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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57회 초인들의 세계 Ch 57. 에필로그 (4) (1부 완결)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3.03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청년과의 추억을 홀로 회상하던 중, 얀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가, 고단할 텐데 먹으면서 편히 쉬려무나.”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무화과 열매를 건넸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얀은 옛일을 추억했다.

  아렌의 공동체와 합류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중동 지방에서의 갈등 때문에 꼼짝없이 몰살당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안전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분명 감사할 일이었지만 과거의 상처는 그들의 가슴에 깊게 남았다. 마냥 편해지기는 어려웠다.

  늙은 자신도 이렇게 아프거늘 하물며 저 작은 아이는 어떨까? 8년 전 그 사건으로 몰살당한 루디아네 공동체 식구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팠다. 한창 꽃 필 나이에 외딴 세상에 격리된 그녀. 세상과 자신 사이에 쌓은 두려움이라는 벽을 쉽게 허물지 못하는 그녀를 보니 안타까웠다.

  ‘루디아는 상냥한 아이다. 각박한 공허감에 짓눌린 세상 사람들이 저 상냥한 아이의 따뜻함에 변화를 받아 마음속 얼음을 녹인다면 좋겠는데……, 역시 쉽지 않겠지. 아이에게도 너무 괴로운 일이 될 거야.’

  그렇게 고심하던 중 루디아가 먼저 얀에게 입을 열었다.

  “저……, 바깥세상에 나가보고 싶어요, 할아버지.”

  돌연 던져진 돌발 선언에 얀은 깜짝 놀랐다.

  “어쩌다가 그런 마음이 들었니.”

  “저도 고민 많이 해봤어요. 아직은 그날의 사건 때문에 세상이 무서워요. 하지만 이제 저도 용기를 내보고 싶어요. 게다가 이제는 알게 되었어요. 세상 사람 모두가 각박하고 무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요.”

  그리고 선한 마음과 큰 꿈을 품고 애쓰는 사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그런 멋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져볼 가치가 있으리라. 소중한 사람의 존재가 어둡고 탁한 이방 세계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마치 얼굴도 모를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저 하늘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저도 이대로 주저앉아서 피하고만 있진 않을래요.”

  루디아가 활짝 해맑게 웃어 보였다.

  “이미 아렌 할아버지께는 말씀을 드렸어요.”

  “얘야.”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얀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너무 오래 떠나 있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할아버지가 혹시 염려하실까 봐 안심시켰다.

  “제 가족은 제가 지켜야 하니까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그녀는 굳게 다짐하듯 재차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얀은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행보를 축복하며 격려해주었다.

  “일손 걱정 따위는 하지 말아라. 장정들이 셋이나 있고 서로 도울 이웃사촌들이 많으니 네가 염려 안 해도 좋다. 난 네가 이런 섬보다는 넓은 곳에서 자유로이 뛰놀며 네 선한 마음을 나눠주는 날을 기다렸단다. 그러니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고 용감하게 행하렴.”

  가족의 입으로 응원받는 기분은 설명하기 힘들 만큼 복잡했다. 한편으로는 벅차오르는 마음과 감격이 솟구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기 자신을 가두어두었던 알껍데기를 깨트리고 용기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망설여졌다. 연약하고 서투르니만큼 상처도 많이 입게 될지도 모른다.

  “감사해요, 할아버지. 꼭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새로운 세계에 나서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응원에 부응하고 싶었다.

  ‘너처럼 용감하고 똑똑한 친구에게도 도전이란 힘든 일일까?’

  루디아는 이방인 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만일 네가 필요로 한다면……, 이젠 내가 기꺼이 보탬이 되어줄게.’

 

 

 

 

 

 

*****

 

 

 

  윤혁은 가게에서 남아서 일을 마무리하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는 상록수처럼 젊은 아버지와는 달리 고목과도 같았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낸 흔적이 주름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녀는 늘 그것을 훈장처럼 여겼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시간을 용감하게 견뎌왔다는 증거이니까.

  유진이 솔선수범하지 않았다면, 힘들어하던 시절의 남편을 이끌어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들이 옳은 길로 향하도록 양육하고 훈육하여 인생의 참 주인께로 이끌어주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의 가정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하면 아들로서 윤혁은 평생 감사하고 은혜를 갚아야 마땅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놔두고 타지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 망설여졌다. 자식이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뛰어드는 것은 어머니에게 불효를 저지르는 일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내심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든 윤혁은 떠나기 전에라도 어머니와 각별하고 친밀한 시간을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친구들과 앞날의 계획을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서 부모님과 시간을 나누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이분들의 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특히 다정다감한 어머니를 뒤에 남겨두고 가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

  윤혁은 유진의 가녀린 등을 자신의 넓은 품에 안았다.

  “얘는! 오늘따라 왜 이리 징그럽게 군다니.”

  그녀는 뒤에서 껴안는 아들을 보며 주책이라며 장난스럽게 놀렸다.

  “그냥……, 좋아서요.”

  자식은 부모를 알지 못해도, 부모는 아들을 속속들이 잘 아는 법이다.

  “아빠한테 다 들었어.”

  윤혁은 멈칫했다. 어머니도 선교 여행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다.

  “제가 스스로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그는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걱정돼서 말리시려거든…….”

  “윤혁아.”

  어머니는 다 안다는 듯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네 결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옳은 일을 하기로 선택했으면 절대 후회하지 말고 굳게 다짐하렴. 그리고 어떤 사사로운 미련에도 발목 잡히지 마. 네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으며 오직 한 길만 걸으면 돼. 엄마 걱정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마. 아빠랑 엄마는 항상 너를 응원해.”

  이에 윤혁은 참고 있던 눈물이 조금씩 넘쳐흐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 속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뒤섞여 들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앞으로 짊어져야 할 일에 대한 슬픔까지도.

  “울지 마.”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윤혁의 눈가를 유진이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아들이 울면 엄마도 슬프잖아.”

  윤혁은 몇 시간 동안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혼자 앓던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훌륭한 내담자답게 아들을 붙들어주었다. 위로와 격려를 통해 염려를 덜어주고 앞으로 꿋꿋이 나아갈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엄마.”

  “왜?”

  “엄마는 망가졌던 아빠의 마음을 어떻게 치료해 주실 수 있었죠?”

  문득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면서 삶과 마음이 바뀌었던 과정이 궁금했다.

  “그러게. 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해.”

  어머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연약한 억새같이 특출한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에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강철 같은 요새마저 허무는 햇볕 같은 따스함과 변치 않는 선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연약함이 가득했던 과거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교제하면서 온화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변화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영적 조언자이며 복음 전도자였고 위로자이자 멘토였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맞닿는다는 게 참 예측하기 어려운 섭리더라.”

  유진은 늘 그랬듯 자신이 아닌 자신 너머의 그분을 보며 고백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엄마를 디딤돌 삼아 아빠를 만나주신 거겠지?”

  도무지 녹지 않는 강철 같은 얼음을 녹이는 따스함. 어머니의 영혼에 깃든 선한 따듯함이 부러웠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영적 은사일지도 모르겠다. 윤혁으로서는 아직 그녀의 온기를 본받을만한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연약했다. 며칠 동안 고민해보며 자신의 약점을 깨달은 윤혁은 저절로 겸허해졌다.

  ‘내게도 누군가를 변화시킬 힘이 있을까.’

  단순히 전도자의 사명을 앞둔 고민만은 아니었다. 에드레이 씨가 유언으로 남긴 말이 영적인 부담감이 되어 가슴 속에 꽉 자리 잡았다. 미래의 악을 막는 일. 그 일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제일의 과업일까. 왜 하필이면 더 좋은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자신에게 이 역할을 주신 것일까.

  ‘정말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힘이 없구나.’

  “형님 때문에 고민이 많은 모양이구나.”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엄마만큼 눈치 빠른 이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의 내적 갈등과 고민을 이해했다. 한 영혼을 진정으로 아끼고 슬퍼하는 마음. 지금의 윤혁에게서도 전에 그녀가 품었던 아픔이 묻어나왔다. 유진 역시 공허함과 죄책감으로 영혼이 메말라버렸던 성한 곁에서 그의 아픔을 공감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절감했다.

  ‘특히나 상대방에게 정을 준 뒤로는 더 감당하기 어렵겠지.’

  억지로 참던 눈물이 다시 터진 윤혁. 유진은 그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사람에게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내적인 연약함이 있어. 윤혁이도, 엄마도, 아빠도. 우리는 다 연약한 가운데 태어났으니까.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깊은 내면에는 부스러지기 쉬운 마음이 있지.”

  그러나 영혼을 구원받은 이들에게는 그 연약함을 치유해주는 힘이 공급된다. 그리고 그렇게 회복된 이들은 다른 이들의 상처와 약함과 공허함을 진정으로 슬퍼해 줄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이 받았던 그 치유를 공유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 샘솟는다. 유진은 아들에게서도 그 가능성을 기대했다.

  “주님께선 타인의 아픔을 도우려는 정성 어린 사랑이 마냥 실패로 끝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을 거야. 그분은 연민이 깊은 하나님이시니까. 윤혁이와 형의 문제도 마찬가지야. 그 해답을 어떻게 찾을지는 엄마도 몰라. 사람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제각기 다르니까.”

  눈물을 그친 윤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힘들 때면 엄마 아빠가 항상 네 편에 있음을 기억해줘.”

  “고마워요.”

  “그리고 예수님도 윤혁이 편이야.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렴.”

  윤혁은 다시 기력을 내 일어섰다. 주저앉아있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눠주어야만 한다. 흑암의 권세가 지금껏 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괴롭혀왔으니 이제부터는 반격의 봉화를 올릴 차례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 건져냄을 받아야 할, 그 불쌍한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상대하자. 힘이나 책략이 아닌, 온전한 용서와 포용과 사랑으로.

 

 

 

 

 

 

- 1부. 초인들의 세계. 끝 -

 

 

 

 

 

 

 

 

 

 

 

<2부 예고>

 

드디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우주 인류의 비밀.

그들의 기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이미 무수히 많은 문명권으로 분화되어버린 인류연합의 식민지들.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인류의 수장, 지구의 왕, 위버멘쉬.

우주 인류의 영혼과 정신과 사상과 육신을 속박하는 ‘족쇄’.

 

미혹과 왜곡과 거짓이 범람하는 세계들

마법의 세계들과 거짓 신들의 권역들.

대륙 규모의 실험실들과 거짓 화합의 장.

현실과 환상의 경계의 무너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디스토피아들.

초능력의 세계들과 조작된 진화의 세계들.

이들에게 진실과 소망을 전해줄 자 누구인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모인 자들.

영혼과 의지를 나눈 동포들.

이방의 남은 자들과 언약 백성의 후손들.

소망으로 일어선 믿음의 세 청년.

그리고 낯선 세계에서 만난 새로운 동료의 합류.

종속당한 노예들을 감옥에서 해방하고 온 우주 인류를 구하라.

 

한편 모험자들이 은하를 순회하는 동안 지구에 불어닥친 새로운 반전의 바람.

영웅들과 전사들, 신께 봉헌된 군인들.

초인들의 체스 게임.

 

그리고 암약하는 위협들.

인류의 자유를 위협하는 초인 군주들

끊임없이 미혹의 족쇄를 발명하는 천재들

철인왕들과 그들의 아버지.

그리고 초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위협, 거듭되는 검은 손의 침략.

 

억제자여, 조작된 현실에 갇혀 지배받는 자들을 건져낼지어다.

어둠 속에 묻혀있기를 택한 자들을 깨워낼지어다.

끊어진 진실을 되찾으라.

그리고 네 형제를 예정된 파멸자의 운명에서 건져낼지어다.

그리하지 못하면 온 인류에게 화가 임할지니.

거룩한 절대자의 진노를 그 누가 감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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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가 완결되었습니다. 3월 휴재 후 4월 중에 2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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