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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29회 초인들의 세계 Ch 47. 가족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18 | 회차평점 0 0

 

 

 

 

 

*****

 

 

 

 

 

  어머니와 형이 서로 불편한 감정, 내지는 안 좋은 감정을 가질까 봐 걱정했었던 윤혁은 곧 그것이 기우임을 깨달았다. 형은 그녀 앞에서 거만한 태도를 일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친의 아내로서 존중하며 귀한 여인을 대하듯 예우하였다. 선량한 유진도 남편의 아들을 귀인으로 잘 대접했다. 단순 두려움에서 우러나오는 공손함이 아닌(물론 일반인이 초인들의 왕을 볼 때 느끼는 자연적인 두려움은 당연히 있었다) 아들을 대하는 듯한 친절이었다.

  “간식 가져가서 형님분이랑 나눠 먹으렴.”

  그녀는 손수 간식을 준비하여 자기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잘 먹을게요.”

  윤혁은 곧바로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3층에 따로 게스트룸이 있었으나 카이젤은 굳이 동생의 방에 머물겠다고 말했다. 방이 좀 좁아도 괜찮다나. 어차피 집 전체를 더해도 그의 저택에 있는 방 하나의 일부분에도 못 미치니 게스트룸이나 윤혁의 방이나 카이젤에겐 똑같이 좁을 터이다.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윤혁으로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라서 형제 사이 우애를 최대한 개선할 작정이었는데 잘 됐다.

  “형, 엄마가 이것 좀 같이 드시라고 주셨어요.”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윤혁은 순간 당황하여 멈칫했다. 형이 막 목욕하려고 욕실로 들어가려던 참인 듯했다. 그가 입던 의복이 마치 안개가 흩어지듯 해체되더니 수납이나 압축도 없이 허상처럼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탈의 동작도 필요 없는 참으로 편리한 탈의 기능이었다.

  ‘질량 자체가 소멸하였다고?’

  특수 기능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저기……, 제 방은 부모님이 불쑥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서요.”

  윤혁이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편하게 돌아다니시면 조금은 곤란해요.”

  마침 곤란한 건 옷의 특수 기능만이 아니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조금 부담스러웠다. 슬쩍 돌아보니 다행스럽게도 속옷 한 벌은 걸쳐져 있었다. 지난번에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더니 이젠 부담도 안 느끼는 건가?

  ‘그나저나 이건 아예 무와 유를 마음대로 변환하는 수준이잖아.’

  무슨 기술을 사용해야 저런 변환이 가능할까? 상상력의 한계에 부닥쳤다. 특수 아공간이나 차원의 틈을 오가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거꾸로 두꺼운 갑주를 옷 위에 소환할 수도 있으려나? 과연 그런 원리라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능을 전부 탑재하고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겠다.

  “아, 미안하다,”

  형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긁적거렸다.

  “저도 속옷 차림으로 활보하다가 엄마한테 등짝 몇 번 맞았거든요.”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이런 차림이 편하긴 하지.”

  “동감이에요.”

  카이젤은 작게 웃으며 윤혁의 머리를 살살 헝클었다.

  욕실에 들어간 그는 욕조에 물을 받고는 몸을 담갔다. 한참을 깊은 사색에 잠긴 채 몸을 편안히 녹였다. 몸이 꽤 노곤해지자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아졌다. 동생은 우직하게도 욕실 바깥에서 간식도 먹지 않은 채 형과의 대화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민 끝에 카이젤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여기서 같이 천천히 이야기하면서 먹는 건 어떤가?”

  “불편하시지 않겠어요?”

  “뭐, 너도 같이 들어오면 되지.”

  형의 부름에 윤혁은 잠시 고민했다.

  ‘벌써 목욕탕까지 공유하기에는 아직 어색한 사이 아닌가?’

  아무리 형제라 해도 오래 본 사이도 아닌데 민망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형은 아예 탕에 밤새 눌러앉을 기세였다. 윤혁은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욕조는 성인 네다섯 이상은 거뜬히 발 뻗고 자도 될 만큼 넓었다. 윤혁은 어머니가 챙겨준 간식을 욕조 옆에다가 올려둔 뒤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간만의 목욕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전보다 튼튼해졌군.”

  카이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깥 세계 환경에 적응하려면 체력 단련이 필수잖아요.”

  윤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재빨리 탕 안에 입수했다.

  “푸훗. 틀린 말은 아니군.”

  형은 기특하다는 듯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몸을 단련한 건 우주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겠지.’

  뻔히 동생의 생각이 보이긴 했지만, 약속대로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구태여 강한 체력이 필요 없어. 함선 내부에는 블랙홀 급의 중력마저 상쇄할 수 있는 관성 중화 시설이 있어. 항성 중심핵의 열기를 완벽하게 막는 내열 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외부 중력에 의한 시공간 왜곡을 보정하는 장비도 갖춰져 있지.”

  우주적 스케일의 이야기가 언급되자 윤혁은 은근 놀랐다.

  ‘블랙홀에 항성까지? 제대로 먼 모험을 떠나려나 보네?’

  그나저나 정말 괜찮으려나 걱정도 들었다. 아무리 우주선 선체가 발전했다고 해도 우주 생활에 적응하려면 강한 신체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당연히 상위 육체를 지닌 자들만 우주여행을 감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늘.

  “형도 우주에 적응하시려고 신체를 단련하신 것 아니었나요?”

  윤혁은 상대의 막강하고 우람한 근육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정말 우주에 적응하려면 단순히 운동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야. 무중력과 고 중력은 물론, 극한 온도와 무산소의 환경에까지 적응할 수 있도록 세포 단위의 신체 개조까지 진행해야 하지.”

  “설마 바이오닉 솔져들처럼요?”

  “그래, 따지고 보면 그들이 나의 프로토타입이 되는군.”

  생체병기 이야기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윤혁.

  ‘형 자신도 그들처럼 신체를 강화한 건가?’

  동생은 은근 매섭게 형을 째려보았다. 이에 형은 부담을 느끼고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게 시선을 피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이었다. 무려 세계의 지배자인 자신이 고작 동생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라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카이젤은 헛기침을 하며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녀석들을 강화했던 건 아니야. 애초에 내가 창조한 녀석들도 아니었다고 말했었지? 내가 도운 건 단지 그들의 안정화와 적응뿐이야. 나도 그들을 인간으로 남게 해주고 싶었다. 우주 적응이 가능한 완벽한 신체를 만들려는 프로젝트의 기초 데이터를 얻은 건 그들을 보완해주는 과정에서 겸사겸사 얻은 부수입에 불과했어.”

  진실을 말하는 와중에도 제 처지가 참 구차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혹시 부작용은 없으셨고요?”

  고개 돌린 채 우물쭈물하는 카이젤에게 걱정 섞인 말이 들려왔다.

  “강화 과정에서 몸이 매우 아프셨을 것 같은데요.”

  의외로 동생은 꾸지람이 아닌 상냥한 염려로 대응했다.

  “뭐, 피코머신과 초인의 육체 덕택에 완벽하게 융화할 수 있었다.”

  형은 헛기침을 다시 늘려놓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변증했다.

  “말하자면 더 높은 개체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

  본래 피코머신 시리즈는 단순히 노화를 막고 역행시키는 것만이 그 목표의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 설계 시부터 인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과 지능과 생명력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었다. 물론 피코머신 이외에도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재료들은 무궁무진했고 피코머신은 그 구슬들을 꿰어주는 실이요 중심축이었다. 그것들의 효력을 검증하는 일차적 공간이 S-unvs고, 실제 임상시험의 최초 시행 대상은 바이오닉 솔져들이었다.

  “그래도 몸을 너무 함부로 굴리진 마세요.”

  순진한 그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우려가 담겨 있었다.

  “흐흠, 알겠으니까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괜히 저답지 않게 쑥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우주선 밖으로 나가면 즉사하겠죠?”

  윤혁이 화제를 돌렸다. 아직 우주가 무섭긴 한 모양이었다.

  “내가 태워줄 함선은 절대적으로 파괴 불능이니 걱정할 계제는 아니야. 그 함선이 파괴될 정도의 파괴력을 띤 피격이라면 어차피 그 공격에 휘말려 죽겠지. 굳이 우주의 환경을 신경 쓸 건 없어.”

  “하긴 그렇겠네요.”

  두 형제 사이에 잠시 어설픈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왜 저를 그곳에 데려가시겠다는 거죠?”

  어색함을 깨기 위해 윤혁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 이유는⋯⋯, 글쎄? 왜일까?”

  카이젤은 의뭉스럽게 말을 흐렸다.

  “그냥 내 변덕이라고 여겨라. 좋은 견학이라고 생각하던가.”

  사실 동생이 빚어낼 결말이 궁금했다. 그가 쌓은 세상을 동생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다. 자신의 세상에 위압될지, 그 세상을 배척하고 두려워할지, 그도 아니면 제삼의 해답을 찾아낼지, 알고 싶었다. 또 동생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해줄지도 궁금했다. 괴물이라고 여기고 싫어할까, 아니면 지금처럼 끝까지 한 명의 인격체로서 대해줄까? 그는 복잡한 속생각을 삼켰다.

  “뭐든 상관없어요.”

  윤혁의 대답은 변함없이 강직했다.

  “다녀온 후에도 제 생각은 달라질 일은 없어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카이젤은 나직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건 그렇고.”

  윤혁은 무언가가 번뜩 기억났다.

  “태원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그 맹랑한 검은 고양이 말인가?”

  카이젤은 즉각 반지가 있는 왼손 약지를 살며시 만졌다. 동생이 형의 생일 선물로 전해준 반지였다. 계속 끼고 있었는데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윤혁은 흠칫 놀랐다. 이내 반지가 희미한 빛을 발산하더니 공간의 틈이 갈라지며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커다란 큐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프? 아니 디멘션 기술인가?’

  역시 형은 반지에 이상한 기능들을 탑재해두었다. 선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줘서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 개조를 해서 기분 나빠야 할지 혼동되었다. 나중에 나머지 한쪽을 되돌려준다더니 그것도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그 상자는 뭐죠?”

  “슈뢰딩거의 상자다.”

  이미 고전 역학의 영역에 떨어져 버린 양자 역학. 그 양자 역학의 주역 중 하나였던 20세기의 대 물리학자인 슈뢰딩거. 그리고 그 슈뢰딩거의 유명한 양자 역학적 사고 실험, 곧 슈뢰딩거의 ‘상자 속 고양이’.

  “설마!”

  윤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형을 흘겨보았다.

  슈뢰딩거의 ‘상자 속 고양이’란 양자 역학의 원리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고 실험 모델 중 하나이다. 상자를 열기 이전에는 그 내부에 담긴 고양이에게 두 종류의 운명이 공존한다. ‘고양이가 살아있는 경우’와 ‘죽어있는 경우’가 겹쳐진 확률의 형태로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관측자가 상자를 열어 관측을 행하는 순간 두 운명 중 어느 하나의 결과가 고정된다.

  “모든 종류의 확률함수를 우리의 ‘자유의지’로 연산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지. 확률함수 강제 실체화 기술은 이미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아직 확률과 현실을 마음대로 다룰 수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

  카이젤이 그리는 주된 미래의 청사진 중에는 열역학 법칙의 한계를 벗어나 수많은 확률 중 원하는 특정 현실을 마음대로 선택해낼 수 있는 기술도 있었다. 그 기술을 좀 더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면 소위 ‘현실 조작(Reality Control)’이라고 불리는 꿈의 기술이 구현될 예정이었다. 아직은 그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단계이지만 머잖아 달라지리라.

  “설마 불쌍한 고양이를 실험에 써먹으신 건 아니겠죠?”

  동생이 속상해하며 울상을 짓자 형은 흠칫 당황했다.

  ‘이미 그보다 더한 생명공학 실험도 엄청 많이 했는데 어쩐다나?’

  여러모로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인간 탄생을 조작하는 실험만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 뿐 카이젤은 그간 이런 짓 저런 짓 가리지 않고 많이 했던 위인이었다. 바이오닉 솔져의 경우는 좀 특수하기에 변명할 말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 이외에도 그는 별의별 유사 생명체 실험을 벌여왔었다. 무수한 이종족을 창조한 것은 물론이고 생체 군단과 거대 생체 구조물까지 만들었었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 없군. 조용히 다물고 있어야겠군.’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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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소설 'X의 축복'이 출간되었습니다. 비참하게 몰락한 악한 부자 청년과 악당들을 도륙해온 악당, 황야의 외로운 킬러. 초라한 옥중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우정과 갱생 이야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영광.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의 '프리퀄', 지금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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