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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56회 초인들의 세계 Ch 57. 에필로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3.03 | 회차평점 0 0

 

 

 

 

 

*****

 

 

 

  우리 은하 Galaxy-0의 47,010,987,800번째 항성계인 라크로스 성계. 이 성계에는 인공항성, 인공행성을 제외하면 일곱 개의 자연 행성이 있었다. 그중 지구와의 유사성이 가장 높은 행성은 네 번째 행성이었다. 장래 인류 거주지로 채택된 행성 중 하나였으나 아직은 개량 중이었다.

  테라포밍을 통해 지구와 유사한 환경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이 행성에는 대륙 크기 성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산맥보다 거대한 방벽을 방호벽으로 둔 채 맨틀 깊이 박힌 지하층을 뿌리로 하여, 위로는 성층권까지 뻗은 금속 요새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미가 동시에 돋보이는 성채였다. 지구의 왕은 충성스러운 부관에게 이 성채의 열쇠를 맡겼다.

  성채 안의 여러 건물 중 가장 큰 센트럴 타워.

  고전 양식의 등잔들이 수놓아진 중앙 탑 심장부의 넓은 방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우아한 자세에서 권위와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빛을 발하는 용모가 고귀한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표정에는 인간미란 전혀 없었다.

  대총통 칼리드.

  그는 카이젤의 일곱 아이 중에서 아버지의 ‘제왕의 면모’를 가장 빼닮은 첫째 아이였다. 그런 그였기에 수많은 하늘도시의 역사를 조종하는 일을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자신이 원하는 큰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하늘도시를 조율하고 제어하는 독재 군주였다.

  칼리드에게 맡겨진 역할은 비단 하늘도시 보조 통치만이 아니었다. 그는 건설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은하계 내 여러 천체급 요새와 성채들이 그의 지휘하에 건조되었다. 에너지 생산, 죄인 구금 및 통제, 기계와 물자의 생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숱한 우주 규모 건설들이 진행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미개척지를 개간하여 강력한 문명을 구축하는 철혈 군주였다.

  칼리드가 보인 눈부신 문명 건설 성과들과 화려한 정치 업적을 높이 산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높은 지위를 하사할 뿐 아니라 많은 권한을 허락하였다. 이에 화답하여 칼리드도 아버지의 충성스러운 오른팔로써 아버지가 은하계를 통제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작은 노력을 보탰다.

  오늘 그는 피로해진 정신을 회복시키는 중이었다. 세계들의 조율, 정적들과의 경쟁, 문명들을 세우거나 허무는 일 등이 그가 맡은 임무들이었다. 그는 지금껏 잘 길든 야수처럼 주인의 뜻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고독한 야수는 열심히 사냥을 하다가 고독함과 정서적 메마름에 지칠 무렵이 되면 자신만의 아늑한 동굴에 돌아와 야수처럼 몸을 웅크리곤 하였다.

  휴식 중이던 그에게 시스템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분께서 전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밀실로 이동해주시죠.}

  칼리드의 눈매가 가늘고 길게 늘어졌다. 휴식의 지루함 때문에 꺼져가던 눈동자의 불씨가 다시 모닥불처럼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끝없는 노동은 그를 피로하게, 휴식은 그를 권태롭게 했으나 유일하게 아버지와의 교류만은 그를 정복적인 정신 에너지로 채워주곤 했다.

  “알겠다.”

  그는 접견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행성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작된 코트 식 제복이 바닥에 끌리며 우아함을 한껏 뽐내었다. 그는 각종 통신으로부터 차폐된 밀실 안으로 들어가 핫 라인을 작동시켰다. 잠시 후, 방의 중앙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짙은 검은 색 실루엣이 나타났다.

  “당분간 네게 분부할 일들이 있다.”

  “네, 아버지.”

  냉혈한 같은 칼리드의 얼굴에도 미약하게나마 긴장감이 서렸다. 지구의 왕이 최측근에게 개인적인 명령을 내린다면 그 명령은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은하계 행정부를 제어하는 제1 철인왕에게 내린 명령이니만큼 사뭇 무겁고 진지한 주제일 것이 분명했다.

  “향후 몇 년간 우라노폴리스들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흐름의 변동’에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감시를 기울여라.”

  칼리드는 겉으로는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궁금해했다. 아버지께서 이 시점에 이런 지시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 가는 가설이 여러 가지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중요한 것은 당장 맡겨진 임무를 어떻게 잘 수행하느냐였다. 애초에 그는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충신이었다. 일곱 아이 중 그만큼 충성스러운 자는 없었다.

  “구체적인 사항은 이 자리에서 인계해줄 테니 머리에 새겨둬라.”

  지구의 왕은 첫째 양아들에게 각종 명심해야 할 지시사항들을 구체적으로 각인시켰다. 아울러 식민지들과 관련된 중요 행정 정보들과 수년 내에 시행해야 할 프로젝트들의 청사진과 목표를 전달하였다. 기밀 정보였기에 전달과 동시에 완전하게 삭제되었다. 슈퍼컴퓨터도 감당하기 버거운 자료량이었으나 칼리드는 그 모든 데이터를 두뇌 속에 담아두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지시하신 목표를 모두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믿는다.”

  이어서 왕은 또 다른 중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번 분기는 특별히 중요하니 이 기회에 특별 권한을 허락하지. 네 ‘현자의 눈’에 담긴 다섯 가지 유형의 ‘최면 기술’ 모두의 최대 발동 한계치를 기존의 III 단계에서 IV 단계까지로 변경한다.”

  칼리드는 순간 멈칫하였다. 고요한 흥분감에 붉은 눈의 불꽃이 좀 더 격하게 발화하였다. 최면의 힘을 허락한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사람의 정신에 간섭하는 힘’의 제약을 풀어주겠다는 의미였다. 마침 칼리드의 현자의 눈은 다른 철인왕의 현자의 눈에 비해서 인간 정신계 간섭에 적합하도록 개조된 물건이었다. 더욱이 우주 곳곳에 흩어진 광역 보조 장치들과 공명하면 몇천 배 이상 최면 능력을 증폭하는 일도 가능했다.

  ‘사람의 정신을 제어할 능력을 허가받는 건 오랜만이군.’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의로움과 명예로움을 중시하던 아버지는 정신 간섭은 최대한 신중하고 유익하고 올바르게 다루자는 주의셨다. 그런 아버지가 규칙을 일부 우회할 만큼 신경 쓰이는 중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인가? 흥분도 되면서 동시에 긴장감도 들었다.

  “내가 정한 권한 밖까지 휘두르거나 연합의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촉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들은 네 주관적인 판단에 맡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임무가 기다려졌다.

  ‘드디어 물을 만난 고기가 되겠군.’

  물론 최면의 힘에도 엄연히 한계는 있었다. 원리상 뇌의 전기 신호와 화학 반응을 조종하는 것이기에 마음 본체나 자유의지에는 직접 간섭하지 못했다. 그러나 특정한 사물이나 대상을 향한 감정, 특정 사고(思考)에 대한 집착, 감정의 형성과 분출, 특정 지식, 특정 명령 등을 주입하는 작업 정도는 가능했다. 철인왕들에게는 그 정도 간섭력이면 충분했다. 그 능력이면 사람들을 컨트롤하여 사회 시스템과 역사를 떡 주무르듯 조종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다만 좀 더 수월하게 일하기 위해서 몇 가지 지원이 필요했다.

  “임무 수행을 위해 제공해야 할 자원이 있거든 말해라.”

  양아들의 생각을 읽은 카이젤이 미리 선수를 쳤다.

  “효율적인 이종족 제어 장치와 마도 공학 기술력 지원이 필요합니다.”

  칼리드가 아버지께 즉답했다.

  하늘도시 내부에는 초인들이 수족처럼 부릴 다양한 장치가 심겨 있었다. 시뮬레이션 우주라는 이름의 환상 족쇄나 마술과도 같은 각종 신비로운 마도 기술들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원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과학 기술의 산물이었지만 원리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공포와 경외감을 심어줄 수 있는 장치들이었다. 덕분에 이런 장치들은 효율적인 보조 지배 도구가 되었다.

  이러한 장치들을 애용하는 자들은 식민지 측 관리를 돕는 우주 출신의 초인들이었다. 그런데 마도 기술 같은 테크놀로지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이종족과 같은 움직이는 유닛들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원산지인 지구의 전폭적인 기술 협력이 반드시 요구되었다.

  “그 부분은 염려할 것 없다. 부대표의 조율 프로그램이 완성되었으니 조율 프로그램의 아바타를 다섯 기 생성해 파송하겠다. 그거면 지구의 도움 없이도 안정적으로 이종족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 마도 공학 연구 자료도 제공하겠다. 지그문트에게 협력을 지시하지.”

  ‘마도왕(魔道王)이라.’

  지구에 자리한 엠페러들과의 협력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상호 간의 진보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전략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마도왕이라면 지구의 다른 초인들보다 훨씬 더 신용할 만한 지원군이었다. 성격은 그리 맞지 않지만 일 처리만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으니까.

  “네 자질을 키우기 위해서는 실전 훈련이 필요하니 이왕이면 자율적으로 해내는 편을 추천하지만, 만약 비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오게 되면 내가 직접 돕도록 하지. 다만, 앞으로 식민지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 현상들에 관해서는 숨김없이 즉각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인류연합 지도자와의 통신이 종료되었다. 대총통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동안 정신지배의 힘을 시험하고 싶어 얼마나 근질거렸던지 모른다. 이번에 맡겨진 일련의 임무들이 그동안 무료했던 일상에 무뎌진 그의 정서에 탄력적인 자극을 선사하리라 기대되었다.

  “간만에 유희 거리가 생기겠군.”

  타오르는 눈동자가 행성 너머의 찬란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일과를 마친 소녀는 잠시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섬의 하늘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낮에는 푸른 상공과 구름, 밤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수 놓인 가상의 구체 화면이 섬을 에워 두르고 있었다.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린 시절에는 밤마다 별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였다.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불평할 것은 없었다. 이 섬은 나그네들에게는 잠시 거쳐 가는 불완전한 천막이긴 했으나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은혜라고 여기며 감사하는 태도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하늘의 모습도 보고 싶어.’

  그녀는 그 이방인 청년이 보여주었던 섬 밖 세상의 하늘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섬의 하늘과 바깥의 하늘이 다름을 깨닫고 놀랐다. 그 청년은 바깥세상에서 보이는 밤하늘조차도 사실은 지구를 둘러싸는 보호막들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에 불과함을 가르쳐주었다. 진짜 하늘은 인류 손에 의해 변형되어 이미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나.

  소녀는 청년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하늘만은 절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녀는 몹시 신기해했었다.

  “눈에 보이는 하늘은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의 하늘이 아니니까.”

  청년이 대답해주었다.

  “별들이 거하는 하늘도 결국 우리들이 살아가는 땅의 연장선이야.”

  과학 지식이 해박했던 청년은 세계의 구조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려주었다. 영원한 세계인 천국은 고개를 들어서는 보이지 않는다. 천국은 삼차원의 공간 속에 속박된 협소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별빛을 통해서 보는 하늘은 그저 지구와 똑같이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 곧 땅의 세계에 불과하다. 청년은 메타포로서의 하늘과 물리적 하늘의 차이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저 하늘에도 우리들과 똑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어.”

  청년은 그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들과 같은 뿌리?”

  “그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지.”

  “그럼 그들도 지구에서 온 사람들일까?”

  “맞아, 영화나 소설 속의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최초 인류의 후손이지.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들이야. 우리 형제들이지. 진정한 의미의 외계인이란 없어. 그들도 우리가 살던 곳에서 옮겨 심어진 사람들이야.”

  “너는 그 사실을 어디에서 들었는데?”

  “흐음, 나도 어떤 사람한테서 증언을 들었어.”

  청년은 자신도 언젠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럼 넌 그곳들을 방문하고 싶어?”

  “그럴 기회가 찾아온다면.”

  “하지만 그렇게 되면…….”

  “걱정하지 마. 영영 떠나는 건 아니니까. 내 고향 지구로 돌아올 거야.”

  청년은 지구를 사랑했으나 그 못지않게 하늘 또한 사랑했다. 영적인 하늘인 천국뿐 아니라 물리적인 하늘도. 그곳들도 창조주께서 지으신 곳이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더 사랑하는 것은 창조주의 형상을 머금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땅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어디든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지구와 똑같이 소중한 곳이라고 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하늘과 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느 동화책의 말대로 사막이 오아시스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동일하게 사랑하셨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지으신 그분은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건 그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 회개한 이방 세계의 민족들이건 동등하게 사랑하셨다. 이에 소녀는 깨달았다. 그분의 사랑은 장소나 국경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구라는 행성 또한 그분의 사랑을 가둬두지는 못하리라.

  “저 하늘 너머의 사람들도 그분의 사랑을 똑같이 받아야겠구나.”

  그때 밤하늘을 감상하면서 루디아는 마음속에 꿈을 품었다.

  “그래. 사실 이미 그들도 사랑을 받았는데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날 윤혁은 자신의 소망을 그녀와 공유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알려줘야지.”

  섬에서의 만남 이후로 두 번째 공유였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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