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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6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2. 악몽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4.04.11 | 회차평점 0 0

 

 

  (주의 : 상당한 양의 폭력성이 담긴 잔인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이전 회차에서 계속)

 

 

 

 

  “슬슬 입을 열지 그래?”

  “암호 말이야. 우리의 구속을 풀어줄 방법을.”

  하지만 희생물은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싸늘하게 상대를 노려보기만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로서는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조차 안 나오는 요구사항이었다. 사회의 지엄한 합의에 따라 처벌당한 자들이 무슨 요구를 지껄인단 말인가. 게다가 사회를 어지럽힐 악한들을 풀어준다고? 기가 찼다.

  “어쩔 수 없지.”

  고문을 주도하던 사형수가 씩 웃으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곧 있으면 제발 죽여 달라고 눈물 콧물 짜면서 빌게 될 거야.”

  그곳에 모여 있던 수많은 구경꾼이 모두 낄낄 웃어 재꼈다.

 

  현재 전 세계 곳곳의 교도소에서 워프된 수십만 명 이상의 범죄자가 이곳 거대 원형 광장에 모여 있었다. 대다수가 국가적 흉악범 및 테러범으로 무려 45% 가량이 중동, 동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출신 혹은 그 지역에서 출아된 난민 출신이었으며 35% 이상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랐거나 과거 이슬람 출신이다 변질되거나 배교한 자였다. 지역적, 종교적 문화권의 영향인지 이들은 잔인무도했다.

  엄청난 수의 인원이 거대한 광장에 둘러앉아 가운데 놓인 고문장에서 사내가 처절히 망가지는 장면을 감상하며 즐겼다. 그들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은 사내의 수치와 고통을 행복해했다. 사실 원형 광장이 놓인 아공간은 붕괴할 가능성이 컸기에 사형수들 본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다. 하지만 괘념치 않았다. 설령 왕과 함께 이곳에서 물귀신이 된다 해도 만족할 기세였다. 혹여 죽더라도 좋으니 족쇄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만 있다면 희박한 가능성에 도박을 걸어볼 생각이었다.

  “영상에서 알려준 대로라면 부하들이 이놈을 구조하기 위해서 격리된 아공간 파편에 침투할 거야. 뭐, 그 전에 붕괴할 수도 있겠지. 구조대가 와도 어차피 우리는 처형이다. 깡으로 버티면서 최대한 죽기 살기로 그를 몰아넣어야 해.”

  일단 자유를 얻어낸 뒤 그다음 일은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 혹시 아는가. 왕만 죽인다면 사회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르지. 사형이 예정되었던 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공멸적인 결말이 더 반가웠다. 세계가 망가지면 자유의 몸이 되어 얼마든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수 있으니까. 결국, 어찌 됐든 서둘러 왕의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고문은 계속 진행되어 어느덧 백 시간을 넘겼다. 바깥에서는 아공간 내부와 시간이 다르게 흐를 테니 최소 몇 달은 지났으리라. 희생자와 고문자들 모두 시간 감각이 둔해졌다. 쉼은 주어지지 않았다. 잠시 고문이 중단될 때도 탁 트인 공터에 묶인 만신창이의 사내를 향해 사람들은 돌을 던지며 조롱을 계속했다. 심지어 수백 명이 둘러싼 채 사내의 몸을 향해 대소변을 누기까지 했다.

  불행히도 사내의 신체는 노화와 병에 저항력이 강했고 무적의 회복력까지 지녔다. 그 때문에 보통의 고문 한계보다 몇 배 이상을 고문당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수난을 가중하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악착스레 버텼다. 들개들의 협박과 조롱에도 놈들이 원하는 것을 절대 주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범죄자들은 사내의 가장 수치스러운 신체 부위를 잔인하게 고문하기 시작했다.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 얇은 종이 말이, 날카로운 철사, 전깃줄, 뜨겁게 달군 인두가 동원되었다. 쇄도하는 날카로운 바늘의 행렬이 고슴도치 같은 몰골까지 자아냈다. 하나 같이 입에 담기 힘든 흉측한 만행이었다.

  “끄아악!”

  불한당들은 사내의 하체에 못을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둔기로 정소들을 두들겨 다 터지지만 않을 정도의 세기로 고통을 끝없이 가미했다. 망치로 양쪽 정소를 반복해서 두들기던 악당들은 마침내 한쪽 성선(性腺)을 연약한 계란 으깨듯 처참하게 부숴버렸다. 그들은 나머지 한쪽도 언제든 터뜨리겠다며 칼과 망치와 못으로 찌르고 위협하면서 극도의 공포감과 신체적 고통을 심어 주었다.

  “크아아아악!”

  억세게 버티던 그조차 극렬한 괴로움에 소스라치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는 쓰레기들에게 머리를 숙일 생각이 없었다. 이에 방식이 더 치졸하고 잔인해졌다. 그들은 회음부로 직접 고압의 전류를 흘려보냈다. 또한 밑창 없는 의자에 앉힌 후 묵직한 추로 아래를 두드려 패기를 반복하며 잠도 재우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독종은 처음 보는군.”

  끝까지 굴복지 않는 희생양의 독기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어느덧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아공간 결계가 서서히 흐드러지는 듯한 모양이 관찰되었다. 왕을 구조하려는 수하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얼마 안 있으면 그들이 이곳에 진입해 주군을 구해내는 데 성공할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칼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한 명이 예리하게 갈린 얇은 면도칼을 들었다. 그는 엉망진창이 되어 탈진한 사내를 발로 쓰러트리고 사내의 약점을 움켜쥐었다. 얇은 칼날이 연한 생살을 파고들었다. 저며지는 상처에서 선혈이 스며나왔다.

  “살살 다뤄. 완전히 절단되지는 않도록.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려.”

  “비엔나소시지처럼 칼집을 내주어 저며주면 딱 맞겠군.”

  끔찍한 외마디 비명이 피비린내를 머금고 공간을 진동시켰다.

 

 

 

 

 

 

*****

 

 

 

  “크윽! 커헉!”

  그는 거친 비명과 함께 벌떡 잠자리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고통스러운 꿈의 시간에서 벗어나 겨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젠장.”

  그 사건으로부터 벌써 지구 기준 9년 이상이 흘렀다. 타임필드 속에서 산 시간까지 포함하면 수만 년 이상이다. 오래전 자신의 몸을 최초 실험체로 피코머신 기술을 완성한 이래로 그는 불로의 몸이 되었다. 덕분에 시간이 압축된 타임필드 내부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억겁의 세월을 존재해왔었다. 그런데 그토록 긴 세월을 보내고도 아직 고문의 정신적 충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악몽은 매일 밤 점차 생생해지면서 강도를 더해갔다. 지나치게 뛰어난 기억력 탓에 모든 장면이 뚜렷이 재현되었다. 결코 벗어나지 못할 저주가 씌워진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의 악몽은 그의 자아를 지탱해주는 고정점이기도 했다. 매일 그에게 불수의적으로 흘러들어와 융화되는 방대한 양의 인격 데이터, 경험, 재능, 지식을 견뎌내기 위한 고정점. 누군가 세상을 떠날 때마다 그 영 데이터가 의지와 상관없이 사내의 일부분으로 흡수되는 일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었다. 어렸을 때도 간간히 일어나긴 했으나 최근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2차 각성.’

  초인들만의 학술 용어로 1차 각성이란 인간에서 초인으로의 도약을 뜻한다. 이와 구별되는 2차 각성은 초인에서 위버멘쉬로의 각성을 뜻한다. 카이젤은 그날의 사건으로 목숨을 위협받으면서 2차 각성을 겪었다. 납치되었던 날, 고문 끝에 정신을 잃으면서부터 진화의 변곡점을 거쳤고 그 시점을 기점으로 인격 데이터의 융합 작용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문으로 남겨진 극심한 트라우마가 2차 각성 탓에 무제한 증가된 인격 데이터 흡수의 홍수에 그의 정체성이 매몰되지 않도록 고정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원.’

  그 사건은 그에게 선명한 흔적을 남겨주었다. 정신적 충격, 반복되는 악몽, 2차 각성과 위버멘쉬로서의 정체성 확립, 인격 데이터 강제 흡수로 인한 매몰 위험, 그리고 처참하게 일그러져 회복조차 안 되는 상처까지. 다른 신체는 전부 복구되었으나 유일하게 치부에만은 영구적인 흉한 흉터가 남았다. 그러나 그 상처의 수치심은 악몽의 무게에 비하면 가벼운 형벌이었다.

  매일 밤 악몽의 연쇄에 묶인 현 처지에는 본인의 책임도 일조했다. 그가 제작해낸 ‘이데아(IDEA)’를 직접 뇌에 결합한 이후부터 악몽은 더욱 악화되었다. 시뮬레이션 우주들을 통제하는 시스템, 이데아는 카이젤의 뇌와 혼 속에 본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데아와 결합한 이후로 카이젤은 잠들 때마다 최고 심도의 시뮬레이션 우주로 내려가 최소 수억 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잠든 상태로 수많은 고찰과 사색을 사고하면 서서히 정체성을 잊어갈 때쯤 고문의 악몽이 일종의 신호탄으로 작동하여 그를 다시 현실로 끌어올리곤 했다. 수면 때마다 그는 이러한 불쾌한 연쇄를 거듭 체험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지?’

  각성 직후마다 으레 밀려오는 정체성의 혼란을 애써 밀어내며 카이젤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우람하고 건장한 체격과 섬세하고 수려한 조각 같은 근육이 광채를 내었다. 본래 그는 잠잘 때는 옷을 걸치지 않는다. 옥죄이는 느낌을 무의식중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땀을 씻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두터운 근육을 향해 떨어지자 악몽의 여운이 조금 가라앉았다. 조금 진정이 된 그는 조용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자타공인 최상의 육체였지만 그럼에도 몸 구석구석에 그날의 공포감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꿈에서 그들이 자신을 난도질하고 망가뜨리던 섬뜩한 기억이 선명했다. 몸 아래 쪽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흉하게 일그러진 중심부가 보였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우수한 존재인 그에게 있어서 모순점과도 같은, 뿌리 깊은 수치심의 근원. 그때의 고문으로 망가진 이후로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는 놈들이 심겨준 흉터와 장애를 일부러 지우지 않은채 악심으로 간직했다.

  ‘악몽을 꾸지 않은 적이 얼마나 되었더라?’

  거의 매일 빠짐없이 그날을 재경험했던 것 같다.

  아, 최근에 딱 한 번 편히 잠들었던 적이 있긴 했다. 친아버지네 댁을 찾아가 숙박했을 때. 그때는 동생과 밤새 웃고 떠들고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잠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악몽도 없이 편안한 숙면을 누렸다. 잠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형을 곁에서 재워주는 동생이 상상됐다. 어이없는 생각에 절로 실소가 나왔다.

  “도련님. 들어가도 될까요?”

  바깥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씻는 중이니까 기다려, 겔다.”

  “알겠어요.”

  사내는 몸을 닦고 속옷을 입은 채 다시 침실로 나왔다.

  “침실이 너무 많아서 찾아오는 데 복잡했어요.”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해파리 형태의 인형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나름 귀여운 형태로 디자인되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잖아.”

  “하긴 미연에라도 암살 위험을 막으려면 그렇게 해둬야겠죠.”

  해파리 인형의 이름은 겔다. 놀랍게도 그녀는 인공지능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오래전 불연의 사고로 뇌를 제외한 전신 부위가 훼손되는 바람에 저 새로운 육체에 뇌를 이식시켰다. 다시 말해 저래 봬도 인간이다. 변신이 가능한 육신이기에 사람 형태로도 변할 수는 있지만, 그녀는 저 모습을 더 좋아했다.

  “도련님, 많이 힘드세요?”

  “이젠 익숙해.”

  “또 악몽을 꾸신 거죠.”

  “그래,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겔다는 카이젤의 커다란 등과 어깨를 부드러운 촉수로 어루만지며 토닥였다. 좀처럼 남에게 기대지 않는 그였으나 손길이 나쁘지 않은지 잠자코 있었다.

  “저는 종종 도련님이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거대한 의무의 속박에 일부러 옭아매지 말고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는⋯⋯, 어머니와는 정반대로 말하는군.”

  본명 겔러트 다이앤. 그녀는 라일라가 데려와 사용인으로 거둬들인 전쟁고아 출신 소녀였다. 그녀는 여주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여주인의 외아들인 카이 도련님을 갓난아기 시절부터 보살폈다. 열일곱 살의 소녀가 아기의 유모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장 과정에서 카이젤이 그나마 유대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대상은 그녀가 유일했다. 최근 들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는.

 

  눈의 여왕이라는 이명(異名)을 소유한 2세대 초인, 라일라.

  그녀의 외아들, 초인들의 왕, 카이젤 라흐블뤼크, 카이.

  시녀인 겔러트 다이앤, 겔다.

  안데르센의 어느 동화 속 세계와 절묘하게 일치하는 이름들.

  “내가 너를 그런 몸으로 세상에 속박해둬서 원망하진 않았나?”

  사고로 어머니가 목숨을 잃었던 그날, 겔다도 같이 휘말렸었다. 지금의 특수 소재 육체는 카이젤이 직접 제작해주었다. 특이하게도 겔다는 사고로 인해서 혼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인지 특수한 몸을 얻은 뒤로는 인간 신체를 다시 입기를 거절해왔다.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재조립 가능한데도. 엄밀히는 자의지보다는 혼과 무의식이 거절 반응을 일으키는 쪽에 가까웠다.

  “오히려 저는 도련님과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겔다가 온전한 몸 대신 인공 육체에 남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도련님이 지난 날에 입은 몸과 영혼의 상처를 고치지 않고 내버려둔 것을 알기에 그녀 역시 이 땅에 남는 동안에는 자신의 옛 상처를 고치기를 고의적으로 포기했던 것이다. 그와 함께하는 동안 그의 아픔도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그런 속마음은 감추고 도련님을 상냥히 위로했다.

  “제가 있잖아요. 힘드시면 조금 어리광부리셔도 좋아요.”

  그는 말없이 피식 웃었다. 겔다는 늘 한결같이 곁에 있었다. 만약 가족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왔었다. 늘 목말라했던 감정. 동생과 아버지는 자신을 뭐라 생각할까? 그들은 자신을 한 피 나눈 식구로 여겨줄까? 이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자격으로. 과도한 욕심은 실망만을 남기는 법이다. 게다가 동생에게 있어서 자신은 대적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유대감으로 포장해보아도 변하지 않는 사실. 그런 생각이 들자 왠지 기운이 빠졌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안대를 낀 아름다운 여성이 방 안에 들어왔다.

  “잠시 나가 있어 줄래, 겔다?”

  카이젤은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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