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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37회 초인들의 세계 Ch 50. 이데아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그때 공간이 진동하면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MS, 정확히는 MS의 분신은 자기 데이터가 흐트러지며 차차 깨어지는 것을 간파했다. 윤혁도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도 조금씩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융합이 완전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대답 대신에 MS는 위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던 공간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윤혁은 빛이 샘 솟는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빛을 발하는 샘물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그 형태는 영락없이 블랙홀이었는데 색상과 밝기는 정반대로 흰색이었다.

  {이런. 저는 이제 곧 붕괴하겠군요.}

  “뭐라고?”

  {어차피 분신에 불과해서 상관은 없지만⋯⋯.}

  MS의 분신은 치직 거리며 옅게 흐드러지기 시작했다.

  {본체에 정보를 가져다주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군요.}

  “하지만 이곳 이데아의 정보는 유출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직접적인 정보에 관해서는 그렇죠. 하지만 여기서 겪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암시할 수는 있거든요. 만일 그랬다면 아빠도 좋아했겠죠. 하지만 어차피 저는 이대로 여기서 붕괴할 운명이니 본체와의 연결은 물 건너갔죠.}

  토끼 귀인지 지느러미인지 모를 신체 일부를 흔들며, MS의 분신은 고민했다.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동상과 유사한 포즈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사람을 닮아 있었다. 은연중에 불쾌한 골짜기(사람이 아닌 물체가 사람을 닮아갈 때, 애매하게 닮으면 그 모습에서 심리적인 혐오감이 느껴지는 현상)가 느껴졌다. 그때 MS의 분신이 손가락을 탁 튕기며 표정을 밝혔다.

  {아하! 당신을 이용해야겠어요.}

  그 말에 윤혁이 화들짝 놀랐다.

  “나를 이용한다고? 무슨 수로?”

  {당신은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잖아요.}

  ‘그게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지?’

  상대의 발상력과 정신세계에 당혹스러웠다.

  “뭐, 그렇긴 한데……, 지금 나한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걸.”

  진과 함께 이데아의 표면에 당도했을 때 여러 장면이 보였던 이유는 아마 진이 카이젤에게 부분적이나마 이데아 관측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는 윤혁도 진과 정신 공명을 하고 있었던지라 불투명하게나마 이데아의 정보 일부를 흘깃 엿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지극히 작은 부분 한정으로.

  하지만 지금은 혼자의 몸인지라 관측 행위가 일체 불가능했다. MS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의 정보를 진에게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아쉽게도 윤혁은 그 일에 도움이 못 될 듯했다.

  {이데아를 관측하는 건 불가능해도.}

  MS의 분신이 다시 한번 고민 끝에 차선책을 내밀었다.

  {거기서 파생된 하위 시뮬레이션 우주들은 관측할 수 있겠죠? 지금 당신은 일시적으로나마 이데아와 융합된 상태. 융합이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는 다른 시뮬레이션 우주 내에도 거부 반응 없이 머무를 수 있어요. 비유컨대 일종의 시간 한정 프리패스인 셈이죠.}

  시간이 부족한 고로 MS의 분신은 재빠르게 설명했다.

  지금 거부 반응이 없는 건 윤혁과 이데아의 불완전한 융합 덕분이다. 그 융합이 약해지면 간접적으로 윤혁에게 보호받던 MS의 분신이 먼저 소멸하고, 다음에는 윤혁이 이데아 밖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그 전에 윤혁은 이데아라는 고지대를 디딤돌로 삼아 시뮬레이션 우주들을 감찰할 수 있다.

  {대충 알아들으셨죠?}

  윤혁이 완전히 튕겨 나가기 전 MS의 분신은 자신의 마지막 힘을 짜내어 윤혁에게 특수한 지도 데이터를 넘겨주었다. 지도에는 시뮬레이션 우주에 대한 개략적인 항법 자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진이 남긴 자료인가?”

  {네. 하지만 아빠도 시뮬레이션 우주 전역을 샅샅이 알지는 못해요.}

  이 항법 지도는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의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위대한 영역의 제작자께서만 모든 지리를 파악하고 있죠.}

  ‘그 사람이 내 형이라는 사실은 함구하는 편이 낫겠네.’

  MS가 지금 윤혁 자신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리 겉핥기라지만, 그래도 제법 쓸 만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요. 당신 같은 일반인 두뇌로는 항법 자료의 극히 일부분도 받아드리지 못하겠지만, 그 부분까지는 제가 어찌해드릴 수 없으니 운에 맡기시죠.}

  다시 한번 인공지능의 노골적인 조롱을 받은 윤혁.

  ‘하하, 내가 참아야지 원.’

  참을 인(忍)을 이마 위에 꾹꾹 새겼다.

  “아니, 대체 진의 항법 자료가 얼마나 방대한데?”

  자료가 너무 큰 경우에는 도움은커녕 도리어 큰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당신 두뇌 용량의 ‘101,000,000’ 배 정도?}

  기겁이 나올만한 터무니없는 숫자가 언급되자 윤혁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역설적으로 침착해져버렸다. 조금 전 MS의 분신이 내뱉은 반인권적 조롱을 그냥 겸손하게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거대한 자료면 내겐 별 도움이 안 되지 않을까?”

  {그나마 아빠 소유 자료의 극히 일부의 파편만 뗀 게 그 정도예요.}

  “허어, 이거 원. 뭐가 중요한 정보인지 파악해야 망정이지.”

  바로 그 순간 번개처럼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맞다. 텔레파시 채널!’

  텔레파시로 전달되는 거대한 정보 홍수를 외부 현상 관찰을 통한 실제적인 학습을 할 때 두뇌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공조시켜 필요한 요점 정보만을 텔레파시 홍수로부터 취사선택하는 전략. 그 방법이라면 윤혁 자신이 간절히 필요로 하거나 깨닫길 원하는 부분들에 관해서만 간략히 정보를 얻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어요.}

  윤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MS가 말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빨리해 보자고요.}

  ‘인공지능 주제에 인간 속담도 잘 사용하는구나.’

  MS의 재촉을 못 이긴 윤혁은 황급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내 MS의 분신은 자신의 배를 가르더니 (그것은 그런 그로테스크한 방법을 정말 눈앞에서 당당히 시현해보였다) 거대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는 눈을 찡그리는 윤혁에게 그것을 덥석 건네주었다. 고맙다며 손으로 받으려던 차, MS가 손이 아닌 입안에다가 강제로 두루마리를 쑤셔 박아 넣았다. 순간적인 구역감이 들었으나 이내 자연스럽게 몸속으로 흡수되는 감각이 전달되었다.

  “우욱! 좀 정상적인 방법으로 전해줄 수는 없는 거냐.”

  실제 몸이 아닌 일종의 정신 실체화 몸체인지라 구역감은 곧 사라졌지만 불쾌한 건 매한가지였다. 윤혁은 불편감을 가까스로 갈무리하며 투덜거렸다. 방법도 하필이면 성경 속 대언자가 겪은 방식의 모방인지라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차피 정신체만 빙의된 거잖아요. 이 방법이 제일 확실하다고요.}

  붕괴 직전 MS의 분신은 윤혁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무엇을 보게 되건 꼭 아빠와 그 정보에 대해 상의하세요.}

  순순히 따를 생각은 없지만, 일단은 그러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끄덕였다. 상대의 정체성 자체가 워낙 애매한지라 딱히 양심에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인간이 아닌 인조물에게까지 정직하게 대해줄 의무는 없겠지?’

  이내 공간 균열이 가속되더니 검은 방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MS의 분신은 그 여파로 가루가 되어 장렬히 산화한 뒤 홀연히 증발하였다. 반면 윤혁은 아직 이데아와의 융합 상태가 완전히 해제되지 않았기에 찰나 동안이나마 스스로의 행로를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차분하게, 진지하게 임하자.’

  그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자신이 간절하게 알길 원하는 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강한 염원을 담은 의지적 정신 활동은 뇌과학적으로는 실제적 현장 학습과 기전상의 차이가 없는 법. 윤혁은 이 점을 활용해 도박을 수행했다. 이내 시야가 하얘지더니 방대한 정보가 뇌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데아와의 융합으로 인한 일시적 정신력 강화 덕분에 정신은 붕괴하지 않았지만, 정보 대부분이 작은 뇌 용량 때문에 허무하게 튕겨져 나갔다.

  “크윽!”

  극소량의 취사선택된 정보만이 윤혁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지식욕과 공명을 일으킴으로써 가까스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그 영향으로 복잡다단한 항법 정보가 윤혁의 머릿속에 생성되고 정리되었다.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차피 그에겐 크게 상관없었다. 융합으로 공유받은 이데아의 고유 속성에 힘입어 항법 자료 속의 공식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 해석되었다.

  이내 뇌리에 생성된 항법 지도는 윤혁의 정신체를 자체적으로 운반했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지식이 존재하는 방향으로 그의 존재를 이동시켰다. 그는 마법의 무지개다리를 타고 차원을 넘어 워프를 하듯 초고속으로 비상하여 영역을 가르며 질주하였다.

  “커헉!”

  동시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윤혁의 정신체가 마치 분신술을 쓰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개의 정신체로 복제되기 시작했다. 이는 S-unvs에서만 한정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으로 학술적으로는 ‘멀티태스킹’이라 정의되는 현상이었다. 말 그대로 한 가지를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사고하는 상태로 시뮬레이션 우주에서는 이 멀티태스킹을 통해 한 인간이 여러 개의 정신체 분신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원래는 그 막중한 무게 때문에 초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지만 지금은 이데아와 융합된 상태인지라 예외적으로 윤혁에게도 적용이 허락되었다.

  ‘느낌이 기묘하다.’

  윤혁의 정신체 분신들은 각기 흩어져 수많은 갈래의 조류(潮流)를 구성한 뒤 여러 개의 다른 세계들로 흘러들었다. 바깥의 현실 우주와는 시간도 공간도 법칙도 별개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역이 궤도 전체에 깔려 있었다. 질주하는 윤혁들의 시야로 그러한 영역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이후 분신들은 제각기 다른 공간에 안착했다. 마침 그곳에는 여러 인격체가 다양한 존재 양식으로 실존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들의 정신체들이었다. 어찌하여 그 사실이 저절로 깨달아졌는지는 이해되지 않았으나 분명한 진실이었다.

  ‘놓치면 안돼.’

  윤혁의 정신체 분신들은 일제히 사람들의 정신체를 붙잡았다. 서로 뒤엉킨 윤혁의 분신과 사람의 인격체는 마치 항원과 항체가 복합체를 이루듯 유착되어 버렸다.생성된 무수한 복합체들은 청소기로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여러 다른 방향으로 정처 없이 흘러갔다.

  경로가 워낙 복잡한 지 어느 길로 가는 것인지도 전혀 가늠이 안 됐다. 거기다 정신 세계 속으로 버거운 양의 정보가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마당인지라 일괄적인 상황 파악이나 정보 정리는 도무지 불가능했다. 윤혁들은 해류에 떠밀리는 뗏목이 되어 배회했다.

  점차 그들은 얕은 심도의 차원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의 정신체과 그 위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은 윤혁의 분신은 점점 더 얕은 권역으로, 현실과 근접한 설정축 좌표로 이동했다. 이 추세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 도달할 기세였다. 자칫 잘못하면 윤혁이 처음 떠나온 현실 세계 속 위치인 기함 내부가 아닌, 엉뚱한 위치에 착륙할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만일 그곳에 도착한다면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뇌리로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에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호기심에 끝까지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내 보자. 강한 의지로 굳게 되내였다.

  ‘뭔가 잡힐 듯 해.’

  보일 듯 말 듯 저 멀리로 목표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목표지에 도달하기 직전, 윤혁의 분신들이 모종의 반작용 현상으로 인해 한꺼번에 엉켰다. 멀티태스킹이 해제되었다. 시뮬레이션 우주 쪽보다 현실 쪽에 가까운 영역에 다가간 영향이었다. 이데아와의 결속이 약해진 탓도 있었다.

  “크흑!”

  갑작스러운 관성 현상의 여파가 밀려왔다. 얻어낸 각종 정보들이 뒤섞였다. 분신들이 각기 경험해온 정보, 탈취한 정보, 분신이 끌어안은 타 인간의 인격체가 소유한 정보, 그리고 잠깐이나마 타 인격체와 함께 ‘현실 속 다른 좌표’ 속에 잠임함으로써 관찰해낸 정보들까지.

  바로 그 마지막 순간, 이데아와의 융합이 완전히 끊겼다. 윤혁의 분신화된 정신체들은 한꺼번에 한 덩어리가 되어 윤혁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우주선 속에 머무르고 있던 바로 그 몸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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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0. Fi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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