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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11회 초인들의 세계 Ch 40. 청춘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0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세상에! 그러면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데?”

  설명해주기 난처한 그녀의 질문에 윤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어디서부터 알려줘야 한단 말인가. 맥락을 이해하려면 역사부터 해서 한참을 공부해야 할텐데. 그는 자신의 해설 능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노력해보았다.

  “현세대에서는 생존을 위한 돈벌이는 따로 필요 없어. 내가 전에 알려줬던 포인트 시스템 있지? 그 포인트란 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자동 축적형 재화거든. 가만히만 있어도 무제한으로 축적된다고 보면 돼.”

  슬슬 그녀도 바깥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매 순간 저절로 포인트가 쌓여. 축적 포인트가 많아지면 더더욱 축적 속도가 가속돼. 그리고 노동, 발명, 문화 창출을 통해 유익한 기여를 남기면 그에 비례해서 축적 속도가 더 빨라져. 또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사람의 포인트 축적 속도는 일제히 상향되지만, 물가는 변함이 없지.”

  이는 인류가 생산해낸 실질 재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민 모두의 포인트를 합쳐도 어차피 에너지, 공산품, 식량 등 실질 재화의 총량에는 아득히 못 미친다. 그렇다고 그 재물들을 한꺼번에 풀어 유통하면 방종과 혼란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식민지에서 만들어져 축적된 실질 재화는 민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선만큼만 풀려나와 지구에 공급되었다. 포인트는 단지 창고에서 재화를 끌어내는 유통 매개물에 불과했다.

  ‘지구로의 공급량을 서서히 늘린다고는 하지만 생산량의 폭발적 증가에 비하자면 새 발의 피 수준도 안 되지. 하지만 민간 세계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 있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번식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여러모로 지독하리만큼 현명한 전략이었다. 어차피 물체 복제술, 무한의 에너지원, 물질 생성 기술, 수천억 개의 항성계, 상위 차원 등이 존재하는 마당에 경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이런 식으로 생명에 유착된 자본 시스템을 유지함으로써 인류의 방종도 제어하고 감당하지 못할 부유함의 위험도 차단하니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는 현 노선이 안성맞춤이었다.

  ‘형이 왠지 부자 아버지처럼 느껴지네.’

  문득 자녀들에게 올바른 경제 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용돈의 양을 규칙적으로 제한하는 억만장자 거부(巨富)의 자녀 훈육 방책이 떠올랐다.

  참고로 현 경제 시스템 내에는 여러 종류의 자본 포인트가 존재한다. 각 종류의 포인트는 이용범위에 제한이 있기에, 구입할 수 있는 품목과 없는 품목이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의료 전용 포인트는 생명이 위급한 사람일수록 더 기하급수적으로 빠른 속도로 자동 축적된다. 반면 인류연합에 전속된 요새나 전함은 아예 민간 포인트로는 거래할 수 없는 예외 품목이었다.

  “일종의 노동 해방이 구현된 셈이네.”

  “응. 그 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많아. ‘사행성 투기’나 ‘구제 불능의 빚’이라는 개념이 없어. 예전의 화폐형 자본 시스템에는 그런 한계점들이 있었거든.”

  사행성 투기가 없다고 함은 도박이건 투기이건 부정직하게 돈으로 돈을 낳으려는 얄팍한 수단들에는 ‘생명 유착형 자본 포인트’의 운용이 제한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사회에 기여하지도 않고 경제를 장악하려는 교활함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에게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흥미롭게도 이 제한은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억압하진 않았다. 생명 유착 자본 자체에 내재된 절묘한 속성에 기인한 제약이기에 전체주의적 성질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마치 자본 그 자체에 독심술이라도 깃들어 있어서 자기를 운용하는 주체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아 특정 경제 행위 속에 부당 이익을 얻으려는 음흉한 탐심이 녹아 있으면 지혜롭게 견제력을 발휘하여 탐심 어린 계획을 수포가 되게 유도하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한편, ‘구제 불능의 빚’이 없다고 함은 누구에게든 마이너스 개념의 포인트가 영구적으로 씌워지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빚을 내서 재화나 용역을 얻어야 할 때도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구매인지를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후 값없이 제공하거나 얼마 후 빚을 탕감시켜주곤 했다. 이 역시 재화의 총량이 수요량을 무한히 압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빚 없이 무상으로 재화를 받을 때는 추후 자본 포인트 축적 속도가 타격받는 패널티는 있었다. 축적 속도가 증가하기는 하되, 그 증가 폭이 남들보다 둔화되는 식으로. 노화를 정복하여 ‘무한 수명 시대’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영구적 경제 생산력 감소란 치명적이었다. 그 덕분에 무위도식 적 도덕적 해이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생계 염려 자체가 없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그러다 보면 또 사람들이 기계에 의존한 채 게을러지기 쉬울 텐데……. 자칫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둔화되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네.”

  루디아는 아직 의문점이 다 풀리지 않은 듯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윤혁이 곧바로 해명해주었다.

  “포인트 보상 및 포인트 축적 속도 증폭 혜택은 각 개인의 성실함, 생산성, 사회 발전 기여도 등에 따라 극명히 차등화되어서 보상되니까. 최저 혜택마저 과거 최고 부유층을 아득히 능가할 정도지만, 성과에 따른 상대적 보상 격차 역시 역대 최고 수준이지. 하다못해 노는 취업준비생보다는 성실한 취업준비생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질 정도야.”

  현 시스템은 기나긴 인류 역사 속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완성된 최종 완성본. 가장 궁핍한 자의 경제적 풍요도 극대화하는 동시에 노동량, 재능, 사회 발전 기여에 따른 차등적 보상으로 선의의 경쟁과 노동의 의욕도 극도로 부추길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잡는 시스템이었다. 게으름과 무위도식을 방치하지도 않았고 긍휼 없는 사회 구조를 방치하지도 않았다. 비판할 점이 없진 않더라도 분명 우수한 결과물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한편 윤혁의 가족은 생계 안정성과는 별개로 사람 구실을 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그들은 ‘일하지 않거든 먹지도 말라’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 윤혁의 부모님은 집안일이 되건 공부가 되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훈련해오셨다. 세상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나가는 가정다운 올곧은 자세였다.

  “네 덕분에 오늘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어.”

  루디아는 바깥세상을 둘러보고 느낀 바를 고백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우물 속에 갇혀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글쎄, 흔히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긴 하지. 그런데 그렇게 발버둥 쳐서 얻는 게 뭘까 싶어. 우린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해있지는 않잖아.”

  윤혁의 대답대로 두 사람의 마음에는 또 다른 본향이 있었다.

  “게다가 변화한다는 건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 세상이란 게 그렇잖아. 덧없게 허물어지는 안개와도 같지. 그런 세상의 것들에 인생 전부를 걸고 싶진 않아. 그런 것들에 목매달고 쉴 새 없이 달려갔는데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얼마나 허망할까?”

  지금껏 윤혁도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해왔었다. 열심히 배우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실력을 쌓고 성실함과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달려봐도 세상의 변화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형이라면 거꾸로 세상보다 빠른 자기 발걸음에 세상을 강제로 맞추겠지만 윤혁은 그럴 엄두조차 안 났다.

  “그러니까 내 말은, 도태되었느니 뭐니 하면서 자책할 필요 없다는 거지.”

  윤혁이 루디아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작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흐름은 전부 주님께서 계획하시는 바에 맡기면 되는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루디아는 그 상쾌한 해답을 듣고는 기뻐하며 웃었다.

  “후훗, 너 오늘따라 엄청 어른스럽게 느껴져.”

  “원래도 그랬었거든.”

  둘은 어느덧 장난도 아무렇지 않게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이방인과 유대인, 두 친구는 깊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진솔한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한 층 더 정신적으로 성장하였다. 그 기쁨으로 인해서인지 그날 밤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시간 압축 기술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 밤 속에 기나긴 세월을 압축하고픈 소원이 들었다.

 

 

 

 

 

 

*****

 

 

 

  신해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전날 밤 골치 아픈 그 인간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과거에 그 사람은 신해에게 텔레파시 채널과 첨단 초끈 통신 시스템을 접목시킨 비밀 통신 회로를 심어두었던 전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전직 솔져는 잊을 만하면 악덕 고용주의 스토킹에 시달려야만 했다.

  “여어, 오랜만이야.”

  “닥터 진!”

  멀리서도 그의 이죽거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처음부터 저런 거물하고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감이 들었다.

  “네가 강윤혁 군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알려줘서 꽤 유용했어.”

  “윤혁이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하하, 그새 또 정이라도 든 건가?”

  수만 광년 떨어진 연구소에서 진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여유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느긋한 자태. 진은 현재 수백 세트의 연구 프로젝트, 수천 명의 인간과의 연락, 수만 개의 인공지능 시스템과의 의사소통을 동시다발적으로 처치하는 중이었다. 광활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철인왕의 특성상 멀티태스킹은 기본 소양이었다.

  “요새 팔은 좀 어떤가?”

  “크윽!”

  신해는 과거 솔져 시절에 임무 중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고 임무마저 실패할 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때마침 진이 개입하여 신해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주었었다. 원래 진은 철인왕이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보다 아랫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길 즐기는 타입이었다. 호의라기보다는 호의를 가장한 낚싯바늘 씌우기라고 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때의 도움으로 신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여러 차례 진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들이 유용했음은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특수 하이브리드 생체무기로 만들어진 오른팔도 진에게 이식받았다. 일반적인 의족과 달리 기묘한 특수 성능을 지닌 그 팔은 매번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였다. 그 때문에 법적으로 인정되는 채무 관계는 아니었음에도 진은 심리적인 채무로 신해를 속박할 수 있었다.

  ‘귀찮은 양반.’

  진은 자질구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신해를 자주 이용하곤 했다.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꼭 날 시킨다니까.’

  강윤혁과 관련된 문제에는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 제법 재미있더라.”

  진의 중얼거림에서 매드사이언티스트 특유의 탐구욕이 느껴졌다.

  “세상의 흐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게 신념대로 움직이는 친구더군. 예상치 못한 변동을 일으킬 큰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고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 직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거든.”

  ‘물론 아버지와의 유대감이 그 가능성의 핵심이지만.’

  진은 킥킥거리며 마음속의 말을 삼켰다.

  “나의 이상을 이루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신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의 발상력에 불안감이 들었다.

  “한 번 써볼 만은 한 것 같아.”

  “그 친구 괴롭히지 마세요!”

  “하하, 서운한 소리.”

  진은 발끈하는 신해의 목소리에 더욱 재밌어했다.

  “난 오히려 그 녀석이 바라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생각이야.”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신해는 다시 한번 철두철미하게 체감했다.

  초인이란 작자들의 정신세계는 정상이 아니다.

  “마침 마지막 한 가지만 신해 군에게 부탁하려고. 내가 네게 연결해둔 텔레파시 채널, 그걸 이른 시일 안에 강윤혁 군에게 넘겨줄래? 그것만 해주면 앞으로는 널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최근에 진은 일회용 텔레파시 흔적을 윤혁의 머릿속에 남겨두긴 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시적인지라 얼마 안 가 사라질 예정이었다. 반면 신해에게 남겨둔 채널은 정신 간섭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외부에 발각될 염려도 없이 실시간으로 광년 단위의 통신을 지속할 수 있는 고급 채널이었다.

  “쳇! 제길!”

  신해는 이를 꽉 악물었다.

  “약속하세요. 허튼수작은 부리지 마시죠.”

  영 탐탁잖았지만,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하, 강윤혁 군한테는 누가 시켜도 허튼짓할 생각 없어.”

  진은 겉으로는 능글거리면서 속으로는 섬뜩한 상상을 떠올렸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서운 분의 눈 밖에 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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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Chapter 40. Finished 이제 다시 무거운 이야기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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