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2회 초인들의 세계 Ch 48. 태양계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1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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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인간의 눈에 관측되는 통상 우주는 거대한 상위 차원 속 수많은 조각 중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는데 그 작은 조각 내부에조차도 미묘하게 숨겨진 얇은 차원들이 존재했다. 얇은 종이 한 조각이 겉으로는 2차원 평면으로 보이지만 두께라고 불리는 또 다른 차원의 축이 숨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인류는 통상 3차원 공간 이면에 숨은 그 얇은 차원을 ‘칼라비-야우 차원’이라 명명한 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얻은 기술은 상당히 유용했다. 공간 이면에 숨어들 수도 있었고 가로막는 장애물을 가로질러 투시나 물리적 통과를 할 수도 있었으며 대규모 물체들을 숨겨두거나 마음대로 이동시키거나 소환할 수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신식 용도는 숨어 있는 칼라비-야우 차원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가공해 통상 공간과는 별개의 다른 공간을 재단하는 기술이었다. 이는 마치 얇은 화장지 한 장을 더 얇은 세부 면들로 정밀하게 분리한 뒤, 그것들을 재배열하거나 늘리거나 줄이거나 다시금 오려 붙여서 원래의 화장지 조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업과도 같았다.
이런 가공 기술이 막 개발되던 당시 시험 삼아 만들어낸 첫 번째 시도로서의 야심작이 바로 달 공전 궤도면 전체를 아우르도록 건설된 뫼비우스 차원 곡면이었다. 현재로서는 낡고 오래된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나름의 성공이었다. 물론 다른 항성계들에 세워진 더 진보된 작품들에 비하면 뒤처지긴 했으나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기에 폐쇄하지는 않고 문화재로서 남겨두었다.
카이젤은 뫼비우스의 차원 곡면에 대한 충격적 비밀을 가르쳐주었다.
“이론상으로 이 곡면의 면적은 무한대지.”
“그 ‘뫼비우스의 띠’처럼요?”
윤혁은 애써 충격받은 기색을 감추며 질문했다.
“수학적인 원리는 조금 유사하지. 훨씬 더 확장된 버전이긴 하지만.”
“하긴 제로원에서도 공간 조작 기술을 여러 번 보여주셨죠.”
형제는 뫼비우스의 곡면 위에 착륙했다. 카이젤의 제복은 좀 더 갑주 형태에 가깝게 변신하였다. 그는 윤혁에게도 장갑의 접촉을 통해서 나노 아머 일부를 전달해 입혀주었다. 덕분에 평범한 육체의 윤혁도 무중력, 온도, 공기, 빛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뫼비우스 차원 곡면 위 도시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닌 기계를 증식시키고 만들어내는 일종의 대규모 공정 및 발전 시설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의 원리를 이용해 얇은 차원을 아주 얇게 분리해 순환 구조로 이어붙인 이론상 무한대의 곡면. 덕분에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축조물의 양도 거의 무한정으로 늘릴 수 있었다.
“저런 게 은하 곳곳에 수억 개도 넘게 있다는 거죠.”
윤혁은 탄식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게다가 이건 겨우 초기 작품에 불과하다는 거죠?”
최신의 것들은 훨씬 더 압도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말 아닌가.
“그래. 나는 저것보다는 좀 더 추상적인 화풍을 선호하지.”
카이젤은 그림 평론가가 고대 동굴 벽화를 평가하는 어조로 말했다.
바다와 도시는 샐러드처럼 섞이지 않은 채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묘하게도 바다에서는 물의 기둥이 치솟아 올라가고 있었다. 기둥은 나뭇잎의 잎맥 같았고 바다는 나뭇잎 같았다. 그러더니 잎맥들은 한데 모여서 더 큰 바다로 연결되었다. 이후로도 연쇄적 확장 구조가 이어졌다. 마치 옹달샘에서 시냇물, 시냇물에서 호수, 호수에서 강, 강에서 하구, 하구에서 바다, 바다에서 대양으로 이어지는 물의 합류 연쇄가 차원 규모로 재현된 것 같았다.
그때 미묘한 텔레파시 음파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키야아아아.
신수에 준하는 인공 유사 생명체들이 저 바다 내부에 암약하는 듯했다.
“물속에 들어가고 싶나? 이번에는 슈트 덕분에 상처 입을 일도 없는데.”
“사양할게요.”
“잘 됐군. 갈 길이 아직 멀었는데.”
뫼비우스 차원 곡면은 제한된 달 공전 궤도 한정으로 거의 무한이나 다름없는 면을 이루었는데 유일하게 유한 형태 면으로 수렴하는 지점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지구의 파트너가 되어 온 유일한 위성이었다. 카이젤은 손가락으로 그 지점을 겨냥했다.
“달은 인류가 최초로 요새화시키기 시작한 천체이지. 다시 말해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개조를 많이 겪었다는 의미이기도 해. 온갖 다양한 개조들이 시도되었어. 그리고 지금은……, 지구로 입장하는 문의 열쇠이기도 하지.”
카이젤은 다시 동생의 손을 붙잡고 단독 워프 매개체를 꺼냈다. 이번에는 조금 전에 사용한 것과는 달리 붉은 빛을 희미하게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달의 지표면이 발밑에 보이는 공중으로 워프를 시행했다.
“나는 이곳에서 제로원의 프로토타입을 생산했었다.”
제로원의 제작 과정은 확실히 미스터리였다. 맨틀부터 내핵까지 지구 내부 전체를 요새화시키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지각변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보통 건설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 불가사의에 대한 해답 중 일부가 바로 이곳 달 요새에 있었다.
“지하를 개척하려는 시도는 2세대부터 있었지만, 그 어리석은 자들은 땅의 움직임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서 온갖 골치 아픈 사달을 일으켰지. 덕분에 혼돈의 시대는 지진 빈발의 시대가 되었다.”
윤혁도 부모님 세대에 유독 세계 도처에 지진이 많이 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 원인에 관해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구나.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에 다시금 한탄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벌여놓은 실수 덕에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지. 제로원 프로젝트가 성공한 지금 더는 지구의 불확정성에 벌벌 떨 필요가 없어. 도리어 지각층의 움직임을 완전히 컨트롤하게 되었지.”
거꾸로 말하면 카이젤 마음대로 특정 국가들에 지진이나 화산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눈치 빠른 동생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 한 사람에게 그런 거대한 힘을 쥘 자격을 줘도 된단 말인가?
한편 발밑으로 보이는 달의 모습은 교과서에서 본 크레이터로 덮인 암석 덩어리가 아니었다. 본체 전체가 기괴한 물질로 대체된 상태였다. 표면은 기계들로 덮여 있었고 내부도 개조된 기색이었다. 위성을 통째로 깎아서 하나의 요새로 개조한 것 같았다. 무기인지 생산 시설인지도 가늠되지 않았다.
“우주 영화에서 본 것과는 좀 느낌이 다르지?”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스페이스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져요.”
“달 본체의 개조된 진짜 모습을 감췄거든. 평상시에는 홀로그램을 덮어두어서 흔히 사람들이 아는 크레이터투성이 모습으로 보이게 했지. 그 덕에 여러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기에도 편해졌고.”
필라, 케루빔의 바퀴, 뫼비우스의 곡면, 그리고 달.
모두 지구에서는 육안으로 형태를 관측할 수 없는 특수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 같이 마법 같은 기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술과 공상의 경계선이 깨어졌다는 증거겠지.’
이어서 카이젤은 달 위에 새겨진 가장 큰 인공 크레이터를 향해 손가락을 겨냥하였다. 레이저 포인터처럼 빛이 그 중앙으로 쏘아지더니 커다란 굉음과 함께 지진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지진은 땅의 붕괴로 인함이 아니었다. 거대 관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정교한 직선 틈이 쪼개지듯 나뉘더니 그 아래쪽으로 거대한 구멍이 드러났다. 구멍에는 밝은 광채를 발하는 몇 겹의 빛의 관문들이 있었는데, 게이트 시설과 비슷하면서도 실드 같아 보이기도 했다.
“태양계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가 존재하는데 굳이 통과해야 하나요?”
“이유가 있다. 달의 문을 지나가야만 함선에 탑승할 수 있거든.”
카이젤은 예복과 세트를 이루는 다른 장치를 차원 틈에서 꺼내더니 형태를 조작하여 바이크 형태로 변환하였다. 윤혁은 조용히 형이 시키는 대로 바이크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곧 바이크의 보호 캡슐이 그들을 둘러쌌다. 둘을 태운 바이크는 구멍을 질주하여 달 내부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달 내부의 각기 관문마다 기계로 된 문지기들이 있었다. 본래 까다로운 시험을 내리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왕을 보자마자 그들은 지체 없이 관문을 개방해주었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형제는 월면의 반대편으로 통과해 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오자마자 시야에 곧바로 들어온 것은 한 척의 전함이었다.
“전함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지?”
크기는 장축 20km, 단축 10km 정도의 유선형 함선이었다.
“네. 웅장하네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함선 이미지와는 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운용하지 않는 건가요?”
“그래. 괜히 주민들을 겁먹게 할 필요는 없지.”
해변 모래알보다도 많은 함대를 밥 먹듯 구경해왔던 형과는 달리 촌뜨기 동생은 전함 한 척의 웅장한 위용에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 회장이 예전에 말했던 그대로였다. 단 한 명의 인간이 나머지 인간들을 합친 것보다 수억 배 이상의 무력을 지녔다고 했던가. 그때는 허풍이겠거니 하고 여겼는데 막상 눈으로 직접 보니 오히려 그 이야기는 축소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런 힘을 가진 자가 만약 작정하고 악한 마음을 먹는다면?
‘그때는 누가 감히 억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고 모호했던 두려움이 이제 명확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형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위험했다. 그렇다고 그를 내버려 두기에는 이미 유대감이 쌓여버렸다. 만일 절체절명의 상황이 이르게 되면 자신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할까? 아니, 선택지가 주어지긴 할까?
‘천벌이라도 내려오지 않으면 견제할 수 없겠지.’
이제 뫼비우스의 곡면 바깥 궤도에 이르러 달 뒷면에 이르자 거대 수평선이 보였다. 지구-달 쌍성계를 포함하여 평행하게 사방으로 뻗는 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 평면이 아니라 어떤 궤도를 둘러싸는 구형의 면이었다. 그것이 인공 구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윤혁은 방금 받은 전함의 충격을 잊어버렸다. 그것은 지구의 태양 공전 면을 완전히 감싸는 초거대 축조물이었다.
‘다이슨 구체(Dyson Sphere)라고? 이게 대체 무슨!’
경악감에 어안이 벙벙해진 촌뜨기 동생.
왕은 한치의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담담히 해설했다.
“수성 궤도부터 해왕성 궤도까지 총 108겹.”
“네?”
“지금 보고 있는 건 태양을 가두는 껍질인 10번째 다이슨 구체지.”
“정말로 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를 완전히 다 채운 건가요?”
“물론.”
“그럼 대체 그 많은 재료를 어디에서 구하죠?”
“일일이 물질로 건설한 건 아니야. 암흑 물질(Dark matter)을 가공하고 분리하여 복제한 후 환상 실체화 기술을 통해서 광역 구현한 원리지. 아직은 온전한 물질로만 구성된 게 아니어서 불안정해. 원래는 저 위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게 만들 작정이었는데 기술력 한계 때문에 아직은 먼 이야기야.”
다이슨 구체는 공상 과학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원체 실현 가능성 없는 허황된 이야기라서 농담처럼 치부되었거늘 눈앞에 그 농담이 현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건설된 거죠? 태양열 에너지 채취인가요?”
“설마 고작 항성 에너지 하나 뽑겠다고 그런 자원 낭비를 하겠나? 물론 태양열을 한 줌도 흘리지 않고 흡수해서 몇억 배 이상의 에너지로 증폭시키는 ‘부가적인 기능’도 달려있긴 해. 거기에 방어, 통신, 게이트, 생산 등의 종합적인 기능들도 갖춰져 있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 기능은 연구 시설이다.”
그곳은 우주 규모의 실험 시설이었다. 지구에서 진행되는 실험과는 당연히 규모나 차원이 달랐다. 더욱이 시간 압축까지 적용할 수도 있어서 단시간에 수많은 신식 기술들을 창출해내는 일도 가능했다. 또한 지구와의 거리 덕에 먼 우주의 연구 시설과는 달리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큰 이점도 있었다.
위이이이이잉.
감탄할 틈조차 주지 않고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공간 전체가 울려 퍼지는 것 같이 주변 물체가 동시에 움직였다.
‘잠깐만, 소리라고?’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달을 통과할 때도 굉음을 듣긴 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 지금에 와서야 윤혁의 머릿속에 위화감이 스쳤다. 이곳은 우주라서 진공상태 아니었던가? 사실 그가 알지 못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가 두른 아머에는 시공간 진동을 감지해 가청 주파수로 변환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공간 진동의 발생은 그 근방에서 공간을 압축하거나 팽창시키는 일련의 조작이 있었다는 간접적 증거.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다이슨 구체의 바깥 면에서 조금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함대들이 두더지처럼 튀어 올라왔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워프나 게이트 작동은 아니었다. 공간도약. 이른바 공간 압축을 용수철처럼 이용해 초광속 이동을 하는 기술. 광년 단위 원거리에 적용하지는 못하지만, 태양계 내에서는 얼마든지 이용 가능한 단거리 순간이동 기술이었다. 시공간 진동은 이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다른 방식의 단거리 순간이동으로 다른 무리의 함선들이 모여들었다. 차원 기술로 숨겨진 차원 뒷면에 머무르던 함선들이 현실 공간으로 올라왔다. 그 후에는 다이슨 구체 위에 흩뿌려진 마커들이 빛을 발하더니 다른 무리가 순간이동 했다. 이 마커들은 ‘좌표 변환(Swap)’에 쓰이는 매개체들로 단시간에 최소 비용으로 큰 무리를 단거리 이동시키는 용도였다. 이어서 순간이동 대신 타키온 코팅(Tachyon coating)을 통해 초광속으로 이동해 온 함대, 그리고 아공간을 빠르게 항해해 날아온 함대도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단거리 순간이동 기술의 화려한 향연이 펼쳐졌다. 그 현란한 우주쇼 이후 결과물로 남은 것은 검은 공간을 우주 먼지처럼 가득 메우는 막대한 규모의 대함대의 위용이었다. 한순간에 전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인류연합의 정규 함대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규모의 군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움직일 리는 없는데?’
왜 저렇게까지 큰 군대를 소환했을까? 무력 시위나 위협에 대응하려는 목적인가? 혹은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인류연합이 세계단일 정부임을 고려하면 다른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말이 안 됐다. 후자의 이유에 가까우리라. 윤혁은 팽팽히, 그러나 차분히 머리를 굴렸다.
‘형의 안위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소환된 건가?’
하지만 다른 불길한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정체 모를 외부의 무언가를 무력 진압하기 위해서? 에이, 설마!’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단독 워프 매개체가 재발동되었다.
바이크에 탑승했던 둘은 다시 기함의 조종석으로 워프되었다.
“인류연합 직속 함대를 활용하려면 방금처럼 달과 같은 ‘관문 위성’의 문지기들에게 인증 암호를 받아야 하지. 다른 자들이 마음대로 지휘권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만든 안전장치야.”
형제가 탑승한 기함의 형태는 주변의 다른 함선들과는 형태나 재질이 사뭇 달랐다. 딱히 공격무기도 보이지 않았고 방어 장갑도 얇아 보였다. 그 대신에 다른 무언가와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듯한 흔적이 있었다. 여하튼 기함과 대함대는 준비를 마친 후 한 번 더 공간도약을 하여 화성 근방으로 이동했다.
이동 직후에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화성의 뒷면에서 무언가가 출현했다. 거대한 질량과 부피를 지닌 물체가 행성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행성에 준하는 무식한 규모, 그럼에도 중력을 완벽히 차단하여 주변에 아무런 영향도 행사하지 않는 기묘함, 물리 법칙을 초월한 듯 형체를 유지하는 신비함. 그 거대 함선은 지금 타고 있는 기함의 진짜 본체였다.
‘이, 이런, 정신 나간!’
웅장한 함대의 배열마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저 태연히 멈춰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감과 경외를 자아내는 거체. 검지만 화려하고 웅장한 디자인. 철옹성처럼 빈틈이 없는 단단함. 어느 한 군데도 낡지 않은 매끈한 표면. 기가 막힐 그 광경에 윤혁은 굳은 표정으로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질렀다.
“그럼 출발하자꾸나.”
카이젤은 본체 기함의 암호를 가볍게 풀어 코드를 인증한 후 그들이 타고 온 열쇠 함선과 자물쇠에 해당하는 본체가 결합하도록 했다. 열쇠를 인식한 함선의 엔진은 방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에너지 파동이 주변의 공간을 탈곡기로 알곡을 털 듯 왜곡시켰다.
“기함 ‘젠타르콘-Ⅶ’, 출정.”
거대 괴수가 아우성을 외치며 시동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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