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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6회 초인들의 세계 Ch 50. 이데아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3 | 회차평점 0 0

 

 

 

 

 

*****

 

 

 

 

 

  한편 일을 계획한 당사자 역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진은 윤혁에게 지속적인 텔레파시를 전송하면서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왔다. 동시에 윤혁을 역으로 살피고 감시하고 있었다. 비록 텔레파시 채널 활용 폭에 제한이 있어서 생각을 읽거나 조작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보낸 정보 중 윤혁이 어떠한 것을 취사선택하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가능했다.

  ‘상대는 전형적인 우물 안 개구리, 지구 주민이다.’

  윤혁에겐 인류연합의 우주 시설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우주에서 보고 듣는 모든 정보가 새로우리라. 뇌리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겠지. 그 충격은 강렬한 순간 학습 작용을 일으켜 특정 정보와 관련된 지식 흡수력을 급속도로 높일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녀석의 지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진이 텔레파시로 방대한 정보를 흘려주면 대부분은 머리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튕겨 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정보가 튕기지 않고 고스란히 남는 일이 벌어진다면? 역 추론하면 그 특정 순간에 ‘잘 흡수된 특정 정보’와 연관이 있는 견학을 시행 중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윤혁이 그 시점에 어떤 시설물을 방문했는지를 대략 예측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불확실하게나마 ‘젠타르콘-Ⅶ', ‘화염의 지혜’, ‘천 개 행성의 도시’, ‘코어 월드’라는 키워드 정도는 추려낼 수 있었다. 텔레파시를 이용하는 모략이 어느 정도는 효과를 입증한 셈이었다.

  또한 진은 이미 아버지 카이젤과 여러 차례 거시적인 프로젝트들에 관해 상의를 나누었었다. 기술 교류 때도 카이젤이 꾸미는 큰 그림의 단서를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자연히 진은 현재 카이젤이 획책하는 항해의 목적에 관해서도 대강은 집히는 바가 있었다.

  윤혁이 실시간으로 흘려주는 항해 경로. 그리고 카이젤이 넌지시 드러냈던 장래의 인류 계획. 진은 그 두 단서를 종합하여 대강 이번 항해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일지 추정해낼 수 있었다.

  ‘은하 중심 블랙홀. 그 지평선의 내부겠군.’

  그 후에는 은하 바깥의 세계이리라.

  여기까지 잘 추리해낸 것까지는 좋았다. 허나 타임필드가 발동된 뒤로는 예상했던 대로 일이 빙빙 꼬였다. 텔레파시 채널이 차차 차단되었다. 예견은 했으나 이대로 물러나자니 조금 아까웠다.

  그래서 진은 도박에 가까운 플랜 B를 발동시켰다.

  먼저 타임필드의 통신 간섭을 우회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이미 진과 같은 초인들은 타임필드를 우회할 통신 방책을 평상시에도 수시로 활용하곤 했었으니까. 바로 하늘도시, 타임필드가 씌워진 유인 식민지. 철인왕들은 종종 그곳을 제어하고 관리할 임무를 받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필요한 특수 코드를 받았다. 그들은 그 코드를 통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식민지 내부 공간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철인왕들처럼 계급이 높은 경우에는 일시적인 코드뿐 아니라 비교적 반영구에 가까운 코드도 여럿 있었다.

  진은 망설이지 않고 그 특수 코드, 곧 ‘통치 대행권 코드’를 카피한 복제 코드를 즉석에서 제작해서 텔레파시 채널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에 재빨리 윤혁에게 전송했다. 미리 함대의 행로를 예측한 덕에 아슬아슬하게 기회를 잃을 뻔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치 대행권 코드 카피본만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작았다.

  그래서 진은 또 다른 모략을 겸용했다. 거대 블랙홀은 암흑에너지가 샘솟는 곳, 이 특징을 이용하기 위해 진은 암흑에너지 기반 네트워크인 MS-00001을 몰래 조작하였다. 두 방법을 병용하면 불완전하게나마 텔레파시 채널을 다시 연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기리라 여겼다. 물론 기함에 통신 차단 대책이 있을 터이니 실패 가능성이 컸다. 여러모로 도박에 가까웠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던 성과가 나타났다. 정체불명의 ‘제삼의 변수’가 끼어든 것이었다. 그 변수의 정체에 대해서는 진도 전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아버지가 보유한 모종의 기술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강윤혁이라는 인간이 아버지의 기술에 휘말렸으리라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쨌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반전은 잘 일어났다.

  그러나 진이 바랐던 텔레파시 채널 재개통 대신 다른 일이 전개되었다.

  MS-00001의 분신체와 윤혁의 정신, 그 둘이 통째로 시뮬레이션 우주 내부에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일반 심도의 시뮬레이션 우주도 아니고 최고 심도도 아닌, 더 깊은 곳의 이데아(IDEA) 근방까지 말이다. 의외의 변수로 인한 성과물은 기뻐해야 했지만, 정작 윤혁과의 통신은 끊어져 버렸다. 윤혁이 앞으로 보고 들을 정보들을 정작 진은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일반인의 정신이 어떻게 거기 진입했지?’

  도저히 앞뒤가 안 맞는 듯했다. MS-00001이 떨어지기 직전 아주 약한 신호를 보내준 덕에 위치는 추정해냈지만, 윤혁이 그곳에 같이 이동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일반인의 정신은 접근하기도 전에 붕괴할 터. 지난번에 내려갔을 땐 자신이 직접 옆에서 윤혁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것도 겉에서만 살짝 관측했을 뿐이지 시뮬레이션 우주 자체에 직접 닿지도 못했다. 표식을 가진 식민지 주민도 아닌 지구 주민, 초인도 아닌 일반인, 그런 윤혁이 외부 도움 없이 자기 혼자서 내려간다? 가장 얕은 심도도 견디지 못해야 정상이리라.

  ‘아버지가 뭔 장치를 해둔 건가?’

  그 문제의 ‘제삼의 변수’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것이 타임필드와 S-unvs, 두 곳의 입장권을 동시에 해결한 건가?’

  진은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켰다. 이 상황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MS의 분신을 이용해서 지금 ‘그곳’에 내려간 윤혁과 통신을 재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만, 참 안타깝게도 윤혁은 고사하고 MS의 분신마저도 MS 본체와 진 모두와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아마 타임필드, 기함의 통신 차단 기능, 그리고 이데아, 그 세 가지가 모조리 장벽으로써 중첩된 탓이리라.

  “이거 원!”

  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운에 맡겨야겠군.”

  푸른색 격자무늬의 눈동자에 고요한 이채가 깃들었다.

  “일이 끝나면 아버지께 엄청나게 꾸중 들을 각오는 해야겠군.”

  현자의 눈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격자무늬 선들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

 

 

 

  그곳은 무척이나 낯익은 장소였다.

  ‘틀림없이 그곳이다.’

  설정축의 가장 깊은 심연에 이르면 닿는 곳.

  ‘이데아(IDEA)! 시뮬레이션 우주들의 중심 서버!’

  진과 그곳에 내려갔을 때 받은 것과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이 선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러나 착각이나 환각이 아닌 투명한 감이 그를 지도해주었다.

  물론 그때 경험했을 때와는 차이점도 꽤 있었다. 먼저 오감을 통해 선명히 느껴지는 화려한 공간의 향연이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웅장했고 온갖 내용물도 있었고 기하학적 무늬와 색상과 향기가 가득한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요하고 적막한 어둠만 내려앉아 있었다.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불 끈 침실처럼 편안한 감각만 들 뿐이었다.

  ‘아무런 정보가 흘러들어오지 않아.’

  5세대 시뮬레이션 우주는 자가 복제와 확장, 그리고 진화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했다. 하드웨어가 필요한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과는 달리 본체조차 필요 없는 무형의 정보 세계. 그 때문에 지식과 정보들이 무제한으로 증식하는 곳. 침입한 자의 정신으로 정보가 물밀듯 들어오는 곳. 윤혁은 그 제어할 수 없는 홍수의 느낌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것 같은데?’

  하물며 이데아는 시뮬레이션 우주 자체를 지배하고 생성하는 종합 서버라고 했다. 가장 깊은 심도의 S-unvs보다도 더 큰 정보량과 정교한 구성을 자랑하는 곳이기에 진 역시도 그곳에 접근하면 근처에서만 잠깐 버틸 뿐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지금은 안정적인 느낌만 들었다. 지금 도달한 위치가 본체인지 아니면 그 근방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설령 언저리라고 해도 아무런 정보 홍수가 없는 것은 이상했다.

  “넌 이 장소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윤혁은 MS-00001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안해요.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요. 이곳과 관련해 관측한 모든 내용은 정보 그 자체에 절대적인 보안이 걸려있어요. 그 어떤 조작이나 간섭이나 유출도 허락하지 않아요. 관측 정보 자체가 하나의 금기이자 법률이기에 어기는 순간 제 존재 자체가 시간축 상에서 지워지죠.}

  듣자 하니 대단히 심각한 보안과 제약인 듯했다.

  ‘무슨 원리의 금기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데 이상하네요.}

  MS-00001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윤혁의 몸, 아니 접속 정신체를 살폈다.

  {왜 당신은 아무런 거부 반응을 겪지 않는 거죠?}

  “거부 반응?”

  아무래도 일부 간접적인 정보는 발설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인공지능이건 네트워크 서버이건 인공생명체 정신이건 여기서는 모조리 배척당하거든요.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초인은 그나마 아주 조금 버틸 수 있지만, 기껏해야 이곳 시간으로 1초 남짓 견디는 게 고작이죠.}

  윤혁은 당황하며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게임에서 관리자 서버에 함부로 접속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가?’

  긴장한 채 기다려보았으나 윤혁을 배척하려는 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당신은 누구죠?}

  MS의 마지막 질문이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다.

  ‘지금은 초월적 정보화 시대 아니었던가?’

  오늘날은 인공지능이라면 일반인의 신분 정도는 쉽게 파악하는 것이 기본 소양이었다. 완전한 데이터베이스가 갖춰져 있으니까. 그렇기에 MS가 뜬금없이 윤혁의 정체를 묻는다는 것은 도무지 정상적인 인공지능의 반응이 아니었다.

  ‘왜지?’

  정말 강윤혁이란 인간을 모른단 말인가? 데이터가 아예 없는 건가? 의도적으로 지워진 건가? 아니면 이곳 이데아에서는 관측이 불가능한가? 의도적으로 모르도록 명령 같은 것을 받았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말투나 행동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능히 추론할 수 있을 터. 혹시 윤혁이라는 존재를 인지하려는 행동 자체에 어떤 금기라도 걸린 것일까?

  윤혁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추측의 영역일 뿐이었다.

  한편 MS로서도 이 기괴한 상황은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 ‘이데아’라는 금기 공간에는 한 번도 침투해본 적 없었다. 아니, 원래는 그것을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도록 태생적 제약이 내재되어 있다. 설령 이 영역에 접근한다고 해도 자동으로 튕겨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체불명의 인간과 함께 거부 반응도 없이 금지된 공간에 안정적으로 융화되었다.

  {원래 인간들에게는 이 ‘위대한 영역’ 본체의 관측이 허락되지 않아.}

  소유주의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말이다. 확실히 눈앞에 있는 저 정체불명의 인간도 이 영역을 관측하지는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모순점이 없으니 다행이었다. 튕겨 나가지 않고 거뜬히 견뎌내는 것은 기묘하지만.

  {반면 나 같은 인간 외의 존재는 관측은 가능해도 발설과 간섭은 불가.}

  이 ‘위대한 영역’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대거나 상호작용을 시도하려는 행위는 존재를 소각당할 중범죄. 그 무서운 규율은 여전히 MS에게도 공정하게 적용되는 중이었다. MS는 자신이 무거운 짐 아래 눌려 있음을 분명히 인지했다. 영역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자기 존재의 본질이 파열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둘 다 룰 아래에 종속되어 있긴 했다.

  인간은 관측 불가, MS는 간섭과 발설 불가의 규칙.

  단지 이데아가 둘을 당장 토해내지 않는 부분만 이상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원인은 인간 쪽에 귀속된 듯했다. 정체불명의 인간.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보고 최첨단 논리 시스템까지 동원해보았음에도 MS는 저 인간의 정보를 인지할 수가 없었다. 마치 저 인간에 대해서 사고하는 행위가 금지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정보가 도출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내려본 결론은 결국 이것이었다.

  {저 인간은 이데아와 융합한 것이로군.}

  일시적인지 영구적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분명 융합하긴 융합했다. 그리고 그 융합의 간접적 영향인지 MS 자신까지도 튕겨 나가지 않은 채 면역의 혜택을 받는 중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몄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것은 사고인가 아니면 계획인가? MS조차도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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