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10회 초인들의 세계 Ch 40. 청춘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05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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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장소는 어디로?”
“멀리 갈 필요도 없어. 이 도시 근방이라도 좀 둘러볼까?”
윤혁은 믿어도 좋다는 투로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도심에는 나름 흥미로운 것들이 많거든.”
지난 번의 환대에 보답할 겸 그녀에게서 점수를 딸 좋은 기회였다.
“이곳보다 더 멋진 곳이야?”
“그야 물론이지.”
제로원 같은 초월적인 문명은 아니어도 윤혁이 살아온 이 도시에도 나름 훌륭한 볼거리들이 꽤 있었다. 아마 작은 마을에서만 지내왔던 여인에게는 문화 충격을 일으키는 광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너무 급진적이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구경해도 괜찮은 경험이 되겠지.
그렇게 둘은 별 계획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시작했다.
도심에 도착하자마자 루디아는 경탄하였다. 그녀도 이곳에 올 때 언뜻 희미하게 보기는 했지만 가까이서 직접 보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야경을 수놓는 화려한 도시 불빛이 보였다. 날아다니는 차들은 현란했으며 하늘 천장에 수놓아진 인공 별들은 오색 찬란히 반짝거렸고 허공에 떠 있는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의 건축물들은 웅장하고 기이했다.
둘은 대중교통에 탑승해 공간 위를 순회하면서 곳곳을 정신없이 구경하였다. 문득 좀 더 멀리까지 나가고 싶어졌다. 광범위 순회용 교통수단으로 옮겨 탔다. 금세 둘은 근방의 대도시로 이동했다. 이동 장치는 층과 층을 오갔다. 오늘날의 대규모 도시들은 대체로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높은 층에도 지하에도 별개의 세계가 있었다. 창밖으로 여러 층의 도시들이 동시에 관찰되었다. 광역 관측 장비 덕분이었다. 신세계에 온 것처럼 경이감이 들었다.
“어떻게 도시가 공중에 붕 떠 있지?”
그녀는 어떤 원리로 이런 장관이 형성되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내내 창밖 풍경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구조인데도 물이나 공기나 자원이 무제한으로 공급될까? 상식을 넘는 세상이었다.
“하하, 그게 설명하려면 좀 복잡하긴 해.”
멋지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이래 봬도 공학도이긴 하니까. 하지만 그녀 지식수준에 맞춰 설명해주려니 말문이 막혔다. 도시 공학을 일일이 해설해주려면 꼬박 사흘 밤낮을 새워야 할 테니까. 최소한 우주 요새나 게이트의 원리까지 말해줘야 공중에 도시를 짓는 원리를 제대로 알려줄 수 있으리라. 결국, 머리에 쥐가 난 윤혁은 깔끔히 포기하고 간략한 설명으로 대신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야.”
다행히 그녀는 풍경 감상에만 정신이 팔렸다.
“그렇지? 밖에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응, 고마워.”
“뭐 고마울 것까지야.”
윤혁도 지금의 루디아처럼 문화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불과 한 달 전에. 제로원의 가장 깊은 심연부터 가장 높은 상공까지 이르는 지구의 축을 오르내리며 광활한 형의 제국을 목도했었다. 그 압도적인 위용으로 인한 충격은 지금 루디아가 느낀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그 당시에는 신기함이나 아름다움을 느꼈다기보다는 거대한 괴수 앞에 선 개미의 입장이 되어 우주적 공포에 가까운 감상을 받았었다.
‘역시 뭐든 적당한 수준이어야 좋은 것 같아.’
그때 형도 온정어린 마음으로 자기 세계에 초대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자신도 루디아처럼 순수하게 감탄해줄 수 있었을까? 그날 자신의 소유물을 자랑하던 형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듯 외로워 보였다. 그가 뽐내던 제로원의 영광과 위엄은 윤혁에게는 전혀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했었다.
*****
둘은 도심 투어를 마친 후 공원을 산책했다.
도심이 인간이 만들어낸 첨단 문명을 잔뜩 뽐내는 공간이라면 공원은 비록 인공적이라지만 자연의 원래 모습을 재현해놓은 곳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이질적인 세계, 그것들이 한 도시 속에서 어우러지는 광경이 참으로 감탄스러웠다.
푸근한 풍경이 둘 앞에 펼쳐졌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온 사람, 조깅하는 청년들, 자율 기동 자전거를 타고 노는 어린아이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 것 같았다. 루디아는 길가에 기웃거리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조심히 다가가 털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윤혁은 저절로 작은 웃음이 나왔다.
“너무 작고 귀여워.”
“예전에 나 따라다니던 검은 고양이도 있었는데.”
“진짜? 집에서 키웠어?”
“어머니가 털 날리는 걸 안 좋아해서 바깥에서만 가끔 밥을 줬었어.”
“지금은 어디 있는데?”
윤혁은 말없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재 그 고양이는 편안한 저택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눌러살게 되었다. 호랑이가 고양이를 아기 다루듯 지극정성으로 아끼던데, 둘이서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겠지?
“아는 친척 집에 맡겼어.”
“음,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잘됐네.”
“편안한 곳에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좀 더 강가를 거닐었다.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간질였다. 어떤 도시는 아예 대기 전체를 에어 컨디셔닝 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던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는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환경 조작……, 테라포밍이라.’
현재 한창 테라포밍 중인 외계 행성들도 있다는 진의 이야기가 문득 기억났다. 아직까지는 지구만큼 쾌적한 행성 환경을 빚어내지는 못한다지. 사실 아무리 타 행성을 살기 좋게 테라포밍하고 개척한다 해도 결국 지구의 모습을 모방해 옮겨 심어 놓은 것에 불과하리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그대로의 완전한 자연에 비길 만한 작품은 없다는 감상이 들었다.
“얀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어. 그분이 어렸을 때는 우리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고마우신 분들이 찾아와 성경 말씀을 풀어주었대. 특히 예슈아를 전하시던 선교사들의 공헌이 컸지.”
벤치에 앉아서 쉬던 도중 루디아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특히 한국이나 북미 출신 신자들은 편견과 비난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셨대. 그래서 나는 내심 이 나라에 오면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질 것을 기대했었어.”
윤혁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늘 난 이곳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찬양하는 소리와 예배의 풍경은 전혀 발견되지 않아. 간혹 십자가가 그려진 건물은 있지만, 그곳에서는 전혀 생명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
그녀가 품은 의문에 대해 솔직히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과거 어려웠던 시절, 한국은 서양 선교사들의 전도를 받았고 그것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과 미국은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의 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 선교와 중동 선교에 힘썼던 한국이 순결했던 그 신앙을 저버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찬양 소리는 고사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이 바보 취급이나 받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생각처럼 세상일이 아름답게 흘러가지는 않더라고.”
윤혁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아빠가 그러셨는데 옛날에는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난이나 어려움 때문에라도 신을 열심히 찾았대. 그것이 참된 신이든 거짓 신들이든. 그런데 지금은 의지할 만한 다른 것들이 많잖아.”
예컨대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데 성공한 위대한 지식 문명의 힘, 아니면 초월적인 지혜를 갖고 태어난 천재 지도자 같은 것, 더 엄밀하게는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무궁한 풍요로움.
“그러다 보니 다들 잊어버린 거지. 마음속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자연스러운 일인 양 치부하게 되었어. 물질적인 풍요와 현실적 형통이 중요하다 보니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문제나 영원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되었지.”
지금까지 윤혁은 이러한 세태를 보며 반쯤 체념하고 있었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흐름이 이러니 역행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변명하며 사람들의 영적 침몰을 지켜만 보았다. 하지만 루디아의 시각은 달랐다. 그리고 오늘 그녀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면서 윤혁 또한 자문하게 되었다. 정말로 이대로 놔두어도 괜찮을까?
‘정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을까?’
내가 그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구나. 조금 안타깝네.”
“응.”
그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조금은 실망을 느꼈지만 이내 애써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 자신을 위해 하루 내내 애써준 친구에게 괜한 마음의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가 오늘을 즐기기를 바랐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뭐랄까, 아직은 희망이 보여.”
루디아는 옆자리에 앉은 건실한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같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니까.”
아무리 메마르고 갈핍한 세상이라도 단 한 명의 신실한 영혼이 그 속에 살아간다면 그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소망을 느낄 수 있는 법. 루디아는 이제 이방 세계를 볼 때마다 친구를 떠올림으로써 희망을 되새김질할 생각이었다. 설령 믿음이 메마른 땅이라 해도 이제 한국은 윤혁과 그의 식구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세상이었다.
“그래, 남들이 어떻게 보던 신실하게 살아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루디아의 작은 배려에 기운을 얻은 윤혁은 스스로를 독려했다.
*****
둘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가까운 커피숍을 찾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아날로그 양식과 자동판매 시스템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카페였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이 직접 주문을 받으며 음료와 디저트를 제작하여 운반해주었다. 루디아는 로봇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 저분들이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고?”
“아, 뭐⋯⋯, 일단 그렇긴 한데 말이지⋯⋯.”
이번에도 설명하기 다소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하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사람과 똑같아진 건 얼마 안 되었으니까.’
안드로이드 로봇 자체는 분명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왔지만, 사람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한 건 근 세기부터였다. 문명 세계에서 떨어져 지내온 그녀로서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으리라. 루디아는 모든 업무를 기계가 대체할 수 있고 기계의 수량도 무제한에 가깝다는 사실을 듣더니 크게 경악했다. 새삼 둘이 살아가는 세상의 격차가 격세지감으로 느껴졌다.
“믿을 수 없어! 그러면 인간들은 무슨 일을 한단 말이야?”
“극도로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사람들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나머지 대중은 생산보다는 순수하게 자기가 즐거워하는 활동을 하지. 간혹 그러다 생산성을 창출해내는 예도 있지만.”
“세상에! 그러면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데?”
설명해주기 난처한 루디아의 질문에 윤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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