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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3회 초인들의 세계 Ch 49. 은하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2 | 회차평점 0 0

 

 

 

 

 

Chapter 49. 은하계

 

 

 

 

 

 

  조종간 내에 중력 동기화가 완료됨과 동시에 지구에서와 똑같은 중력 환경이 조성되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배경만 빼면 우주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어서 관성 중화까지 완벽히 조정되었다. 아무리 고속으로 속도를 변환해도 함 내부는 평온을 유지할 것이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전 함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워프를 가동하였다.

  워프 종료 직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염 덩어리였다.

  ‘화염? 프로미넌스인가?’

  순간적으로 불지옥이 연상되었다. 함대는 어느 항성 대기권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격렬히 타오르는 코로나(corona)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한 내열 장치도 있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도달한 곳은 자연적인 항성이 아닌, 개조 항성이었다. 단순히 내부 요새만 세운 것이 아니라 항성 구조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물리법칙마저 어긋나게 만드는 기이한 이질감이 항성 본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기함의 조종간에 거대한 크기의 홀로그램 화면이 드러났다.

  함대가 관측한 항성 전방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시각화시킨 영상이었다.

  항성 남반구는 플라즈마 대신 고체 상태로 보였는데 통상의 물질이 아닌 듯했다. 형태도 구형에서 벗어나 있었다. 마치 한 씨앗에서 싹이 발아한 모양처럼 수많은 굵은 가지들이 뻗고 있었다.

  반면, 북반구는 군데군데 블록 형태의 검은 섬들이 박혀 있는 플라스마 상태였다. 블록 형태 구조물은 전체 표면적의 3분의 2가량을 덮고 있었다.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부터 항성 핵까지 블록들이 바둑무늬 배열로 나열되어 있었다. 아울러 북극점에는 플라스마와 뇌전처럼 생긴 특이한 다색의 에너지체들이 뒤엉켜서 고깔모자 형태로 높이 치솟아 화염의 송곳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항성 주변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항성 여럿이 공전하고 있었다. 목성 정도의 크기를 지녔으나 밀도는 훨씬 높았다. 특이사항으로는 보라색 빛을 발하였다. 보통 항성과는 선명하게 차별화되는 느낌이었다.

  “잠시 식사하고 가지.”

  카이젤의 명령에 드론들이 점심 식사를 운반해왔다. 화려한 고급식이 아닌 우주 식량이긴 했으나 영양 구성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형제는 조용히 포장을 뜯어 식량을 베어 물었다.

  “설마 이곳이 목적지는 아니겠죠?”

  “쉬어가는 곳이야. 주유소라고 생각해라.”

  “아,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인가요?”

  “그런 목적도 있긴 하지. 물론 기함의 엔진 자체만으로 무한정 반영구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지만, 엔진을 단기간에 더 강력한 하이퍼 모드로 예열하려면 이 별의 도움이 좀 필요하지. 더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지만.”

  그러나 그 중요한 목적이란 것에 대한 자세한 추가설명은 없었다.

  아마 윤혁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공학적 문제이리라.

  참고로 이 항성은 항성혼(恒星魂)을 부분적으로나마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수 개조체였다. 항성 컴퓨터를 활용하는 ‘태양의 영감’에서 수십 단계 이상 나아간 테크놀로지, ‘화염의 지혜’의 결실이었다. 항성 구조를 개조하여 인간의 뇌를 방불하는 복잡한 사고를 가동하도록 만든 후, 항성이 획득한 인공지능을 항성혼과 강제 공명시켜 힘을 끌어올리는 원리였다.

  신기술 ‘화염의 지혜’를 접목한 개조 항성, 그리고 기함 젠타르콘-Ⅶ, 이 두 거체를 연결하여 서로의 기능을 공명하는 것이 이번 정박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기능 공명을 위한 도킹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 이번 항해의 최종 목표물인 ‘은하 바깥’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여기서 3시간 정도 정박한 뒤, 다음 장소에서 2시간 정도 보낼 거다.”

  간략한 브리핑을 마친 카이젤은 윤혁에게 자유로운 여가 활동을 허락해주었다. 당장 윤혁이 해야 할 일은 없는 듯했다. 다행히 드넓은 기함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편의 시설들이 있었다. 스포츠, 레저, 휴식, 문화 활동, 헬스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활동이 가능했다.

  “아! 이건 네 거다. 미리 선물하도록 하지.”

  뭔가가 생각났는지 카이젤은 탁자 위에 금속 상자 하나를 올려놓았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정도의 크기였다. 처음에는 금속인 줄 알았으나 미묘하게 재질이 이질적이었다. 윤혁은 상자를 열어보려 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열리지 않도록 해두었다. 그래도 일단은 갖고 있어라.”

  힘쓰느라 얼굴이 빨개진 윤혁은 그 말을 듣고서야 손을 놓았다.

  “이번 여정만 끝나면 자동으로 내용물 확인이 허락될 거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내용물을 확인한 뒤에 받도록 하지.”

  상자에 다시 손이 닿자 기이한 느낌이 전해졌다. 뇌에 미묘한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명료하지는 않았다. 윤혁은 일단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상자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어지는 세 시간의 여유. 따로 할 일은 없었기에 윤혁은 의자에 앉은 채 등을 뒤로 기대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열기와 중력이 완벽히 차단된 덕분에 모든 장면이 그저 신기한 영화처럼만 느껴졌다.

  문득 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보라색의 작은 보조 항성들이 눈에 밟혔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항성 엔진이야.”

  카이젤이 그 천체들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었다. 일종의 양산형 항성 엔진으로 이른바 ‘바이올렛틀릿(Violetlet)’이라 불리는 32세대 인공 태양 제품이란다. 다크 솔라리스 같은 구세대 항성 엔진에서 몇 단계 이상 진보된 기술을 적용한 덕에 자연 상태의 항성을 소비하지 않고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단다.

  “인간의 능력이 우주에 비해 하찮다고 생각했겠지?”

  형은 창조주를 경외하는 동생 앞에서 아주 살짝 우쭐거림을 드러냈다.

  “맞는 말이긴 해.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쉽게 한계를 뛰어넘곤 하지.”

  카이젤은 창조의 경지를 어떻게든 따라잡고 싶어 안달이었다. 창조가 신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그 역시도 현 문명 수준에선 창조는커녕 한낱 흉내 내기도 벅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쉬지 않고 도약하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한편 윤혁은 웅장한 인공 태양들 앞에서 또다시 탄식이 나왔다.

  ‘기함도 그렇고 함대도 그렇지만, 죄다 크기가⋯⋯.’

  항성을 갈아 만든 요새와 엔진, 행성만 한 크기의 양산형 인공물,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실용화해서 접목한 건축물, 하나같이 거대한 물체들뿐이었다. 식민지까지 포함해서 인류 전체의 인구를 고려해도 저렇게까지 거대한 건축물들이 필요치는 않을 텐데. 왜 이리 과시욕이 강한 걸까?

  ‘원래 남자는 본능적으로 웅장하고 장엄한 것을 추구하기 마련일까?’

  형이 알아차리면 괘씸하게 여길 법한 생각들이 쏙쏙 튀어나왔다. 다행히 당사자는 동생의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잠잠히 독서하면서 홀로그램 아이디어 노트 위에 복잡한 공식과 도면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고독한 사색에 깊이 잠긴 모습이 대단히 지적으로 보였다.

 

 

 

 

 

 

*****

 

 

 

  ‘화염의 지혜’와 기함의 온전한 싱크로가 완료되자 함대는 다시 이륙했다. 엔진 기동 부위의 에너지 방출 형태가 확연히 달라졌다. 현재는 절약 모드를 사용 중이지만 본 임무에 돌입하면 엔진 하이퍼 모드를 가동할 예정이었다. 워프 반응과 함께 함대는 또다른 항성계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두 번째로 정박한 항구는 기계화된 행성이었다. 반지름은 지구의 두세 배 정도로 보였고 지구와 마찬가지로 ‘필라’들이 치솟아 있었는데, 그 탓에 영락없이 바이러스를 확대한 모양이었다. 케루빔의 바퀴는 없었지만, 통상 실드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결계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행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천 개 행성의 도시(The City of a Thousand Planet), 들어본 적은 있지?”

  “공상과학 만화 제목이죠.”

  “그래, 이곳도 편의상 별칭을 그렇게 부르지. 정확히는 1,049개지만.”

  하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행성 단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1,048개는 어디에 있죠?”

  동생의 질문에 카이젤은 대답 대신에 컴퓨터 화면에 어떤 조작을 가하였다. 그와 동시에 행성을 비춰주던 창문의 영상이 바뀌었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행성 위에 잔뜩 관측되었다. 머리카락. 단순히 형태만 보면 그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행성이라는 대머리 두상 위에 찰랑거리는 흰 머리카락이 솟아 나와 말미잘이나 히드라처럼 유유히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행성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투시 관측 모드 On.”

  목소리에 반응하여 모니터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 지표에서 솟아 나온 머리카락들의 뿌리가 보였다. 맨틀을 넘어 내핵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깊이, 뚜렷이 박혀 있는 모근들이 대단히 징그러워 보였다.

  “차원 관측 모드 On."

  이번에는 숨어있는 차원의 모습까지 영상 위에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뿜어져 나온 근원이 보였다. 그 근원체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흡사했는데 대단히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진 괴생명체를 연상시켰다.

  “홀로그래피 플레인 관측.”

  마지막으로 한마디 명령어가 전달되자 모니터에 놀라운 것이 나타났다. 행성 머리카락의 가장 깊은 뿌리가 닿는 곳에 어떤 구조물이 있었다. 동시에 차원 너머에 천여 개의 다른 행성들이 있는 것도 보였다. 각 행성의 머리카락에서 뿌리가 뻗어져 나와 그 통합된 구조물에 엮여 들었다. 흡사 뇌 같았다. 그것은 흉측하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으로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었다.

  “행성을 관통하는 신경 다발들이다. 행성을 침식하여 행성 에너지를 빼먹으며 기생하는 인공생명체지. 물론 일반적인 ‘탄소 생명체’와는 달라. 생명 활동에 대한 화학적 정의부터 판이하지.”

  샴쌍둥이의 융합된 뇌가 떠올랐다.

  “저 신경들, 인공생명체들이 행성들을 강제로 연결하는 건가요?”

  “핵심 연결 수단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야. 각 행성의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신경세포 대신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두었어. 그리고 그 공동들이 한꺼번에 공명을 일으킬 수 있도록 게이트를 설치했지.”

  “정신적 연결과 공간적 연결이 동시에 존재하는군요.”

  젠타르콘-Ⅶ이 이곳에 정박한 것은 관측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전통적으로 우주에서 많이 쓰이는 고급 양자 통신 네트워크와 상호 호환만 되었다면 굳이 이러한 번거로운 절차 없이 다운로드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행성 복합체의 신경 다발들의 수렴 위치가 문제였다. 그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물리적인 연결 없이는 데이터 이송이 어려웠다.

  “그나저나 홀로그래피 플레인이 뭐죠?”

  윤혁이 마침 그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이군. 홀로그래피 우주에 대해서는 들어봤나?”

  세 가지 부류의 세계관 축 확장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진에게서 배웠다. 시공간 차원 축 개수의 확장, 설정축 추가로 인한 확장, 홀로그래피 우주로의 확장. 두 번째 확장이 시뮬레이션 우주와 관련이 있었지. 하지만 세 번째 확장에 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사실 진과 만난 이후로 윤혁도 여러 과학 서적을 뒤져가며 조사해보긴 했지만, 홀로그래피 우주에 관한 연구 자료는 극히 적었다. 기껏 얻은 소득이라고는 지극히 기본적인 개념뿐이었다. 상위 우주에 속한 현상 및 법칙이 그림자로 투영되면 하위 우주에서의 현상으로 나타난다나 뭐라나. 뜬구름을 잡는 듯한 모호한 이론인데다가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그나마 자세히 알려진 부분이라면 과거 시대의 우주론인데.’

  사실 홀로그래피 차원이라는 개념도 이전 세기에 제시되었던 원시적 우주론에서 차용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그때의 이론과 지금의 이론은 궤도 이론적 무게도 다르지만, 어느 면에서 유사점은 있었다. 과거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맨 끝 어딘가에 ‘경계면’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경계면 내부에 정보들이 담겨 있는데 그 정보들이 경계면 내부에 투영되어 홀로그램 영상처럼 만들어진 것이 물질계의 모든 현실과 현상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었다. 대단히 망상 같은 기괴한 이론이었으니 블랙홀을 비롯한 여러 물리 실체들을 기반으로 근거를 확립한, 나름의 일리를 갖춘 학설이었다.

  ‘하지만……, 설마 그 궤변을 현실에서 발견해냈다고?’

  눈앞의 저 지적 거인이라면 능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잘 모르는 모양이군.”

  카이젤은 별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 태연히 굴었다.

  “뭐, 괜찮다. 괜히 상세하게 알려고 하면 다칠 거다.”

  “홀로그래피 차원이란 개념도 혹시 극비 정보에 속하나요?”

  “그런 건 아닌데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워서 말이지.”

  카이젤은 기초적인 내용만 짚은 후, 행성 복합체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저 1,049개 행성의 신경 다발들이 수렴하는 지점은 상위 홀로그래피 우주에 맞닿아 있다. 그곳은 일반적인 양자 통신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야. 따라서 데이터의 전송을 위해서는 별도의 접촉이 필요하지.”

  기함 젠타르콘은 천 개 행성들의 ‘뇌’와 접촉하기 위해 직접 생체 조직을 방출하여 행성 표면에 돌출된 신경 삭과 링크하였다. 곧 메인 컴퓨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양의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들어 왔다. 오늘날은 원자만 한 컴퓨터조차 과거 존재했던 모든 컴퓨터의 합을 능가하거늘, 준 행성 규모의 기함에 탑재된 최신 양자컴퓨터마저도 고초를 겪을 정도라니, 대체 얼마나 방대하고 복잡한 정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용도길래 저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할까?’

  그때 카이젤이 정신 팔린 동생을 툭툭 두드렸다.

  “어차피 시간이 조금 걸리는 작업이니 잠깐 좀 쉬어가지.”

  “네.”

  이번에도 잠자코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둘은 다과와 차를 나누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다운로드를 기다리는 동안 형이 우주 기지들과 광범위 개척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 종류의 난해한 오버 테크놀로지들의 개요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은하 곳곳의 지도를, 그리고 각 지역의 대표적인 시설물들을 아주 개략적으로 짚어주었다. 사실 수박 겉핥기식의 소개였다. 윤혁은 상식 지평을 넓힌다는 생각으로 집중해서 듣고 내용을 기억해두었다.

  이어서 카이젤은 현재 정박한 항성계의 구조물들도 알려주었다.

  “이곳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행성들도 여럿 있지.”

  인공 태양도 구경한 마당이라 딱히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이 항성계에만 총 3,505개의 인공 행성들이 항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물론 행성이라곤 해도 사람이 살 수는 없어. 산업용 생산 설비, 발전소, 연구소, 무기고, 실험체 구금 시설, 군용 시설 등으로 쓰이지.”

  참고로 그 인공 행성들은 중앙 항성 내부에서 생산되어 방출된단다. 그 과정에서 대량의 물질이 소모되는데, 그 결손은 암흑에너지를 물질로 변환하거나, 상위 차원에서 에너지를 빼 와서 물질로 바꾸거나, 물질 복제를 활용하는 식의 편법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행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니, 혁신적인 생산력이네요.”

  “그건 그래. 하지만 아직 분명한 한계가 있지.”

  아직까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제작하는 일은 무리라고 한다. 물론 외부에서 적절한 환경 자원을 지속적으로 주입 받아 유지되는 주거용 콜로니를 탑재할 수는 있겠지만, 외부 주입 없이 독립적으로 자체적인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지구 같은 시스템은 어림도 없단다.

  ‘하긴 지구는 피조물 중에서도 정말 완벽하게 균형 잡힌 걸작이니까.’

  윤혁은 창조 이야기를 떠올렸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는 지구 창조에 대해서는 긴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반면 우주 나머지 부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첫째 날의 물질-에너지 법칙, 둘째 날의 시공간 팽창, 그리고 넷째 날의 천체 창조가 전부였다. 그만큼 지구가 창조주의 특별한 걸작이라는 의미이리라.

  인류도 나름 부단히 노력한 끝에 천체를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데는 성과를 보였으나 지구 같은 완벽한 시스템을 본뜨는 것은 무리수였던 모양이다. 확실히 과거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지를 이루었다지만,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기존에 존재하던 재료를 가공하고 기존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수준. 창조주의 손바닥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문명이란 것도 결국 모방일 뿐이지.’

  고도로 발전한다고 해봐야 기껏 그런 모방 작업의 규모와 정밀도만 증가할 뿐이리라. 더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자연의 흉내를 낼 수 있는 지성조차도 사실은 창조자로부터 부여받은 선물이다. 물론 현 단계까지 온 것만 해도 경악할 만큼 놀라운 일이며 충분히 칭찬받을 업적이기는 하다만, 자신들의 성취에 취해 피조물의 위치를 망각하는 건 곤란하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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