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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49회 초인들의 세계 Ch 54. 두 지혜자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2.18 | 회차평점 0 0

 

 

 

 

 

*****

 

 

 

 

 

  집 근방 거리에 돌아오자마자 윤혁은 의외의 손님과 마주쳤다. 조금 전 들었던 충격적인 일들을 마음속에서 정리하려던 마당에 때마침 대화를 나누기 가장 적절한 상대였다. 상대는 누군가를 찾아 헐레벌떡 뛰어 온 모양인지 땀 흘리며 거칠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헉헉, 다행히 무사한 것 같네.”

  “리온?”

  리온이 왜 윤혁의 집까지 급하게 찾아온 것일까? 친교를 위한 방문 같지는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졌기에 윤혁은 긴장하였다. 동료들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겼을까?

  “이틀 전부터 네 소식이 끊어져서 걱정했었어.”

  리온은 스스로의 다급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혹시라도 네가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었지.”

  “내가?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고?”

  지구 시간대를 기준으로 윤혁이 원정에서 돌아오기까지는 딱 하루가 소모되었다. 물론 그사이에 체험한 시간의 절대량은 훨씬 더 많았지만, 지구에 남은 사람들 처지에서는 걱정할 만큼 긴 간격이 결코 아니었다. 계산해보니 이틀 전이라면, 카이젤이 윤혁의 집을 방문했던 날이었다.

  “어제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그저께는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는데?”

  “너 그때부터 모든 통신이 차단되었어.”

  그동안 리온은 윤혁의 행방을 염려하여 온갖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보았다고 했다. 윤혁은 그 말을 듣고 덜컹했다. 합리적으로 추론해보면 아마 형이 벌인 일이라고 봐야 하리라. 아마 우주로 나가면서 입혀준 슈트나 다른 장비들이 지구와의 통신을 교란하는 능력을 함유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 어쩌면 집을 방문했을 때부터 통신을 막아버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혹시 너마저도 사고에 처한 건 아닌가하고 걱정했거든.”

  “사고? 내가 왜? 그건 너무 비약적인 가정 아냐?”

  윤혁은 리온이 지나치게 심려하는 것 같아 낯설었다.

  “윤혁, 단순한 기우가 아니야. 다행히 너는 무사하니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지만, 사실 벌써 이번 달 안에만 해도 여러 명의 선교사와 목회자와 신자들이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어. 전 세계 곳곳에서 말이야.”

  “뭐가 어쩌고 어떻다고?”

  윤혁은 매우 놀라서 다그쳤다. 리온은 한숨을 쉬며 지금까지의 일들을 상세하게 풀어주었다. 원래는 윤혁이 염려에 휘말리지 않도록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상의할 생각이었는데 예정보다 좀 빨리 풀게 되었다.

  “하아! 결국, 그랬단 말이지?”

  몇몇 성실한 성도들의 사고사(事故死), 리온이 모아둔 정보들을 기반으로 도출된 몇 가지 불확실한 가설. 이야기를 들을수록 윤혁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현 세상이 종말론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 소식 역시 가볍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몇 시간 전에 어르신께 들은 진실까지 떠올리자 더욱 걱정이 앞섰다. 권력을 잡은 초인들,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던 그대로 성경의 예언과 동일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형국 아닌가.

  “신수? 아니면 다른 신화 속의 괴물들?”

  윤혁은 나직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추리했다. 리온은 친구가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몰라서 갸우뚱거렸다. 아마 제로원인지 뭔지 하는 곳을 다녀온 뒤로 무언가 해석의 단서가 될 정보를 얻은 듯했다.

  “너도 뭔가를 아는 모양이구나.”

  “아직은 다 말해줄 수는 없어. 어떻게 정보를 접한 것인지도⋯⋯.”

  이 자리에서 다 털어놓고는 싶었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 어쩌면 동료들이 그에게 실망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그게 두렵다고 진실을 은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윤혁은 상황이 정리되면 기회를 봐서 친구들과 모든 진실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곧 다 알려줄 테니까. 아주 상세히.”

  “알겠어. 널 믿어.”

  윤혁은 급한 대로 리온에게 한 가지 단편적인 정보만 설명해주었다. 원정 초반에 필라 내부에 들어갔을 때 윤혁은 지구 대기권과 해저를 누비던 수많은 신화 속 생명체들을 보았었다. 물론 이미지만 본뜬 첨단 공학 기술의 산물들이지만 그 성능만은 분명 진짜배기였다. 또 카이젤의 집에서 신수들을 직접 보기도 했었고 직접 그것들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리온 네 가설이 어느 정도 맞을 거야. 악한 영들이 ‘인공생명체’ 혹은 ‘인공정신체’들을 하나의 수단 내지는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심지어 나는 그중 하나로 의심되는 목소리를 듣기까지 했으니까.”

  윤혁은 리온의 가설에 대해 사실상 확증에 가까운 증거를 주었다. 리온은 몹시 놀랐다. 동시에 친구가 이러한 지식을 도대체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이런 경이로운 극비들은 단순히 제로원에 입장했다는 것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류의 정보가 아니었다.

  ‘넌 확실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구나.’

  하지만 친구를 배려하여 더 캐묻지는 않았다. 윤혁 본인 입으로 때가 되면 전부 말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리온이 아는 윤혁은 거짓말을 고의로 내뱉을 친구는 절대 아니었다.

 

  그때 윤혁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통신 신호가 전달되었다. 송신자의 정보는 없었지만, 그 내용을 보자마자 즉각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곧 그 신호 속에서 단서를 발견해낸 윤혁은 다급함으로 심장이 뛰었다. 서둘러야만 했다. 그는 곧장 친구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신보다 배나 억센 윤혁의 힘에 리온은 화들짝 놀라 잠시 굳었다.

  “잠깐 날 따라와 줘. 어서! 너랑 같이 갈 곳이 있어!”

  “어? 으음? 아, 알았어.”

  의미심장한 황급함에, 리온은 당황하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에드레이는 서서히 스며드는 일생의 마지막 향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죽음이란 게 ‘흑염’처럼 잔혹하게 느껴졌지만, 하나님을 만난 뒤로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기력을 잃기 전 젊은 시절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마터면 땅에 묻힌 달란트처럼 버려질 뻔했던 청춘의 시간, 그것을 올바른 길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아니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친구의 선물이었다.

  그는 조용히 불과 몇 시간 전 있었던 대화를 잠잠히 회상하였다.

  “그렇게 되었던 것이군요. 이제 모든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카이젤은 모든 정보를 빼낸 뒤 에드레이를 순순히 놓아주었다.

  “역시 당신은 끝까지 나와 발란을 경계하였군요.”

  왕은 후련한 표정으로 손을 탈탈 털었다.

  “다섯 중 둘을 제외한 나머지 셋에게 나누어서 맡기다니.”

  강제로 자백하게끔 유도하긴 했지만 사실 기발한 정보는 아니었다. 카이젤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대로였다. 노인도 왕의 지략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지적 역량의 격차는 이미 너무도 거대했으며 그나마 노인이 소유했던 유일한 고지인 영적 지혜마저도 압도적인 역량으로 능가해버렸다. 에드레이도 그 사실을 피부로 체감했기에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 자칭 성녀, 그리고 레이디, 그 둘은 네게 쉽게 협조하지는 않을 거다. 자존심이 강한 작자들이기 때문에 널 신뢰하지 않겠지. 게다가 자유의지를 거슬러서는 그것을 탈취하지도 못해.”

  그저 얄밉고 오만한 아이에게 한 번 더 꾸지람을 주는 게 전부.

  “그쪽이 걱정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못 할 일은 없으니까요.”

  “거참 거만한 아이로구나.”

  “자신감이라고 표현해주신다면 감사하겠군요.”

  사실 에드레이 앞에서는 큰소리치긴 했지만, 카이젤도 마냥 아무런 고민이 없진 않았다. 둘은 그렇다고 쳐도 정작 문제는 초승달의 선지자 쪽이었다. 카이젤은 지긋지긋한 과거의 악우였던 그녀를 회상하며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때가 이르면 그녀도 제 발로 기어 나올 테니까 그때 한꺼번에 일망타진해버리자. 그는 무수한 시나리오들을 두뇌 속에서 구상했다.

  “약속대로 당신의 부탁대로 해드리죠.”

  카이젤은 다시 가면을 둘러쓰고 뒤돌아서 떠날 채비를 하였다.

  “수명 연장이나 노화 치료는 하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길로 가십시오.”

  “이 늙은이도 자네한테 몇 가지만 물어보지!”

  에드레이는 최후의 힘을 짜내어 카이젤에게 질문했다.

  “자네는 나머지 돌들을 어떻게 했는가?”

  ‘어르신께서 별걸 다 신경 쓰시는군.’

  카이젤은 속으로 시대 변화에 굼뜬 노인이라고 여겼다.

  “셋째, 넷째, 다섯째 날의 돌들은 이미 손에 넣었습니다.”

  이에 에드레이의 차게 식은 표정이 실망감으로 힘을 잃었다.

  “이미 지구의 핵과 태양의 핵은 완전히 정복해놓은 지 오래라서요.”

  카이젤은 오만하고 심드렁하게, 그러나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허어, 자네는 대체 무엇을 할 작정인가.”

  “글쎄요?”

  아마 저 노년의 현자조차도 자신이 그려내는 커다란 그림에 대해서는 감조차 못 잡을 것이다. 카이젤은 굳이 설명해줄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일일이 설명하려면 온종일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진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생각입니다.”

  스러져가는 노쇠한 몸이 허탈감에 잠시 움직임을 멎었다.

  “절대적 기준이 되기 위해……, 운명을 향해 몸부림쳐봐야죠.”

  왕은 짤막한 선언으로 자신의 선포를 마무리했다. 이미 힘을 모두 소진한 노인은 더 이상의 대화를 나눌 능력이 없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가 급격한 속도로 자만함에 물들고 있음을 직감할 뿐이었다. 카이젤이 떠나간 뒤 에드레이는 후회감에 가슴을 쳤다.

  ‘미안하구나, 내가 너에게 너무 큰 짐을 맡겨버렸어.’

  끝이 다가오는 이 순간, 작별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유언을 물려줄 후계자가 필요했다. 이미 지식과 가르침은 다른 제자에게 맡겼다. 그러니 이젠 사명을 정식으로 인계해줄 아이가 필요했다. 그리움과 애틋함이 사무치듯 속에서 솟구쳤다. 이미 보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그 사랑스럽고 싱그러운 청춘들을 마주하고 싶구나. 부디 자신의 이기심을 용서해주기를.

  그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통신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한적한 호수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아이를 기다렸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멸망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을 그런 소망을 품고서 뛰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역할도 막바지인 모양이다.

  ‘늦지 말고 와주었으면.’

  곧 있으면 생명을 연장해주던 혼의 의지력도 멈추리라. 그는 고작 1세대, 그것도 초인의 정신만 지닌 반쪽짜리 초인이었다. 그러므로 수명도 동생이나 다른 1세대와는 달리 일반인보다 약간 긴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그의 젊은 시절에도 의학 기술의 혁신은 경이로운 수준이었기에 몸속에 잠재된 질병 위험 요소는 그때 이미 완전히 제거해둔 상태였다. 덕분에 평생 추가적 치료도 없이 무병장수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강력한 초인의 정신력이 노쇠한 육체의 한계를 넘어 혼을 육신에 강하게 붙들어두고 있었다. 그가 섬겨온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지막 순간에도 존엄성을 입혀주셨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천수(天壽)를 초월케 할 현대적 기술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나노머신 정도만 있었어도 이론상 수백에서 수천 년 이상 장수를 누렸을 터이거늘. 그러나 그에겐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더욱이 이제는 혼과 육의 분리를 막을 의지력도 전부 소모되었다.

  ‘부디 주님의 은총으로 고통 없이 혼과 육이 분리된다면 좋으련만.’

  다만, 그전에 아이에게 미처 다 못한 말을 마저 전해야 했다. 마음이 아주 조금 조급해졌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때마침 기다리던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이 달려왔다. 옆에는 적갈색 머리를 한 다른 청년도 동행하고 있었다. 둘은 대단히 깊은 심려에 잠긴 표정으로 에드레이에게로 헐떡거리며 뛰어왔다. 노인 자신은 몰랐으나 제삼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대단히 위태로워보였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백발의 신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웃어 보였다.

  “와줘서 정말 고맙구나, 윤혁아.”

  야곱이 막내아들을 타지로 떠나보내기 전의 심정이 꼭 이러했을까? 자신의 백발이 무덤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아이를 운명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자신이 몹시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이의 얼굴을 보자 역설적인 평온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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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야곱은 베냐민을 이집트의 총리(A.K.A. ???)에게로 보내면서 엄청나게 두려워했었죠. 억제자를 위버멘쉬에게 보내는 것도 그와 비슷한 두려움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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