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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51회 초인들의 세계 Ch 55. 유언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2.20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에드레이가 다시금 질문했다.

  “노파심에 묻겠소. 당신은 진정 그리스도를 일생의 주인으로 신뢰하오?”

  윤혁의 아버지가 훌륭한 신앙의 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윤혁에게는 아직 이끌어줄 어른이 필요했다. 그가 더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지대가 필요했다.

  “네, 어르신. 그렇습니다.”

  “다행이구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을 ‘좁은 길’로 초대하였소?”

  “제 옆에 있는 아내의 전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구려.”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준 친구는 만난 지 얼마 안 가 헤어졌거늘 이 사람은 은인과 평생을 함께하는구나.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초인의 육체 때문에 젊은 상태로 부인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아야겠지. 이 또한 그에게는 큰 고통일 터. 마냥 기쁜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벌써 주름이 지고 있는 중년의 여성과 그 옆에 현저히 대비되는 젊고 생생한 외모의 남자. 아마 세월이 흐를수록 둘의 차이는 극명해질 것이다.

  ‘부인을 떠나보내면 긴 시간을 외롭게 보내야 하겠지.’

  마치 지금의 자신처럼. 지난 백년 간 그리운 이들과 재회하기를 기다리며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해왔던가. 에드레이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 슬픈 앞날을 희미하게 내다보고는 강성한이라는 저 사내를 위로해줄 것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최소한 저 자신보다 먼저 가족들을 전부 다 세상 너머로 떠나보내는 비극만은 없기를.

  ‘아니지. 오로지 주님 밖에서 이별할 때에만 비극이 되겠군.’

  씁쓸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인이여, 당신께 주어진 가족들을 신실히 맡아주어 감사하구려.”

  혼잣말에 가까운 에드레이의 독백이 유진의 귀에도 언뜻 닿았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 없이 묵념하는 심정으로 그 이야기들을 새겼다. 에드레이는 후련한 마음으로 안도하였다. 선량한 그 아이의 성품이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그제야 얼핏 이해가 되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안배로 인함이리라.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운 욕심도 들었다.

  ‘내 동생 칼, 네겐 몹시 미안한 말이지만, 네 딸이 아닌 저 여인이 네 손자를 품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에게 지혜의 왕처럼 판결을 내릴 권세만 주어졌더라면 난 저 여인의 품에 아이를 안겼을지도 모르지. 생물학적 기원보다는 마음이라는 방정식에 근거해서 말이야.’

  하지만 아이들이 다 자라버린 지금은 무의미한 논변일뿐.

  ‘이젠 그저 전능하신 주님께 판결을 맡길 뿐이네.’

  이제 노인은 고개를 돌려서 리온을 바라보았다. 노인에게는 이 체격 왜소한 청년의 의연함과 강직함과 의지력이 적잖은 희망의 징조처럼 전달되었다.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도 얼마나 많은 과분한 은혜들이 동행했었는가. 선교사들, 동료들, 감옥에서 회심한 자들, 교회의 지체들, 소명의 공유자들까지, 다윗에게 그러했듯 하나님의 은총은 늘 믿음의 동지들로 공급되었다. 그들은 늘 에드레이의 잠재력을 귀하게 바라봐주었고 격려해주었으나 정작 하나님의 능력은 항상 그 소박한 인생들을 통해 더 강력히 나타났었다.

  “고맙구나. 네가 윤혁과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이 귀한 아이에게도 영적 유산을 남겨주리라 결심했다.

  “외람된 말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리온이 조금 전부터 몹시 궁금했던 것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혹시 어르신께서는 사부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티아라는 내가 감시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몇 년 전 에드레이는 다른 초인들 몰래 그녀와 접촉했었다. 그는 그녀와의 대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리온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얼추 엿들었었다. 그때는 리온에게 큰 관심이나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숨죽이고 있지만…….”

  에드레이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나중에는 어떠한 존재로 변모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구나.”

  리온의 화색이 아주 조금 어두워졌다.

  “윤혁이 초인들과 관련된 중요한 진실을 내게 들어 알고 있단다.”

  리온은 말없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친구가 적당한 때가 이르면 네게도 말해줄 거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래도 사도(詐道)를 향하려는 그녀와는 다르게 너는 다행히 정도(正道)를 걷게 되었구나. 주님께 감사를! 부디 그 곧은 길에서 벗어나지 말렴.”

  “명심하겠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리온이란 조력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커다란 행운이자, 희망의 메시지였다. 예상대로 ‘아벨의 후손’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더 많은 아이가 곳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찾아낸다면 윤혁은 혼자서 무거운 짐으로 버거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여러 선교지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겨온 일들은 여기저기서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보답으로 네게는 이 책을 물려주고 싶구나.”

  노인은 품에서 성경책을 꺼내서 청년에게 정성스러운 손길로 건네었다. 물론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리온에게 성경책이 없을 리는 만무했고 노인도 그 사실을 알았다. 무언가 다른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다.

  “그 안에는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해서 정리해둔 각종 주석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들이 압축되어 있단다. 일전에 내 친구도 이런 식으로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겼었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감사합니다. 자세히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반드시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의 권능을 전해주렴.”

  “네.”

  과거 친구가 그에게 남긴 헌 책에는 복음을 요점 정리한 메시지들이 담겨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 같은 도움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현인은 오랜 연구를 통해 자신이 발견한 각종 보물을 성경책 안에 낱낱이 담아 후세가 대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책을 집필하였다.

  이제 에드레이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더 전하였다.

  “무리한 부탁이겠지만⋯⋯, 윤혁이 곁에서 끝까지 도와줄 수 있겠니?”

  “물론입니다. 그는 제 친구이자 같은 주님을 믿는 형제입니다.”

  리온도 마음속 한편으로 내심 윤혁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지만 원거리 선교란 자칫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 윤혁이 집에서 편안히 있었다면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그를 끌어들인 것이 본인에게는 의무감이나 짐이 되지 않았나 늘 우려되었다.

  “언제든 그를 돕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의무라⋯⋯, 그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우정이 더 낫겠구나. 그 애가 만일 큰 뜻을 품거든 도와주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니 친구들이 필요해.”

  이제 마지막으로 에드레이는 윤혁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꼭 펼쳐 보아라.”

  그는 종이 뭉치를 꺼내 사랑스러운 후배에게 전달하였다.

  “나라는 인간의 과거에 대한 고백이란다. 네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나는 부끄러운 죄인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고 뒤에서 활동했었다. 하지만 네게라도 당당하게 고백하고 싶구나.”

  청년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며 물기가 눈가에 맺혔다.

  “실망하더라도 부디 용서해다오.”

  노인은 청년에게서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었던 푸르른 모습을 보았다. 저 청년의 나이에 자신도 하나님을 위해서만 헌신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늦게 깨닫는 바람에 소중한 이십 대를 모두 허비했었다. 하지만 저 청년이라면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네가 이루고자 하는 뜻이 주님께서 심어주신 마음이라면⋯⋯, 그분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렴. 그분께서 네게 큰 임무를 맡겼으니 네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항상 돌봐주시고 이끌어주실 거다.”

  윤혁은 묵묵히 유언을 귀담아들었다.

  “그 사실을 믿느냐?”

  “믿고 있습니다.”

  “고맙구나.”

  이미 청년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여러 번의 만남으로 충분히 전달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한 가지 당부만 더 남았다.

  “다른 아벨의 후손들을 찾아보아라.”

  “⋯⋯네? 아벨이라뇨?”

  윤혁은 물론 곁에서 듣던 리온도 잠시 멈칫하였다. 두 친우는 잠깐 데자뷔를 느끼며 노인의 말에 담긴 의미의 무게감에 깊은 의문을 느꼈다. 노아의 시대에 이미 셋의 후예인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 모든 아담의 씨앗이 멸문되었거늘, 어찌 지금 이 시대에 카인이나 아벨의 후손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에드레이의 전언은 결코 값싼 농담이나 알레고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네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래. 솔로몬 왕이 증언했듯 한 명이서 일하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힘을 모으는 편이 낫다. 각자 장단점이 다르겠지만 같이 손에 손을 맞잡는다면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하, 하지만 대체 어디서?”

  안타깝게도 노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노인도 정답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간신히 생명을 붙들어 매던 혼의 의지력도 한계에 달했다. 머리는 차갑게 식고 숨은 잠잠해졌다.

  ‘미안.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가 되었어. 그리던 내 고향으로.’

  그는 스르르 눈을 감으며 존엄함 가운데 잠들었다.

 

 

 

 

 

 

*****

 

 

 

  고결한 흰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얘야, 이젠 고향으로 함께 돌아가자.]

  다정하고 자비롭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 많았다. 이젠 쉬어도 된다. 영원한 평안 가운데에서.]

  과거에 처음 저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꿈속에서의 경고로 받았다.

  두 번째 대면했을 때는 원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는 방패로 만났다.

  “아아, 당신을 얼굴로 뵙기를 백 년 이상 기다려왔습니다.”

  경배 바치기에 합당한, 지극히 거룩한 모습을 이제야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평생 사랑해주셨고, 또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 그가 하늘의 문을 직접 여셨다. 종은 겸손하게 고개를 낮추고,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날 이후로 줄곧 항상 네 옆에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를 괴롭히던 고통, 고뇌, 번민, 유혹은 이제 물로 씻은 듯 말끔히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외로움도, 육신의 고통도, 슬픈 기억의 아픔도 전혀 없었다. 너무도 홀가분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이제는 후회가 없느냐.]

  “아아! 당신을 뵙고 나니, 이제야 확실해졌습니다. 거룩한 나의 왕이여.”

  그의 영혼은 티 없는 투명함을 입은 가운데 왕의 발치에 엎드렸다. 아름다운 외양과 영혼을 소유한 갈색 머리 젊은이는 죄악과 고통의 짐을 전부 벗은 채 만유의 왕을 경배했다. 기쁨, 평강, 온유함, 능력이 마음속에서부터 샘솟았다.

  “제 삶은 당신께서 이끌고 이루셨던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 어서 가자. 그 아이도 너를 마중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왔다.]

  영광스러운 그분의 뒤편에 조금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그 사람의 맑고 깨끗한 모습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티 없는 순수한 모양이었다. 그도 기쁨으로 충만해 보였다.

  “안녕, 잘 지냈어? 정말 오랜만이지?”

  짙은 피부색의 남자가 먼저 반갑게 입을 열었다.

  “너도 좋아 보이네. 일찍 고향에 올라와서 행복했겠구나.”

  “물론. 마침내 만주의 주님께서 너를 입구에서 같이 맞기를 허락해주셨어.”

  “블리스.”

  “고향에 온 걸 환영해, 에디.”

  눈시울이 불거졌다. 나의 오랜 친구. 주님의 아름다운 일꾼.

  [함께 가자꾸나. 이제 사랑하는 형제들과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왕께서는 그 둘이 빛의 입구로 걸어가도록 인도하셨다.

  […….]

  만왕의 왕께서는 잠시 둘이 떠나간 자취를 뒤로 하고, 세상 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셨다. 모든 흐름을 읽는 그분에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다 보였다. 아직 이 땅에 남아 일해야 할 모든 자녀들, 그리고 그 아이가 보였다.

  [내 너와도 늘 함께하리라.]

  그러니 얘야, 시련이 와도 늘 낙담하지 말고 소망을 갖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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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블리스 윈터윈드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참고로 이번 주 수요일 분량은 여행 관계로 월요일에 함께 올렸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다음 회차는 토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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