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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1회 초인들의 세계 Ch 48. 태양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7 | 회차평점 0 0

 

 

Chapter 48. 태양계

 

 

 

 

 

 

  햇살이 방 안으로 살며시 스며들었다. 창밖으로는 새 소리가 들렸다. 밤늦게 잠들었음에도 잠자리가 편해서인지 피로하지는 않았다. 윤혁은 살며시 눈을 떴다. 익숙한 맑은 체향과 따뜻한 체온이 옆에서 느껴졌다. 바로 옆자리에 형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마 윤혁 자신이 그의 오른팔을 베고 잤던 모양이었다. 돌처럼 단단한 베개인데도 이상하게 목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는 잠들어 있는 형을 깨우지 않고 옆에서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매번 볼 때마다 도통 적응이 안 되네.’

  제아무리 잘생긴 미남이라도 보통 잠잘 때만은 조금 못생겨 보이건만 이 사람은 그것마저도 무시해버리는 듯했다. 위대한 장인들이 모여 수백 년간 심혈을 기울여 조각해낸 듯한 이목구비가 햇빛을 맞아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미의 기준이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더니 그마저 무의미하게 만드는 외모가 존재할 수도 있구나. 동생은 순수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감탄했다.

  ‘연애라도 좀 하시지. 아깝네.’

  새삼 그의 몸이 성불구라는 사실이 참 아쉬웠다.

  한없이 잘난 형에게 약간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일어났군.”

  그때 금빛을 발하는 눈동자가 번뜩 뜨이며 윤혁의 눈을 직시했다.

  윤혁은 가까이 다가온 김에 여태 궁금했던 점을 용감하게 질문했다.

  “그 청색과 적색의 빛 고리요, 인공적인 건가요? 선천적인 건가요?”

  “보기 안 좋나?”

  “아니요, 그건 아닌데, 모양은 예쁜지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잖아요.”

  카이젤은 이 이야기를 동생에게 해줘도 좋을지 고민했다.

  ‘비밀로 할 정도까지는 아니니 괜찮겠지.’

  “시술을 한 건 아니야. 하지만 타고난 것도 아니지. 출생 시의 난 어머니처럼 금안만 갖고 있었어. 청적색 고리는 한 살 무렵부터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뒤 조금씩 진해졌지. 아주 선명하게 새겨진 건 스무 살 무렵이고.”

  “재능이 나타나거나 각성하는 일과 맞물려 생긴 건가요?”

  “비슷하긴 해.”

  그는 다섯 명의 카테고리 분류 불가의 초인 중에서 일인자, 사실상의 위버멘쉬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왕으로서의 위상과 두각이 확정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진 빛의 고리는 희미한 형태로만 존재했다. 카이젤은 자신이 온전히 각성하여 위버멘쉬로 확정된 때, 곧 2차 각성의 날을 기억했다.

  ‘1차 각성에 이은, 초인에서 위버멘쉬로 도약하는 2차 각성.’

  그날의 트리거로 작동한 끔찍한 사건을 잊기란 불가능했다. 그날을 계기로 희미했던 빛 고리 문양은 돌이킬 수 없이 철저히 새겨졌다. 그리고 현자의 눈을 얻은 지금은 광채까지 마음껏 증폭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전 세대의 위버멘쉬들도 모두 오드아이였지.”

  유명한 지도자이자 인류연합 초대 창설자인 1대째는 자안과 적안을 동시에 지녔다고 한다. 이벨리아 역시 남색 눈과 하늘색 눈을 지니고 있었단다. 그리고 현재의 카이젤은 한쪽은 청색, 한쪽은 적색의 고리가 덧씌워진 금안이었다.

  “그러면 그게 초인들의 왕을 상징하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기이했다. 왜 위버멘쉬에게만 오드아이가 나타나는 걸까?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의미가 있는 현상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르신이라면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도 있을 법한데 그분은 하필이면 행방불명이 되셨다.

  “다른 공통점도 있다. 각 세대의 왕은 핏줄에 유대인이 닿아있었지.”

  윤혁은 다시 한번 놀랐다. 문득 어르신이 가르쳐 준 위버멘쉬와 메시아 고대 사상의 연관성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가 정말로 사실이었구나. 유대인들이 위버멘쉬들에게 매혹된 이유에 민족적 공통분모도 한몫했구나.

  “그렇다면 형의 어머니는?”

  카이젤은 동생의 말에 더는 대답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이제 슬슬 떠나보지. 앞으로의 일정이 길다.”

  카이젤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둘은 몸을 씻은 후 옷매무새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가볍게 나눈 뒤 나설 채비를 마쳤다. 형제는 성한과 유진 부부에게 가벼이 인사를 드리고 포옹을 나눈 후 발길을 재촉했다.

  “이제쯤 어디로 향하는지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동생의 질문에 카이젤은 소리 없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손바닥 위로 어떤 물체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차원의 틈에 숨어 있던 작은 다면체 형태의 수정 물체가 소환되어 손바닥 위 공중에 둥둥 부유하였다.

  “……이건?”

  “단독 워프 매개체다. 최근 초소형 독립 모듈로 완성했다.”

  우주 단위의 원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가장 주축이 되는 기술 중 하나인 워프. 좌표 연산만 가능하다면 어떤 위치로든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체적인 시설과 매개체, 관측 및 좌표 연산 장비 등 많은 보조가 필요했다. 반면에 게이트는 특정 고정된 좌표 사이에서만 이동이 가능한 대신에 미리 시설만 세워두면 이동 대상이 되는 물체에는 보조 장비 탑재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카이젤이 소환한 수정체는 단독으로 워프 발동, 좌표 연산, 매개 작용까지 한꺼번에 시행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제로원 때처럼 워프 중개 장소조차도 필요 없이 원하는 위치로 곧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의 워프에 난항을 겪었던 수십 년 전 기술 수준과 비교해보면 최근 워프 기술이 얼마나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 여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따끈따끈한 신기술인지라 아직은 원거리에 적용하긴 어려워. 곧 되겠지만. 지금 수준으로 원거리 도약을 쓰면 나는 괜찮지만 네 몸에는 무리가 가겠지. 이 크리스털로는 단거리 이동만 할 거야. 차량을 타고 가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신제품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말이지.”

  곧 눈앞에 섬광이 번쩍 비치더니 그들은 순식간에 공간을 찢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 번화가였다. 형제가 선 곳은 매우 높은 마천루 꼭대기였다. 이미 여러 번 워프를 경험했던 터라 윤혁도 크게 충격받지는 않았다. 단독 워프 장비라는 기술력에는 탄복했지만.

  위이이잉.

  이내 카이젤의 의복이 원래의 제복 형태로 변환되면서 희미한 녹색과 적색의 선 문양들이 빛을 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하늘을 향해서 손을 뻗어 손가락 끝에 있는 코드를 먼 거리에 있는 무언가에 인식시켰다. 그러자 곧 메시지가 도달했다.

  {‘필라’를 발동하겠습니다.}

  “전부 발동시켜.”

  카이젤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명령했다. 목소리가 닿기 무섭게 하늘에서 수십 개의 거대한 빛의 기둥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반투명한 재질로 된 물질 같았는데 유리도 아니고 액체나 기체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순수한 빛으로 만들어진 것조차 아니었다.

  ‘빛의 탑?’

  오늘날은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인 ‘궤도 엘리베이터’ 수천 기가 지표면 곳곳에 세워진 시대. 그러나 궤도 엘리베이터는 편리하되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래서 인류연합은 궤도 엘리베이터를 편리성과 건설 용이성을 초월한 더 우수한 탑을 개발했다. 최근 와서야 실전에 투입되었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고안된 것이었다.

  그 탑들이 바로 ‘필라(Pillar, 기둥)’였다.

  필라는 통상 물질이 아닌 차원 기술, 확률 기술, 허수 기술을 통해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 탑이었다. 그렇기에 별도의 건설 없이도 수많은 필라들을 생산, 복제해낼 수 있었다. 더 대단한 부분은 자원•에너지 수송과 교통에 있어서 같은 크기의 궤도 엘리베이터보다 훨씬 더 높은 범용성을 지닌 점이었다.

  필라들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궤도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마치 심장에서 뻗어나가는 혈관들처럼 상공 궤도에서 수천 가닥으로 가지가 나뉘고 갈라져 끝없이 확장되는 특징을 지녔다. 그 끝은 심지어 태양계를 넘어서 우주 공간 저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언뜻 보면 이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처럼 보이나 필라 내부에는 복잡한 시공간 기술이 접목되어 있었기에 먼 거리를 이동할 때도 최소 시간만 소요되도록 조작할 수 있었다.

  카이젤은 동생 손을 붙잡고 자신들 앞으로 내려온 반투명한 청색의 기둥 안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그들은 신비한 빛의 통로 안쪽에 서 있었다. 마치 중력이 적용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둥둥 떠다니되 자신의 의지로 마음대로 좌표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 손을 잡아라.”

  카이젤이 제복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내 슈트는 이 공간 안에서는 마음대로 속도와 가속도를 변환할 수 있다.”

  윤혁은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형이 내민 장갑 낀 손을 잡았다. 이내 둘은 곧 엄청난 속도로 빛의 기둥 상방으로 치솟아 올라갔다. 특수 기술이 적용되어서 그런지 상당한 가속도에도 관성력이나 저항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올라온 윤혁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바깥에서는 필라를 관측할 수 없었지만, 안쪽에서는 지구의 모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푸른 별 지구의 구형 본체가 빠르게 시야 안에 들어왔다. 그때 윤혁은 대기권에 둥둥 떠다니는 다수의 물체를 관찰하게 되었다. 바깥 세계에서는 관측조차 할 수 없던 물체들이 필라의 내부에서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지구를 수놓는 그 물체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들 같았다. 기계라기에는 생동감과 의지가 넘쳐흘렀고 생명체라기에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심지어 통상의 하늘 공간뿐 아니라 차원 이면에서도 우글우글 암약하고 있었다. 그중 몇 종류는 윤혁의 감각에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예전 기억 덕분이었다.

  “신수? 아니, 다른 부류도 있군요.”

  그는 눈을 잠시 찡그렸다.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지구 전역을 덮고 있는데…….”

  “으레 하는 일들이야. 아주 사소한 일이지.”

  ‘사소한 일이라고?’

  “기술력이 한참 뒤떨어지는 하수들끼리 맞붙는 연례행사다.”

  카이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 웃으면서 동생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윤혁은 대단히 불길한 직감을 받았다. 정체 모를 저 생명체들, 행태를 보니 마치 지금 전 세계에서 대대적인 싸움을 벌이는 것만 같았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처럼 모든 국가가 그 싸움에 초라하게 휘말리고 있었다. 얼추 봐도 평화로운 민방위 훈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위험해.’

  다시 한번 형에게서 잊혀졌던 위화감이 전달되었다. 세계 대전을 능가하는 규모의 병력, 그것도 신화 속 괴물들을 재현한 괴이한 기술의 산물들이 움직이는 지금 상황을 보면서 형은 하룻밤의 유희를 대하듯 태연했다. 어젯밤의 착한 형은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두려운 인류연합 수장이 눈앞에 자리매김했다.

  “강윤혁.”

  지상 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동생을 향해 무거운 경고음이 돌아왔다.

  “조용히 따라와라.”

  윤혁은 이를 악물고 인내했다. 지금의 형은 진지하고 무서워 보였다. 그때까지는 아직 그도 알지 못했다. 대기권을 배회하는 인공 괴수들은 앞으로 보게 될 광경들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음을.

  대기권 너머 하늘 위로 올라오자 이번에는 상층에 세워진 거대한 축조물들이 보였다. 토성의 고리처럼 생긴, 지구 궤도에 구축된 인공 고리인 오비탈 링들이었다. 오비탈 링은 10km 규모의 두께의, 지구 여러 궤도를 둘러싸는 건축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엮인 동일 반지름의 열 개의 오비탈 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 그러한 세트가 각기 다른 반지름으로 무려 총 백 세트나 있었으니 도합 천 개의 링이 지구 주변에 존재하는 셈이었다.

  “놀랄 것 없어. 구세대의 산물이지. 이젠 이런 건 쓸 필요도 없어.”

  생애 처음으로 육안으로 오비탈 링을 보고서 눈을 못 떼는 동생.

  형은 그런 동생에게 맥 빠지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구세대의 산물……, 그럼 이건 건설된 지 얼마나 되었죠?”

  “어머니 세대부터 이미 궤도 엘리베이터 몇 기는 만들었고 오비탈 링 건설도 어느 정도 진척되었지. 지금처럼 개량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한때는 오비탈 링에 탑재된 무기들 때문에 하마터면 세계 대전이 벌어질 뻔도 했었지.”

  과거 1세대 초인들은 인공위성 병기를 통해 세계 군사 패권 경쟁을 종결시킨 전적이 있었다. 당시는 고작 그 정도만 해도 우월한 무기인 시대였다. 그런데 2세대로 접어들며 지구 전역을 쉽게 파괴할 우주 무기들이 대거 개발되어 범람했다. 운수가 나빴으면 인류는 그때 멸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비탈 링이나 엘리베이터나 낡고 도태되었지.”

  카이젤은 구닥다리 신석기 제품을 구경하는 눈초리로 비웃었다.

  “그래서 생산력과 기능과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더 우월한 걸 개발했어.”

  그는 여유로운 자태로 손가락을 가볍게 탁 튕겼다. 그러자 그 손짓이 신호가 되어 지금껏 관측이 강제로 차단된 무언가가 베일을 확 벗어버렸다. 오비탈 링이 설치된 곳보다 좀 더 높은 궤도에 링과 비슷하되 마치 불에 타는 듯 에너지를 방출하는 고리들이 나타났다.

  “저, 저건?!”

  고리들은 대단히 개수가 많았고 제각기 다양한 각도로 겹쳐져 있었으며 안쪽의 고리와 바깥의 고리들이 긴밀한 축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정미한 프랙털 구조를 이루었는데 고리 사이사이에 또 다른 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윤혁은 그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어떤 성경 속 대목을 떠올렸다.

  “네 상상이 맞다. 저건 ‘케루빔의 바퀴(Wheel of Cherubim)’다.”

  “에스겔서 1장에 나오는 그 불타는 바퀴를 본뜬 건가요?”

  너무 대놓고 모방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신자로서 조금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조족지혈이었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작품은 그가 성경에서 모방해낸 무수한 요소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케루빔의 바퀴는 지구를 두르는 여러 ‘절대 결계’ 중 하나이지. 물론 거대한 에너지원이기도 하고 테라포밍을 포함해 여러 보조 기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방어의 역할이 가장 핵심이야.”

  “소행성 같은 것으로부터요?”

  “고작 소행성 따위? 목성 같은 거대한 천체가 다가와도 그 중력마저 완전히 차단 후 접근한 본체마저 즉각 붕괴시킬 수 있지. 빔을 포함한 에너지 폭격도 마찬가지고. 태양 같은 고열의 항성이 다가와도 열을 중화할 수 있어.”

  이제는 제 형이 실없는 허풍쟁이가 결코 아님을 익히 학습해서 잘 알고 있는 윤혁. 형이 증언해준 ‘케루빔의 바퀴’의 무시무시한 상식 밖 기능들을 듣자 공포감에 이마로부터 식은땀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때때로 자연 그 자체보다 가공된 건축물이 더 충격적이기도 한 법. 그 건축물이 우주적 규모의 인공 축조물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이제 고작 지구 밖으로 나왔는데 저런 게 튀어나올 정도면 다음엔⋯⋯.”

  카이젤은 말없이 동생의 손목을 잡고 계속 필라 내부 통로를 가르며 비행하였다. 둘은 엄청난 수의 ‘케루빔의 바퀴’를 스쳐 지나갔다. 그 광경은 가히 경악스러웠다. 필라의 상층으로 올라갈 때마다 필라는 나뭇가지처럼 여러 개의 갈림길로 나누어졌다. 카이젤은 복잡한 갈림길을 능숙하게 분별하며 필라가 어떤 장소에 닿을 때까지 쭉 올라갔다.

  이윽고 기둥의 끝자락이 저 멀리로 희미하게 보였다. 기이하게도 그 도착지점을 내다보니 마치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도시 같이 보였다. 그 영역은 시작점이나 끝점이 보이지 않게 사방의 우주 공간을 향해 편만히 퍼져 있었는데 평평한 지구 형태 같으면서도 그 경계선이나 수평선이 전혀 관측되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면? 편평 지구(Flat earth)?’

  그 면 형태 구조물은 두께를 가늠해보기 어려웠다. 수직 단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저 표면 위에 세워진 도시만 보였다. 그 구조체는 기묘한 곡률로 파동을 그리며 넓게 퍼져나가 무한의 연쇄를 이루었다. 그것은 거대한 빈 공간에 둥둥 떠 있는 가상의 땅 같았다.

  ‘저런 게 우리 지구 위에 있었다고?’

  흥미롭게도 그 면 위에는 도시와 바다가 함께 있었다. 두 성분은 섞일 듯 섞이지 않는 평행선을 이루며 유려한 곡면 연속체를 만들어냈다. 그 바다는 지구의 바다와는 성격이나 성질이 달라 보였다.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미지의 물질이 파도를 치는 듯한 형상이었다. 윤혁은 딱 한 번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저것과 비슷한 원시적 형태의 이미지를 스쳐 가듯 본 기억이 났다. 더불어 다른 기억도 났다. 전에 형이 수영장에 데려갔을 때의 본 바다의 모습도 지금 저 곡면 위를 흐르는 ‘인공적 바다’와 유사했었다.

  “저건 ‘뫼비우스의 차원 곡면’이다.”

  그것은 인류가 ‘차원 조작 기술’을 시범으로 응용한 시험 작품이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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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충격 예고 1. 아직 윤혁이가 목격한 것들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2. 소설책 'X의 축복'이 출간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재차 강조드리지만 중요하므로 반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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