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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5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 위대한 아이들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4.02 | 회차평점 0 0

 

 

 

 

Chapter 1. 위대한 아이들

 

 

 

 

 

- 20년 전 -

 

 

 

 

  세계는 바야흐로 동 뜨기 전의 새벽을 맞이하는 단계에 있었다.

  갓 출현해 성장기에 접어든 3세대 초인들은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진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당시는 3세대 초인의 각성이 대대적으로 촉발되기 시작한 지 이미 9년 이상이 흐른 뒤였다. 전대의 이벨리아 아담즈가 힘을 잃고 흐드러지듯 쓰러짐과 동시에 지구 각지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머금은 씨앗들이 태동하였다.

  신세대 초인들의 등장은 홀연히, 동시에 시나브로 이루어졌다. 일부는 일반인으로 살아가다가 후천적으로 초인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신세대 일원 대부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초인이었다. 특정 연도에 초인 갓난아기들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태어났고 그 이후로도 몇 년간 3세대 선천 초인이 태어났다.

  이 어린 괴물들은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정신발달 과정을 거쳤다. 남들은 걸음아기, 학령전기, 학령기, 청소년기를 순서대로 천천히 밟아가며 이룰 정신적 발달을 생후 3년 이내에 완료하였다. 특히 선천적으로 각성한 초인일수록 이러한 정신적 성장 속도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심지어 성인 단계까지의 발달을 이룩한 후로도 쉬지 않고 정신적 진보를 반복하였다.

  그보다 더욱 두려운 특징은 끝없이 성장하는 재능이었다.

  21세기 이전까지 인류 역사를 거쳐 갔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재능의 상한치가 있었다. 재능이란 개념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고유의 값이자 성장 불가의 불변 값으로 여겨지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초인들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상식은 산산조각났다. 모든 초인은 화술의 재능이건 학문의 재능이건 경영의 재능이건 운동 실력이건 속임수와 술수의 재능이건 관찰력의 재능이건, ‘모든 방면’의 재능에서 상한선조차 없이 끊임없이 성장하였다.

  특별히 3세대는 그러한 특징이 한층 더 두드러졌다. 단순히 지속적으로 재능이 성장하는 것만이 그들의 특징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성장 곡선에 대한 제약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성장 곡선은 직선 성장에서 제곱 성장으로, 제곱 성장에서 지수함수의 성장으로, 그리고 이내는 수직 상승으로 변화하며 상승 폭을 가파르게 발산시켰다.

  똑같은 노력으로도 실력이 더디 성장하는 일반인과 달리, 초인들의 경우 축적하는 학습 양에 비례하여 재능 자체가 진화했다. 당연히 실력의 진보 역시 경이로웠다. 더욱이 가상현실이나 두뇌 정보 전송 등의 과학기술이 등장하면서 한 번에 대량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용량이 제한된 일반인과 용량이 무제한인 초인의 성장 격차는 더욱 극심히 벌어졌다.

  이런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뛰어들었으니 세계가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어린 3세대 초인들은 2세대 어른들이 남긴 실수를 바로잡으려 발벗고 나섰다. 그들 눈에 기존 세상은 온통 모순덩어리 실패작이었다. 2세대는 당대의 위버멘쉬를 중심으로 연합하지 못했고 각자의 비루한 정의관만 내세우느라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었으며 지구를 책임지지 않고 방관하였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어른 세대는 끌어내려야 할 존재들이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3세대는 이전 두 세대를 압도했기에 승리 자체는 당장의 염려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뒤의 일이었다. 어떤 방침으로 세상을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중심으로 뭉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유력한 3세대 초인들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미리부터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 지도자는 칼튼처럼 인류를 확실하게 묶어둘 강력한 지도력을 지녀야만 하며 이벨리아처럼 만인을 초월할 우수함을 지녀야 했다. 아울러 세상을 올바른 방침으로 다스릴 지혜도 필요했다.

  곧 그들은 유력한 후보들 몇몇에 이목을 집중했다.

  전대미문의 재능과 자질을 지닌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

 

 

 

  3세대 각성이 시작된 첫해에 출생한 아이 중 유난히 특출한 다섯이 있었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눈치챘다. 그들은 손수 세계를 조율하고자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다섯은 영웅이었고 초인 세계의 정점이었으며 예측불허의 변화를 끌어내는 원동력이었다.

  이들은 출생 및 성장 배경이 각자 달랐고 사상 역시 판이했다. 그럼에도 인류를 번영의 길로 이끌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서로 힘을 모았다. 어른들이 만든 실패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툼이 없는 새 시대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각자 생각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서로의 능력만큼은 인정했기에 다섯은 불과 아홉 살 무렵부터 금세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들은 부모 세대의 보호를 거절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섰다.

  아이들은 암약하면서 고유의 세력을 쌓았다. 그들은 곳곳에서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구하였고 유력한 조력자들과 협력을 맺었다. 기존 국가들은 하나둘 아이들의 손에 몰수되었다. 어차피 기계 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어 대부분의 산업, 군사, 행정, 경제 체계가 자동화된 세계였기에 세계를 손아귀에 넣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끄는 세력은 점점 거대해져 낡은 국가는 물론 기성세대의 초인들마저 뿌리 뽑을 단계를 목전에 두었다.

  “우리도 준비해야 해. 혁명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다스릴지 말이야.”

  한 명이 이렇게 제안했다. 다들 그 중요성을 절감했기에 금세 동감했다. 세계를 손에 넣는 것까지는 쉽겠지만 그 이후의 운영은 만만치 않으리라.

  “그래, 초인의 존재의의란 결국 인류를 성장시켜 더 높은 곳에 도약하게 만드는 것. 그 숙명을 어떻게 성취할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해.”

  아이들은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견이 엇갈렸다. 각자가 내세우는 이상향은 도무지 상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레리엔 로즈.

  그녀는 태평양 한가운데 뿌리박힌 외로운 섬, 하와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녀였다. 고고하고 신사적이며 지혜로운 레리엔은 눈부신 외양만큼이나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력과 탁월한 덕망과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도 뛰어났다. 촌에서 태어났기에 배경은 별 볼 일 없었지만, 약자들에게 선량한 친절을 베푸는, 누구보다도 명예로운 가치를 따르는 레이디였다.

  “인류를 번영케하는 사명을 꼭 지배라는 방식으로 이룰 필요는 없어.”

  정작 본인도 초인이었으나 그녀는 초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탐탁찮게 여겼다.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에만 의존하는 세상은 그 지도자가 사라질 때 발생할 큰 풍파를 감당하지 못해.”

  실제로 이전의 세계는 그걸 증명해주었다. 레리엔은 첫 세대의 초인들이 세계를 차지한 이후 전개된 역사를 지적했다. 초대째 위버멘쉬 사후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그리고 그 직후 야기된 분열과 혼돈의 시대를.

  “초인들은 뒤로 물러나야 해. 세상 뒤에 숨어서 조용히 현자처럼 사람들을 지도해주어야 해. 무리한 간섭을 시도해서는 안 돼.”

  어찌 보면 은둔 현자다운, 지극히 목가적인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초인이란 존재가 지닌 본성적인 오만함, 그리고 일반인과는 완전히 다른 무서운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말이다. 그들 속에 뿌리내린 선천적인 ‘검은 것’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혼돈으로 몰고 갈 것이다. 과거의 초인들도 그러했거늘 지금 세대는 얼마나 더 위험하겠는가.

  ‘절대로 초인들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해서는 안 돼.’

  그녀가 생각하는 초인의 이상적 역할은 조언자였다. 그들은 권력을 탐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할 때는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고 조언을 통해서 어리석음을 바로잡아주면 된다. 이 이상 나아가면 도리어 화가 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지녔던 아이가 하나 있었다.

  티아라 로페즈.

  알프스 산악 지역 출신의 상냥한 소녀.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고운 심성이 너무도 아름다워 줄곧 사람들에게 ‘성녀’라고까지 칭송받았던 아이. 티아라는 말 그대로 동화 속 삽화에 나올 것만 같은 성녀였다. 혹자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을 머금은 은발의 여인 티아라를 보고는 ‘부처가 여인으로 환생했다’라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티아라는 레리엔보다는 좀 더 능동적인 방식을 원했다. 그녀가 지향하는 목표는 화합이었다. 민족과 문화와 철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융화. 그녀는 초인들이 앞장서서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아라는 말만 앞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혼돈의 시대의 잔재들을 치유하고자 몸소 앞장서서 세상을 도왔다. 폐허가 된 도시에 물자를 지원하고 병으로 고통받거나 전쟁에서 불구가 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주었다. 분쟁 지역에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대립하는 양쪽 세력에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싸움을 멈추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껏 어떤 시대에도 보지 못했던 평화의 사자였다.

  “사람들의 생명은 소중해요. 그렇기에 분쟁을 막아야 해요.”

  때때로 그녀는 광적일 정도로 화합과 인명을 중시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분쟁을 중지시키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녀가 인간들만의 힘으로도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 믿었다. 여러 동 세대의 초인들과 다수의 일반인은 그 의견에 상당 부분 공감을 표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생각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와는 정반대로 경쟁과 자율성, 독립을 중시하는 이도 있었다. 그녀의 다섯 경쟁자 중에서도 그런 이가 있었다.

  엘 피어슨.

  갈색 피부를 지닌 아랍 출신 소녀. 진취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의 그녀에게는 실상 거창한 본명이 따로 있었다. 아랍어로 된 본명을 감추고 공용어로 이름을 지은 이유는 순전히 그녀의 정체성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야말로 진정한 예언 속의 선견자라고 칭송하며 그녀의 본명을 드높였다.

  “각 민족에게는 주권이 있어. 굳이 통합하려고 무리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 없어. 인류는 경쟁을 통해서 진보해왔다. 조만간 우주로 진출하게 되면 더욱 다양한 민족으로 분화되겠지.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경쟁을 통해 다양성을 획득하면 인류는 더욱 강력하고 튼튼해질 거다.”

  엘은 독립과 분리주의를 사랑했다. 과도하게 혼합하는 것은 싫어했다. 심지어 그녀는 전쟁조차도 사회악이 아닌 필요악이라고 여겼고 그 의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민족별로 각자 터전으로 삼을 행성을 발굴하고 개척해서 다양한 문명을 건설해야 해. 초인들은 자신의 출신 민족을 도와 그들이 안정적으로 세계 바깥으로 진출하는 일을 도와야 해. 필요에 따라서는 경쟁도 일으키고 때로는 협력을 유도하되 적절한 균형점을 도모해야 해.”

  그렇다고 엘이 무조건 투쟁만을 중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균형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녀의 신념에 따르면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선의의 경쟁이었다. 따라서 불필요한 경쟁은 억누르되 유익한 경쟁은 부추기는 것이 엘이 생각하는 초인의 역할였다.

  그렇기에 레리엔이나 티아라와는 달리, 엘은 우주 시대의 필요성을 강하게 설파하였다. 좁은 지구 안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면 공멸이 임할 테니까. 그녀는 인류가 다양한 민족으로 분화하여 각자 여러 항성계를 정복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다. 필연적으로 그 후에 벌어질 우주 단위의 경쟁은 인류라는 종족의 총체적 성장을 돕는 촉진제가 되리라 확신했다.

  “그대의 사상은 너무 위험해요, 피어슨 양.”

  티아라는 종종 엘에게 이렇게 반론하였다.

  “인간의 본연적 이기심과 탐욕적인 본성을 화합의 힘으로 억누르지 않는다면 무리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파국으로 이어지고 말 거에요.”

  티아라와 엘은 합의점에 결코 도달할 수 없었다.

  “어차피 네가 생각하는 미래 역시 거짓 평화잖아. 종교와 사상의 화합? 그런 꿈같은 소리가 정말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엘도 티아라의 사상에 반발하였다.

  “인간은 어차피 온갖 이유를 들어서라도 싸울 명분을 금세 만들어내.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그 투쟁을 건강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게 지혜롭지.”

  엘은 혼돈의 시대 때 인류가 이룩한 경이로운 기술력 발전을 주목했다. 비록 그 시대가 어둡고 암울한 역사였다지만 눈부신 지식 성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부정적인 면을 잘 도려내고 긍정적인 면만을 추출한다면 분쟁은 오히려 역설적인 최고의 기회가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상반된 의견이 그녀들과 대립하였다.

  ‘너희의 생각은 그저 무익한 탁상공론이야.’

  발란듀르비치 솔로브예프.

  북쪽 시베리아의 차가운 동토에서 온 회색 머리 미소년.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초인. 광기라는 말은 그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였다. 그의 차분하고 신사적인 겉모습 뒷면에는 무서운 사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좋은 표현으로는 악동, 무서운 표현으로는 소시오패스였다.

  그는 초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과거의 망령인 네오 오더의 잔재를 짙게 물려받은 아이였다. 직접적 연결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의 영혼은 네오 오더를 지배했던 스피릿과 동일한 망령에 물들어 있었다. 그의 마음은 신보다 악마를 사랑했고 혁명과 독재를 사랑했다. 그의 영혼은 라스푸틴의 마성보다 짙고 검었으며 전제 군주의 기질은 스탈린의 기질마저 능가했다.

  “우리는 이전 세대처럼 모든 인간 위에서 군림해야 해. 이벨리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어. 현 세상에는 강력한 단일 권력 체계가 필요하다.”

  그는 막강한 제정(帝政)을 건설하기를 원했다. 매력을 통해 인류의 사랑을 획득한 칼튼과는 달리 힘과 공포심을 앞세워 정점에 서기를 갈망했다. 그렇기에 그가 제일 먼저 제안한 바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굴복시켜 세력을 하나로 통일시키자는 주장이었다.

  자연히 다른 초인들은 그를 경계하였다. 발란듀르비치는 너무 위험한 자였다. 그의 사상을 따라가다간 자칫 새로운 네오 오더가 부활할 판이었다. 그런 통치 방식은 초인들이 생각하는 인류애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한편 발란듀르비치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사상을 지니되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단일 정부를 꿈꾸는 자도 있었다. 바로 마지막 다섯 번째 아이였다. 그는 신사적인 매력, 타고난 자질, 사람을 이끄는 카리스마를 한 몸에 지닌 자였다. 사막이나 동토나 섬이나 산지에서 온 경쟁자들과 달리 도시에서 자라온 그 귀공자는 초대째 위버멘쉬의 외손자였다.

  카이젤 라흐블뤼크.

  그는 사생아였다. 칼튼도 구 유럽 대륙 유력 가문이었던 레드실트의 사생아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첫 아내와 사별한 후 다른 연인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었거늘 흥미롭게도 그 딸도 젊은 동양인 사내를 유혹해 사생아를 잉태하였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삼대에 걸친 사생아의 운명에 찌들어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누구보다 귀한 핏줄을 타고났다. 그래서 만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또한 출신을 떠나 본인 자신도 자타가 인정하는, 역사상 최고로 우수한 인간이었다. 소년 시절의 카이젤은 태어날 때부터 최고의 완벽함을 소유한 인간이었다.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절정의 미남이었고 가장 탁월한 두뇌와 재능, 그리고 최상의 신체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어찌나 대단했던지 초인들마저도 그를 두고 ‘초인들의 초인’이라고 칭하였다.

  그가 구상하는 미래는 조금 특이했다.

  ‘세계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건 고작 첫 단계에 지나지 않아.’

  그는 노골적으로 강력한 전제 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설픈 평화니 공정한 민족들 간의 경쟁이니 하는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강력한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울타리가 필요했다. 그 울타리는 전 인류를 막강한 힘으로 통합하는 동시에 인류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화합까지 안정적으로 포용해야 했다. 초인들은 대놓고 공포와 힘으로 지배하지 말고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시스템을 통해 세상을 확고하게 조율해야만 한다. 이것이 카이젤이 구상하는 청사진이자 지론이었다.

  발란듀르비치와 카이젤의 정치 지론은 방법론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발란듀르비치는 유혈을 일으켜서라도 지구 내부에서 강제적 인류 통합을 이룩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카이젤은 엘, 티아라, 레리엔, 발란듀르비치의 사상과 방식에서 유용한 점을 취사선택해 수용한 뒤 자신의 방식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온화하고 안정적으로 빚어내었다.

  그는 지구 내부의 통합보다는 우주 통합이 우선시되어야 함을 인지했다. 당시는 아직 테라포밍 기술의 한계 때문에 인간이 지구 바깥에 거주하지 못했으나 인간이 뿌려놓은 기계 시스템은 이미 은하계 곳곳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다. 카이젤은 먼저 인외(人外)의 존재들을 철저히 인간의 권세 아래 속박해둘 계획을 세웠다.

  인간끼리의 화합과 통일은 천천히 해결해도 좋다. 먼저 지구 바깥의 시스템들을 단일 권력을 기반으로 통합시키자. 그러면 자연히 우주를 개척하는 원동력도 하나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지구의 인간들도 그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해 하나로 뭉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 하에 카이젤은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무인 시스템을 장악하는 데에 앞장섰다.

  사실 이 또한 더 큰 계획을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카이젤의 진정한 관심사는 애초에 인간들을 통합하는 일이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그 이후에 있었다. 항성계, 은하계, 은하단, 가시(可示) 우주를 넘어 무한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우주를 막강한 인류 문명 아래 굴종시키는 것. 그는 만물을 아우르는 전무후무한 강력한 기술력과 국력을 지닌 초고도 문명을 건설하고자 했다.

  ‘한심하게도 다들 단기적인 시선에 사로잡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군.’

  그가 판단하기에는 다른 초인은 물론, 네 명의 경쟁자들마저도 제대로 된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당장 경쟁을 끝내고 싶었으나 친구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기에 한동안은 공개적으로 짓누르지 않고 협력을 꾀했다. 그는 친구들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해가면서 공존을 꾀하였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승리의 무게추가 카이젤에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그의 전략 자체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것은 둘째치고, 능력의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 나머지 넷이 따라잡지 못했다. 열 살 때만 해도 엇비슷했던 다섯 명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하나가 나머지를 압도하게 되었다. 카이젤은 타인의 재능과 경험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장 용량에도 제한이 없었기에 격차는 나날이 벌어져 갔다.

  아이들이 열여섯이 되던 해에 왕관의 향방이 확정되었다. 견해를 조율할 필요조차 없었다. 3세대 초인 대부분은 카이젤을 새 시대의 위버멘쉬로 낙점하고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기성세대와의 분쟁 역시 일찍이 정리되었고 남은 소수의 2세대와 1세대들은 카이젤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레리엔과 티아라는 독재가 썩 탐탁지 않았으나 평화를 원했기 때문에 순순히 물러섰다. 그들은 카이젤과 중립 계약을 맺었다. 권력과 재산을 탐하지 않고 후학의 양성, 세계를 위한 봉사, 그리고 학문 발전에만 몰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카이젤은 둘이 제국 정세에 간섭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엘과 발란듀르비치는 속으로 분개했다. 엘의 경우에는 신 인류연합이라는 제국의 존재를 인정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 생각에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괴물 같은 시스템이었다. 반면 발란듀르비치는 순수한 개인감정으로 카이젤을 적대하였다. 애초에 둘은 각자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기에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또 카이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조부의 대적이었던 집단의 정신적 후계자인 발란과 손잡을 이유가 없었다. 둘은 서로에게 적대와 척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양팔 저울은 이미 균형을 잃었고 흐름은 한 방향에 고정되었다. 이내 카이젤은 은하계 구석구석을 장악하여 우주 문명을 건설하였고 인류는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발전을 이룩했다. 카이젤의 우수한 청사진은 어김없이 최상의 유효성을 실증해내었다. 이에 각지에 숨어있던 다른 인재들 역시 새 왕 앞에 자발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지혜로운 초인들은 누구 편에 붙어야 할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초인들이 자발적으로 왕을 모시자 나머지 인류도 자연스럽게 왕에게 복속되었다.

  그렇게 결판이 난 후 어느 날, 발란듀르비치와 엘이 예상 밖의 행보를 선보였다. 분리주의의 극과 전제주의의 극, 양극단을 대표하는 둘이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이미 인간 사회의 권력은 물론, 우주 기계 시스템의 제어권도 카이젤의 수중에 있었기에 엘과 발란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른바 시스템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약점을 공략하는 무정부주의적 계획. 초인의 존재의의인 인류의 번영마저도 부정하는, 자기 모순적인 자살적 선택지였다. 카이젤에 대한 반감이 이 우매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도록 둘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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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컴백했습니다. 이번 2부는 반기독교적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만큼 진리와 거짓에 대한 폭로가 많으므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는 적응 겸 잠시 템포를 조금 늦출 예정입니다. 대신 1화의 분량을 많이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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