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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0회 초인들의 세계 Ch 51. 외부 은하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28 | 회차평점 0 0

 

 

 

 

 

 

*****

 

 

 

 

 

  보통 현 인류 문명의 진출 범위는 ‘우리 은하’ 전역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은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개척된 주 영토와 시설들이 대부분 우리 은하 내에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접한 몇몇 다른 은하들에도 탐험대와 개척단이 다수 파견된 상태였다. 안드로메다은하가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그 외에도 약 500개 정도의 인접 은하들이 이미 인류의 손아귀가 닿아 한창 개척 작업을 당하는 중이었다.

  공통적으로 이 은하들은 모두 ‘우리 은하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중인 은하들이었다. 끌어당기는 중력이 공간 팽창의 영향보다 강한 덕에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웃들, 다시 말해 같은 무리에 속한 형제 은하들이었다.

  물론 같은 초은하단에 속해있다고 해서 무조건 마수를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멀어지는 속도가 극히 느린 일부 은하에만 탐사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한 은하들도 애당초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우리 은하에 속한 항성이나 행성의 경우처럼 효율적인 정복, 개발 작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머나먼 세계에 널려진 방대한 자원들을 내버려 두기도 아까웠다. 아직 닿지 못하는 은하들은 나중에 생각한다고 쳐도 충분히 지척에 닿는 이웃 은하들은 낭비할 수 없었다. 게다가 크게 자라날 장래 인류 문명의 규모를 감안하면 장거리 개척은 선택 옵션이 아닌 필수였다. 이에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시점, 왕은 차선책으로서 ‘구세대 편법’을 재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원거리 타임머신.

  원래라면 기계들이 제어에서 벗어날 위험성 때문에 우선순위로 채택하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물론 왕도 언젠가 그 전략이 꼭 필요한 상황이 생길 미연의 가능성은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략이 채택되려면 전제 조건이 반드시 갖춰져야 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장구한 세월 동안 자체적 진화를 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기계 지배 기술’의 발명. 그 조건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원거리 타임머신이라는 위험천만한 전략은 봉인해둬야만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마침 그 완벽한 지배 기술이 구비되었다. 소위 ‘기계들의 율법’이라고 불리는 첨단 테크놀로지였다. 물론 기계 율법도 처음부터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몇 세대 이상 진보하여 최상위 율법 시스템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흡족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은하 바깥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기계 군집까지 완벽히 통제할 수준까지 말이다.

  그렇게 기반이 탄탄히 확고한 덕에 타임머신 전략이 재허가되었다. 이에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쯤부터 기계들이 차례차례 외부 은하로 워프되었다. 최첨단 버전의 워프를 통해 거듭 이동해야 하는 상당한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목표지점에만 잘 도달하면 ‘과거 시점’에 도달하는 셈이었으니 워프 과정에서의 시간 소요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기계들은 율법의 통제를 받으면서 타 은하의 항성계들을 탐사했다. 자원을 캐고, 시설과 기지와 요새를 건축하고, 다양한 유닛과 건물과 일꾼을 재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무한정 반복하였다. 기계들은 차츰 데이터와 창조성을 쌓아 자체적으로 진화하였고 행성을 넘어 항성까지도 개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도합 512개의 은하가 인류연합의 영토가 되었다.

  다만 정복까지는 좋았으나 다음이 문제였다. 소통과 왕래를 위해 몇몇 불완전한 은하 간 게이트를 건설해두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왕래가 불가능했다. 거기다 가뜩이나 불완전한 통신 체계 내에서 오차도 종종 발생했다. 현재로서는 기껏해야 ‘다른 은하’의 식민지에서 자원들과 제조품들을 조공 받는 산업 정도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다른 은하들은 자원 개척지로만 남겨둔 차였다. 실질적인 영토로 취급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위치였다.

  오늘에서야 카이젤은 이렇게 제약받는 상황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작정이었다. 이번 여정은 인류를 위한 혁신 겸 혁명. 은하 한 개 범위의 영토를 무제한 확장해 문명 패러다임을 도약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훗날 인류사에서 오늘은 콜럼버스의 탐험을 능가하는 혁신의 전환점으로 기록되리라.

 

  하지만 그 전에 또 다른 장애물도 같이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껏 나 외에는 다른 은하를 개척할 세력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지.”

  카이젤이 느닷없이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렸다.

  “실제로 기술력에서는 우릴 따라갈 세력이 없었으니까.”

  마침내 침묵을 깨고 열린 입에서 나온 말이 영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라면⋯⋯, 그 예측이 틀렸다는 말씀인가요?”

  윤혁의 질문에 카이젤은 눈을 감고서 잠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예상은 했었지만, 끝까지 걸리적거리는군.’

  그의 기억은 잠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갔다. 과거 2세대 초인들이 태양계 바깥을 개척하기 위해 원거리 타임머신을 보내던 시절. 당시 인류의 기술적 한계는 명확했다. 잘해야 은하계 내부, 그것도 태양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개척단을 파견하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2세대 어른들은 은하계 내부를 정복하는 일조차 실패했다. 기껏해야 통제 불가의 기계 세력들을 여러 항성계에 심어놓았을 뿐이었다. 비록 훗날 카이젤이 회수하여 유용하게 활용하긴 했지만.

  “그런데 그 기계 중 일부가 단순히 제어를 벗어난 수준을 넘어서 은하 바깥으로 달아나는 데까지 성공했더군. 최근에서야 그 현상이 관측되었어. 절묘하게 빼돌렸더군. 탈출한 개체들은 시공간 연속체 측정기의 좌표상에도 나타나지 않았어. 하마터면 나도 깜빡 속을 뻔했지.”

  다소 의아했다. 앞뒤가 도무지 안 맞는 말 같았다.

  “하지만 초인 2세대, 아니 부모님 세대 문명 수준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거의 불가능한 은하 간의 도약을 어떻게 그 시절의 기계들이 할 수 있었죠?”

  윤혁의 타당한 질문에 옆에 있던 한즈가 참견했다.

  “2세대 초인들이 쏘아 올렸던 기계들이 원거리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 시점에 도달했다는 걸 생각해봐. 그 과거 시점이란 게 우주 표준 시간 기준으로 따지면 수십만에서 수억 년 전이야. 그 이전일 수도 있고. 지금보다 은하 간 거리가 훨씬 가까웠던 시절이지. 당연히 은하 간 간극을 넘기도 훨씬 쉬웠을 거야.”

  나름 타당한 이야기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설명이 불충분했다.

  “그럼 왜 인류연합은 그런 전략을 취하지 않았지?”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벗어나게 되면 기계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거든. 타임머신 전략의 치명적 약점이지. 우리도 원거리 타임머신 전략을 무턱대고 남용했다면 가까워지는 은하뿐 아니라 멀어지는 은하에도 일부는 개척단을 파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통신 체계와 제어력의 유지가 안 돼 2세대꼴이 났겠지.”

  신나게 해설한 뒤 한즈는 이어서 한 가지를 더 첨언했다.

  “물론 2세대들이 남긴 유물에 불과한 ‘그 탈출 개체들’이 은하 간 도약을 어렵지 않게 해냈던 데에는 또 다른 변수가 하나 작용했어. 그게 뭐냐면…….”

  “그건 내가 설명하지.”

  이번에는 카이젤이 그의 대화를 가로챘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원거리 타임머신을 직접 타고, 과거 시점의 은하 내부 항성계를 방문했었다. 그 뒤 운 좋게 기계 율법의 침식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2세대의 유물들을 가로챈 다음 더욱 먼 곳으로 달아났지.”

  “네?”

  카이젤은 좀 더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였다.

  “녀석은 우리 3세대에 속해있던 녀석이었다. 지구에서 망명한 뒤 2세대들이 뿌려놓은 무인 개척 기계들이 심어진 곳으로 도주했지. 마침 그곳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자란 기계 시스템들이 있었어. 아직 진화 초기 단계에 있었지만. 그자는 그곳의 기계 중 쓸만한 것 몇 개를 선별하여 개조한 후 은하 경계를 도약하였고 그 뒤 그 기계들을 새 군대를 위한 자원으로 삼았지.”

  그자는 다섯 명의 위대한 초인 중 한 명, 한때는 카이젤에 버금가는 실력을 자랑하던 경쟁자였다. 지구와 은하계를 두고 벌인 패권 경쟁에서 카이젤에게 패한 이후로 세력과 소유를 박탈당한 채 축출되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았겠거니와 그자는 카이젤에게 큰 곤혹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내건 위험한 도박을 시도했다. 바로 원거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인류연합의 다 된 밥 위에 재를 뿌리는 일이었다. 은하 내에 본진을 둔 인류연합의 통신 제어력이 닿기 힘든 ‘멀어지는 다른 은하’들로 달아나되 머나먼 과거 시점의 다른 은하로 달아나는 전략. 그렇게 하면 현재 시점에는 이미 은하 간 거리가 너무 멀어진 탓에 추격이나 수색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시간을 번 뒤 세력을 구축하여 인류연합을 역습하려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거리 타임머신에는 한계점이 있었지.”

  바로 ‘인류 역사 절대 인과율’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쉬운 말로 표현해서 ‘과거 시점의 먼 우주’로는 나아갈 수 있어도 과거 시점 인류에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 이는 단순히 과거 시점 지구를 방문할 수 없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원칙 상 과거 시점의 인간에게도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과 물체뿐 아니라 정보마저도 전달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령 사람이나 인공지능이 원거리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이동하는데 성공한다고 가정해도, 그 존재가 자신이 속했었던 원래 세계와 상호작용을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원래 세계의 시각이 ‘타임머신을 타고 출발해온 시점’을 초과해야만 했다.

  물리적으로는 이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역사의 흐름’이 절대로 바뀌지 않도록 붙들어 놓는 초자연적 영향 내지는 신적 영향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어쨌건 이러한 원칙 때문에 과거 시점 항성계로, 그리고 과거 시점 다른 은하로까지 건너갔다던 그 3세대 초인도 과거를 역습함으로써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카이젤을 반칙을 통해 이겨보려는 꿍꿍이는 애당초 절반 이상 차단된 셈이었다. 그자로서는 기껏해야 몇몇 2세대의 유산들을 빼돌려 별도의 재기 기반을 마련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는 것이 한계였다.

  “과거 시점 기계들은 율법 침식을 아직 안 당했기에 녀석 맘대로 조작할 수 있었겠지. 아직 율법은 시간 장벽까지 넘진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의 두뇌도 한몫했겠지. 그 지식과 실력이면 얼마든지 기계 개량도 가능했을 테니까.”

  “그래서 형의 통제력 바깥에서 자원을 빼돌려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이군요.”

  “그래. 그리고 과거에는 다른 은하로 이동하기도 훨씬 쉬웠지.”

  카이젤도 그런 전략은 얼마든 쓸 수 있었겠지만, 일부러 그런 불안정한 방법은 회피하고자 했다. 인류의 지도자인 그의 처지에서는 굳이 통제 불가능한 먼 곳에 ‘자율 진화 기계’ 같은 위험 요소를 심을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인간 워프 안전성이 보장도 안 된 마당에 본인이 직접 타임머신까지 타는 도박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문제의 ‘인류 역사 절대 인과율’ 제약 때문에 안전하게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러면 그자는 왜 그런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죠?”

  “뭐, 어차피 다 잃고 쫄딱 망한 마당이라 도박을 시도해볼 만했겠지.”

  비숍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도박. 그보다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자칫 잘못 여행했다가 영영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지 못할 전략. 그야말로 우주에서 비명횡사하기에 딱 좋은 우매한 전략 아니겠는가.

  “난 녀석 혼자만의 힘으로 은하를 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카이젤은 다소 의심스러워하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의 옛 친구이자 원수였던 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원흉.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그 녀석과 겨루어서 승리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자의 한계에 대해서는 카이젤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자가 아무리 날고 길어도 그 제한적인 지식과 인프라만으로는 팽창하는 공간을 넘어 은하를 도약할 수 없었으리라.

  “조력자가 있었겠지.”

  비숍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윤혁은 감이 잡혔다. 이성적인 감이 아닌 영적인 감이. 확실한 물증까진 없지만, 희미하게 어떤 한 부분에 의심이 닿았다.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직감이었다.

  “조력자요?”

  “초자연(Supernatural).”

  카이젤의 발언에 한즈와 윤혁 모두 흠칫거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당황한 포인트는 조금 달랐다. 비숍은 순전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거대한 우주적 존재감을 향한 미지의 두려움 때문에 얼어붙었다. 반면, 윤혁은 영적인 의미에서 긴장했다. 진리의 책에 기록된 내용을 이미 배웠던 그는 현실에서 그 거대한 위협과 실체를 마주할 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예감에 바짝 긴장하였다.

  “나는 녀석이 ‘초자연’과의 모종의 연결고리를 활용해 은하를 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인류의 능력만으로는 아직 닿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지. 그 녀석은 그 힘을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써왔었지.”

  위버멘쉬는 어린 시절 적과 솔직담백하게 나눴던 담화를 회상하였다.

  ‘그들에게는 별들의 세계가 인간계보다 더 가소롭다고 했었던가?’

  카이젤은 고개를 돌려 어리둥절한 동생을 흘깃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널 우리와 함께 데려가는 이유이지.”

  의미 모를 짤막한 설명을 끝으로 그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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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잠시 언급된 '어떤 정신 나간 사람', 도대체 누구일까요? 왠지 중요할 것 같은 냄새가 나지 않나요? 아닐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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