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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5회 초인들의 세계 Ch 50. 이데아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3 | 회차평점 0 0

 

 

 

 

 

Chapter 50. 이데아

 

 

 

 

 

 

  코어 월드.

  은하계의 중심부 근방의 천체들을 포함하는 영역.

  코어 월드에는 중심 블랙홀과 그것 주위를 공전하는 여러 개의 부수 블랙홀들과 항성들이 공존한다. 여기서는 큰 중력의 영향으로 행성이나 위성이 항성계에 속하지 못한 채 중심 블랙홀 주위를 난잡하게 공전했다. 그 때문에 이곳에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곳을 관할하는 우주 요새 ‘칼라리스-α20,498,095’로 호출 명령이 왔다.

  {얼티밋 워리어, ‘비숍’을 소환한다.}

  {칼라리스에서 동면 중인 ‘비숍’을 해동.}

  {목표지점은 ‘사건의 지평선’ 너머 마이너스 50광년 지점.}

  {통상 관측 기술로는 탐지 불가.}

  {구체적 좌표 측정을 위해, 중력파 관측을 시행합니다.}

  즉각 요새에서 10km 크기의 특수함이 방출되었다. 자체적인 중력 보호 기능 및 타임필드 형성 기능을 갖춘 우주선으로 여러 무장이 화물칸에 탑재되어 있었다. 중심부에는 비숍을 탑재한 생체 캡슐이 있었고 함선 에너지가 직접 몸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원격 연결이 되어있다. 특수함은 코어 월드를 횡단하는 게이트에 탑승한 후, 목표지점을 향해 다섯 번 연속 워프를 감행하였다.

 

 

 

 

 

 

*****

 

 

 

  윤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연결이 끊겼네.’

  타임필드는 외부와의 통신 연결을 일부분 제한하는 모양이었다. 아예 통신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더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듯했다. 그 증거로 아까 전까지 미약하게나마 연결 상태를 유지하던 진과의 텔레파시 채널이 마비되었다. 지구를 떠나올 때부터 시작해서 블랙홀에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잘 가동되었건만. 처음으로 난항을 마주하게 되었다.

  윤혁은 며칠 전에 카이젤 몰래 진과 나눴던 대화를 회상했다.

  “태양계를 벗어나면 아버지께서 자신의 고유 텔레파시들을 발동시킬 겁니다. 무인 함대를 조종하려는 목적으로요.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눈치채기 쉬워지기에 저와 당신이 충분히 정보 교류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아예 아버지가 텔레파시의 이상 흐름을 감지하고 강제로 막을 수도 있습니다.”

  출발 직전에 진은 윤혁과 모종의 정보 교류를 약속했다. 그는 윤혁이 몰래 기회를 봐서 적절한 정보 창고에 들어가도록 보조해주기로 했다. 물론 카이젤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보증은 하지 못했다. 동시에 윤혁은 카이젤과의 모험 혹은 카이젤에게 들은 말을 통해 얻는 지식을 넌지시 텔레파시 채널 위에 노출하기로 약속했다. 그 정도면 진 수준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이때 진은 미리 몇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가급적 수신만 하고 송신을 시도하지는 말 것.

  둘째, 머릿속에 집어넣는 정보의 양을 적정 수준 이하로 제어할 것.

  “명료한 의사소통까지는 어렵습니다. 약간의 암시를 뇌 속에 흘리는 정도만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송신하지 마시고 그냥 넌지시 의식 위에 정보들을 띄우시죠. 저도 당신이 새로운 것을 공부할 때마다 적절히 조력하겠습니다. 좋은 타이밍이 오면 제 부하들을 시켜 도움을 주겠습니다.”

  그래서 여행 출발 이후로 윤혁은 형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미약한 텔레파시 신호를 틈날 때마다 찔끔찔끔 수신했다. 다행히 은하계의 시설물들은 텔레파시를 직접 차단하지는 않았고 카이젤도 직접적으로 텔레파시 채널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주기적으로 짧게 신호를 수신하다 보면 ‘디폴트 상태’가 희미하게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교류에는 충분했다.

  “제가 흘려주는 걸 무리해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진은 엄연히 최상위 SSS 클래스의 초인, 따라서 그는 그 자신이 지닌 지식 자체도 방대했지만, 뇌와 융화된 초지능체와 양자 두뇌를 제어하는 데도 능숙했다. 양자 두뇌만 해도 현 기준 최신식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수준이니 진 자신의 연산력과 사고력도 다수의 슈퍼컴퓨터를 가뿐히 능가했다.

  이런 마당에 진과 윤혁의 두뇌가 제대로 호흡 맞추기란 불가능했다. 평범한 두뇌는 초인의 강대한 정신과 단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용량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진은 전송 정보량을 최대한 낮춰 꼭 필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교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윤혁은 지식을 능동적으로 획득하는 데 있어 텔레파시 전략의 덕을 보았다. 인류연합이 세운 우주 시설들에 대해 형에게 배울 때 그의 뇌에서는 학습 반응이 일어났고 이는 디폴트 상태의 텔레파시 채널과 연계되었다. 그러면 채널은 진이 은밀히 보내는 신호 중에서 현장 학습 과정과 관련이 있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채택했다. 이 정보는 윤혁의 공부를 돕는 보조 과외 선생 노릇을 했다.

  결과적으로 윤혁은 우주 시설들의 작동 원리 및 주의해야 할 점 등 필수적인 개괄 정보들만 효과적으로 머리에 담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는 귀한 지식이었기에 최대한 담고는 싶었으나 여전히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중요한 것들만을 골라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은 진의 타협안이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타임필드가 가동되면서부터 편했던 상황이 반전되었다. 정보 이동이 서서히 차단되더니 끝내 텔레파시 신호가 완전히 끊겨버렸다. 아쉽지만 다음 단계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진에게는 썩 도움이 못 됐겠네.’

  그래도 이쪽은 꽤 짭짤한 수익을 챙겨서 다행이었다.

  한편, 카이젤은 동생을 대기실에 데려다 놓고 자신은 기함 중앙부의 방으로 향했다. 특별히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완전한 백색 면들로 둘러싸인 그 넓은 방은 깨끗하고 한적했다. 쉴 수 있는 의자와 침대가 있었지만, 바깥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정보 시설은 없었다. 심지어 함선 시스템이 보내는 홀로그램 화면이나 메시지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한 방 한가운데에서 윤혁은 눈과 귀를 닫힌 채 고립되었다.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보고 싶네.”

  아마 지나치게 먼 타지까지 나와서 그런 것이리라.

  평생 집을 떠난다고 해봐야 바다 건너 외국 정도 다녀온 게 전부였거늘. 우주 개발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겼었다. 그랬건만 오늘은 태양계와 은하계를 횡단하더니 이제는 은하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블랙홀 통로에 도달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여행이 단 하루 만에 벌어졌다. 과연 집에는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흰색 공간에서는 모든 디지털 장비가 작동 불능이 되는 듯했다. 단순히 통신만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자체를 빼앗긴 것처럼 지구에서 만들어진 장비는 모두 먹통이었다. 제 기능을 다 하는 것은 카이젤이 준 슈트뿐이었다.

  ‘지루하다.’

  항성이나 천 개 행성의 도시나 블랙홀 근방에 있었을 때는 여유 시간 동안 텔레파시라도 전송받을 수 있었건만 이제는 그마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시간 때울 궁리를 하던 참에 상자가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아직 봉인 상태로 남아 있을까?

  ‘타임필드에 동기화될 때도 상자가 빛을 발했었지.’

  윤혁은 호기심에 상자를 꺼냈다. 처음 받았을 때와는 조금 색이 달라졌다. 자주색과 선홍색 중간의 모호한 색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영롱하지만 독기를 품은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상자 위에 가져다 댔다. 아무 반응이 없이 차가운 촉감만 전달됐다. 대체 무엇이 담겨 있을까? 호기심이 커지면서 상상의 나래가 다양한 방향으로 펼쳐졌다.

  바로 그때 별안간.

  {제4 철인왕의 우라노폴리스 통치 대행권 코드를 인식하였습니다.}

  메시지가 뇌리로 직접 스며들었다.

  ‘응?’

  미처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흰 방이 사라지고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윤혁을 에워쌌다. 오감은 전과 동일하게 느껴졌다. 의식도 분명하고 정신도 선명했다. 그러나 현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기묘한 이질감이 전달되었다.

  ‘전에도 한번 비슷한 느낌을 겪었는데?’

  기억을 되살려내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우주?!”

  진과 함께 S-unvs들에 진입할 때 받은 것과 동일한 감각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왜 이렇게?”

  의아해하는 중, 특이하게 생긴 생명체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아빠가 아니군요.}

  생명체의 머리에서는 토끼 귀 같은 것이 튀어나와 부드러운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생명체의 눈은 세 개였으며 몸통에는 작고 투명한 천사 날개가 수십 개 이상 붙어 있었다. 생명체는 그 날개들을 꿀벌이 날갯짓하듯 빠르게 진동시키고 있었다.

  “누구세요?”

  {MS-00001. ‘다크넷’ 프로토타입의 아바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갸우뚱거리는 윤혁에게 녀석이 한숨을 쉬었다.

  {왜 당신이 여기에 계시죠? 저는 아빠하고만 통신하도록 제작되었는데.}

  “아빠라니? 누굴 말하는 거죠?”

  {들어올 때 인증받은 코드가 있었던 거 아닌가요?}

  처음에 메시지가 제4 철인왕의 코드를 인식했다고 말했던가?

  윤혁이 아는 사람 중에서는 그런 칭호를 쓰는 자는 한 명뿐이었다.

  “진?”

  {저한테 먼저 해명해주시죠. 왜 아빠의 코드를 빌린 거죠?}

  “전 그런 적 없었는데? 아! 설마 텔레파시 채널을 통해서 전달된 건가?”

  {텔레파시 채널?}

  “당신이 아빠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그걸 저한테 넘겼거든요.”

  그제야 대충 상황을 파악한 MS-00001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은 윤혁으로부터 주어진 정보들과 현재 상황을 종합해서 분석하더니 나름대로의 결론을 추론해냈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추정이지 실제로 가능한 시나리오인지는 윤혁으로서도 MS-00001로서도 증명할 길 없었다.

  {아마도 당신이 아빠와의 간접 교류를 위해 활용했다던 그 텔레파시 채널을 통해서 아빠가 자신의 ‘통치 대행권 코드’의 카피본을 넘겨준 것 같네요. 그 카피본 덕분에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 같네요.}

  생명체, 아니 MS-00001의 아바타는 부연 설명을 이어나갔다.

  통치 대행권 코드란 것은 하늘도시 내부의 ‘주민 사회’에 초인들이 간섭할 때 사용되는 코드라고 한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훈련을 거쳐 초인으로 각성한 이들은 자유권과 시민권에 더해 특권을 받는다고 했다. 유인 식민지들을 부분적인 범위에서 다스리거나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을 최종 통솔권자인 ‘지구의 왕’에게서 일시적으로 대여받는단다.

  ‘그들도 하늘도시 출신이라 하지 않았던가?’

  초인으로 각성하여 힘과 권력을 얻은 주민이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다른 식민지들에 간섭함으로써 주민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다니. 영락없이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잊어버리는 격이었다.

  ‘자신들도 똑같은 인간인 주제에 신적 존재인 양 행세한 건가?’

  참고로 MS-00001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통치 대행권 코드’ 활용 정책은 의외로 여러 세계에 흩어진 방대한 수의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윤혁은 MS-00001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일단은 감정을 감추고 신중을 기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운이 좋아서 잘 맞아떨어졌군요.}

  “운이 좋았다고요?”

  원래 윤혁이 갇혀 있던 흰색 방에는 통신 차단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일개 네트워크의 일종인 MS로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할 도리가 없었다. 아울러 타임필드의 통신 방해 효과까지 중첩되는 바람에 가뜩이나 난해했던 접근이 더욱더 첩첩산중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때마침 운 좋게도 기함이 은하 중심 블랙홀에 당도한 것이 작은 반전 요인이 되었다. MS는 원래 ‘암흑에너지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네트워크’인 다크넷의 최초 모델이었다. 기함 젠타르콘이 은하 중심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간 순간, 지평선 너머에서 순환하던 대량의 암흑에너지가 다크넷 네트워크와 더불어서 모종의 복잡한 공명을 일으켰다고 한다. 덕분에 불완전하나마 잠깐 통신 방해 효과가 깨트리고 MS가 접촉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진이 기회를 봐서 보내주겠다던 조력이 바로 이 녀석이었나?’

  윤혁은 알 듯 말 듯 난해한 설명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리송하네요.”

  {하아! 일반인이라 역시 이해력이 뒤떨어지는 모양이군요.}

  은근슬쩍 머리 나쁘다고 무시하는 MS.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시대구나. 말세로구나.’

  얄미운 마음에 윤혁은 존댓말을 당장 관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했다고 하지 않았나?”

  다크넷과 블랙홀과 암흑에너지만이 전부이진 않은 듯했다.

  {맞아요. 당신이 들고 온 그 매개체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된 것 같군요.}

  “매개체?”

  ‘혹시 상자를 말하는 것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역시 내용물이 특별한 모양이었다.

  “넌 이 물건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 거야?”

  {아니요.}

  MS는 탁월한 분석력을 지닌 자신조차도 그 상자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상자 껍질조차도 간파하지 못했으니 그 내용물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MS에게는 인간이 읽기 어려운 물리적 변동을 바탕으로 정황을 판단하는 추리력이 있었다. 그것의 추론 알고리즘에 따르면 블랙홀의 암흑에너지, MS의 암흑에너지 네트워크, 통치 대행권 코드, 그리고 상자 속 매개체가 한꺼번에 모종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킨 듯했다.

  MS는 계속해서 자신이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 간파한 물리적 원리들과 가설들을 윤혁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서인지 좀처럼 이해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지식 범주를 넘어서는 심오한 내용이었다. 윤혁은 자신의 한계이려니 하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포기했다.

  정작 설명에 취한 MS가 혼자 떠들어대는 내용보다 윤혁이 더 궁금해하는 점은 따로 있었다. 진은 지금의 상황을 의도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들이 겹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MS는 진이 파견한 도움이 맞을까? 아니면 그저 사고의 결과물일까? 이 상황은 호재일까 아니면 위험일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 상황을 활용해야 할 텐데.’

  어찌해야 지혜롭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갑갑했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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