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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1회 초인들의 세계 Ch 52. 다잉메시지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1.31 | 회차평점 0 0

 

 

 

 

 

Chapter 52. 다잉메시지

 

 

 

 

 

 

  곧 함대는 목적지인 어느 한 ‘다른 은하’에 도달하였다.

  지금껏 공간 팽창으로 멀어져가는 은하들은 인류의 손아귀를 벗어난 영역이었다. 그런데 초인 세계를 반역한 그자가 비겁하게 초자연의 힘을 빌려 그 ‘벗어난 영역’으로 달아났다. 그가 빼돌리는 데 성공한 구시대의 잔존 시스템 일부분이 그 타지에서 수억 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하도록 내버려 두어 현시점에 도달해 인류와 조우하도록 허락했다면? 그랬다면 분명 와신상담을 이뤄낸 반역자의 군단은 인류 측에 큰 위협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하지만 88세대까지 발달한 워프 기술 덕택에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대응하고도 남았다. 공간을 넘어 이동할 수단뿐 아니라 적을 추적할 시공간 관측 시스템, 진압 용도의 초강력 함대, 그리고 기계들이 너무 진화하기 전에 미리 싹을 뽑을 수 있도록 과거 시점으로의 이동을 허락해준 원거리 타임머신의 최첨단 개량판까지, 모든 것이 갖춰졌다. 사냥할 채비는 마련되었다. 남은 것은 과감히 계획을 시행하는 것뿐이었다.

  {Gal-X-1,203,091 착륙 완료.}

  {워프 좌표 검산 완료.}

  {은하 전방에 걸친 관측을 발동합니다.}

  함대를 거느린 젠타르콘이 낯선 외계 은하 전반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기함 관측 시스템이 현재 도착한 은하인 Gal–X-1,203,091 전역에 걸쳐 관측을 시행했다. 준동하는 적 유닛들의 수가 측정되었다. 그러자 기함은 적들을 강제로 유인하기 위해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흩뿌렸다. 기함이 발동시킨 임시 양자통신 네트워크가 바이러스를 초고속으로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내 적의 모든 시스템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피를 흘리는 미끼를 바다 위에 떨어뜨리면 수백의 상어 무리가 몰려드는 것처럼, 은하 내 여러 항성계에 흩어져 주둔하던 기계 군단들이 일제히 젠타르콘을 향해서 워프하기 시작했다.

  {적 유닛. 31,091,091,000,810기 발견. 개체 수 계속 늘어납니다.}

  떡밥 냄새를 맡은 숨겨진 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곳곳에서 워프하여 나타나는 로봇, 소형기, 함선, 모듈들. 인간은 한 명도 없이 전부 무인기들뿐이었다. 형태는 현 인류연합 모델과는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수효는 많아도 기술력은 현 인류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져 보였다.

  “잘해봐야 저것들은 10년 전의 우리 기술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

  카이젤이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했다.

  물론 상대측도 막강했다. 지난 세대에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은지라 인간 없이 인공지능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지속적인 기술 진보는 가능했다. 생산 인프라와 유닛 모델을 개선하고 새 개척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적 개발을 하는 일 정도는 저쪽도 성공시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초인들의 탁월한 창의성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해당 문명은 일정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

  “그래도 최소 수백 년 이상 진화하면서 꾸역꾸역 개체 수를 늘려왔군.”

  이번에는 비숍이 직접 관측된 적 유닛들의 형태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연산하였다. 원래 계획대로면 은하 Gal-X-1,203,091에 최초로 구세대 기계 시스템이 심어진 시점인 수억 년 전의 은하계로 시간 이동했어야 하거늘, 800년 이상 오차가 발생했다. 덕분에 안타깝게도 800년 동안 꾸준히 증식해온 거대한 군대와 맞서 싸울 필요성이 발생했다.

  ‘진이 했던 말대로 정말 머나먼 과거에는 지구와 먼 우주에서 각기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구나. 직접 시간 여행을 해보기 전에는 믿지 못했었는데.’

  시공간 계기판을 직접 본 윤혁은 충격을 받아 입을 열지 못했다. 우주 역사 시간표를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다르게 흘러가도록 만든 미지의 힘. 아마 하나님께서 시공간과 만물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심어놓으신, 베일에 싸인 시간의 비밀이리라. 과거에는 희미하게 존재했으나 이젠 사라져버린 그 비밀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간 압축 기술 ‘타임필드’의 기반 원리가 되었다.

  윤혁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이러한 ‘시간의 기묘한 성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었다. 과거 상대성 이론이 처음 발표될 당시에 사람들은 그간 절대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겼던 시간이 사실은 속도나 중력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상대적인 속성임을 깨닫고는 몹시 충격에 휩싸인 바가 있었다. 이제 윤혁도 그 시절 사람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씩 공감이 되었다.

  “전투 개시한다.”

  지휘자의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함대가 고속으로 도약하였다.

 

 

 

 

 

 

*****

 

 

 

- 지구 기준 9년 전 -

 

  한 사내가 황급히 망명을 준비하였다. 그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왕좌를 두고 겨룬 치열한 물밑 싸움에서 이미 패배하였고 세력 경쟁에서는 실패했으며 취했던 영토와 소유 역시 빼앗겼다. 그렇다고 배알도 없는 다른 녀석들처럼 왕에게 머리 숙이기는 싫었다. 왕을 증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간악한 술수를 부렸다. 그는 왕에게 불만을 품은 다른 한 명과 더불어 음모를 획책했다. 둘은 다른 두 현자를 몰래 포섭해 간접적인 도움을 취했다. 그리고 왕이 승리에 취해 방심한 틈을 타 그를 납치하기까지 했다. 하마터면 살해에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경쟁자보다 우위였던 왕은 행운마저 우월했는지 막판에 그 흐름을 역전시켜버렸다.

  음모에 가담했던 자들은 합당한 처분을 받았다. 도움을 주었던 두 현자는 자세한 음모의 내막을 모른 채 속았었기에 용서를 받았다. 그들은 권력과 재산을 모두 반환하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있거나 나그네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러나 직접 역모를 도모했던 두 주동자는 즉결 처분 대상이었다.

  한쪽은 어찌어찌 여러 행운의 도움을 받아 신분을 완전히 말소한 후 인류 영토 내에 잠적하였고 이후로도 계속 쫓겨 다녔다. 그러나 더 죄질이 나빴던 쪽은 가볍게 다뤄지지 않았다. 인류연합의 완벽한 군대와 시스템들은 은하 전역을 완전히 장악한 후 샅샅이 반역자를 수색했다.

  궁지에 몰린 반역자는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러나 인류연합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란 존재치 않았다. 은하계 밖으로 달아나지 않는 한 가망성은 전무했다. 아니, 이미 인류연합은 인접한 은하들로도 개척단을 파견할 프로젝트를 예비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는 은하들로 달아날 게 아니라면 도망치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멀어지는 은하로 도약하는 일은 엄청난 기술력이 요구했다. 반역자의 기술력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설령 그럴 기술이 있어도 자원도 재산도 없는 마당에 바깥으로 나갈 우주선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달아난다 해도 인간이 생존할 만한 기반 환경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얼마 안 가 수명이 다할 것이다. 지구 같은 행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테라포밍을 시행할 인프라는커녕 우주선에서 지속적으로 산소와 물과 식량을 생성해낼 수 있을지조차도 불분명했다.

  더구나 반역 사건의 실패 이후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기계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율법’에 종속된 상태가 되었다. 기계 율법을 생성해내는 주체인 기계들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본체는 이미 왕의 정신과 완벽히 융합되어 있었다. 그 지경을 막아보겠다고 반란까지 꾀했건만, 이제는 너무 늦어 수포가 되었다. 반역자의 신분으로는 함선은커녕 드론 한 유닛도 탈취하지 못할 판국이었다.

  결국, 반역자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수를 두었다. 자칫 자기 자신의 숨통을 끊을지도 모르는, 양날의 검과 같은 악수(惡手) 중의 악수. 그러나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상관없었기에 그는 자살하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타임머신을 이용하자.’

  물론 타임머신의 원칙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인류 역사 절대 인과율 개입 불가의 원칙.

  역사 내부에서의 현재, 과거, 미래 간 왕래를 막기 위해서 절대적 존재가 만들어낸, 물리법칙보다도 더 높은 절대적인 법칙. 원거리 타임머신의 가동은 어디까지나 인류와 접촉이 불가능한 머나먼 곳으로 이동할 때만 허가된다.

  10억 광년 떨어진 미개발 상태의 은하의 1000년 전 시점 과거로 이동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은하에서부터 다시 1000년 전 시점의 지구권으로 워프하는 건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정보를 보내는 행위조차도 금지된다.

  요컨대 인류 역사를 변개할 가능성이 담긴 시간 여행은 원천 봉쇄된 상태였다. 그 원칙 때문에 이미 인류가 정복해놓아 현재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항성계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이동할 수 없었다. 그런 항성계들은 이미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일 그런 항성계의 과거로 이동해서 그곳의 역사를 과거부터 변개한다면 현재 그곳들에 세워진 인류 식민지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뜻인데 이는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되었다.

  하지만 살짝 아이디어를 비틀어 발상의 전환을 하자 해결책이 나왔다.

  ‘이전 세대 초인들이 뿌려놓은 기계 중 남은 것을 씨앗으로 써먹어야겠군.’

  틀림없이 2세대의 유산 중에는 인류가 미처 회수하지 못한 채 완전히 놓친, 연결을 잃고 독립해버린 것들도 있으리라. 물론 현재 시점에서는 왕이 은하를 정복함으로써 모조리 회수했겠지만, 과거 시점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외부 항성계의 과거 시간대에는 2세대가 남긴 배설물이 최소 하나는 있으리라. 은하를 배회하는 독립 개체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하에 그는 도박을 개시했다. 그는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않은 채 미개척지로 내버려 둔 은하계 외곽의 은폐된 좌표들을 공략했다. 운 좋게도 외부 행성의 과거 시점으로 시공간 이동을 한 그는 쓸 만한 우주 개척용 기계 군단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다.

  때마침 미리 인류가 은하 정복 과정에서 회수한 기계 목록을 미리 해킹해서 알아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여태 인류 측에 회수되지 않은 코드를 띤 기계를 과거 시점으로 건너가 검색해서 탈취하면 역사적 인과율에 어긋나지 않고도 계략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원거리 시간 여행의 복잡한 ‘인과율’ 문제를 회피하려면 인간이 닿지 못할 먼 곳으로 서둘러 달아나야만 했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은하 내부 인류 식민지의 장래 운명을 바꿔버리는 셈이 되니까. 최소한 공간 팽창으로 멀어지는 외부 은하까지는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단계까지 기술력을 발전시키고 인프라를 확충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전에 과거 속을 표류하며 아사할 판이었다.

  이런 막막한 때에 뜻밖의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그를 어려서부터 지도해주었던 인도자들이었다. 과거의 망령이 남긴 낡고 추악한 미신의 잔재가 그에게 다시금 뜻하지 않은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

  <<네놈은 아주 조금 쓸 만하니까 딱 그만큼만 힘을 빌려주겠다. 이것도 네놈의 그릇이 애매하게 커서 허락되는 특별 서비스니까 감사히 생각하라.>>

  이미 악에 잔뜩 물들었던 그는 기꺼이 수호신에게 영혼을 일부 팔아 소생의 기회를 구입했다. 더불어 은하를 넘을 초자연적 힘과 기계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는 지혜와 권능, 그리고 연장된 생명력까지 함께 받았다. 물론 그것은 실패했을 경우 비참한 결말을 지불하겠다는 사채 언약이나 마찬가지였다.

 

 

 

 

 

 

*****

 

 

 

  전투 결과는 말 그대로 압도적 승전이었다. 기함 젠타르콘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전투에 나선 것은 함대 중 단 한 척의 소형 전함뿐이었다. 그럼에도 전투는 정확히 1분 37초 만에 종료되었다.

  “말했잖아. 수준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카이젤이 말했다.

  “그러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곳 은하 전역을 개척하고 갈아엎어서 저렇게까지 많은 군대를 생산했는데 단 한 척에 압도적으로 당하다니, 굉장하네요.” 

  인류연합의 군사력이 막강하다는 건 윤혁도 알고 있었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경지를 직접 목격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분명 상대편 기계 군대 역시도 이전 세기 인류와 비교하면 개미 앞의 공룡 이상으로 강력할 터인데, 카이젤의 군대 앞에서는 함선 하나 값도 내지 못했다.

  “현 인류에게는 1년이면 기술의 특이점을 백 번도 더 뛰어넘을 시간이지.”

  카이젤은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였다.

  “하물며 10년 이상 시간차가 벌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어.”

  저 무시무시한 함대 전체가 인공지능에 의해 운용된다. 즉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왕에게만 절대복종한다. 윤혁은 형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과거 그 어떤 독재자도 저 사람처럼 막강한 권력은 갖지 못했겠지. 최소한 그 독재자들에게는 역모를 당할 염려라도 있었지만, 카이젤은 단신의 힘으로 모든 인간을 억누를 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면 갈수록 저 권력은 더 공고해지겠지?’

  그때였다.

  {기계들의 율법 시스템을 발동합니다.}

  기함의 인공지능이 다음 프로세스 준비를 보고하였다.

  {최상위 지배 시스템을 발동하겠습니까?}

  “승인한다.”

  카이젤이 인공지능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곧, 은하 Gal-X-1,203,091 전역으로 어떤 파동이 퍼져나갔다. 기계 율법의 확산이었다. 이곳처럼 먼 은하에서는 우리 은하인 Galaxy-0과의 거리 문제 때문에 기계 율법 시스템을 퍼뜨리는 데에도 조금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적들의 시선을 끌어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굳이 전투를 벌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단번에 퍼뜨릴 수 있었다면 싸울 필요도 없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율법 침식이 완료되었다. Gal-X-1,203,091의 모든 시설물과 시스템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인류연합 수중에 떨어졌다. 기지, 행성 요새, 에너지 플랜트, 공장, 인공위성, 항성 내 생산 기지, 드론, 로봇, 무인 우주선과 함선까지, 개체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확보되었다.

  {이곳에서 증식한 시스템에 내재된 메모리를 파헤치겠습니다.}

  {정보 전송 시작.}

  기함은 정복지를 분석한 데이터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이젤은 다시 한번 ‘현자의 눈’을 발동해서 전송 정보를 재분석하였다. 지금껏 추측만 했던 사실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한 그는 흥분되는 고조 감을 차분히 누그러뜨린 채 냉정함을 유지했다. 한참의 검색과 정보 재조립 끝에 그는 원했던 많은 정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반역자가 어떤 경위로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곳 기계들의 진화를 뒤에서 조종하며 부추겼는지를. 마침 더 흥미로운 정보도 있었다.

  “이곳 말고도 다른 은하로도 도망쳤군.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곳으로.”

  차가운 황금색 눈동자가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간 여행의 부작용을 역이용해 자기 자신을 여러 동일 개체로 늘려놓을 줄이야. 참 간악한 전략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게 광인다웠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이곳처럼 자율 진화 기계 시스템을 뿌려놓았어.”

  “그러면 일이 좀 커지는 것 아닙니까?”

  전투를 마치고 막 기함 안으로 들어온 비숍, 한즈가 질문했다.

  “다행히도 놈은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한 듯해.”

  “그래도 몇 개의 은하까지 침투했을지 모르니 골치 아픈 노릇이군요.”

  한즈의 투덜거림에 카이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아. 고맙게도 워프의 흔적이 매우 선명히 남았어. 그들이 그간 이용했던 모든 경로를 당장 여기서 검색 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그들이 이동한 은하는 물론이고 거슬러 올라간 시간대까지 분석 가능해. 놈이 쓴 워프 기술이 우리 것과 비교해 심각히 뒤처진 덕분에 말이지.”

  게다가 심증뿐이던 추측도 대번 맞아떨어졌다.

  “예상대로 녀석은 과학이 아닌 초자연의 힘을 억지로 빌린 모양이야.”

  그리고 그 어리석은 선택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은하 간 워프 시행 횟수에도 제약이 있었던 모양이군.”

  카이젤은 과거의 원수가 남겨놓은 범죄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샅샅이 살폈다. 탁월한 두뇌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완벽한 추적 전략을 구상했다. 다행히 대응책을 마련하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추적 시작하지. 마침 함선의 수가 많으니 조금씩 다 흘려보낸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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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번 챕터와 다음 챕터는 중요합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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