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6회 초인들의 세계 Ch 53. 멸망의 아들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2.13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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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게 있단다.”
노인은 한 번 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초인이라는 존재는 사탄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단다.”
그의 입에서 한층 더 당황스러운 주제가 나왔다.
“초인은 사탄의 힘을 더 완벽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니까.”
“그릇이라면 설마 귀신들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분적으로는 맥락이 통하겠구나. 하지만 그런 류의 악마 빙의는 어디까지나 유희 목적일 뿐이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므로, 악마의 임재가 들어가면 반발이 일어나서 엉키게 된다. 그 때문에 악마들은 인간을 자신의 도구로 쓰는 데 있어 한계에 부닥쳤지. 지금까지는 말이다.”
알레프는 그릇의 원리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아무리 연약한 그릇도 위대한 목적에 쓰실 수 있는 것과 달리, 사탄은 비록 방대한 권능을 지니고는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그는 제약 때문에 물리적 세계에 함부로 간섭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인간 세계에 힘을 발휘하려면 그릇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릇이 너무 약해서 사탄의 힘의 극히 일부분조차 담지 못하고 깨어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사람들을 유혹하고 타락시키거나 일부 만만한 자들을 조종해서 갖고 노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사탄의 전략은 주로 그리스도인들을 죄짓게 만들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는 것을 방해하는 치졸한 방식으로만 제한되었다.
그러나 말세가 다가오자 사탄에게 훨씬 중요한 목표가 생겼다.
멸망의 아들.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서 사용할 최후, 최강, 최악의 비밀 병기. 그 존재를 이 땅 위에 강림시킴으로써 만민을 지배하고 나아가 신과 벌일 최후 발악의 전쟁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미 십자가에서 꺾인 사탄이었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멸망을 당해줄 생각은 없었으리라. 그렇다고 예언대로 순순히 휘말릴 생각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예언을 역이용하되 예언을 깨트리고 반전을 일으켜야만 했다. 사탄 처지에서는 존망을 건 위중한 도박이었다.
따라서 그 어떤 그릇보다도 완벽한 명물을 택해야만 했다. 전능자의 예언을 깨트릴 가능성을 단 0.01%라도 만들 수 있도록 최고의, 최상의, 창조 세계의 질서를 초월할 특이점에 도달한 걸작을 얻어야만 했다.
“위버멘쉬야말로 바로 그 최고의 그릇이요, 완벽한 걸작 중의 걸작이지. 단순히 마귀(Diabolos)의 힘을 살짝 담아내는 차원이 아니야. 인간과 사탄과 대등한 자격으로 융합하는 프로세스, 곧 ‘마인합일(魔人合一)’까지 염두에 둔 그릇이지. 즉, 사탄의 힘의 백 퍼센트를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수준을 넘어서 원래의 한계마저도 뛰어넘는 시너지를 일으킬지도 모르지.”
윤혁은 도대체 어르신이 이 충격적인 비밀을 어디서 들은 것인지 궁금했다. 몹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의 눈빛을 눈치챈 노인은 자신이 보아온 징조, 특별히 이면에 감춰져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위버멘쉬들이 갖춘 적그리스도로서의 자질, 각 세대 위버멘쉬들이 지닌 특징적인 종말의 성격, 세 번의 초인 세대가 종말 예언과 공유하는 공통점까지도. 노인은 구체적으로, 그러나 간결하고 알기 쉽게 객관적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확신의 쐐기를 박고자 그날 경험도 아는 만큼 털어놓았다.
“그날 나는 악마와 대면했단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하필 놈이 선수를 쳤지. 놈은 내 동생과 최후의 거래를 시도하려고 다가갔었다. 놈은 내가 방해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날 죽이려고 했다. 주님께서 돕지 않았으면 난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도 못했을 거다.”
지금껏 어르신이 보여준 면모는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는 감성보다는 체계적 분석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 환각이나 거짓말에 넘어갈 유형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당시에는 아직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현란한 기술도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런 환각이 존재했더라도 신중하신 어르신께서 ‘영적 세계’와 ‘환각 세계’를 구분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윤혁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잘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마음속에서 믿어야만 한다는 세미한 음성이 자꾸만 들렸다.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날 알레프가 엿들은, 동생을 향한 악마의 꼬드김은 이랬다.
<<나와 하나가 되어 피조물의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자. 그대는 물질계에서, 이 몸은 영계에서 리미터를 풀어낸 존재. 온전히 한 점에서 만나 융합하면, 조물주가 그어놓은 불합리한 금제를 극복하고 우리의 힘으로 영원한 번영과 자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말로 동생 귀에 대고 육성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동생은 다른 방식의 체험을 했던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무슨 체험인지는 보지 못했지만 아마 악마의 속삭임은 동생의 무의식 속에 은연중 파고들었으리라. 확실한 건, 동생은 간파하지 못한 그 은밀한 유혹이 형의 귀에는 선명한 육성으로 분석되어 들렸다는 점이었다.
그 사건으로 알레프는 또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부터가 내가 네게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란다.”
노인은 거칠어진 감정과 호흡을 잠시 골랐다.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만 했었지.”
윤혁은 한 음절도 놓치지 않을 각오로 바짝 긴장했다.
“내가 바로 마지노선, ‘억제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억제자요?”
“최후의 ‘악의 씨앗’의 발아를 막는 장치란다.”
노인은 억제자(Restrainer)라는 존재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적그리스도의 원동력인 ‘불법의 비밀’은 이미 오랫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육신을 입어 적그리스도로 화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것을 제어하는 막는 자가 계셨기 때문이다. 억제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성도들을 통해 땅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셨다(살후 2장). 그러나 성령께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막기 위해 쓰신 수단은 현란한 가시적 기적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그릇인 예수 믿는 신자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의 억제자요, 여태껏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유지해온 성령의 매개체였다.
“그러나 말세가 가까워지면 ‘멸망의 아들’의 그릇이 현현하지.”
안개처럼 흩어진 형태로 존재했던 ‘불법의 비밀’이 응결핵을 찾은 현시점, 성령의 억제력 또한 편만한 형태보다는 응축된 형태를 취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하여 특별한 소명을 받은 신자가 응축 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억제자, 적그리스도 출현을 막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써 사랑을 통해 헌신해야 할 소명을 부여받은 자였다.
“이 역시도 동생이 죽기 전 영계에서 직접 들은 증언이었단다.”
억제자 이야기는 윤혁에게 있어 심히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어째서인지 어르신이 증언한 그 짐의 무게감이 자신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아졌다.
“저는 어르신의 말을 믿어요.”
공손하게 존중의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질문하고픈 것이 많았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의 영혼은 이미 반쯤 직감하고 있었다. 감이 안 잡힌다고 말은 했으나 오히려 자신의 직감이 확증 받는 것이 더 두려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도피만 할 수는 없었다. 진실과 직면해야 했다.
“어르신이 찾아오신 일, 혹시 제가 그 일과 연관성이 있어서인가요?”
지난 1년간, 그 짧은 시간 만에 평범한 삶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져 버렸다. 평범했던 청년이 인류연합이니, 초인이니, 식민지니, 우주여행이니 하는 엄청난 규모의 일들에 차례차례 휘말려 들어 갔다. 이것마저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섭리 일부였을까? 확답에 목말라 마음이 답답했다. 대답을 미루던 어르신이 몸을 기울여 윤혁의 어깨를 짚고 몸을 지탱했다.
“미안하다. 늦게 알려줘서.”
그가 강윤혁이란 청년을 발견한 것은 사실 우연에 가까웠다.
노년에 이른 그는 세 번째 세대를 배후에서 도와왔다. 이미 3세대 초인 중 가장 뛰어난 자들 중 몇몇과 대면해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과도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뒤에서 여러 책략을 통해 조율하였고 인류가 급격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한 안배를 해두었다.
그러나 카이젤이 모든 권력을 손에 넣으면서 힘의 균형이 깨졌고 어쩔 수 없이 그를 피해 잠적해야만 했다. 알레프는 카이젤의 신경이 바깥 우주를 향하여 자신에게서 멀어진 틈에 카이젤의 친구나 가족 중에서 그를 제어할 만한 이가 있을지 탐색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이젤의 친구들은 모두 초인들이었다. 그들은 교만했고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랑보다는 경쟁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자들이었다.
그렇게 거듭 실패 여정을 밟던 중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별안간 마음속에서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라는 소망이 들었다. 조금 뜬금없긴 했지만, 한국은 노인에게 있어서도 젊을 적 추억이 깃든 나라였기에 마음의 평강이라도 찾는 심정으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그는 2세대 초인 중 몇과도 연줄이 있었기에 혼돈의 시대 당시에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라일라가 이 나라를 방문했었던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라일라의 내연남이었던 강성한의 아들, 강윤혁에게까지 발길이 닿은 건 가히 섭리의 연속이었다. 기도실에서 하필 아이를 만나게 된 인연도 신기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신실하고 정직한 신앙을 보며 안심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이 주님의 인도였던 것도 같다.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요.”
준비된 청년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뿌듯해졌다.
“이미 다 말하긴 했지만, 이건 내 동생만의 일이 아니란다.”
이만 질질 끌지 말고 진실을 명료히 밝히자.
“모든 세대의 위버멘쉬는 ‘적그리스도로 각성하기 위한 그릇’이란다.”
청년의 숨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의 사고의 흐름이 잠시 마비되었다.
“다른 인간, 혹은 다른 초인이 후보가 될 가능성은요?”
무의식적인 현실도피에 가까운 질문.
“사탄이 능력을 부어준다면 능히 보통 초인이라도 왕의 권좌를 능가할…….”
“그래, 이론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마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거라. 굳이 번거롭게 그럴 이유가 있겠느냐? 굳이 손해를 봐가면서 쭉정이를 왕 이상으로 키워줄 명분이 없잖니. 그저 처음부터 제일 양질의 양식인 제왕을 먹어치우면 될 것을. 그래야만 궁색한 마당에 조금이라도 최후의 결전을 대비할 수 있겠지.”
윤혁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 답은 명확했다. 모든 인간의 능력이 오십보 백보였던 과거 시대라면 모를까, 초인이라는 비범한 그릇이 생성된 오늘날 악마들의 왕이 추구할 사냥감은 단 하나, 초인들의 왕뿐이었다.
“절망적으로 느끼겠다만 희망적인 메시지도 있단다.”
위로 아닌 힘빠지는 위로.
“위버멘쉬가 정말 최후의 악으로 각성할지 아닐지는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그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버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길을 걷지 않고 거꾸로 하나님께 항복할 수도 있다. 본인의 결정에 달렸지.”
“그 기로가 억제자라는 존재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그래. 이미 두 차례나 이러한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행되었지.”
최후의 카드가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악의 권능이 유혹하였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첨예한 영적 세력의 대립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대립 구도는 총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앞선 두 번의 최종 국면은 다행히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종들이 이미 두 번이나 승리했다는 뜻.
이것은 희망의 조짐일까 아니면 요행이었을까?
“솔직히 나는 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왔지만, 결국 지켜줘야 했던 동생을 포기해버렸지. 마지막에는 성령께서 명령하셔서 내 동생을 다시 찾아갔지만, 그마저도 조카딸 아이가 자기 아비를 위해 기도해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던 동생의 딸.
그 기도가 결정타가 되어 사탄이 펼쳐놓은 그 판이 깨어졌으리라.
“그리고 두 번째 최종 국면 때의 나는 세계의 혼돈을 제어하기 위해 뒤에서 조율자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서 2대 위버멘쉬나 그녀의 억제자에게는 미처 간섭할 기회가 없었지.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덕에 2대째의 타락과 최종 각성 또한 차단되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마지막에는 둘 다 초인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귀는 매번 쓸모가 없어진 위버멘쉬를 가차 없이 폐기했지.’
첫 번째 위버멘쉬인 Ü와 그의 이복형인 א.
두 번째 이벨리아 아담즈와 그녀를 사랑한 연인.
억제자는 늘 위버멘쉬와 가까운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안에 내주하는 성령님의 권세가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하도록 그런 걸까? 만약에 그 패턴이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지금 시대가 세 번째 최종 국면이라면 최후의 존재는⋯⋯.”
“그렇다.”
어르신은 청년의 말을 끊고 잠시 뜸을 들였다.
“지금 이 시대에 최후가 도래한다면, 적그리스도로 각성할 자는⋯⋯.”
윤혁은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거의 확정적으로……, 너의 이복형이겠구나.”
어르신의 돌직구 한마디에 윤혁의 가슴은 덜컹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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