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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6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 하늘도시 최초 진입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4.30 | 회차평점 0 0

 

 

 

 

 

*****

 

 

 

  그 시각, 일행은 우주선에 남아 윤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본체와의 연결을 끊는 편도 고려해보았으나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여 일부러 연결을 유지해 두기로 했다. 불시에 출발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우주선의 조종과 관리는 인공지능의 몫이었고 윤혁은 자리에 없었기에 둘이서 따로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다만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 단둘이서 고립된 상황은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괜히 밀려오는 불안감을 쫓아내기 위해 리온이 먼저 말을 걸었다.

  “두려우신가요?”

  “네? 아, 조금은요.”

  출신지가 아예 다른지라 둘은 아직 막역할 정도로 편한 관계는 아니었다. 예의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동료 사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앞으로 수년 이상 여행을 같이할 동료인 만큼 가까워지는 편이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막상 와보니 지금까지의 준비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루디아는 온전히 우주에 적응이 되지 않는 심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비록 인형의 몸 덕분에 우주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아무런 물리적 장애가 없다지만, 우주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은 여전히 존재했다.

  “과거에는 우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크나큰 모험이었다죠. 목숨을 건 도박이었어요. 불가항력적인 공포 앞에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순례길이었죠. 지금은 지식과 기술력이 발전한 덕에 손쉬워진 편이지만요.”

  리온 역시 무한의 공간이 주는 순수한 위압감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간이 처음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오늘날 비행선을 타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 나중에는 이러한 우주여행도 일상생활처럼 되겠지. 아직은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섬 안에서만 몸을 웅크리고 지낼 때는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몰랐어요. 지구만 해도 제게는 부담스러우리만큼 큰 무대였죠. 그런데 정작 그 바깥의 땅조차도 우주 전체에 비하면 지극히 왜소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네요. 하염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루디아가 조용히 감상평을 읊었다.

  “차라리 제 쪽이 더 부끄럽네요. 저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으니 말이죠. 사뭇 반성하게 되네요.”

  리온이 대답했다. 돌아보니 그도 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17세기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구대륙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이 온 땅에 전해졌다고 여기고 안주하였다. 세계관이 좁다는 것이 그들의 한계점이었다. 리온은 자신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했노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루디아는 도리어 이웃을 위해 애쓰는 리온을 칭찬했다.

  “그래도 자신의 발이 닿는 곳까지만이라도 성실히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가까운 곳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심적으로 가장 먼 곳이니까요. 주님께서 보내신 땅끝이란 비단 오지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귀에 닿는 모든 이웃들을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씀해주니 위로가 되네요. 뭐,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죠.”

  “네, 같이 힘을 모아 잘해나갔으면 해요.”

  사실 위안을 주기는 했으나 루디아도 은근 속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그녀로서는 세상 밖으로의 본격적인 여정은 이번이 첫걸음이었다. 비록 같은 지구 토박이 신세라지만 리온은 복음을 위한 일념으로 넓은 이방을 배회해온 사람이기에 경험은 많은 편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그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혁이가 제게 손을 내밀었을 때는 당장 기쁜 마음으로 따랐지만……, 아직 저는 제게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동료들 가운데에는 훨씬 더 뛰어난 실력과 나은 성품을 지닌 분도 많으니까요.”

  아직 미숙함이 많은 만큼 동료의 도움을 몹시 필요로 하는 그녀였다.

  “글쎄요. 자격의 기준을 결정하는 건 저희가 아닙니다. 모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다른 사람도 아닌 루디아 씨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주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계획하셨다는 방증입니다. 저희는 그에 순종할 따름이죠.”

  루디아가 은연중 내비친 불확실의 심리를 리온이 부정했다.

  “하지만…….”

  “그리고 누구도 당신이 부족하다고 여기지도 않고요.”

  그 담담한 어조의 말에 그녀의 혼은 염려 가운데서 번쩍 깨어났다. 그 말은 리온의 진심이었다. 어차피 팀 전체의 역량이 연약한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과거처럼 조직적으로 교회의 지원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며, 비록 같은 뜻을 갖고 모였다지만 각자 특색이 다양해 오합지졸에 가깝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인원수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리온과 선교팀은 그분께서 보내주신 일꾼이라면 누구든 기쁘게 맞이할 작정이었다.

  “윤혁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이죠?”

  리온이 질문했다.

  “섬에서 한 번, 그리고 윤혁이네 집에서 한 번이요. 아, 이번 여행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네요. 확실히 서로를 완전히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죠?”

  “짧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깊고 튼튼한 신뢰를 쌓았군요.”

  루디아는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솔직히 의문이랍니다. 인간관계에서 한 사람이 온전히 상대를 이해하려면 오랜 만남이 요구되는데 윤혁이는 저를 어떻게 믿고 이런 큰일에 동참해 줄 것을 선뜻 제안했을까요?”

  “때로는 찰나의 짧은 인연만으로도 타인의 진실한 모습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신뢰의 깊이란 반드시 공유해온 시간의 길이와만 정비례하지는 않아요.”

  리온은 자신과 이전 동료들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 윤혁의 만남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윤혁과 리온이 처음 만난 때는 현시점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심리적인 장벽을 허물었고 이내 뜻을 함께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갔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 영혼의 연결과도 비슷한 무언가가 생긴 것 같은 경험이었다.

  “저희로서는 윤혁이 제안을 받아줘서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처음 선교에 동참하자고 제안한 쪽은 리온 일행이었다. 경험이 많았던 그는 윤혁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주었다. 덕분에 윤혁은 성실한 전도자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아직은 아마추어에 가깝지만, 장래가 기대되었다.

  “도리어 지금은 우리 쪽이 윤혁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죠. 지구 바깥의 세상에 나아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만나는 일은 인류연합의 치하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윤혁이 아니었으면 기회가 없었겠죠. 그 친구도 말하기를 자신도 거의 요행과 행운으로 기회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생각보다 오늘날의 세상은 자유롭지 못한 곳이네요.”

  “뭐,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죠, 현 세계정부는 특이한 시스템이에요. 본질은 전제 정부인데도 미시적으로는 그런 감이 들지 않죠. 각각의 국가나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평화와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것 같지만 우주라는 거시적 단위에서 관찰해보면……, 온 인류의 운명이 한 시스템의 지배력에 복속되어 있죠. 과거 이데올로기들의 제한된 틀을 벗어난 고차원적 존재랄까요.”

  “그렇군요.”

  이미 씁쓸한 과거의 아픔을 많이 겪었던 루디아인지라 세계의 실상에 관해 듣고도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그녀는 찬찬히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리온 당신은 윤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그 친구는 말이죠.”

  리온은 잠시 머뭇거리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궁리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기했어요.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친구 이상의 열정적인 태도, 헌신적인 행동력, 뜨거운 마음, 상냥한 말씨를 갖춘 동료들은 이미 여럿 만나보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지금껏 보아온 윤혁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특별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평범하면서도 놀라운 면모가 은근히 많았다. 그는 시대 풍조를 거스르는 자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대자에게 맡기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겸손이 아닌 참된 내면적 겸손. 윤혁은 어느 일 하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아가 규정하는 가치들에 충성을 바치지도 않는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인간임을 잘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흥미롭게도 윤혁의 강인함은 그런 면들에서부터 나왔다. 그는 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행동했으며 능동적으로 미래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항상 그 수단과 결과는 하나님의 뜻 위에 내려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가치관조차도. 자신 안에 자기 것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비워낼 줄을 아는 사람이었다. 리온은 그런 부류의 인물로부터 종종 생각지도 못한 선한 흐름이 발원하는 것을 자주 봐왔다.

  “어쩌면 앞날을 긍정적으로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리온의 대답 속에서 리더를 향한 신뢰가 묻어났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실 것이라고 믿어요.”

  “저도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요.”

  루디아도 이번 선교 여행에 주님이 동행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지식적인 부족함에 대해서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아무래도 폐쇄적인 섬 안에서만 살다 보니 배움의 깊이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은연중에 염려를 표하자 리온이 대수롭지 않게 반박했다.

  “19세기의 용감한 선교사들도 대부분은 엘리트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들은 소시민에 가까웠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실함과 열정을 귀중하게 사용하셨죠. 덕분에 그분 나라가 크게 확장될 수 있었고요.”

  “그렇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른걸요. 열정만으로 만사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이성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지배하는 시대잖아요.”

  이러한 우려에도 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민족이었죠.”

  그가 지적한 지혜란 세상적인 학식의 차원이 아닌, 영적인 영민함이었다. 실제로 리온은 지난 며칠 동안 예슈아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 11명과 담화를 나누면서 풍문으로만 들었던 유대인들의 지혜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단순히 지식이나 재주가 풍부한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들의 사고방식 속에는 세상을 분별하여 올바른 길을 택하는 지혜가 짙게 농축되어 있었다. 자신도 나름 신학적 이해가 깊다고 무의식중에 자부했던 리온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대 민족은 이방인들이 손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성경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민족이었다. 사실 이는 필연적인 이치였다. 진리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와 계시될 때, 하나님은 유대 민족의 문화, 언어, 혈통을 통로로 사용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말씀의 수맥에 가장 밀접히 닿아있는 유일한 종족이었다. 예슈아를 영접하기 이전부터도 구약 성경에 통달하여 지혜를 연마해왔었거늘 하물며 올바른 믿음을 얻은 지금은 얼마나 그 지혜가 더하겠는가.

  ‘지혜를 익히는 방법이라.’

  리온은 조용히 자신이 사부에게 받았던 훈련을 떠올렸다.

  “제가 신앙관을 확립해온 방식은……, 거짓된 것들을 해부함으로써 그것들을 배제하는 방법을 익히는 식이었어요. 일종의 배제 진단이었죠. 참된 진리 이외의 교훈들을 타파하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배제법을 열어준 존재는 사부였다. 교육에 있어서는 지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그녀는 일반인에 불과했던 리온의 지혜도 고도로 일깨워낼 수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온갖 철학과 종교들을 전부 가르쳤고 그가 객관적으로 그것들을 비판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잘못된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여정을 거친 뒤에야 리온은 무엇이 유일한 진리인지 확고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사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들처럼 이미 민족적 정신과 사상과 언어와 가르침 속에 진리의 수맥이 밀접히 닿아있는 이들을 보면……, 조금은 부러워요.”

  구태여 거짓된 길들을 일일이 점검하는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고뇌할 필요가 없으니까. 비록 지금은 같은 복음, 같은 예수님을 믿는 동지들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아주 조금 부러움이 들었다.

  “당신의 민족이 이전 세대부터 겪어온 역사를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리온은 루디아에게 정중히 다가가 부탁했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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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의 진정한 화해와 연합 = 한 새 사람, 이 원리는 The chained perdition 시리즈 전체의 여러 중요 주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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