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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0회 초인들의 세계 Ch 47. 가족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됨)

 

 

 

 

 

  형은 애써 손을 저으며 스스로를 변호해보았다.

  “농담이니까 호들갑 떨 것 없다. 고양이는 여기에 잘 살아있다.”

  그는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상자를 열어 멀쩡한 모습으로 몸을 말고 있는 귀여운 고양이를 보여주었다. 이미 유사 현실 조작 실험을 벌여 몇 번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꾹 입을 다물었다.

  “휴우, 다행이다.”

  한숨을 쉬는 동생을 보며 형은 들키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작은 생명이라도 조금만 더 소중하게 생각해줬으면 해요.”

  “어차피 인간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들을 희생시키는데?”

  “그러니까 더더욱 생명을 존중해줘야죠.”

  “하지만⋯⋯.”

  “형!”

  윤혁의 잔소리와 일장 연설과 꾸지람이 이어졌다. 카이젤은 자신이 벌여놓은 수많은 실험과 생명공학 산업들을 알게 되면 아이가 차디찬 눈초리로 자신을 실망스럽게 바라보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지금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던 자신이 저 아이에게만 유독 유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우스웠다.

  ‘뭐, 그래도 혼나는 기분도 나쁘진 않군.’

  윤혁은 고양이 태원을 안아 들고 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평화로운 모습을 지켜보며 카이젤은 지난날의 바쁜 여정을 잠시 멈춘 채 마음을 돌아보았다. 어찌 보면 저 아이의 충고대로 자신은 그간 각박한 심정에 물든 채 합리성과 대업만 바라보며 그 주변에 있던 것들을 놓쳐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견제를 해준다는 건 이래서 참 중요하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동생을 활용할 수만 가지 큰 그림의 궁리를 머릿속에 저장해둔 자신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동생의 온유한 견제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마음만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녀’에게 견제를 받던 시절이 떠오르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견제도 정말 사랑과 애착이 담긴 기분 좋은 견제였었지. 회상에 잠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지만.’

  조금 입맛이 씁쓸했다.

  한편 윤혁은 이 기회에 고양이도 말끔히 씻겨야겠다는 생각에 고양이를 물에 푹 담갔다. 그러자 깜짝 놀란 검은 고양이는 펄쩍 뛰어올라 윤혁의 품을 벗어났다. 고양이가 착륙한 지점은 하필 커다랗고 널찍한 대흉근 위였다.

  “…….”

  민망한 정적이 쭉 흘렀다.

  “그래, 안 그래도 이 친구가 자꾸 가슴을 탐닉하더군.”

  카이젤은 한숨을 쉬며 제 가슴 위의 동물을 쓰다듬었다.

  “맹랑한 녀석이었어.”

  “제가 다 죄송하네요.”

  “아니 그럴 것까지야 뭐.”

  이제 윤혁은 화제를 돌려 내일 향하는 장소에 관해 물어보았다. 내심 여행 경로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냥 한 번 가보면 알 거야.”라는 무익한 대답만 돌아왔다. 동생의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왔다.

  “조금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말해주면 따라가기 싫다고 할 것 같아서. 일반인은 겁먹기 쉬우니까.”

  그 말에 약간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의 표정이 긴장감에 바짝 굳은 것을 본 카이젤은 긴장하지 말라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는 자신만 믿으라며 거듭 호언장담했다.

  “나 같은 가이드를 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괜히 더 무서워지네요.”

  “…너도 점점 이 고양이를 닮아가는군.”

  그렇게 둘은 밤이 늦도록 물속에서 몸을 편안히 녹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형제는 그간 터놓지 못한 생각들을 공유하였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하였다. 따뜻한 물의 온기가 맛있는 간식이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흡족하게 풀어주었다. 지금의 온화한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친밀한 친형과 친동생의 모습이었다. 비록 보통의 일반적인 관계는 아닐지언정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

 

 

 

  윤혁은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면 으레 그랬다. 체력을 아끼려면 지금 자야 하거늘 마음처럼 잘 안 되었다. 형도 마찬가지인지 곁에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작은 잠자리를 펼치는 중이었다.

  “잠이 안 오면 최면이라도 걸어줄까?”

  목걸이를 눈앞에서 흔드는 그 최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뇌에 직접 간섭하는 정신 간섭 계열 기술을 의미하는 말이리라. 하여튼 카이젤은 못 말리는 인간이었다. 동생이 정신 간섭을 몹시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저한테는 안 사용한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농담이니까 정색하진 말아라.”

  “형은 너무 진지해서 농담이라곤 안 할 것 같은 이미지예요.”

  “흠, 그런 컨셉이 더 좋은 건가?”

  “아니요, 지금이 예전보다 더 나아요.”

  그래도 농담도 하는 걸 보면 전보다는 인간미가 많이 생겼다. 약간이나마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지금처럼만 있어 준다면 좋으련만. 다시 그가 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내일이 조금은 두렵고 망설여졌다. 그래서 괜히 더 잠이 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녀석, 실없기는.”

  형은 피식 웃으며 동생의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찔렀다. 이상하게도 그는 동생 앞에서는 무력한 모습이 되곤 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초인이니, 위버멘쉬니, 괴물이니, 특이점이니 하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한 명의 가족으로 바라봐줘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윤혁아, 네가 나를 보는 시선과는 별개로⋯⋯.’

  꿀밤 맞은 자리를 쓰다듬으며 입술 비죽이는 동생.

  ‘나 같은 부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자신을 아직 믿어주는 동생에게 미안함을 들었다.

  “진 녀석과의 일에 대해서는 눈감아주마.”

  카이젤이 조심스럽게 윤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알고 계셨군요.”

  일부러 중립 지대까지 숨어들었거늘 완전히 감추는 것은 무리였나보다.

  “진 녀석이 네 머릿속에 이상한 걸 심어놓은 게 빤히 보이니까 말이지.”

  윤혁은 바짝 긴장한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숨죽였다.

  “녀석의 ‘현자의 눈’도 내가 만들어준 거야. 허튼짓하면 훤히 보이지.”

  “설마 그럼 지금 그를 처리하실 생각이신가요?”

  “뭐, 네가 원한다면.”

  상냥함과 섬뜩함이 섞인 형의 속삭임에 소름이 쫙 돋았다.

  진은 윤혁에게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형과 진, 둘 중 어느 쪽을 믿는 것이 나을까 고민이 드는 윤혁. 그러나 이왕 맺어졌으니 진과의 신의를 자기 쪽에서 먼저 배신하고 싶진 않았다. 때론 신자들이 소임을 다하려 할 때 의외의 방법으로 불신자들에게 중대한 도움을 입기도 하는 법이니까. 또 비단 유익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최소한 의리는 지키고 싶었다.

  “그를 그냥 두셨으면 좋겠어요.”

  “알았다. 그렇게 하지.”

  “정말 진 씨는 무사하겠죠?”

  “소중한 인력이라서 애초에 어찌할 생각은 없어. 징계만 좀 받겠지.”

  불쌍한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진 본인의 책임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누군가가 접근해오면 내게 말해라. 특히 내 부하라면 더욱.”

  “감춰둬서 죄송해요.”

  “혼내려는 게 아니다. 내 형제를 다른 놈이 함부로 대하는 게 기분 나빠서.”

  별 이야기도 아닌데 괜히 그 말을 들으니 뭉클해졌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믿고 의지해주었으면 좋겠군.”

  “형⋯⋯.”

  “그래, 그 정도는 형으로서 기대해도 되겠지.”

  ‘형제라는 게 원래 서로 의지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훗날 정면으로 부딪치는 두 길에서 마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두 형제는 밤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윤혁은 피로를 못 이기고 먼저 쓰러졌다. 카이젤은 자기 오른팔을 동생에게 돌베개로 내주었다. 윤혁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감돌았다. 옮겨놔야 하건만 괜히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울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오늘 밤만 참기로 했다.

  ‘앞으로 오늘 같은 날이 얼마나 찾아올까.’

  각박한 투쟁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오늘의 추억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아버지도, 동생도, 아주머니도 차츰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사라져버리겠지. 저들은 저들 나름의 삶을 살고 자신은 자신 나름의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속에서 쓰라림이 느껴졌다. 친어머니에게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쓰라림이었다. 참 우스운 노릇이었다.

  그때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저 식구들의 일부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 처음부터 자신이 이곳에서 자랐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자신으로 빚어졌을까? 불가능한 가정임을 알면서도 절로 상상이 펼쳐졌다. 자신 안에 이런 소망이 은연중에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득 그는 아버지에게 이 집 아들로 인정받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들었다. 동생도 자신을 믿음직한 버팀목처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인류 제국의 독재자가 아니라 피를 나눈 형으로서 봐준다면 좋으련만. 비록 독재자로서의 자신과 형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해서 대우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동생의 울타리 속에 포함되고 싶었다.

  ‘내게도 아버지의 라스트네임을 담은 이름이 있었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그런 이름으로 상냥히 불러준다면?

  ‘그럼 조금이라도 이 따스한 울타리 속에 몸담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고통 섞이지 않은 달콤한 잠이 스르르 쏟아졌다. 이렇게 편안한 시간을 누려본 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기나긴 세월을 고통에 짓눌린 채 살아왔었던 그인지라 이 안락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꿈 속에서 들려온 소리인지 아니면 뇌리에서 울리는 잔상인지는 몰라도 어떤 음성이 그의 속에서 잔잔히 메아리쳤다. 흡사 시간이라는 강을 건너 찾아온 부름 같기도 했다. 마치 그를 벌거벗겨 무력화시키는 듯한 부름.

 

  […혁아!]

 

  의식이 점점 더 흐려져가며 메아리가 옅어져갔다.

 

  […ㅈ혁아!]

 

  그 잔상을 마지막으로 그의 몸이 노곤히 풀리며 긴장감을 완전히 잃었다. 늘 팽팽하게 곤두서있던 전신의 근육들이 안락 속에 잠겨들었다. 온기가 섞인 숨결이 그의 자리 곁을 맴돌았다.

  흑암의 목소리가 그 칭명을 듣더니 분개하여 탄원하였다.

  <<오, 하늘의 주재여, 이것은 당신의 공정함에서 벗어난 일이옵니다.>>

  고발자는 절대 영역 언저리로 힘겹게 날갯짓해 나아갔다. 그저 그 임재 앞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용서받지 못하는 처지. 입자 하나까지 짓누르는 거대한 공포감 앞에서 그는 덧없이 저항하였다.

  <<어찌하여 마땅히 예정된 운명을 훼방하시는 겁니까.>>

  이에 엄중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네가 활동할 기회를 네게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그 아이의 영혼의 주권도 네게는 없느니라. 이는 모두 내 소유요. 그리고 잊지 말고 기억하라. 때와 기한을 정함은 네게 있음이 아니요. 오로지 내 뜻에 있느니라.]

  사악의 존재는 파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그건 내 거야!>>

  그 손길은 세상 모른 채 무력히 널브러진 몸을 향해 촉수를 뻗쳤다.

  <<이 내가 긴 세월 동안 공들여 빚었단 말이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속절없이 접촉을 훼방하였다. 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방해자의 손길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저것만 치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떻게 해야 저 매듭을 끊어버릴 수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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