란다.”

  “저희 형이요?”

  윤혁은 몹시 놀라워했다.

  “우와! 그건 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물론 네 형의 모계 혈통의 본류는 신국, 다시 말해서 유럽 쪽이긴 하지. 하지만 유대인의 족보도 엄연히 섞여 있긴 하단다. 원래 그 혈통은 부계 계승법을 기준으로는 하는 통상의 혈통과는 족보법이 다르니까.”

  유대 민족은 오랜 디아스포라의 역사 탓인지 혈통상의 규정이 일반적인 민족 및 가계와는 상이했다. 친가쪽이건 외가쪽이건 한쪽 이상에서 유대인의 혈통이 포함되면 그 사람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 소속으로 계산된다. 이러한 룰이 없었다면 그 오랜 핍박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은 멸종되었으리라. 요약하자면 카이젤 그 사람을 유대인으로 간주해도 전혀 틀리지는 않은 셈.

  “이스라엘 출신 초인들은 인류연합 건립 당시 카이젤을 지지했지. 다른 초인들이 실력과 성과를 봐가며 이리저리 저울질을 했었던 것과는 달리 훨씬 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결정이었단다.”

  “그랬군요.”

  그 와중에 윤혁은 형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낯설었는지 계속 곱씹었다. 아무래도 임의의 낯선 외국 혈통이 주는 인상과 성경과 역사를 함께하는 민족이 주는 의미의 무게는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었다.

  ‘이목구비만 봐서는 그런 민족적 특성을 알 수 없었는데.’

  하긴 모계와 부계 양방으로 전달되는 민족이니 유전적 공통분모는 희석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실제로 외모적인 특성으로 오늘날의 유대인을 분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당장 섬에서 만난 메시아닉 유대인들도 제각기 외모의 특성이 다양했다. 특히나 카이젤의 외양은 어머니 쪽의 유럽 민족성과 아버지 쪽의 한국 민족성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종류의 민족적 속성이 절묘하게 연합되어 궁극의 미형을 구성하였기에 겉모습만 봐서는 정체성을 알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유대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민족이라는 명성답게 체면치레는 한 셈이었다. 과거 노벨상은 그렇게 많이 배출하더니 초인 시대에는 왜 그토록 유력한 초인을 적게 배출했는지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무려 가장 우월한 개체가 그들 중에서 나왔었다니, 과연 여러 의미로 경탄스러운 종족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자랑스러워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도 자기 민족의 고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

  “결국, 민족으로서는 전혀 보람이 없었네요.”

  “말했잖니. 초인에게는 민족이란 개념이 의미가 없단다.”

  참고로 크레센트의 선지자가 음모를 펼쳤던 그때도 카이젤은 물론이고 다른 유대인 출신 초인들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단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란 국가나 유대 민족에겐 아무런 동질성도, 소속감도 느끼지 않았고 실제로 정식 소속된 적도 없었다. 아니 아예 이 땅에 없는 나라처럼 취급했단다. 특별히 핍박을 가한 건 아니었으나 고난 가운데에서 구출해줄 의사도 없었단다.

  세상으로부터는 따돌림을 당하고 적대자들에게는 핍박을, 크레센트의 선지자에게서는 흉계의 채찍을 받았으며, 기껏 배출한 우수한 위인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한 민족. 심지어 회개하여 참된 신앙의 길로 돌아올 기회마저 일시적으로 보류당한 민족. 여러모로 기구하기 그지없는 민족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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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유독 반유대주의가 횡행하는 세상입니다. 물론 유대인들 가운데도 악인들이 많고 워낙 똑똑해서인지 악한 영향력도 많이 끼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을 매도하여 '유대인 음모론'으로 몰아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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