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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18회 초인들의 세계 Ch 43. 기성세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24 | 회차평점 0 0

 

 

 

 

 

Chapter 43. 기성세대

 

 

 

 

 

 

  두 부자(父子)는 오래간만에 공중목욕탕을 찾아 온수에서 몸을 녹였다. 편안하고 소박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앞일에 대해 무거운 심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표정이 비장하고 숙연해 보였다. 사뭇 중차대한 일을 앞둔 것처럼.

  “그래서 이제 조만간 떠날 생각이라는 거지?”

  성한이 아들에게 물었다.

  “네.”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 사람들과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지. 열심히 노력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낙담하지 않을 수 있겠니?”

  “노력해볼게요.”

  “혹 곤란한 일에라도 휘말리면 위험할 수도 있단다.”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재차 물었다. 이런저런 고초를 겪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아이는 험난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래도 아이가 스스로 고민해서 결정한 기특한 뜻을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윤혁 역시 위험에 관한 경고는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일이라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앞으로 3년 간은 동료들과 같이하기로 다짐했다. 결과는 나중에 가서 생각할 문제. 일단은 계획과 준비에 철저히 임한 뒤 결말은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현재는 앞으로의 여정을 대비해 미리 전국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선교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낙후된 지역에서의 봉사, 교정 시설에서의 선교 활동, 길거리에서의 전도까지. 특별히 윤혁은 팀의 기술력을 책임지는 공학자인 만큼 이런저런 준비할 일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보이지? 힘들지는 않니?”

  오늘날은 복음을 전하면 괴인 혹은 정신이상자로 취급받는 세상.

  “많이 힘들죠. 거뜬히 견뎌온 친구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상대에게 상냥하고 예의 바른 자세를 갖추되 타협 없이 진리로 초대하는 일은 눈을 감고 앞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어떨 때는 차라리 욕을 듣거나 경멸의 시선을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인 대부분은 철저히 무감각한 반응만을 보였다. 멸시와 냉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평정심과 친절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윤혁아, 이미 지금 세상은 종교에 대해서, 아니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완전히 면역이 생겼단다. 이제 그들에겐 그 이야기가 전혀 마음에 찔림이 되지 못해.”

  이런 말을 꺼내려니 아버지로서 몹시 씁쓸했다.

  과연 면역이라는 말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아니면 ‘내성’이 좀 더 정확할까? 복음의 말씀이 한때 수많은 영혼들의 병을 고쳤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약을 남발하면 다제내성균이 생겨 약이 더는 먹히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이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복음이라는 약에 대한 내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혔다. 십자가의 복음을 짓누르는 다제내성균은 이미 세계에 창궐하는 상태였다.

  “종교를 전하려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교회를 세울 생각도 없고요.”

  윤혁은 리온에게 배운 말들을 되새겼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구하면 돼요.”

  “그래, 그런 자세는 나쁘지 않네. 계속 정진하렴.”

  아버지는 한숨을 쉬면서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빠의 손에 힘이 약간 세게 들어가서인지 등이 쓰라렸다. 윤혁은 손으로 얼얼한 등을 어루만졌다. 눈초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말은 용기 있게 했어도 염려는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자신감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솔직히 말하면요.”

  “힘들면 언제든 포기해도 된다. 꼭 그것만이 주님의 일은 아니니까.”

  “벌써부터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래.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만 최선을 다해봐라.”

  윤혁은 성한의 위로에 피식 웃었다.

  ‘보통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뭐, 그래도 이런 식으로 뒤를 지켜주는 아버지도 제법 위로는 되었다.

  “네가 떠나면 우리 동네는 아빠가 맡아줄게.”

  “고마워요, 아빠.”

  그때 문득 성한은 과거의 그림자 파편 하나가 하나 떠올랐다.

  아이에게 이것을 알려주면 혹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직 교도소에 갇히기 전 어떤 청년을 만났던 적이 있었어. 일본 출신의 젊은 남자 의사였는데 당시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였지. 전문적인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신실한 신자였단다.”

  아니나 다를까 윤혁도 아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기색이었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던 녀석이었지.”

  혼돈의 시대가 남긴 폐허들을 돌아다니며 모험하던 그 청년. 그 사람은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인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성한과 그는 제법 오랜 악연이었다. 정확히는 성한이 그를 악연으로 취급했다.

  “어떤 사람이었죠?”

  “그는 아픔과 낙심으로 가득한 여러 사람을 만나 변화시켰어. 각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사이코패스 의사도, 성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유명 배우, 문란하게 성생활을 하다가 망가져 버린 남성 동성애자, 부모님을 거역하게 잘못된 길에 빠져든 운동선수까지, 참 안타까운 사람들의 일화가 참 많았지.”

  성한은 젊은 적 그 사람이 겪은 일들을 곰곰이 회상하였다.

  “아빠는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아셨어요?”

  “으음, 부끄럽지만 내가 그 사람의 원수였거든.”

  덕분에 그의 행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목격자들을 조사했다나 뭐라나.

  “서로 지겹게 싸웠지. 아니 정확히는 나 혼자서 그를 미워했었지.”

  그는 정작 성한을 적대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으니까. 성한은 그런 그를 어떻게든 올무에 빠트리고 싶었다. 왜 그땐 그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도 참 어처구니없었다. 그땐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웠던 것도 같은데 돌아보니 말도 안 되는 억측들이었다.

  “윤리로는 그를 도저히 정죄할 방법이 없었지.”

  혼돈의 시대 당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는 도덕적으로 왜곡된 법이 있었다. 죄와 거짓에 대해서 담담하게 선포하는 기독교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런데 일본에서 건너온 그 남자는 그 법을 당당히 거절하고 어겼다. 성한은 윤리 대신 그 악법들을 빌미로 남자를 궁지에 몰았다.

  “당시 검사였던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 불쾌히 생각했어. 그는 세상을 향해 죄를 회개할 것을 당당히 촉구하던 사람이었지. 불쌍한 죄인들에게는 상냥하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죄악 된 관습과 종교들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어.”

  그는 거짓 종교, 거짓 철학, 왜곡된 관습, 평등과 인권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죄악들을 낱낱이 고발하였단다. 말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거침없이.

  “그래서 자연히 맞부딪힐 일이 많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괜히 미움에 활활 타올랐지. 그럼에도 그는 내게 전혀 화를 내지도 않았어. 오히려 다정하게 웃어주었지. 내가 본 사람 중 최고로 순전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 예수님을 닮았다고 해야겠지.”

  당시에는 불신자였던 성한 조차도 그의 앞에 서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 정도였다. 윤혁도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그 사람은 훌륭한 분임이 분명했다. 윤혁은 다시금 그에 대해서 캐물었다.

  “그분은 그 후 어떻게 되셨어요? 지금은 어디에 계시죠?”

  “으음.”

  성한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가셨단다. 출소 후 수소문해봤는데, 29년 전 내가 감옥에 갇히고 난 직후 너의 형이 출생한 해, 거의 그 시기쯤에 소천하셨다더라.”

  “아쉽네요.”

  혹시라도 살아계셨다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윤혁은 실망했다.

  “그분의 이름은요?”

  “이치죠우지 쥰. 훌륭한 청년이자 그리스도인다운 의사였지.”

  윤혁은 ‘이치죠우지 쥰’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확고히 간직하였다.

  “나중에라도 그와 화해했다면 좋았으련만.”

  성한은 회한 어린 그 시절을 기억 속에서 재현시켰다.

  “그러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지금도 아쉽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사람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당부했다. 설령 악인이나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품어주어 회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어라. 죄를 깨닫게 해주되 정죄보다는 사랑을 전하고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상대를 향해 부어졌음을 알려주어 감동하게 해줘라. 이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조언이었다.

 

 

 

 

 

 

*****

 

 

 

  윤혁은 리온과 한 팀이 된 이후로 세계에서 활동 중인 거의 모든 팀들과도 서신을 주고받을 기회를 누렸다. 대개 어떤 사람이 새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회개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려운 점이 무엇이며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의 평범한 내용이었다. 또한, 현재 선교 활동의 미숙한 점이나 한계에 대한 피드백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윤혁과 리온은 켄의 집에서 만나 논의를 하였다.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향방을 결정하려는 목적의 회의였다. 물론 리온은 다른 선교팀 리더 및 세계 곳곳의 지역 교회 사역자분들과도 이미 비슷한 논의는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윤혁과 따로 비밀스럽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인류연합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건 윤혁뿐이니까.’

  이 점은 엄청난 메리트인 동시에 리스크였다. 아직은 최대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만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안전했다. 리온은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윤혁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로 했다.

  신중하게 행동하는 쪽은 리온만이 아니었다. 윤혁은 아직 가장 중차대한 비밀은 리온에게조차도 털어놓지 않았다. 바로 세계를 지배하는 인류연합의 대표이자 초인들의 왕인 이복형 카이젤에 대해서 말이다.

  ‘이미 진실 게임 때 충분히 경고를 받았어.’

  카이젤은 선교사들의 행로를 손바닥 펼쳐보듯 환히 읽고 있었다.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내버려 두는 것일 뿐. 마치 공룡이 개미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가 변덕이라도 부린다면 동료들의 운명은 곤란해진다. 아직은 눈에 거슬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언젠간 형에 대해서도 밝혀야 할지도 모르지.’

  대단히 파괴력이 큰 진실이긴 하지만 영원히 숨기지는 못하리라.

  “윤혁, 최근에 선교사님들이 보내오는 소식이 영 심상치 않은 것 같아.”

  회의하던 중 리온이 윤혁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떻게?”

  “최근에 나타난 일련의 변화들이 수상해.”

  사람들이 전도자들을 냉대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다만 차이점이 몇 생겼다. 전에는 단순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귀찮아했다면 이제는 복음을 들을 때마다 강한 혐오에 가까운 공포를 보이는 것 같단다. 선교사들의 편지마다 진술이 일치했다. 불과 며칠 전부터 나타난 변화였다.

  “참 이상해. 이건 마치⋯⋯,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받을 때마다 어떤 실체가 강제로 사람 내부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모양새란 말이지. 왜 다른 때에는 아무런 심정적 변화가 없다가 유독 전도를 받을 때만 이러는 걸까?”

  감이 잡힐 듯 말 듯 애매한 단서였다.

  “위화감이 드네.”

  그런가 하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다른 이상한 현상에 관한 소문도 있었다. 우연히 돌고래 음성이 들리는 듯한 체험을 했다는 경험담들이었다. 주변에 아무 음원이 없는 데도 들리는 소리라나.

  “두 이야기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전혀 없어.”

  “그러게. 참 모호하네.”

  복잡한 이야기로 한참 머리가 복잡해진 윤혁과 리온.

  ‘아 참! 오늘은 꼭 말해야겠다.’

  윤혁은 분위기를 환기할 겸 오랫동안 미뤄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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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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