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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6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5. 하늘도시 최초 진입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04 | 회차평점 0 0

 

 

 

 

 

*****

 

 

 

  진은 앞으로의 계획을 윤혁에게 알려주었다. 우주 정거장을 떠나는 즉시, 그들의 우주선은 두 번의 워프와 한 번의 게이트 통과를 거쳐 테로아 성계(星堺)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항성계에 도달하면 자율 수색 장비를 통해서 베일에 감춰진 하늘도시를 찾아낼 것이다. 그 후에는 윤혁이 직접 두 동료의 인형 몸체와 접촉한 상태로 하늘도시 내부로 진입할 것이다. 우주선 같은 대형 유닛은 입장하지 못하므로 사람 몸으로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고 인형들 또한 프리패스를 지닌 윤혁과의 접촉 없이는 입장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늘도시의 경계 통과는 일종의 워프와 비슷한 공간이동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다만 진입 과정에서 신체적인 손상이 없도록 일회용 생명 보호 캡슐로 몸을 감쌀 계획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혹시 텔레파시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추가로 전해줄 수는 없습니까? 전에 제가 참여한 우주 모험 때처럼 말입니다.”

  지난번 경험을 되살린다면 어떨까? 일행이 틈을 잡아낸 사이에 진이 추가 조사를 통해 하늘도시 내부의 정보를 파악한 뒤 그 내용을 윤혁의 뇌로 직접 전해주는 방식으로 응용한다면? 가뜩이나 정보 부족으로 갈급한 상황이 예상되는데 마냥 외부 정보 공급을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역시 텔레파시는 하늘도시를 둘러싸는 타임필드의 영향을 받겠죠. 저농도 타임필드조차도 영향이 큽니다. 아마 안정적인 개인 통신망은 구축하기 어려울 겁니다. 기껏해야 운 좋게 한 번 정도 접촉해줄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역시 그렇겠죠.”

  실망감에 잠기지 않도록 윤혁은 혹시나 했던 기대감을 지워버렸다. 그래도 일부나마 정보를 교류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 텐데. 역시 매 순간 적절한 기지를 발휘해 적응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책이겠지.

  “식량과 물자는 차원 압축 화물 탱크에 충분히 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내부에서 무슨 상황을 맞닥뜨릴지 모르니 융통성은 발휘하십시오.”

  “부족 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편이 낫겠죠?”

  “네, 부분적이나마 당신의 자본 포인트를 하늘도시 내부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만능 포인트인지라 식민지 화폐로 환전할 수 있거든요.”

  그나마 조금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윤혁은 점검 차 되물었다.

  “자본 포인트의 이용 가능 범위는 어느 정도까지입니까?”

  “식민지별로 다릅니다. 알다시피 자본 포인트도 종류가 많죠. 아마 식민지 내부에서는 여러 종류 중 일부만, 그것도 제한된 용도와 제한된 분량으로 이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인류연합의 보편화 경제 시스템과 식민지의 현지 경제 시스템이 미묘하게 다르니 상호 호환 문제는 있겠군요. 그렇다고 해도 생존에 필요한 수단 정도는 손쉽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어지는 진의 설명에 따르면, 식민지 주민들도 많은 경우 지구의 시민들과 비슷한 방식의 ‘생명에 유착된 자본’을 사용해 경제생활을 한다고 한다. 비록 세부적인 모양새는 지구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차후 우주적 경제 통합도 염두에 두었을 테니 당연한 이치인가?’

  형의 전략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렵잖게 납득되었다.

 

 

 

 

 

 

*****

 

 

 

  한편 그 시각, 하염없이 윤혁을 기다리고 있던 리온과 루디아의 곁으로 감시자가 다가왔다. 유령처럼 투명한 형태를 띤 사역마(事役魔) 군단으로 원리는 오버랩 월드(Overlapped world)의 특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진의 군단이었다. 기이한 과학 기술의 산물을 본 리온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줄곧 저런 부류의 위험한 작품들이 인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판단해왔다. 더욱이 여러 선교사 동료들이 저런 류의 기묘 군단이 지구에서 활개 친 영향으로 피해를 봤던 전적도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마땅한 존재 목적을 저버리다니.’

  바로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애써 무시해주려고 했는데 묘하게 신경 쓰이게 만드는군요. 제 작품들을 모멸하는 태도는 저로서도 썩 유쾌하지는 않단 말이죠.”

  리온은 속생각을 읽힌 것에 화들짝 놀랐다. 몇 시간 전에 몸체를 조종당한 일이 떠올랐다. 아마 윤혁의 후원자라고 하는 저 의문의 인간이 인형 몸체에 어떤 조작을 가했을 것이다. 몸체를 봉인한 것도, 생각을 읽은 것도 그 일환이겠지. 찜찜한 의심의 기분을 지울 길이 없었다. 

  “자유의지를 빼앗긴 느낌이 들어 불쾌하겠군요.”

  “…….”

  “하하, 인형과 링크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각오를 하셨어야죠.”

  리온은 후원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좌표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는 과학자라서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는 조금 공감이 서툰 편입니다. 특히 당신들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인지 궁금하군요. 질문하겠습니다. 신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기분입니까? 인간이 자기 머릿속에서 그려낸 상상과 허상을 섬기는 것과는 어떤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습니까?”

  다소 모멸적으로 들릴 법도 했으나 정작 조롱하거나 멸시하는 느낌은 전혀 섞이지 않은, 천진난만한 호기심이 가득한 순수한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리온은 썩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도리어 상대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감히 제 쪽에서도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아니 당신들은 당최 무슨 이유로 위험한 지식의 발굴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오호라.”

  “무슨 유익을 위함입니까? 인류가 누릴 편리함과 안락? 인간의 힘으로 우주를 지배한다는 자부심과 만족감? 아니면 그저 지적인 호기심?”

  이미 오래전부터 과학은 본질을 잃고 방향성을 잃은 학문이 되었다. 그저 무한한 야망의 도구가 되었을 뿐. 리온은 그런 과학을 향해 일침을 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왔다. 이번 기회에 과학이라는 피고인을 피고석에 놓고 질책하고 싶었던 모든 부분을 일일이 청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과학과 기술은 중립적인 요소입니다.”

  진은 맞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떤 것이든 선하게 이용할 수도 있고 악하게 이용할 수도 있죠.”

  초인들에게 있어서 추구해서 안 되는 영역 따위는 없었다. 산이 존재하기에 산을 오르는 것처럼 우주 역시 존재하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존재하니까 정복하는 것이거늘 무엇을 따지는가. 진은 이 사명을 위해 어떤 기술을 창작해내건, 어떤 진리와 지식을 발굴해내건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여겼다.

  “아뇨, 중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리온은 진의 대답과 상반된 답을 내렸다. 그의 신념은 분명했다. 인간들이 영위하는 그 어떤 것이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는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선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질서를 망가뜨리는 악한 것도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음악과 철학과 종교 속에는 진리를 어그러뜨리는 왜곡된 생각의 산물들이 담겨 있지 않은가. 설령 왜곡되지 않은 선한 발명품이라 해도 그 이용 목적이 하나님의 의에 기반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악용되기 마련이다. 리온은 그리 믿었다.

  “첫째,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내건 그 배경에 깔린 의도와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은 엄연히 악(惡)입니다.”

  그러자 이내 진의 사역마의 미간이 머리털을 뽑힌 사자가 발끈하듯 미약한 일그러짐을 보였다. 리온의 정죄는 신이 세운 선악 기준을 떠나서 지어진 발명품들을 전부 다 포괄적으로 찌르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신과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과학의 힘을 추구했던 초인들을 향해 정면으로 던지는 도전이었다.

  “둘째, 누구든 절대자를 알기 전에는 선악의 옳은 기준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죠. 점검해줄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훗날 당신들이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고 나면 뒤늦게야 ‘그 길을 가지 말걸!’ 하고 후회할 것입니다.”

  놀랍게도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담긴 평가였다. 인공지능, 이종족, 기계들의 사회, 생체 병기, 항성 규모의 인공 축조물, 천체들의 개조, 생사의 초월, 현실 조작, 허상과 실체의 무너진 경계에 이르기까지. 이미 초인들의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한계를 넘어 폭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온의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셋째, 인간은 그리 지혜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죄로 인해서 지혜의 눈이 멀어진 탓에 어리석어진 상태이죠. 설령 당신과 같은 위대한 부류라고 해도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설령 기술 자체는 중립적일지라 해도 당신들은 그것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 능력이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악용이 따를…….”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리온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염동력처럼 느껴지는 어떤 힘이 발동되어 인형의 온몸을 옥죄었다. 비록 인형의 몸체라지만 아주 선명한 감각이 본체에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루디아가 깜짝 놀라 그를 구하려 달려들었으나 그녀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저지당했다.

  “자, 거기까지, 거기까지! 고리타분한 설교는 잘 감상했습니다. 뭐,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것이 나름 흥미로워서 이용해드리려 했었건만……,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준비를 다 마친 윤혁이 동료들이 있는 우주선으로 귀환하였다. 그가 다가오자 진은 재빨리 보이지 않는 힘을 해제하였다. 리온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 윤혁은 순간적인 공포로 굳어있는 친구를 일으켜 세워 부축하였다.

  “제 친구들을 해치지 마시죠.”

  윤혁은 상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단호히 경고했다.

  “하하.”

  밉살스럽게도 진은 장난스러운 어투로 계속 일관했다. 어찌나 진지함이 없는 지 심지어 그는 본체는커녕 인형이나 홀로그램도 가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상태였다. 아마 어딘가에 앉아서 장난치듯 감시하고 있으리라. 그마저도 아무런 적의조차 없는 순수한 장난 놀음이겠지. 윤혁은 순간적으로 울컥했으나 아직은 진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꾹 인내하였다.

  “리온, 괜찮아?”

  그는 분노하는 대신에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응, 어차피 진짜 몸도 아닌데 뭘.”

  “그래도 통증 체계는 연동되니까 조심해.”

  “고마워.”

  의외로 정작 굴욕을 당한 리온 본인은 별로 억울해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던 루디아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하였다.

  “윤혁아.”

  “응, 왜?”

  “역시 기회가 된다면 독립할 기회를 얻는 것이 좋겠어.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활동할 방도를 찾아보고 그 방향으로 기도하자.”

  루디아의 깊은 고민과 걱정이 윤혁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내가 위험한 자와 손을 잡았다고 판단하여서 염려하는 걸까?’

  19세기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사들도 이런 입장이었을까? 제국주의적 성향의 정부 세력을 떨쳐내고 관계를 끊으려 해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결국 얽힐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현실. 윤혁 자신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착잡하였다.

  “너를 비난하는 건 절대 아니야. 넌 지혜롭게 잘 판단해줬어.”

  리온은 대화의 맥락을 눈치채고 재빨리 위로하였다.

  “그 문제보다는 나와 루디아 씨의 자유의지 때문에 그래.”

  “자유의지?”

  윤혁은 진이 동료의 인형 몸에 간섭했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루디아 씨도 대충 느껴지시죠?”

  “네, 어렴풋이 대강은요.”

  인형에 접속한 후 자꾸만 정신에 무언가가 간섭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원래 몸으로 움직이던 상태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것이었다. 비록 미약하긴 하지만 그 정체불명의 상호작용이 뇌리를 침식하는 현상이 거슬렸다.

  “설마 악한 영들일까?”

  덜컥 노파심에 윤혁이 물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인위적 간섭에 가까운 것 같아.”

  “그렇다면 프로그램이나 해킹? 인위적인 인형 소프트웨어 조작?”

  “그런 것도 후보로 가능하겠지만……, 이건 좀 더 본질적인 간섭 같아. 처음 접속할 때부터 계속 머릿속에 이명이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언가 뿌리 깊은 억제력이 머리를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꽤 불쾌해.”

  리온의 설명을 듣자마자 의심의 화살이 한 곳에 몰렸다.

  ‘기계들의 율법. 소프트웨어 침식형 절대적 조종 시스템.’

  미처 그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뇌로 조종하는 인형이라고 해도 그 재질은 기계와 컴퓨터이니 당연히 기계 율법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다. 왜 소홀히 여겼을까? 낭패감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짚었다.

  “역시 너희에게 내가 족쇄를 씌운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어차피 우리는 본체로는 올 수도 없었잖아. 그리고 너 한 명에게만 무리한 짐을 지울 수는 없어.”

  “맞아, 윤혁아. 우리는 이번 여행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에 아무 후회가 없어.”

  리온과 루디아가 위로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괜찮을 거야. 이 모듈을 빌려 써도 자유의지나 감정, 그리고 지성의 작동 흐름은 대체로 정상적인 것 같아. 다만, 만약 외부에서 의도적인 간섭을 하게 된다면……, 사실상 우리 조종은 무용지물이 되겠지.”

  리온은 여기에 더해 좀 더 근본적인 염려를 내비쳤다.

  “그 개입이 하필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난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겠지.”

  윤혁도 그제야 이 방식의 한계성과 심각성을 절감했다.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없길 바라야겠네.”

  전도자의 선포 활동이 반드시 선교 대상을 찾아가 면대면으로 이뤄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원격 통신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얼마든지 원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능하다. 실제로 21세기 당시에만 해도 인터넷을 통한 사역을 수행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자체는 선한 사역이다.

  하지만 그 원격 데이터에 강제로 변조를 가할 수 있는 권세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현 인류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정보 통제의 위기 국면을 맞았다. 지배자와 일반 민중의 문명 수준과 기술력 격차가 그 원인이었다. 지금 활용하는 인형을 통한 원격 신체 제어 방식도 이 같은 이유로 자유롭지 못했다. 누군가가 인형의 몸과 정신에 의도적으로 간섭하려 작정한다면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러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편이 지혜로울까?”

  “당장은 순응하는 수밖에. 우리가 최대한 널 돕고 조력할게. 일을 함께 거들어 줄 거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중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가 이르면 네가 주역이 되어야 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몸으로 직접 들어온 너뿐이니까. 네가 우리의 핵심이야.”

  걱정하는 윤혁에게 리온이 나름의 조언을 일러주었다. 충분히 납득되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로써 팀의 행로의 단기적 방향성은 얼추 결정되었다. 윤혁의 어깨에 걸린 짐의 무게는 더욱더 무거워졌다.

  “잘 알겠어.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볼게.”

 

 

 

 

 

 

*****

 

 

 

  예정 시간이 이르자 우주선은 한 차례의 원거리 워프를 하였다. 곧 그것은 태양계의 오르트 구름 경계를 벗어나 수십 광년 떨어진 중계 기지에 도달했다. 근방에는 웜홀식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최근 개발된 은하 간 차원 게이트(IDD)와 비교하면 원시적인 수준에 가까웠지만 적어도 우리 은하의 내부를 가로지르기에는 충분했다.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하자 미약한 시공간 흔들림이 선체 내부에 전달되었다. 다행히 관성력, 기조력, 시간 오차는 우주선 내부의 중화 시설 덕분에 보정되고 제어되었다.

  이내 웜홀 밖으로 빠져나온 우주선은 다시금 워프 좌표를 재계산하여 테로아 성계 중앙부로 워프하였다. 항성계에 당도한 우주선은 광역 관측 장비를 써서 테로아 항성을 중심으로 스텔스 물체 관측을 개시하였다. 동시에 미리 저장해둔 예상 좌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였다. 하늘도시는 맨눈으로 관측되지 않도록 시공간 틈새에 반쯤 모습을 감추고 있었기에 정확히 짚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수색 완료. 목표물 탐지. 시각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탐지 억제 필드 해체. 확률 관측 재설정.}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마침내 베일을 들쳐 대상을 찾아내었다.

  “저 모습은?”

  윤혁은 홀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친 바깥의 거대 구조물의 모습을 보고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 이내 창문 밖으로도 하늘도시 본체의 희미한 윤곽이 드러났다. 불가시 모드 때문에 육안으로는 반투명하게만 보였지만 관측 자료를 가시화한 홀로그램 영상 상으로는 세부 구조까지 볼 수 있었다.

  전체 크기는 화성보다 조금 작은 규모였다. 모양은 두 팽이가 넓은 면으로 맞닿아 있는 형태 같았고 외부 천체를 침식하는 용도로 나뭇가지 같은 세부 구조체들이 뻗어있었다. 또한 지구의 필라(Pillar)와 비슷한 반투명 구조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구조물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보조 위성으로 보이는 물체들도 연결되어 있었다. 핵심 에너지원은 겉에서는 뚜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주선에 의해서는 열원 형태로 탐지되었다. 최소 백 개 이상으로 전부 내부에 내장되어 있었다.

  “인공 태양? 아니면 축퇴로?”

  윤혁은 그 에너지원의 기이한 형태를 보고 중얼거렸다.

  “물리학적으로 저런 질량에 저런 형태가 유지 가능한가?”

  물론 그도 전에 카이젤 곁에서 여러 종류의 인공 천체들을 보아왔기에 에너지원의 규모에 압도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까지 특이한 모양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의아해하던 중 진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초기 콜로니 프로젝트 개시 때와 비교해 대단히 진보된 모델입니다.”

  “진보라면……, 원래의 원형 하늘도시는 이와 달랐다는 뜻인가요?”

  “아무래도 모듈 개선은 계속 진행되니까요.”

  “그러면 현재도 새로운 하늘도시가 계속해서 건설되는 중이겠군요.”

  “막대한 인구 팽창 속도를 감당하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때 윤혁은 무엇인가 익숙한 물체를 연상하였다.

  “저 하늘도시……, 왠지 그것과 비슷하군요.”

  “눈치는 나쁘진 않군요. 맞습니다. ‘제로원’을 뼈대 모델로 삼았죠.”

  지구의 수도인 제로원. 내핵부터 맨틀까지 지구 내부 전체를 모퉁잇돌 삼아 건설되어 열권의 하늘까지 뻗어있는, 사실상의 지구 그 자체나 다름없는 특수 요새. 제로원은 22세기 들어 인류가 이룩한 대대적인 항성 및 행성 개조 사업을 기반으로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어진 걸작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제로원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아서 모방 작업함으로써 구현된 후속작들이 바로 최신 모델의 하늘도시들이었다. 여러 세부적 변경을 첨가하여 다양성을 높이긴 했지만.

  “자, 그럼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이 나지막이 웃으며 말하자 윤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리온과 루디아의 인형 몸체를 자신의 슈트에 연결했다. 화물들을 담은 압축 가방도 슈트에 묶었다. 이내 반투명한 보호용 캡슐이 일행을 한꺼번에 둘러쌌다.

  {출입부 탐색 완료.} {공식 인증 프로세스 가동.}

  {출입 코드 인증 완료.} {4차 관문까지 해방 요청.}

  {단거리 워프 링크 접속 완료.} {대상 Insertion 프로세스 기동.}

  하늘도시의 보조 관리 시스템들과 우주선의 인공지능들이 번갈아 가며 메시지를 제시하였다. 곧이어 강렬한 빛을 연상케 하는 차원 간섭 시각 작용이 일행의 시야를 가렸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의식이 잠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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