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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21회 초인들의 세계 Ch 44. 은하의 정복자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2.12.31 | 회차평점 0 0

 

 

 

 

 

 

Chapter 44. 은하의 정복자

 

 

 

 

 

 

  20세기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쇼프는 우주 문명의 척도를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가 있었다. 이 척도는 원래는 ‘외계인의 문명’을 분류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물론 관측 범위가 다중 우주 일부까지 확장된 현재까지도 외계 문명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지만, 카르다쇼프의 척도는 인류의 문명 진화 정도를 측정하는 새로운 쓸모를 얻게 되었다.

  카르다쇼프의 척도란 한 문명이 생성하고, 가공하고,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적 규모를 기준으로 해당 문명의 발전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제Ⅰ 단계, 행성 하나 분량 규모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

  제Ⅱ 단계, 자신이 속한 항성계의 항성 에너지를 100% 활용하는 문명.

  제Ⅲ 단계, 소속 은하계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규모의 문명.

  제Ⅳ 단계, ‘가시(可示)우주’에 해당하는 규모의 에너지를 쓰는 문명.

  조금 다른 식의 기준으로 문명 단계를 규정한 학자들도 있었다. 어떤 학자는 ‘얼마나 넓은 영역을 다스리느냐?’라는 공간적 기준을 썼고, 혹자는 ‘얼마나 미세한 규모의 원소를 제어하느냐?’라는 미시적 기준을, 또 다른 이는 ‘얼마나 많은 양의 데이터를 사용하느냐?’라는 정보 기준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적용되는 건 에너지를 기준으로 한 카르다쇼프 척도였다.

  앞서 말했듯 22세기에 들어서 카르다쇼프 척도는 ‘인류 문명 진화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써 다시금 부활했다. 이전까지는 이 척도가 유의미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류는 제 I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빈약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래서 I 단계니 Ⅳ단계니 하는 건 죄다 허황된 소설 속의 이야기요 그림의 떡이었었다. 초인들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초인들의 각 세대는 초기 인류의 태동 양상과 평행적 성격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세대는 인류의 ‘문명 단계’와도 맞물렸다.

  라멕을 필두로 카인 계열 후손들이 도시 문명을 건설한 시절과 비견되는 1세대 초인들의 시대는 큰 번영의 시대였다. 인류는 이 시기에 태양계 행성들에 힘을 뻗쳐 제 I 단계 문명 수준에 얼추 접근했다. 테라포밍이 발달해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했고 화성 및 소행성 자원을 통해서 에너지와 자원 부족 우려를 상당 부분 해결하였다. 아울러 초대째 위버멘쉬와 그 동료들은 많은 제도적, 과학적, 산업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반면, 초인 2세대는 과거 인류가 서로 죽고 죽이던, 홍수 전 네피림의 때로 비유되는 시대였다. 산업 역량과 문명의 힘은 심히 증가했으나 급작스러운 성장의 부작용이 행성 곳곳에서 나타났다. 당시 인류는 아직 우주에 적응할 육체를 얻지도 못한 주제에 좁은 행성 안에서 패권 싸움을 벌인 꼴이었다. 덕분에 인류는 멸망이냐, 도약이냐를 가르는 갈림길 위에 서게 되었다.

  물론 그 시절도 밝은 면이 없지는 않았다. 원시적으로나마 워프 및 게이트 기술을 실전에 도입하여 태양계 밖으로 뻗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비록 우주 개척이 생각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태양계 내부 에너지원은 전량 이용할 수준까지 도달했다. 통합을 이루지 못한 초인들이 자기들끼리 분열을 일으켰으나 그 경쟁에 힘입어 성장도 발생했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다음 문명 단계로 도약하는 일은 무리라고 여겨졌다. 2세대의 활약은 눈부셨으나 겨우 제Ⅱ 단계의 언저리에 턱걸이로 도달한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지구 내부의 불안정성이 증가해 인류 붕괴의 위험성을 목전에 두었던 탓에 더 앞으로 진전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제Ⅱ 단계 근방이라 해봐야 온 인류가 하나가 되지 못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세대 초인들이 도래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그들은 보란 듯 다시 한번 한계를 넘었다. 이전 세대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뛰어난 실력의 초인들 덕분이었다. 초인의 숫자도 배로 늘었고 개개인의 평균 역량과 최대 역량도 무서운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결국, 불과 3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인류는 반칙급 기술들을 남용해 제Ⅲ 단계를 당당히 밟았다.

  마침내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진정한 바벨탑’을 쌓을 만큼 대담해진 인류. 게다가 이번에는 과거와는 달리 신께서 인간들의 언어를 흩지도 않으셨다. 그들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그들의 한계를 구경하시기 위해 가만히 내버려 두실 작정이셨을까? 어찌 됐건 그 탓에 인간들은 점점 더 두려움을 상실했다.

  다만 너무 급속도로 발전을 이룩한 탓에 문명 내부에 심각한 기술적 비대칭성이 나타났다. 일반인으로 구성된 민중이 아닌 소수의 권력층인 초인들이 권력 및 재산 대부분을 독차지했고 지식 발전 역시 대부분 이들 손에서 이루어졌다. 인공지능들이 지식을 창출해낼 만큼 특이점에 이르면서 평범한 인간의 역할은 줄어들었고, 인공지능들을 통솔하는 소수 층의 역할은 비대해졌다. 새로운 학술적 공로를 논하는 것 역시 무의미해졌다. 새 지식을 발견하기 무섭게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새 발견들이 속속들이 쇄도했던 탓이었다.

  그 결과 ‘인류 지도부가 소유한 문명’과 ‘일상에서 대중이 경험하는 문명’의 격차는 점차 거대하게 벌어졌다. 아울러 지구와 우주의 시스템 격차 및 기술력 격차도 벌어졌다. 제로원과 U-society를 제외한 나머지의 지구 문명은 한참을 뒤처진 후발주자 신세로 전락하였다.

  정작 가장 높은 지식과 기술력을 지닌 초인들의 왕은 이런 비대칭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인간은 변화 순응 속도가 느리니 적응할 때까지는 내버려 두어도 된다고 여겼다. 시민들을 자기 진도에 맞추는 대신 그는 다른 쪽에 집중했다. 그의 몫으로 할당된 사명인 ‘거시적 인류 계획’을, 곧 문명 자체의 진보라는 진정한 목표를 깊이 숙고했다.

  “과연 어느 단계까지 우리의 힘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제Ⅳ 단계, 가시우주 범위의 문명에 도달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들이 있었다.

  첫째, 우주 공간은 끊임없이 팽창한다. 그 때문에 먼 타 은하까지 도달하는 일부터가 영 쉽지 않았다. 은하 간 거리가 멀어지는 중이니 도약도 어렵지만 넘어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결된 게이트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둘째, 설령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은하 간 통신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였다. 빛조차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거리이니 상위의 관측•통신 기술을 발명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하필 공간 팽창이 큰 방해물로 작용했다. 통신책 없이 확장만 하면 문명의 분절화로 귀결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셋째, 그 두 가지 장벽을 넘어선다 해도 중앙 집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다. 사실 인류가 널리 뻗어나가는 것 자체도 의미는 있었지만, 왕은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우주 범위로 단일 통합된 인류를 원했다. 애초에 은하계 진출 때부터 철저히 단일화를 상정했던 그였다.

  만약 이 세 가지 문제를 잘 해결한 채 제Ⅳ 단계를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가시적 우주를 넘어선 무한 공간의 우주까지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다음의 단계들도 노려볼 수 있다.

  제V 단계. 다중우주(Multiverse)를 배경으로 하는 문명.

  제VI 단계. 범우주(Omniverse)를 무대로 하는 규모의 문명.

  V 단계와 VI 단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세부 단계가 있을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0단계에서 V단계까지의 억만 배는 족히 넘으리라. 물론 아직까지는 굳이 그걸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머나먼 꿈이고 실현 가능할지조차 알 수 없는 장기적 계획이니까.

  당장은 가장 먼저 가까운 목표부터 실현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번에도 또 시간과 균형이 문제로군.’

  제Ⅳ 단계에 도달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그동안에는 지금 수중에 들어온 은하계라는 가용 자원을 알뜰하게 활용할 필요성이 있었다. 항성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가공해 자연 상태보다 높은 효율의 생산력과 지속가능성을 부여한 엔진을 창조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나아가 현재는 블랙홀과 같은 미지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었다.

  이렇게 은하계를 십분 활용해 힘을 얻으면 그중 일부는 이미 이룩해놓은 인공 문명을 유지하는 데에 사용하고 또 일부는 만약에 있을 외부 침략이나 내부의 분열을 억제하기 위한 방비 수단으로 써야 했다. 이러한 필수 지출을 뺀 뒤 남는 여력으로 은하 밖을 침공할 발판을 마련해야 했다. 여러모로 경제성을 치밀하게 고려해야 할, 빠듯한 상황이었다.

  왕은 현재 진지한 결정을 요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사실 인류가 처음 지구라는 경계선을 넘었을 때도 동일한 류의 딜레마를 상대했었지. 지금의 왕도 선대처럼 고민에 빠져있었다. 공격적인 확장에 힘쓸 것인가, 현상 유지에 힘쓸 것인가. 아랫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할 것이다. 새삼 왕관의 무게가 괴롭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은하 바깥 정복에 힘을 쏟아부으면 자칫 은하의 한정된 힘을 소진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구기관 개발에 애를 쓰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한 단계까지 다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상위 차원의 힘을 뽑아다 사용하는 방식은 시공간의 오류를 조금씩 축적하기에 한 은하계 내에서 생산을 과도하게 반복하면 어느 순간에는 한계에 이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럼에도 은하를 뛰어넘는 절차는 인류의 필수적인 숙제라고 생각되었다. 문제는 어떻게든 바깥을 정복할 안정적인 수단을 얻는다면 좋겠다만 그 일이 100% 안전히 가능하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일만 허락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였을 텐데.

  ‘여유를 두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구축할까?’

  섣부른 계획을 잡자니 불안전성이 염려되었다.

  그렇다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준비하자니 앞으로 있을 미래의 불확실성이 걱정이었다. 좁은 행성만 벗어나면 위험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은하계조차도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에는 생각보다 거시적인 위험 요소가 많았다.

  게다가 인류라는 종(種)은 아직 별도의 시설이나 장비 없이 외계행성에서 자유로이 생활할 만큼의 ‘생물학적 완전 적응’을 이루지도 못했다. 즉 테라포밍된 행성에 인간을 심으려면 더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은 잠정적인 은하 멸망에 대비되긴커녕 지구 멸망에도 대비되지 못한 형국이었다. 왕은 너무 늦기 전에 더 넓은 세계들에 확실하게 뿌리를 뻗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고심 끝에 왕은 큰마음을 먹고 장구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리고 보조자로서 특별히 두 형제와 세 자매를 선별했다.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만들어진 두 형제, 그리고 왕 자신이 만든 미래로부터 추출한 세 자매. 전자는 불변의 우주 지배력 확립을 설계하기 위해서, 후자는 그 우주에 영구히 민족들을 번성시키기 위해서 세웠다. 왕은 그들에게 여러 임무를 나눠 맡겼다.

  한편, 그는 수도인 지구와 변방인 은하를 따로 나누어 각기 다른 운영 시스템을 설립했다. 지구에는 기존 민족 및 국가들의 경쟁 구도, 겉만 남은 민주주의의 껍데기, 선대들이 남긴 문화와 종교와 언어들을 최대한 잘 보존하여 둔 채 배후에서는 초인들끼리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 기술과 지식의 안정적인 성장을 꾀하였다. 지구는 민중 속에 문명을 녹여내기 위한 일종의 실험장이었다.

  반면 먼 우주 밖으로까지 퍼뜨릴 목적으로 키워낸 바깥의 주민들은 전혀 다르게 관리했다. 왕은 신으로 추앙받을 만큼 체계화된 강력한 무인 시스템들을 설립해 전제주의와 단일주의 아래에 식민지들을 깔아두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분열이나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대손손 거듭 강화되어가는 다중 목줄을 주민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새에 채워놓았다. 지구가 실험장이라면 우주 쪽은 앞으로 건설할 차기 문명을 이룰 벽돌이었다.

 

 

 

 

 

 

*****

 

 

 

  시술이 모두 종료되자 캡슐이 해체되었다.

  “크윽!”

  맨몸의 남자는 지친 육신을 힘겹게 일으켰다. 신체에 닿는 차가운 액체의 촉감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팽팽한 우람한 전신 근육 곳곳으로 부르르 떨리는 전율이 퍼져나갔다.

  “매번 할 때마다 고통스럽군.”

  실험을 시행할 때마다 동반되는 전신 신경계 흥분과 그로 인한 고통. 신체적 고통은 이제 적응돼서 그리 견디기 어렵지는 않다만 문제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실험 때마다 선명하게 재각인되는 빌어먹을 그날의 격한 트라우마만큼은 어찌 해결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짚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망각 기능을 잃은 건 이럴 땐 참 불편하군.”

  로봇들이 남자를 깔끔히 씻긴 후 특수용 나노슈트를 착복시켰다. 그는 그 위로 제복과 로브를 걸쳤다. 이윽고 그는 실험실 밖으로 워프하여 이동형 요새 위에 올라탔다. 바깥으로 은하계와 그 너머의 세계들이 보였다. 광학 기기보다 더 광범위하고 정확한 관측 수단에 의해 관측된 은하 밖의 별들의 모습, 그것도 시차도 없이 관측된 현재 순간의 별들이었다.

  “하아!”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별들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시행한 초지능체 시술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지 머리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금세 적응해내긴 하겠지만 매번 느낌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이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혼과 뇌리에 ‘초지능체’와 ‘초소형 양자 두뇌’들을 이식하여 융합시켜 왔다. 그는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시술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강화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적인 지능 한계를 수십 번 이상 넘어왔다. 이 초월화에는 강화로 인한 효과, 초인으로서의 자체적 진화에 의한 효과, 그 두 가지의 시너지 효과가 모두 다 이바지했다.

  현재는 초인이면 누구든 초지능체 이식을 시행하긴 하지만 100% 온전히 소화하는 이는 드물었다. 본인의 정신과 외부의 지능이 온전히 융화되지 못하는 탓이었다. 그나마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더 융합률이 높았지만, 초인 역시도 상대적이고 불완전했던 융화에 그쳤다. 물론 피코머신이나 양자 두뇌나 그 외 초지능 강화 기술들과 비교하면 카이젤이 발명한 고유 기술인 ‘초지능체’ 테크놀로지는 혼의 차원에 직접 연결되는 것인지라 초인과의 궁합이 유독 좋았으나 그럼에도 대부분의 초인들은 80% 소화에 머물렀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3대째 위버멘쉬인 카이젤 본인이었다.

  모든 재능과 경험을 온전히 흡수하고 소화하는 ‘학습의 괴물’, 초인과 인공지능들과 시뮬레이션 우주들을 통솔하는 절대적 지배력, 진화 곡선의 상한선마저 없는 무제한의 잠재력,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지닌 카이젤은 자신에게 이식된 초지능체는 물론 양자 두뇌, 피코머신 네트워크, 그 외 초지능 장치들을 완전한 자신의 몸 일부로 100% 융합시킬 수 있었다. 그의 몸과 혼에 흡수된 순간, 모든 것은 더는 이물질이 아닌 카이젤의 본질 그 일부가 되었다.

  그는 지금껏 이 방법으로 물리적 뇌의 한계 용량을 넓혔고 비물리적 차원의 정신 중추인 혼(魂) 정신력을 마음껏 끌어올 역량을 키워나갔다. 인지 능력의 진화가 일어날 때마다 적응 과정에서 과거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신체적 고통의 재현이 수반되는 단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기존 한계를 돌파해야 할 당위성과 명분은 충분했다. 은하 급의 거대한 영토, 극도로 발전된 문명, 무수히 많은 인간, 그보다 더 많은 기계와 이종족, 이 모두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보통 크기의 지혜로는 턱도 없었다. 게다가 모든 기계의 정신을 통제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S-unvs와 지식들의 중추인 이데아, 그리고 모든 이종족을 통제할 텔레파시 급 테크놀로지들을 소화해내려면 거대한 정신력과 연산 능력이 필수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안위와 편안을 인류 발전을 위해 기꺼이 포기했다.

  “몸 상태는 좀 괜찮으십니까?”

  “싱클레어?”

  비서관이 의자에 앉은 카이젤에게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그는 보통 특수 비밀 임무가 있을 때마다 주군과 동행하게 되어있었다. 인공지능들만으로는 상위 초인 급 창의력을 낼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최상위 초인을 동반시키자니 안보에 구멍이 뚫릴 것 같다 보니 늘 레반 싱클레어가 최선의 선택지였다.

  “아파서 죽을 것 같군.”

  카이젤이 투덜거리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육체 상태는 건재해 보이십니다. 다행입니다.”

  “쳇.”

  오늘 그들이 향할 곳은 외곽 세계 곧 은하 경계를 넘어선 곳이었다. 그곳은 우주 공간 팽창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암흑의 바다였다. 이번 임무의 주목적은 모종의 ‘무언가’를 관측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진보된 연산 능력을 시행하셔도 괜찮겠습니까? 이미 메이저 초지능체를 두 개나 이식했습니다. 오늘은 마이너급을 5만 개도 넘게 주입하셨잖습니까. 조금 여유를 두고 소화하길 기다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심리적 고통 때문에 온전히 휴식할 수도 없어. 일하는 게 나아.”

  언제 엄살을 피웠냐는 듯 카이젤은 철인답게 각오를 단단히 불어넣었다.

  “오히려 최대한도까지 정신력을 활용해야 더 빠르게 적응되지.”

  “알겠습니다.”

  레반은 심정적으로는 내심 대표의 아픈 기색이 걱정되었으나 그가 워낙 강철 체력임을 알기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았다. 초인들의 왕답게 카이젤이 소유한 ‘초인의 육체’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심지어 카이젤 본인의 ‘초인의 정신’마저 빛이 바랠 만큼 위대했다. 그렇게 건강하니까 무제한의 강화도 소화해내고 끝없이 성장하는 것도 모자라 불로불사 상태로 수만 년을 견디면서도 열화 한번 없던 것이리라. 새삼스레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긴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굉장하시긴 하지.’

  그 우월한 무신(武神)급 근육질 육체가 단순 관상용은 아니리라.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고맙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야.”

  왕은 극한의 통증의 후유증을 우습게 참아넘기며 으쓱였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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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해 아래에 새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는 고대 시절이나 미래 시절이나 패턴이 반복됩니다. 스케일만 커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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