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55회 초인들의 세계 Ch 57. 에필로그 (2)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3.03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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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고 사랑을 베푸는 일.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고, 무가치한 일처럼 보일 것이다. 혹자는 그 일을 자신의 귀만 아프게 하는 거북한 무례로 취급할 것이다. 그나마 일전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가난한 나라의 구호, 의료, 교육 활동을 도맡으며 수많은 선행을 병행하였지만, 오늘날은 선행 위에 복음을 끼워파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오늘날 구제와 선행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선한 역할을 인류연합에 빼앗긴 그리스도인들에겐 기회의 틈이 남지 않았다. 인간의 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으나 인류연합이 건설한 문명의 풍족함 때문에 사람들이 굶거나 교육받지 못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워지자 자연히 절대자를 찾는 마음은 사라졌다. 힘들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봐도 복음의 음성은 허공만 맴돌게 되었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윤혁은 가능성이 아직도 열려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인생 본질에 대한 고뇌가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대두되는 중이었다. 이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열쇠라고 여겨졌다.
‘삶이란 무엇일까?’
수명은 점차 늘고 있으며 생물학적으로 노화를 극복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한히 긴 삶을 본능적으로 꺼려했다. 이생의 삶이 허망함을 속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앞날의 불확실성이 두려워 질병과 죽음을 피하는 일에는 더욱 몰두하고 매달리고 있었다. 예수가 아니면 무엇이 이 딜레마에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혹은 ‘사람의 궁극적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세상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공허함과 목마름을 느끼며 무언가를 채워 넣음으로써 그 갈증을 해소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종착역을 발견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결국, 물질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만으론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얻지 못함을 그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부인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들도 인정해버린 셈이지.’
가난, 질병, 재난 같은 고난들은 원죄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인간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본질적 삶을 고찰하고 절대자에게로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절대자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 메시지를 인류가 기술과 문명의 힘으로 차단해버렸다. 이에 절대자는 다른 메시지를 보내셨다. 사람들이 허망한 마음을 느끼도록 잠시 내버려 두셨다. 그 허망함을 통해 자신들이 되찾아야 할 본질을 되찾고 절대자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말이다.
복음만 받아드리면 인간의 삶과 존엄성과 목적, 세 가지의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활용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낼지도 모른다. 윤혁은 마음속으로 앞으로 할 일들을 정리했다. 동료들이 아무도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밖에 할 수 없는 임무라면 어차피 해야만 한다. 그는 계획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몇몇 사람이 들어왔다. 그 수를 헤아려보니 정확히 스물다섯 명이었다. 맨 앞에 앞장선 사람은 그의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동료들과 눈짓을 나누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대표로서 뜻을 전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결심을 굳혔어.”
리온이 당당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너를 전적으로 믿고 전심으로 돕기로 작정했어.”
윤혁은 리온과 친구들의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보고 감동했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려운 선택이었을 텐데. 고마운 마음에 감사 찬양이 마음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케시드라는 이름의 흑인 청년 한 명이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강윤혁 씨가 한 모든 말들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만의 비밀로 간직할 거에요. 이후 우리와 함께할 다른 사역자들이 나타난다면 모르겠지만요. 몹시 중차대한 일이니만큼 저희도 철저히 신중을 기울이며 행동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레브가 악수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리온을 제외하면 오늘 모인 인원 중 윤혁이 직접적으로 만난 이는 레브 한 명뿐이었다. 리온의 나머지 팀원들도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강요하듯 부탁하는 건 무리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상황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정직하게 내 심정을 말하자면, 전보다는 네가 좀 더 멀게 느껴지긴 해. 이런 마음 가지면 안 되는 걸 알아. 네 잘못이 아닌 건 잘 알지만⋯⋯, 아무래도 너는 평범한 배경의 사람은 아니니까.”
“알아. 그래도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니, 윤혁 네가 사과할 일이 전혀 아니었어. 너는 오히려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준 것이니, 도리어 우리로서는 감사해야 할 노릇이지.”
레브는 웃으면서 윤혁을 위로했다.
‘고마워.’
저 친구들에게마저 형을 용서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으리라. 형을 설득하고 막는 것은 어디까지나 윤혁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그럼에도 다들 이렇게 용기를 내어 자신을 도와주니 너무도 고마웠다.
“저는 오히려 들뜨고 기대되는걸요.”
이번에는 아야코라는 이름의 여성이 분위기를 전환하였다.
“우린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아 왔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윤혁 씨가 그 진실을 파헤쳐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전해주었어요. 덕분에 주님을 전해야 할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감사할 일이죠.”
아야코의 상냥한 미소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게다가 저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을 좋아하는걸요.”
이에 윤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 지구 밖을 모험해 보았기에 그 여정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그나마 그때는 제왕 곁에서 동행했기에 안전했었지, 연약한 사람들끼리 떠나려니 막막했다.
‘그나마 이용할 수단이 초인 한 명과 형의 반지라는 게 아이러니하네.’
큰맘 먹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마당에 결국 세상 지도자와 과학 기술의 도움에 빌붙어 먹어야 하는 격인지라 어찌 보면 씁쓸했다. 하나의 흐름이려니 하고 받아드리기로 했다. 기술력과 권력도 하나님 손바닥 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니 때가 되면 그것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지.”
리온은 차분한 표정으로 현실적인 화제로 모두를 끌어들였다.
“앞으로의 계획 말이야.”
현시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우리가 도울 수 있어. 신학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옆에서 보조해줄 수 있고. 하지만 관문을 통과하거나 다른 세계들에 진입하는 일은 전적으로 네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어.”
리온이 지적한 대로 다음번 여행에서는 윤혁의 역할이 막중했다. 공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의 구조와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윤혁뿐이니까. 다행히 그에게는 지난번 여행에서 형에게 전해 들은 견문이 있었고 진에게도 지식을 전송받았기에 기본 자료는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여정 자체였다.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문제이고 외부 환경에서 받게 될 신체적인 충격을 해결하는 것도 심각한 숙제였다.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계획한 건 아니야.”
윤혁은 차분히 자신이 우주 여정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되새겼다. 그리고 미리 떠올려둔 몇 가지 청사진을 정리하였다. 어쩌면 그때의 경험은 바로 지금 이 기회를 이루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을 얼마나 신용할 수 있을지가 진짜 문제겠지.’
하지만 어차피 비전문가인 선교사들끼리만 고민해서는 진척이 없을 듯했다.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피했다. 진에게 나쁜 일을 요구받은 것도 없으니 불의한 타협은 아니리라 믿었다. 그럼에도 혹시 그자가 변덕을 부리거나 다른 꿍꿍이를 벌일까 봐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뭘 꾸미는 걸까. 원체 감이 잡히지 않으니 원.’
벅참과 더불어 우려도 섞여드는 첫 한 발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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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발의 여성이 신기한 눈으로 별천지(別天地)를 바라보았다. 그녀 눈 앞에 펼쳐진 경탄스러운 광경은 현실 세계 속의 모습이 아닌 ‘아카식 레코드’ 서버 속의 구조물들 위에 전개된 고유 유사 현실이었다.
“호오.”
위대한 지식 도서관이자 초지능의 결정체인 아카식 레코드는 자연계의 미래는 물론 인간 사회의 행동 양식까지 일정 부분 추정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였다. 비록 전지적인 실체에 가까운 ‘이데아’의 능력에 비하면 하잘것없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경탄할 만큼 탁월한 물건임은 분명했다.
그러한 아카식 레코드가 지금 전혀 엉뚱한 답을 도출하고 있었다. 종종 너무 어려운 문제를 접할 때는 ‘추측 불가’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마치 주어진 문제가 해결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인지조차 전혀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카식 레코드가 인간의 미래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없다고?”
폭광(爆光)의 퀸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실소를 터뜨렸다.
“애초에 해결하라고 줬던 문제도 별 내용이 없었거늘.”
단지 특정한 형태의 ‘신앙’을 폐쇄된 커뮤니티에 주입했을 때 퍼져나갈 영향력을 파악하는 과제 아니었던가? 초인들이 식민지 내부에 여러 형태의 종교를 주입하여 가상 실험을 벌이던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고작 그런 단순한 실험에 대한 예측조차 못 해서야 아카식 레코드 체면이 살겠는가?
“아카식 레코드는 지금껏 여러 예언을 백발백중으로 해결해왔지.”
그 덕택에 철인왕들은 효율적으로 식민지 주민들의 인생과 역사를 조종해왔다. 어떤 종류의 철학을 어떤 시점에 사회에 주입해야 하는가? 문화의 형성을 어떤 식으로 유도하면 좋은가? 특정 미신을 어떤 과학의 힘을 빌려 재현하면 좋은가? 이런 식의 매우 복잡한 사회과학 문제들에 대해서는 초인들도 아카식 레코드의 도움을 애용해왔고 그때마다 아카식 레코드는 늘 쉽게 답을 내려왔었다. 이데아만 제외하면 최고의 만능 해결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훨씬 간단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미래도 엿볼 수 없다?’
퀸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이거 골치 좀 아프겠네, 킴벨리아.”
“나도 아니까 그만해.”
자색 머리 여성의 홀로그램이 옆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이 오랜만에 아주 골 때리는 계획을 꾸미는 모양이네.”
아키라는 더욱 약 올리려는 듯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진 그 장난꾸러기는 항상 자기 양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치는 충신이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골칫거리를 만들어드리는 일에도 익숙했다. 북구 신화의 장난의 신 로키와 비슷한 타입이 바로 진이었다.
‘킹도 그런 장난을 역이용할 목적으로 진을 곁에 두는 것이겠지만.’
일이 제대로 흥미진진해지리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찾아가서 좀 혼내주던가.”
킴벨리아는 한숨을 쉬면서 아키라에게 답했다.
“안 그래도 근육질 여성이 자꾸 괴롭힌다고 나한테 종종 하소연하더라.”
은근슬쩍 진의 언행을 아키라에게 일러바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아키라는 진을 한껏 괴롭혀줄 생각에 즐거웠다.
“그나저나 이건 순전히 내 직감인데, 진 녀석이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면 나비 효과로 인해 엄청나게 큰 운명이 몰려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감시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킴벨리아가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호오. 의외네.”
킴벨리아는 스물네 명의 부관 중에서도 가장 육감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녀만의 타고난 고유 재능 덕분이었다. 이성적인 추론이 아닌 예언에 가까운 예측, 그것이 그녀가 ‘예언자’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아키라는 과연 킴벨리아 판 ‘머피의 법칙’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질지 궁금했다.
‘뭐, 나는 숙청 임무를 수행하는 번견이니까 상관할 일 아니겠지?’
아키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다른 분들이 열심히 고민하시겠지.’
흥이 다한 그녀는 임무를 위해 다른 항성계로 곧장 워프하였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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