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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08회 초인들의 세계 Ch 39. 디아스포라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1.3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인우야, 현아야.”

  태헌이 홀로그램 데이터 북을 닫으며 몸을 풀었다.

  “너희는 요새 의과학 커리큘럼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커리큘럼이?”

  “응,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어?”

  태헌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새로운 화제를 던졌다.

  “음, 특별히 그런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아주 약간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있었다만.”

  친구들은 아쉽게도 그의 예민한 직감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만 느끼는 건가?’

  태헌은 대강 알고 있었다. 오늘날의 자율 의료 시스템, 나노머신, 그리고 외과용 로봇의 발전 속도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도 백 번도 넘게 뛰어넘었다. 앞으로는 더 높은 경지에 이르리라. 인간 의사의 판단력이나 손 솜씨는 더는 인류 건강 증진에 유의미한 가치가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마 나노머신마저 초월한 무언가가 머잖아 출시될 것이다. 요컨대 의사의 존재 의의 자체가 이미 사라졌다.

  ‘의대생인 나조차도 아는 사실이거늘.’

  정부의 요직에 앉은 자들과 첨단과학 선두에 선 과학자들이 이런 지당한 사실을 모를 리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구태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자 양성에 이렇게까지 큰 비용과 여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즉 왜 의과대학을 폐지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을까? 현재의 의사 양성 규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첨단 연구 특화 의학자를 양성한다고 말하지.’

  하지만 의학 연구 역시 극소수의 최상위 천재들이 공급하는 아이디어면 지속적으로 발전을 쌓기에 충분하다. 아니 잡다한 연구의 경우에는 대부분 인공지능에 맡겨도 상관없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정말로 의사들을 키워내는 이유가 의학 발전을 위함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일까?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또 다른 형태의 임상 업무를 맡기려는 건 아닐까?’

  그는 지난번 고등학교 후배와 같이 있다가 졸지에 봉변에 휘말려 생체병기를 목격했었다. 그 이후로 충격을 받은 그는 생체병기에 대해 자기 나름의 조사를 수행했었다. 면밀히 탐구해본 결과, 이전 시대에는 불법적 방법으로 인조인간을 만들려는 시도가 숱하게 있었고 실제로 성과물도 제법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유전자 가위 기술, 텔로미어(telomere) 조작을 통한 불로불사 개체 생산, 인공 세포 제작 기술, 수정란 융합, 동물과의 키메라, 인공 미토콘드리아 이식 등 별의별 비윤리적인 시도들이 있었다지. 지금은 대부분 금기화되었다지만.

  그 일들은 기가 찰 정도로 윤리성을 짓밟은 만행임이 분명했으나 한편으로는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윤리 기준이 철저한 고교 후배와는 달리 호기심이 윤리 의식의 장벽을 자주 뛰어넘는 태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그런 자신이 가끔은 경멸스러웠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곤 했다. 그러면서도 탐구욕을 완벽히 다스리지 못하는 점이 그가 이 교육 기관에 의해 선발된 이유 중 하나이리라.

  그렇다. 이름만 의대이지, 오늘날의 의과학 훈련 센터들은 실상 과거의 의대와는 개념부터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태헌이 그 생체병기를 만났을 때 그 괴이한 존재의 육체 내부에 담긴 ‘체내 초소형 영구기관’을 보조 장비를 통해 관측할 줄 알았던 것도 이미 유사한 주제를 의대에서 연구했던 적이 있었고 유사 장비를 활용하는 법을 연습해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이미 현 의과대학들의 주요 학습 커리큘럼은 금기의 선을 외줄 타기 묘기를 하듯 교묘히 넘나들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 사람 살리는 의학의 요람인 말도 이제 옛말이야.’

  확실히 단순한 기초 의학과 임상 의학 지식의 수준은 오늘날의 의학자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그런 지식은 그저 외우면 되는 지식이기에 컴퓨터와의 뇌 접속을 통해 범인(凡人)에게도 주입이 가능하다. 단언컨대 기초 급 교육용 브레인 업로드 장비의 힘을 빌리면 아무리 둔재라도 임상 의학 전체를 하룻밤 만에 완전히 습득하는 일이 가능하다.

  ‘무려 수년씩이나 배울 필요는 없지, 암.’

  그렇기에 의과대학에서는 좀처럼 일반 환자의 문제와 상관없을 듯한 내용을 위주로 가르쳤다. 일단 커리큘럼의 주요 구성은 연구이긴 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이를테면 신체 강화, 나노머신을 통한 실시간 생체 교정, 망가진 뇌 신경의 재구성, 세포 단위 인체 재조립 방법, 암 발생 없이도 세포를 불멸화(不滅化)시키는 기술, 노화 조직을 역행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어차피 현재는 의사가 손댈 환자도 없으니 임상은 손을 놓고 아예 먼 미래를 내다보며 전혀 다른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우리의 훈련 목적은 사실 전혀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가까운 앞날에, 아니 조만간 어떤 대규모 프로젝트가 전 세계 단위로 전개되는 것은 아닐지? 태헌은 위험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쳤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옆에서 가만히 듣던 현아가 실소를 터뜨렸다.

  “에이, 그건 너무 앞서 나갔다.”

  “그래, 마, 넌 생각이 쓸데없이 많아서 탈이야.”

  “맞아, 하여간 오빠는 너무 공상도 풍부해.”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음, 그럴지도 모르지.”

  자신도 괴이한 존재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지 못했겠지.

  “그래도 가끔 앞날을 예측하는 것도 재밌잖아. 안 그래?”

  그는 동기들 앞에서 너털웃음으로 무마했다.

  ‘사람을 살려내는 의사가 되라고 부탁했었지?’

  친동생처럼 아끼는 고등학교 후배의 조언을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신념이 이 현실 속에서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의학도들은 이미 히포크라테스 선서적인 의술과는 사뭇 다른 목적으로 빚어지는 중이었다. 제한된 그의 상상력으로는 그 빚음을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향후 행방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

 

 

 

  카이젤은 고도의 집중력을 쏟아부으며 눈앞의 프로젝트에 몰두하였다. 그는 현재 외부 항성계의 거대 실험실 안에서 작업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실험체는 얼마 전 선물로 받은 황금 반지. 원본 내부에는 공명 기능 외에 별다른 것이 없었지만 그가 직접 몇 번 손을 본 덕에 현재는 각종 신식 기능을 내장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초월적 기능들을 삽입할 예정이었다.

  ‘슬슬 완성 단계군.’

  아울러 그는 자신의 반지를 ‘그 계약’의 핵으로 승화시켰다. 그 뒤 더욱 응축시켜 여러 기술력을 머금을 수 있도록 새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오늘 그는 이 최신식 ‘계약 반지’가 삼킬 첫 먹잇감으로써 오랜 시간 준비해둔 각종 프로젝트의 핵심 심장부를 이식시켰다. 이제 이 테크놀로지들은 ‘계약의 반지’의 성공적 탄생을 축하해주는 첫 번째 값진 보석 장식이 되어주리라.

  {6세대 시뮬레이션 우주 가동 시작.}

  {핵심 키워드 ‘Realization’.}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Realization 열쇠의 핵을 압축하여 대상에 융합시킵니다.}

  카이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황금 반지’와 둥근 빛을 발하는 ‘핵’의 융합을 지켜보았다. 본래라면 자그마한 반지 속에 준 천체급 물체를 담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과업이겠지만 차원 간섭이라는 반칙을 쓰니 의외로 쉽게 영구적인 융합이 이뤄졌다. 이미 이런 식으로 카이젤은 반지 속에 수많은 괴물 테크놀로지들을 담아낸 바가 있었고 오늘의 추가 분량은 그중 하나에 불과했다.

  ‘동생과의 약속을 존귀하게 기념하기에 손색이 없군.’

  현재의 5세대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더 진보한 6세대 시뮬레이션 우주. 이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부분적이나마 ‘실체화’라는 무서운 기능이 허락될 것이다. 가상의 물건, 가상의 기술, 가상의 법칙들을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나마 현실 세계로 직접 가지고 오는 기술. 이 계약 반지는 가상의 존재를 실체화시키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아직 왕 이외의 초인들은 이 프로젝트의 진행을 모르고 있었다. 만일 지금 시점에 누출된다면 윤리적 집행 능력, 자기 통제 능력, 도덕적 지능이 위버멘쉬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초인들은 필시 이 기술을 적합하지 못한 방향으로 남용하여 파국이나 재난을 빚으리라. 그렇기에 모든 작업은 해킹이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이 작업도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해 마무리되었다. 충분한 경지를 넘어선 이후로 한 가지 계획으로 하루를 붙잡은 일이 드물었다. 지금의 그에겐 연구 또한 권태로움을 달랠 수단이 되지 못했다.

  ‘S-unvs 실체화 기술도 완성이니 이젠 그곳 차례인가?’

  잠깐의 몸풀기를 마친 카이젤은 쉴 틈도 없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그는 네트워크를 열어 수십만 개의 우라노폴리스가 연결된 중앙 서버와 접속했다. 네트워크는 이내 카이젤의 정신과 뒤엉켰다. 여러 세계가 황제의 뇌리와 일체화되었다. 각기 수천만에서 수억에 달하는 인구가 제각기 다른 형태의 문화를 이루며 존재하는 곳, 지구 외부의 천외천의 세계들, 우라노폴리스. 그곳들은 카이젤의 가두리 양식장이요 그가 지배하는 왕국들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데아. 하늘도시와의 접속 강도를 높여라.’

  명령어를 인식한 카이젤의 ‘정신’들이 무형의 촉수를 뻗어 세계들의 심장부를 더욱 센 강도로 후벼파며 침식했다. 그것들의 제어력은 지하를 향해 아래로, 아래로 거듭 내려갔다.

  각각의 우라노폴리스들에는 ‘산 사람’, 아니 ‘공식적으로 생존한 사람’ 이외에 또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생존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죽은 것으로 된 이들. 각 콜로니 지하부에는 이들을 담은 하데스 챔버(Hades-chamber)가 존재했다.

  그곳들은 지상의 주민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지하 세계였는데 사실 진정한 의미의 하늘도시 주민들은 이 방들에 담긴 자들이었다. 활동 중인 지상 주민들은 아주 간헐적으로만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하는 반면 하데스 챔버 주민들은 동면 상태의 육체로 24시간 연속 접속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니까.

  카이젤의 미래 청사진이 무사히 구현된다면, 이 지하의 주민들은 훗날 해방되어 첫 번째 우주 시대를 여는 개혁의 주역들이 될 것이다. 지상의 주민들도 풀려나긴 하겠지만 주류는 지하 주민들이 되리라. 더 나아가 두 번째 우주 도약, 곧 은하 외부의 무한한 우주 정복을 위해서도 지금의 지하 주민들이 꼭 필요했다. 그전까지는 그들을 예속시켜 자신의 계약에 순종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장래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둘 일이 많군.’

  노화를 완전히 막고 역행시킬 피코머신은 이미 한참 전에 완성했다. 자신의 몸에서는 진작 성공시켰고 초인에게도 완벽히 동기화했으며 이제는 연구를 거듭하여 초인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일반인 육체에도 보편적으로 완전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는 제한적으로 하데스 챔버 주민들에게만 실험적으로 적용했다면 이제는 대대적으로 공개 시행해도 아무런 위해나 오차의 가능성이 없을 정도였다.

  ‘임상 시험 같은 건 이미 완료된 지 오래.’

  이전 시대 같았으면 수천억의 생명과 인명을 희생하고서야 겨우 그 위에 성과의 상아탑을 지을 수 있었겠지만, 시뮬레이션 우주가 발명된 지금 현실 실험과 동등한 가치의 가상 실험을 억겁에 가까운 횟수만큼 거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덕분에 인류연합은 세포 하나만큼의 희생도 치르지 않은 채 전 인류 불로불사라는 반칙급 위업을 완성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화 정복 및 노화 역행은 기껏해야 초석. 이후에 진행될 다음 단계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거주할 수 있도록 인류의 신체를 범용화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바이오닉 솔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얻은 의학 데이터들을 일반화시켜 식민지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적용할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의료 인프라 및 의료 인력이 필요해지리라. 그 과정에서 ‘인간 대 인간의 교류’도 상당량 재료로써 필요할 테니 초인과 인공지능들만으로는 부족. 전문 의료 군단의 확충은 필수였다.

  “그 아이가 알면 충격받겠군.”

  카이젤은 느닷없이 홀로 상상하며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 부쩍 무의식적으로 동생 생각에 자주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껏 누군가에 휘둘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이리 변화했을까? 무엇이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규칙을 어기도록 만들었을까?

  ‘알 게 뭐야.’

  그래도 찝찝했는지 그는 프로젝트를 비밀에 묻어두기 위해 보안 암호를 걸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가 작정하고 감추는 극비들을 파헤칠 실력자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훗날에는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공개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일이 마무리된 뒤일 테고 자신의 계획을 훼방하거나 대적하거나 심지어는 반론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피곤한 방해가 없도록 가급적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방해는 금지해야겠지.'

  그렇다면 적당한 변수는 어떨까? 방해와는 별개로 그건 흥밋거리였다. 카이젤은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기술로 현자의 눈 문양의 펜던트를 실체화시킨 뒤 그 중 푸른색 격자 문양을 콕 집어 쥐었다. 곧 현자의 눈의 주인을 향한 은밀한 지배력과 감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재롱을 피워봐라, 아들아.’

  자신이 이렇게 타인을 마음껏 이용하듯, 자신 또한 어떤 존재의 손바닥 안에서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은 언제 상기해도 늘 불편했다. 그러나 때로는 절대적 존재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는 것도 유익하겠지. 기꺼이 장단을 맞춰주리라. 밀고 당기는 기술의 귀재인 사내는 마음속으로 주판을 두드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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