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14회 초인들의 세계 Ch 41. 닫히는 문과 열리는 문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14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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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은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거대기업 수장, 역대 최고급 천재 엔지니어, 그리고 세계 섹터를 관리하는 최상위 초인, 이런 거물도 가족들의 본가에 들어서면 스물일곱 살의 젊은 맏아들이 되곤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중생활인 셈이었다. 바깥에서는 세상을 논하는 괴물, 안에서는 건실하고 자랑스러운 가족, 그는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능숙했다.
아버지 유마현은 쾌활한 성격의 호인으로 남쪽 한반도 지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기업인답지 않게 서민적이고 선량했으며 자식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어머니 리아현의 집안은 과거 북한 지역에서 살았던 가문이었는데 이전 세기에 우여곡절 끝에 불안정하게나마 통일이 이루어진 후, 외가 전체가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뛰어난 과학자였음에도 지역 정서 때문에 정서적으로 소외되었던 아현에게 마현이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그녀는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었던 마현에게 못 이기는 척 빠져들었고 결혼에까지 이어졌다.
오랜만에 집에 온 큰아들을 아버지가 호쾌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어렸을 땐 단순히 천재 소년인 줄 알았던 성운이 이제는 체격으로나 지위로나 너무 커져 버렸다. 그렇기에 그가 평범한 가족들 가운데 끼면 지나치게 튀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현은 평범한 부자 관계를 이루고자 아들을 평범히 대했다. 자수성가한 잘난 아들에게 피 빨아먹는 짓도 하지 않고 폐가 되지도 않게 신중하게 굴었다. 그리고 집에 올 때면 늘 자상한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운에게는 딜레마가 되었다. 동료들과 달리 그가 한없이 비정해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성운이 철인왕들처럼 고향의 모든 동지와 전우들을 짓밟고 경쟁에서 승리하여 위로 올라가는 삶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순박한 기대에 있었다. 성운은 순수하고 인간미 넘치는 착한 아들의 역할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했다.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다소 무덤덤하고 무심한 성격이었다. 이는 성운의 성격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덕분에 그는 좀처럼 남들의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께 영향받은 건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사업가이신 아버지의 능력과 학자인 어머니의 능력을 합친 후 몇만 배 이상으로 증폭시킨 결과물이 바로 성운이었다. 그 타고난 재능과 특색은 세계의 경쟁자들을 상대할 때 막강한 무기가 되었다.
자수성가해서 얻은 거대한 부와 권력 탓에 집안에서는 성운이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는 함부로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을 적당히 예의 바르게 봉양하고 동생들에게는 좋은 형으로 본보기가 되어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는 늘 어색했다. 사회에서의 그의 역할과 가정 속에서의 역할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컸다.
동생들의 경우는 부모님을 대할 때보다는 조금 더 편했다.
다만 그들도 맏형으로 인한 나름의 고충은 있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에게 큰형 덕을 본다느니 후천적 다이아몬드 수저니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유성운이라는 인간의 후광이 지나치게 컸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반쯤 반발심으로 맏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 진로를 결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맏이를 싫어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으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에 능숙한 이 집 둘째 유현아는 심리 상담사가 되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종종 이 집 자녀는 뇌 해부학에 비유되곤 했는데 오빠가 고등 정신작용인 ‘대뇌피질’이라면 여동생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limbic system)’였다.
그녀는 따뜻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으려 하는 오빠의 야박한 행동을 이따금 따끔하게 혼도 내줄 줄 아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울리지 않게 성운은 얌전히 꾸중을 들으며 나름 변화하려 노력했다. 초인의 본성대로라면 공감보다는 심리분석, 독심술, 지배력 행사가 훨씬 더 익숙하겠지만, 어쨌건 맹수는 집고양이의 척도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현아 밑으로는 세쌍둥이가 있었다. 그들은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한 일란성 세쌍둥이로 완전히 외양이 똑같았다. 유현성, 유현우, 유현민. 이 셋은 장난꾸러기에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본래 너무 잘난 형을 둔 남동생들은 비교를 당해 힘든 법이지만 이 집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초월적으로 잘난 형을 두면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가 되기에 세쌍둥이는 마음이 편했다.
그들은 ‘형은 늘 너무 딱딱하다’ 혹은 ‘형은 너무 일과 공부밖에 몰라’라고 말하면서 ‘자유로움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를 외치는 영혼들이었다. 어렸을 때는 형더러 같이 놀아달라면서 조르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성운은 거절하지도 진심으로 반응하지도 못해 진퇴양난의 심정으로 한숨을 쉬곤 했다. 세쌍둥이는 뇌 해부학에 비유하면 ‘소뇌(cerebellum)’ 혹은 ‘기저핵(basal ganglia)’ 같이 운동 조율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그런데 막내 남동생 유지현은 조금 달랐다.
그는 숫기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올해로 스무 살인 지현은 현재 법학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는 큰형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본받을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거리감이 드는 존재라고 여겼다. 성운의 인외(人外)의 성질을 가족 중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그였다. 다른 가족들은 성운에게 버팀목이자 억제 장치였지만 지현은 오히려 성운에게 휘둘렸다.
“공부는 잘되고 있고?”
식사 중 자상하면서도 감정이 담기지 않은 표정으로 성운이 막냇동생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겉보기에는 영락없이 듬직한 형의 모습이었다.
“네, 괜찮아요, 형.”
“그래.”
짤막한 대답과 별다른 감정이 함축되어 있지 않은 담백한 말투. 정말 동생을 아끼는 팔불출이었다면 귀여움을 듬뿍 담았을 것이다. 반대로 동생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형이었다면 조롱이나 무시의 태도를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운은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태도였다.
*****
큰형의 눈을 오래 마주칠 수 없었던 지현은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지현이 법대를 진학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이유, 바로 정의감 때문이었다.
딱히 경제적인 동기도 없었고 명예를 누릴 생각도 별로 없었다.
어차피 법관은 서서히 그 명예와 가치를 잃어가는 마당이었다.
사이코메트리 같은 최첨단 감시 시스템과 모든 가치를 저울질할 만큼 극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의 두뇌, 범죄를 예방하는 예측 시스템 때문에 사회 치안은 안정화되었다. 그만큼 인간 법관의 역할은 상당 부분 기계에 넘어갔다. 형벌을 내리는 일도 권력층의 몫이었다. 현대 시민들이 누리는 거대한 복지 혜택을 일부 박탈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기에 법관이 특별한 벌을 부과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정보 강제 주입형 학습 장치 덕에 누구나 법률을 손쉽게 접하고 외우는 시대가 되었다. 구체적인 생활 법률 적용마저도 기계들의 상담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법 자체도 워낙 수시로 바뀌고 개정되는 현실이었다. 이런 마당에 법조계는 장래가 밝은 직종은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현이 쇠퇴하는 옛 학문을 배우려 한 동기는 단순했다. 사회 정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질서를 지켜내고 정의를 구현하며 벌 받을 자들에게는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 지현은 이런 일들은 극소수의 초인이나 정량화된 기계들에 떠맡겨서는 안 될, 인간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숭고한 사명이요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윤리와 양심과 공의.
인간 사회를 온전히 사회답게 만들어주는 생명력의 근원이자 심장. 심장은 오로지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움직여야지 ‘대뇌피질’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현은 뇌 해부학 중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중추인 ‘연수’와 비견되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막내에게 큰형의 이질감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그는 형이 법을 초월한 존재임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형은 사회의 질서를 체스 게임처럼 여기는, 엿장수 엿 다루듯 마음대로 질서를 조율하는 무리 중 하나였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서 하루 동안의 일들을 회상했다.
현 법대의 주된 커리큘럼은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서 개편되었다. 실전에서 직접 배우도록 학생들을 종용하는 식이었다. 그 일환으로 교정 시설에 있는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오늘 지현은 바로 그 교도소 수감자들과의 상담을 훈련받았다.
현대인들은 남녀노소 차별 없이 방대한 물질적,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중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자원 공급 덕에 가능케 된 혜택. 그러나 다 같이 누리고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잊어버리기 쉬웠다.
그런데 이런 보편적 복지가 일부분 혹은 대부분 박탈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다. 사회 질서를 흐트러트린 범죄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범죄자들의 삶은 이로 인해 비참해졌다. 과거와 비교해 절대적 처벌 세기 자체는 줄었지만, 시민들이 누리는 보편적 혜택이 너무 커진 탓에 상대적인 박탈감도 커졌다. 또한 사형에 해당하는 흉악범들에겐 정부 차원에서 사법 거래를 명목으로 다양한 실험이 실행되었다. 범죄율이 급감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오늘 지현은 교도소에서 그 암울한 향기를 맡으면서 실전 감각과 법률 적용 원리를 익혔다. 이는 마치 의대생이 병원에서 죽어가는 중환자들을 보면서 실전 의학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한껏 고귀한 뜻을 품고 배움에 참여했다. 법과 질서를 통해 악에 물든 이들을 갱생시키고 망가진 인간들이 스스로 올바름을 향해 찾아 나가도록 돕는 이 일에 이바지하리라. 지현은 이렇게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실습을 통해 배운 현실은 이상과 괴리감이 있었다.
죄수들은 좀처럼 악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법으로 형벌을 주었을 때 남는 결과라곤 반성하지 못하는 구더기 같은 인생뿐이었다. 그 절망의 향기를 맡는 일은 간접흡연만큼이나 관찰자의 마음에 해로웠다. 결국, 범죄를 효과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현 시스템조차도 인간의 악한 마음만큼은 억누르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법률은 죄인을 양성할 뿐 아무도 고쳐주지 못했다. 지현은 그런 현실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가슴 속이 꽉 막힌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렇게 지현은 지난 몇 주간 힘겨운 교정 시설 실습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 현장학습은 조금 달랐다. 오늘 지현은 교도소의 죄수들을 대상으로 누군가가 가르침을 베푸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심리 상담을 하지도 않았다. 전에 보지 못한 기이한 것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 찾아온 선교팀의 일원이었다. 회개하라는 소리를 싫어하고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눈살 찌푸리는 목 뻣뻣한 사람들의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사는 세상이 한 곳은 남아 있었다. 죄인으로 규정 받은 자들의 영역인 교도소. 지혜롭게도 포교자들은 그곳을 발굴했다.
지현도 처음에는 그들이 단순히 포교 활동을 한다고 여겼다. 가끔 불교, 가톨릭, 이슬람 측에서도 교도소를 찾아와 사형수들에게 내세를 가르치곤 했으니까. 행실이 나쁜 죄수들을 교화시키는 데 종교라는 ‘마약’의 힘을 빌리는 교도관도 드물게 있었다. 지현은 기독교와 예수를 전파하러 온 저자들의 레퍼토리도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듣다 보니 전도인들의 대화에 이상하게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지현은 몰래 엿들었다. 죄수들은 대개 ‘말도 안 된다!’, ‘신이 어디 있느냐?’, ‘예수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느냐?’ 하고 반발하면서 욕과 퇴짜만 놓았다. 그러나 드물게 기적적인 일도 벌어졌다. 어떤 죄수들은 진지하게 예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전도자들의 편견 없는 진지한 태도와 상냥함에 감정적으로 이끌린 탓도 있는 듯했다. 몇몇 죄수는 끝내 눈물까지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사형 급 형벌을 받기 직전에 처해있었던 어떤 죄수가 전도자들의 말을 듣더니 통곡을 하며 큰 소리로 마음속의 죄를 털어놓았다. 단순히 죄악상을 열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의 죄악을 느끼며 통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악인에게마저 값없이 주신 위대한 구원에 대해서 듣고 애통의 눈물을 감격의 눈물로 바꾸었다.
‘현재의 사형(capital punishment) 방식은 가혹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종류의 생물학 실험 및 정신 계열 실험이 허가되는 유일한 합법적 통로가 사형 제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만큼 기준을 엄격하게 하여 사형 언도 횟수를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악명 탓에 가장 고집불통에 센 척하길 좋아하는 죄수들마저도 극형 급 형벌의 순간만은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런데 오늘 본 사형수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쁘게 찬양하면서 담대하게 공포를 이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류의 사형수들은 첨단 현대 기술로도 ‘정신 간섭’이 불가능한 것으로 유명했다. 어떤 초자연적인 보호가 외부 간섭을 무력화시킨 것일까? 그래서 드물지만, 사형수가 예수를 믿으면 극형으로서 진행하는 정신계 실험 절차를 취소하는 일도 종종 있었단다.
그렇게 흥미로운 포교 광경을 보던 도중 지원군까지 나타났다. 선교팀의 동료로 보이진 않았다. 어떤 지긋이 나이를 먹은 노인이었는데 청년들이 애먹는 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합류하여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그는 상대에 맞는 맞춤형 변론을 제공하는 현인이었다. 지혜의 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렀다. 이성적인 자에게는 성경의 객관적인 증거들을, 공허함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영혼의 양약을, 감정이 풍부한 자들에게는 용서의 위대함을 전했다. 그 변론과 권면이 너무 지혜로워서 지현마저도 본 임무를 잊어버렸다.
선교팀은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으나 노인은 그저 ‘나도 저들과 같은 처지에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다’라고만 대답했다.
회상을 마친 지현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낮에 전도자들이 교도소 바닥에 우연히 떨어뜨린 전도지를 한 장 주워왔었다. 법률도 사회 정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성취해낼 수 있는 예수라는 신. 과연 어떤 존재일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지현은 종이를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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