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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19회 초인들의 세계 Ch 43. 기성세대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27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 연속됨)

 

 

 

 

 

  “너 혹시 내가 아는 스승님이랑 이야기해볼 생각 있어?”

  “스승님?”

  “그게 내가 꽤 오래전부터 알게 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신데, 이분께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혜와 지식을 지니고 계셔서 말이지. 너처럼 영적인 깊이가 깊은 사람에게는 더욱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처음에는 리온도 약간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그래서 해명을 위해 윤혁은 자신이 노인에게 들었던 말들을 전해줌으로써 그가 신뢰할 만한 분임을 알려주었다. 위버멘쉬의 형제이니 하는 기밀 정보는 말하지 않았지만.

  “천재적인 과학자인 동시에 선교사로도 활동했었다고?”

  어딘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리온은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기시감이 들었다. 북아프리카, 중동, 만주 등 몇몇 지역의 교회들을 찾아갔을 때 그 지역의 터줏대감 어르신들에게 들은 증언이 있었다.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지.

  ‘수십 년 전쯤 그 지역을 방문했던 여러 선교사 중에 유독 공학에 능숙했던 천재가 하나 있었다는 이야기, 여러 지역의 그리스도인 어르신들이 비슷한 증언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부러 정체, 신분, 본명을 전부 감춘 사람이라 그들도 반쯤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지.’

  솔직히 리온은 그 소문을 설화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윤혁이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일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 다만 여러 지역에 도는 소문의 근원과 윤혁이 만난 사람이 같은 대상인지는 불확실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 수도?’

  하지만 신분을 숨긴 천재 공학자가 선교 활동에 나선다는 일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리라. 당시라면 지금보다 천재의 숫자가 적었을 테니 그 정도의 인재라면 사회적으로 후한 대우를 받았을 터이다. 그런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신께 봉사하기란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의문을 품은 채 리온은 윤혁의 제안을 승낙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영 좋지 못했다. 돌아오는 수요일에 그 낡은 기도원을 찾았더니 여느 때처럼 자리를 지키던 어르신께서 이번에는 자취조차 없었다. 한 번도 바람맞은 적이 없었던 윤혁은 크게 걱정이 되었다.

  “혹시 편찮으신 걸까?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는데.”

  “누군가를 피해서 달아난 것일 수도 있지.”

  선교사라는 이유로 미움을 많이 당해봤던 리온은 그쪽으로 생각이 돌아갔다. 어느 쪽이건 조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동안 많은 조언을 주셨던 분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윤혁은 속이 철렁했다.

  “아직은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리온이 애써 친구의 불안을 가라앉히려고 위로했다.

 

 

 

 

 

 

*****

 

 

 

  두 남자가 기이한 공간 안에서 체스를 두고 있었다.

  백 개의 축 각각의 단자 수가 100만 칸으로 나뉜 100차원 큐브 공간. 총 300만 종류의 장기 말은 각각 수천 패턴의 고유 움직임이 허락되었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닌, 대단히 고차원적인 수학적 질서와 기틀을 지닌 게임이었다. 이 복잡한 고등 체스에는 심지어 현대식 전쟁의 요소까지 반영시킨 규칙들도 버무려져 있었다. 인공지능마저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대단한 수학 심리전이었다. 두 남자 정도가 아니면 아무도 건드릴 엄두를 못 냈으리라.

  원래라면 승부가 나려면 수천 년 이상은 족히 걸릴 게임이지만.

  “체크메이트.”

  금안의 남자가 무미건조하게 종료를 선언했다. 현실 기준 0.1초 만에.

  “이번에도 졌군요. 승률이라는 개념조차 성립하지 않을 것 같군요.”

  벽안의 남자도 똑같이 무덤덤했다. 당연한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이.

  “좀 더 최선을 다해봐라. 이기면 포상을 준다고 했잖아.”

  “별로 그런 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딱히 윗사람이라고 해서 일부러 봐준 것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서 진검승부를 한 결과였다. 짙은 푸른색 눈동자의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금안의 남자는 그의 상관이자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소꿉친구였는데 지금까지 무슨 게임으로도 그를 이겨본 기억이 없었다.

  ‘매번 마지막으로 본 순간과 완전히 다른 클래스가 되어 나타나다니.’

  끝없이 진화하는 존재가 바로 초인. 최강의 초인인 위버멘쉬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저도 초인이지만 상대의 스케일에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다른 초인들은 실력과 재능이 성장할 뿐 초인 클래스의 값은 일정하거늘, 눈앞의 상대는 가뜩이나 값을 책정할 수 없는 클래스가 계속 상승하기까지 했다.

  “에녹.”

  금안의 남자가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네.”

  푸른 눈의 남자가 대답했다.

  “얼마 전에 알레프 노인의 따님, 할머님을 다시 만나고 왔다.”

  “그분이 어르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말해주시던가요.”

  “전혀. 그분의 숨는 재주는 여전하더군. 자기 혈육에게마저 철저하지.”

  최근 카이젤은 어릴 적 자상하게 자길 돌봐주었던 노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지혜로웠지만 일반인이었다. 돈이나 권력 따위와는 담을 쌓은 채 홀로 조용히 학문을 연마하며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성서 고고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그녀는 젊을 적부터 신실한 신자였고 가까운 이웃에게 친절 베푸는 게 습관으로 배어있던 인류애의 화신이었다. 고아였던 에녹과 냉혹한 어머니를 지녔던 카이젤. 아이 시절의 두 남자에게 그녀는 따뜻한 친절을 베풀었었다.

  “유전자를 통한 추적이라도 시도해보시죠. 부친을 찾을 때처럼.”

  “그게 골치 아픈 문제 때문에 틀어져 버렸어.”

  “그렇습니까?”

  에녹은 이번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수긍했다.

  “그 노인과 매듭지어야 할 숙제가 몇 개 있는데 골치가 아프게 되었어. 마젠트로스와 아레나이트에 관련해서도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고, 또 남아 있는 ‘그것’의 행방도 물어봐야 하는데 말이지.”

  카이젤은 뻔뻔스럽게 속생각을 감추었다.

  “왜 당신답지 않게 속전속결로 해결하시지 않습니까?”

  에녹은 지극히 논리적인 의구심을 드러냈다.

  제 상관은 이상하게도 그 어르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뭉그적거리며 일부러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가진 자원을 활용하면 진작 순식간에 해결했을 손쉬운 과제인데 말이다. 이를테면 지구 전역을 분자 단위로 스캔하거나, 지구 인류 전체에 마인드 스캔을 씌운다거나, 침투형 나노머신을 보내 ‘기계 신’을 쓴다거나. 괜히 만나기를 무서워하거나 망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속내를 드러내지를 않으니 진상을 모르겠다.

  “존경심 때문입니까?”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긴, 당신이 존경하는 윗세대 어른은 그 하나밖에 없죠.”

  이번에 에녹은 좀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정곡을 찔렀다.

  “당신의 아우가 그자와 만나고 있는데 그를 이용해보지 않는 이유는 뭐죠?”

  “심증뿐이니까. 그리고 난 그 애를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고 싶지 않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나름 곤란한 질문에 대응해 솔직한 속내를 대답했건만, 역시 무덤덤하고 딱딱한 반응만 돌아왔다. 이젠 역으로 카이젤이 약이 올랐다. 최고 부관인 저 친구는 다른 것은 다 완벽한데 재미가 없는 것이 영 탈이다.

  “뭐, 아버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흑발 금안의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이제 동생뿐 아니라 아버지와도 관계를 개선해볼까 해.”

  “그러십니까.”

  “⋯⋯아무런 감정 반응도 없군. 무미건조한 녀석.”

  카이젤은 에녹에게 툴툴거리며 성한과 윤혁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난 아버지란 존재를 체험해보지 못해서 잘 몰라. 어머니는 있었지만 별 의미가 없었지. 물론 그렇다고 결여를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늘 궁금했어. 내 기원은 무엇일까? 나는 어디에서 시작한 것일까?”

  “언제는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하여간 너는 참 재미없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원래 저런 녀석이겠거니 하고 포기할까도 싶었다. 하기야 에녹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부모 양쪽이 다 없었으니 감정 상태가 저런 것도 이해는 되었다. 문득 호기심이 든 카이젤은 상대의 가정사를 조심스레 찔러 보았다. 그러면 혹시 뭔가 반응이라도 나오지 않을까나.

  “너의 어머니인 2대째 위버멘쉬, 이벨리아 아담즈 말이야.”

  “네.”

  “2세대의 낡은 원로들을 조사하면서 느낀 건데, 녀석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긴 하되 존경하지는 않더군. 이벨리아는 압도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초인들을 무릎 꿇리는 데는 실패했어. 그녀가 왕이 되었다면 혼돈의 시대가 더 빨리 종결되었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지.”

  “만약 그랬다면 라일라 씨가 당신을 낳으려 시도하지도 않았을 텐데요?”

  “⋯⋯너나 나나 서로의 뼈를 때리는 건 똑같군.”

  둘 다 부모의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논하는 게 별종은 별종이었다.

  ‘이벨리아 아담즈, 에녹의 친모.’

  그녀에게는 초인들의 왕에 걸맞은 힘과 지혜가 있었지만, 실제 왕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녀는 언제나 정치가가 아닌 전쟁 영웅이었다. 그녀는 다른 초인들을 제압하고 심판하는 일만을 해왔다. 백전백승의 위인이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초인들의 자발적 인정과 충성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을 겁니다. 제아무리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지만 출생이 끝내 걸림돌이 되었을 겁니다. 그녀는 과거 위버멘쉬를 배신한 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었으니까요.”

  초인들의 세계에는 한 가지 수치스러운 흑역사가 있었다.

  수십 년 전, 1세대 중 일부 배신자들이 인간 탄생 유발 생체 실험이라는 금기를 범했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우수한 인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자 생체 실험을 시도했었다. 이를 위해 세계 모든 인종에서 수많은 우수 인간 유전자 샘플을 모아 최적의 패턴으로 조합한 뒤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위인’들의 유전자를 복원해 모조리 합쳤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배아를 어느 유대인 소녀의 자궁에 심었다. 이것이 이른바 ‘완전한 인간’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하필 이 실험이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끝났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다음 세대 최강의 초인이 만들어졌고 그게 바로 이브였다.

  “하지만 실험체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해.”

  카이젤이 반론을 제기했다.

  “만약 그런 이유로 다른 2세대들이 순종을 거절했다면 실력으로 눌러서 굴종시키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녀는 실제로 그럴 능력도 충분했고. 그런데 왜 그녀는 지배자에 위치에 오르기를 중도에 포기한 거지?”

  “그녀가 추종자들에게 버림받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에녹이 담담히 어머니의 비밀을 드러냈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힘을 잃어버렸거든요.”

  일부 2세대 사이에서는 쉬쉬거리긴 해도 사실상의 공공연한 소문.

  그러나 3세대의 젊은 초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이야기였다.

  “사랑 때문이라?”

  “네, 그 이유만 아니었으면 당신 말대로 힘으로 모두를 평정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 부친을 만난 뒤로는 그녀의 의지가 녹슬어버리셨죠.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녀는 왕으로 군림하는 것을 포기해버렸습니다. 위버멘쉬의 의무를 내팽개치고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죠.”

  “사랑의 도피군. 왕위를 마다하고 궁을 빠져나간 건가.”

  에녹네 부모의 자세한 내막을 듣는 건 카이젤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꼰대들이 전대 위버멘쉬를 인정하지 않았던 건가?”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제 친모보다는 제 친부를 증오했었죠. 그들이 원했던 건 완벽한 철인 지도자이지 사랑에 빠져 나약해진 여인이 아니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부모의 원수인 건 맞지만, 2세대의 판단이 마냥 이해가 안 되진 않습니다. 아니 저에겐 비판할 자격이 없지요.”

  당장 자신과 초인들도 눈앞의 주군을 그런 냉혹한 방식으로 옹립했으니까. 개인적으로서의 인생을 지우고 인류를 위한 수호자로서, 인류의 왕으로서 존재 의의를 고정해두도록 사실상의 강요로 떠밀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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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흑발벽안 남자는 고정출연으로 매우 중요한 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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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회 초인들의 세계 Ch 43. 기성세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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