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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7회 초인들의 세계 Ch 53. 멸망의 아들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2.1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피하고 싶던 진실을 이렇게 비참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이 순간 윤혁의 참담한 심정을 표현할 방도는 없었다. 눈앞이 흔들렸다. 심장 속에 얹혀진 무시무시한 부담이 그를 이성을 마비시켰다.

  “다시 말하건만 그가 정말 강을 건널지는 나로서도 모른다.”

  그 답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시리라. 노인은 담담히 현실을 전하였다. 과장도, 거짓 희망도, 거짓 절망도 첨가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을. 그러나 동요하며 흔들리기 시작한 윤혁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리긴 들리되 어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항상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의식했던 청년은 이 순간만은 그분이 자신 곁에 계시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에 마음이 풍파에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돌이킬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형이 영영 인류의 암흑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의 마음은 절박해졌다. 돌이킬 방책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종말, 곧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날 부활을 소망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지만 그 일을 보겠다고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손 놓고 내버려 두면 무수한 영혼이 멸망의 길에 던져지리라.

  더욱이 그 선두주자가 형이라면 더욱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주님께 배운 사랑, 가족들에게서 배운 사랑, 그 사랑의 끈을 수많은 친구들과 나누어 메어왔다. 심지어는 자신과 피를 나눈 형과도. 덕분에 그를 영영 미워할 수도 없게 되었거늘 어찌하여 이런 딜레마와 마주해야 한단 말인가.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참담한 심정 위에 더욱 어두운 전망이 한 층 더 얹혔다.

  “이미 두 번의 최종 국면을 넘겼으니 세 번째를 넘기긴 더 어려워지겠지. 확률적으로는 한없이 0에 가깝다고 해야할지도. 인류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다.”

  노인은 기운이 쇠하였는지 힘겹게 몸을 의자 뒤로 누였다.

  “그래, 젠가 게임……. 젠가 게임을 해보았다면 쉽게 이해될 게다.”

  젠가. 층층히 교차된 나무 조각들의 탑을 두고 여러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참여하는 게임. 규칙은 번갈아가며 나무 조각을 빼내되 나무 조각 탑이 쓰러지지 않게 유지시키는 것. 첫 사람이 무사히 하나를 빼내면 남은 탑은 역학적으로 한 층 더 불안정해진다. 필연적으로 두 번째 사람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다음 조각을 빼내야 한다. 그가 낮아진 성공률을 뚫으면 다음 사람은 거의 무너질 듯 흔들리는 탑에서 신중하게 빼낼 조각을 택해야 한다.

  오늘날의 세대는 마치 이와 같은 불안정성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윤혁은 허탈하고 괴로운 헛웃음을 흘리며 절망하듯 자조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형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일상을 뒤흔들어놓았다. 어찌 보면 미워할 만도 했으나 정이 쌓이면서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미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되돌아가지도 못하게 된 마당에 자신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그 사람이 최후의 악이 된다면 저는 무얼 해야 하나요?”

  주님을 원망할 엄두는 안 났으나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무거운 현실을 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작정된 운명이란 말인가? 주님께 직접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애타는 심정으로 묻고 싶었다.

  “미안하다, 얘야. 네가 이런 고초를 겪게 둘 수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알아두렴. 너는 무력한 사람이 아니란다. 오히려 너는 담대함을 가질 필요가 있단다. 너에게는 변화를 일으킬 능력이 있으니까.”

  기운을 잃어가는 노인은 한 줄기 희망의 단서를 듣고 다급하게 외치는 청년의 머리를 차분하게 쓰다듬었다. 과연 이 아이는 막대한 사명의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청년의 울상짓는 표정에는 해답을, 최소한 소망의 단서를 찾고픈 절박한 마음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네가 바로 그 세 번째란다.”

  “네?”

  “이번 세대를 지탱해줄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 세 번째 초인들의 왕이 최후의 악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동아줄, 너는 ‘세 번째 억제자’란다.”

  노인은 표정이 마비된 채 굳어 있는 청년에게 차분히 해명했다.

  “처음에는 네 형과의 관계 때문에 너를 주목했단다.”

  아직 청년은 현실감을 찾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네가 예수님과 성실히 동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확실히 믿게 되었단다. 너는 형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네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께서 네 형제에게 마지막 긍휼을 베푸실 수 있을 거다.”

  윤혁은 혼잡한 생각들의 연쇄에 마비될 것만 같았다.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잖아.’

  무소불위의 형도 유일하게 동생에게만은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끝없이 가공할 기술력과 문명을 건설하며,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연구를 시행하고, 은하계의 모든 소유와 권력을 손아귀에서 주물럭거리며, 역사상 가장 막강한 군대를 부리는 자, 카이젤 라흐블뤼크. 그런 그도 이상하게 윤혁과 함께 있을 때는 양심을 따랐다.

  형제 사이에서 우애라는 유대감이 싹 텄기 때문일까?

  신자라면 누구나 적그리스도를 경계하고 적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때로는 누군가를 적그리스도로 지목하며 그를 합법적으로 미워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자 자신의 가족이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있다면? 아울러 자신이 그를 막아주고 구해줄 유일한 희망이라면? 그때도 적그리스도의 그릇을 적대해야 할까?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끝까지 사랑으로 품어야 할까?

  “얘야, 힘든 일이란 건 알고 있다.”

  “저는⋯⋯, 막중한 소명을 맡기에는 부족해요.”

  솔직한 심정대로라면 자신이 없었다.

  “전 어르신처럼 현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군자도 아니에요.”

  숨 막히는 의무감으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현실을 부인하고 싶어 괴로웠다. 이런 일이라면 리온처럼 헌신적인 일꾼 혹은 루디아처럼 상냥하고 사랑이 풍부한 사람이 낫지 않을까. 어째서 지극히 평범하고 연약한 영혼인 자신에게 이러한 잔혹한 역할을 주셨단 말인가.

  “물론 네가 형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설령 그래도 실패는 아니란다. 그때는 주님께서 뜻을 이루실 차례가 다가왔을 뿐이야. 막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임은 변하지 않는다.”

  노인은 청년을 끝까지 위로하며 부담감을 덜어주려 노력했다.

  “다만⋯⋯, 네가 포기하지 않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임무의 당위성을 전해줄 필요는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멸망에서 구원을 받을 기회가 생기겠지.”

  무거운 짐을 넘겨준 현인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이제 저 아이도 자신처럼 소중한 가족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 얘야. 미안해. 내 생명이 끝자락에 도달해서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안쓰럽구나. 네가 무엇을 택하든 그 길을 응원하마.’ 속으로 이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기운은 쇠했지만 눈빛만큼은 선명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지막 존엄성을 굳게 지켜주고 계셨다.

  “기회가 된다면 꼭 네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구나.”

  무책임한 인계자로서 아이의 낯을 볼 염치가 없었다.

  “허나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기다리고 있으마.”

  “하지만……, 제게는 아직 어르신의 조언이 필요해요.”

  큰 소용돌이 앞에 던져진 청년에게는 의지할 힘이 절실했다. 노인은 피식 웃었다. 누군가 자신을 의지해주는 기분도 썩 괜찮았다. 젊어서 못된 일을 많이 했었던 그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시고 열심히 봉사할 기회도 주시더니 이제는 이렇게 후계자까지 주시다니. 감사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청년이 진정 의지해야 할 존재는 자신이 아닌 하늘에 계신 분.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한단다.”

  윤혁은 노인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차마 말릴 수 없었다. 자신과 어르신 두 사람 모두의 어깨에 지워진 커다란 짐이 느껴져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모든 진실을 후세에 전해준 저분께 잠잠히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이 방을 나서자마자 윤혁은 다리의 균형을 잃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

 

 

 

  알레프는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기력을 최대한 짜내어서 버텼지만 이젠 육체의 시계가 최후를 알리는 알람 소리를 부산하게 울렸다. 과학 기술을 통한 연명도 진작에 포기했다. 온전한 초인의 육체는 받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존엄한 죽음의 순간은 선사 받게 되리라. 그저 감사했다.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으며 봄의 화창한 날씨는 포근했다. 사방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과 공중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보였다. 죽기 아쉬운 날씨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있었다. 저마다 떠들면서 노는 이들. 자신도 저들처럼 강성했던 시절이 있었다. 먼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한 사람씩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탈이 참 많았던 착하고 정의로운 동생. 자기 정의에 충실했던 동생. 그에게는 늘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함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를 학대하지 않았으면 그도 달라졌을까. 그 아이 앞에서 용서를 빌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빚이 갚아지지 않았다. 정의로움과 위인다움을 보여준 그 아이였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의(義)와 하나님의 의(義)의 뼈저린 본질의 차이를 알게 해줬다.

  그리고 젊을 적 믿음의 여정 위에서 방황했던 자신을 지탱해준 교회. 그들 덕에 처음으로 교제하는 신앙을 배웠었다. 지금 그들은 대부분 하늘나라에 있었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만난 각지의 신앙의 친구들. 그들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몇 번도 더 넘어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첫 친구에까지 기억이 닿자 가슴이 쓰라렸다.

 

  과거를 회상하던 중, 무언가가 주마등을 끊으면서 정적을 만들었다. 익숙한 위화감.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즐겁게 떠들고 있었건만 어느 순간부터 완전한 적막이 흘렀다. 과연 한 사람도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강제적으로 누군가가 간섭해서 사람들을 흩어 보낸 것처럼 말이다.

  “허허, 주님께서 아직 날 안 데려가신 이유가 있었구먼.”

  그 예상을 정확하게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공간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예민해져 있던 그의 육감이 워프를 감지해낸 것이었다. 소형 개체 워프 반응이 느껴졌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예전의 원시적인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마법과 판타지마저 아득히 뛰어넘은 초고도의 과학이었다.

  ‘이미 이 시대의 과학은 지나친 단계까지 발전했구나.’

  과거의 그는 과학을 사랑했다. 그때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현시대의 과학은 더는 그런 소박한 열정으로 충만한 학문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끝없이 폭주하듯 진화한 끝에 우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욕적인 학문으로 변질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중하지만 권위가 담긴, 차갑고 묵직한 목소리가 대기를 흔들었다.

  “피차간에 알고 있었지만, 대면하는 건 처음이시죠? 찾는데 아주 조금 골치 아팠습니다. 물론 강압적인 수단을 썼으면 순식간이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존경하는 분이라 예우를 갖춰 정식으로 모시고 싶었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태양처럼 선명한 금빛 눈동자 한 쌍이 보였다.

  “다만, 이렇게 보니 조금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사내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역시 전설은 과장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죠. 지금 세대에 비해서 많이 낡고 도태되셨습니다. 물론 능력의 절대치 때문에 존경한 건 아니었죠. 당신의 고귀한 정신과 명예를 높이 샀을 뿐이었습니다.”

  건방짐은 전혀 없었으나 상대를 깔아보는 고상하고 교만한 말투였다.

  “자네는⋯⋯, 그렇군. 이번 세대의 왕이로군. 죽기 전에 보게 될 줄이야.”

  “제 동생과는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허허, 왜 그게 궁금하실까?”

  검은 제복을 입은 눈부신 미남이 공중에서 살며시 내려왔다. 반중력 장치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느낌도 들었다. 큰 키와 완벽한 근육질의 육체 덕인지 옷맵시도 상당히 근사했다.

  “인사드립니다. 카이젤 א 라흐블뤼크. 현 인류연합 대표입니다.”

  “라일라의 그 아들인가?”

  이에 카이젤은 쇠잔한 노인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당신은 내 외할아버지이신 초대째 위버멘쉬, 그분의 형제시죠.”

  왕은 여유로우면서도 매서운 눈웃음으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에드먼 레이필드 라크휠 레드실트.”

  사내의 말을 듣자마자 노인은 미간을 찌푸린다.

  “하하, 하긴 그 라스트네임은 혐오하시겠군요.”

  남자는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모계 혈육인 노인에게 내려왔다.

  “반갑습니다, 외종조부님. 아니.”

  그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옛 세대의 위인.

  “코드네임 알레프(א), 에드레이 테일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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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에드레이 테일란드의 젊은 시절에 대해 더 궁금하시다면 도서 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Chapter 53. fi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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