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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73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6. 마법의 땅 칼티엔뉴르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1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저녁 무렵이 이르자 열띤 토론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어느덧 이방인들의 신비한 지혜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대다수는 그 가르침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면서 애써 무시하려 하였지만, 일부 고위층 자제들은 심판이니 공의니 영원이니 복음이니 구원이니 하는 묵직한 메시지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최소한의 이해라도 해보려는 노력의 반응을 보였다.

  “역시 이곳은 복음에 대한 내성에 찌든 지구와 달라.”

  리온은 재차 확인되는 현지 주민의 영적 반응성에 감탄했다. 복음에 관한 한 지구인의 마음이 닫혀가는 문이요 말라가는 땅이라면 이주민 출신의 우주 인류의 마음은 비록 조금씩이지만 열려가는 문이요 빗물을 조금씩 빨아들이려는 굶주린 토양에 가까웠다. 다만 그 문의 틈을 비집고 최대한 넓게 벌리려면 강력한 지렛대가 필요했다. 과연 자신들은 그 지렛대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도전이었다.

  한편 윤혁은 토론에 참여하면서 한 가지를 선명히 깨달았다.

  “네 말대로 이곳의 마법 문명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게 좋겠어.”

  그는 리온의 의견에 일리가 있음을, 칼티엔뉴르의 사람들이 마법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상치 않은 풍조가 범람하고 있다는 증거가 이번 토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패털로 참여한 학식 있는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칼티엔뉴르 내에서는 특정 지역에 특정 마법 문화가 발전할수록 그 지역 사람들의 인격에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었다. 이는 지역을 막론한 공통적 현상인 듯했다. 아울러 마법을 오래 쓸수록 정신이 무언가에 예속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하였다.

  ‘정신적인 영향이라고?’

  아리송한 의문이 윤혁의 뇌리를 스쳤다. 생각해보니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초인들은 왜 이런 유용한 힘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을까? 혹 아직은 불완전한 단계에 가까운 것이라 그랬을까? 칼티엔뉴르의 마법은 진짜 완성품을 만들기 위한 징검다리 겸 실험용 작품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마법을 운용하는 주민들은 실험체가 된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실험체를 다루기 위해서는 길들이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정신적 영향력에 대한 증언도 말이 된다.

  ‘정신 간섭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주민들을 넘어 지금의 칼티엔뉴르 전체가 일종의 거대한 임상시험 실험장으로 설정되었던 것은 아닐까? 의혹과 의문이 윤혁의 마음을 괴롭혔다. 단순 기우일 수도 있겠으나 인류연합의 존재를 아는 그로서는 이 의문을 간과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진이 예전에 식민지 주민에게는 표식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했었지.’

  이전에 들었던 말들을 떠올려보았다. 표식. 처음 그 존재를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는 줄곧 단순한 차원으로 생각했다. 그저 우주에 적응하기 쉽게 여러 세대에 거쳐 종족의 신체를 개선하고, 타임필드와 공간 조작 기술의 안정적인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둔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조작이 표식을 통해 주민들에게 보편적으로 가해진 것이 아닐까?

 

 

 

 

 

 

*****

 

 

 

  다시 이틀이 더 지났다. 선교팀은 이제 레르시아의 국경을 넘어 ‘헬레아’라는 이름의 제국으로 향하였다. 레르시아 왕국 사람들에게 각국 정세에 대해서 들은 후 팀원들은 경계심을 더욱더 조였다. 정보에 따르면 황가에 대대로 전수되는 환수의 힘으로 유명한 세 제국의 지도자들은 서로 영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바로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몇 차례 이상 알력 다툼이 있었다니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졌다.

  헬레아 제국에 도착하자마자 윤혁 일행은 정해진 순서대로 흩어져 대도시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파하였다. 이번에는 윤혁과 루디아가 동행하였고 리온은 조금 먼 곳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여 행동을 시행하였다.

  그렇게 일하던 중 사건이 터졌다. 윤혁 일행을 체포하기 위해 제국의 기사단이 나섰다. 위치가 적진 한가운데인 만큼 도주는 현명치 못한 선택지였다. 셋은 결국 운명을 주께 맡기고 포획당하는 셈 치고 따라갔다. 만약을 대비한 비장의 한 수로 투명 모드로 전환된 덱스트로를 뒤에 남겨둔 채 기사단과 동행하였다.

  끌려간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이는 의외로 상당한 거물이었다. 셋을 데려오도록 명령내린 자는 헬레아 제국의 쌍둥이 황자 중 하나였다.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 중 하나인 아이카르 황자, 그는 최근 선교사들이 전한 도리와 마법 세계를 향한 지탄을 불쾌히 여겼다. 역설적으로 동시에 소문 속 신기한 이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픈 호기심도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정중한 말투를 취했다.

  “그대들이 우리의 문화를 공격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투에는 짙은 질책이 담겨있었다.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여러분을 돕고 싶을 뿐이에요. 공격이라니 가당치 않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알게 된다면…….”

  황급히 루디아는 아이카르와 그 신하들 앞에서 호소하였다. 하지만 윤혁은 이번 대면은 대화만으로는 풀기 어려울 것임을 직감하였다. 이미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칼티엔뉴르 속의 모든 국가는 마법과 뿌리 깊게 얽혀 있었다. 이 문제를 회피해 가면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황자와의 충돌은 그 필연적인 갈등의 수면 위로의 드러남이었다.

  참고로 그 시절 티라노아 대륙 정세는 다음과 같았다.

  칼티엔뉴르의 네 대륙의 전체 인구의 과반수와 더불어 여러 신비한 이종족이 서식하는 티라노아 대륙에는 수백 년의 명맥을 이어온 세 열강이 존재했다. 대륙의 심장부에서 잠자고 있다고 알려진 세 위대한 환수, 그 환수들과 각각 계약을 맺은 계약자 셋이 세 열강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는 전설이 돌았다. 북쪽의 불꽃 환수와 계약한 헬레아 제국, 동쪽의 얼음 환수와 계약한 길가르 제국, 그리고 서쪽의 번개 환수와 계약한 디올람 제국이 그 주인공이었다.

  헬레아, 길가르, 디올람 모두 국가 수장인 황제만이 환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힘은 다음 세대의 후계자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에게 대대로 계승되었고 세대가 지날수록 그 위력은 배가되었다. 역사 속에서 세 열강은 수시로 그 힘을 사용해 충돌을 일으켰다. 더 나아가 황가들 사이에서도, 혹은 한 황가 내에서도 황위를 이을 후계자끼리 종종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는 제국의 주권을 확대하려는 목적과 함께 개인적 명성을 쌓기 위함이었다.

  현세대의 황위 계승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디올람 제국의 악랄한 광기에 사로잡힌 황제가 낳은 외동딸 탈리아는 최고의 소환술 솜씨를 선보였다. 그녀는 이계(異界)에서 신비한 생명체들을 소환해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는 능력을 지녔다.

  길가르 제국의 여황제의 후계자인 델람 황자는 막강한 신체 강화 능력을 지닌 마검사였으며 마법과 더불어 신비한 무기들을 부릴 수 있었다.

  한편 헬레아 제국에는 두 명의 유력자가 있었다. 쌍둥이 중 손위인 질라탄은 각양각색의 마법을 손쉽게 다루는 대마법사였다. 그의 경쟁자가 바로 아아카르 황자였다. 그도 역시 대마법사였지만 제 형제와는 달리 직접적인 마법보다는 마석(魔石)이라 불리는 마력 매개체를 활용하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마석은 대륙 전반에 걸쳐 중요한 도구였고 현재도 시시각각 대륙 곳곳으로 수출되는 만큼, 마석을 다루는 아이카르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이렇듯 세 나라의 황자들과 황녀들은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경쟁적 충돌을 자주 일으켰다. 이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핵심 요소는 마법적인 능력이었다. 만약 그 힘의 가치를 통째로 부인하는 사조, 이를테면 복음의 문화가 팽배해지면 자연스레 황가가 나라를 통제하는 영향력이 약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것이 바로 아이카르 황자가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이방인들의 괴상한 가르침이 퍼지는 것을 꺼리는 이유였다.

  이러한 역사적, 시사적 배경을 놓고 보면 현재 아이카르 황자가 선교사 일행의 행보에 유독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대놓고 당근과 채찍을 내세워 활동을 차단하려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시지 않겠소? 우리나라 안쪽은 곤란하고 이웃 나라 길가르나 디올람으로 향하려거든 얼마든지 돕겠소. 그들에게라면 얼마든지 당신들의 가르침을 전해도 좋소.”

  그러나 윤혁은 쉬이 수긍하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아이카르 황자에게 재차 이 세계의 문명이 왜곡된 이유를 지적한 뒤 새로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알지 못하는 낯선 힘의 노예로 남기를 자치하지 말고 주민들 스스로 외계와 무관한 문명과 문화를 가꾸어나갈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윤혁은 바깥세상의 존재를 암시하였다. 차마 노골적으로 인류연합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으나 대신 아이카르에게 좀 더 열린 마음과 폭넓은 시각으로 그들의 세계관을 재확립할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윤혁은 마법 문명에 질식된 세계라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하는 주민들이 많이 태어난다면 분명 선한 부산물들이 나타나리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개혁의 진통이 따를지라도 장차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내용에도 복음의 권세가 주술 문화를 개혁해낸 사례(행 19:18-20, i)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이러한 긴 일장 연설에도 아이카르의 세계관은 변치 않았다. 그는 이방인들이 던지는 낯선 변화의 파동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영향력을 보존하기를 원했다. 어쩔 수 없이 윤혁은 그를 설득하려는 부질 없는 시도를 철회해야 했다. 그는 이 땅을 떠나갈 것을 약속했다.

  떠나가는 윤혁과 루디아에게 황자는 친선의 표시로 선물을 주었다. 윤혁은 상대가 미안한 마음에 값이라도 내려나 보다 하고 여겼다. 그 선물은 ‘게이트 석’이라고 불리는 특수형 마석으로 헬레아 산(産) 특제품이었는데 용도는 대륙 간 횡단을 돕는 일종의 텔레포트 매개체였다. 신기해하는 루디아와 달리 윤혁은 즉시 그것의 용도와 정체를 대강 알아차렸다.

  ‘단독 워프 매개체……. 그 사이에 양산형으로 제작된 건가?’

  일전에 형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면서 비슷한 워프 매개체를 사용해본 기억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겉보기에 형태와 재질은 그때의 매개체와 조금 달랐지만, 이어지는 아이카르의 기능 설명을 듣고 보니 같은 기원 내지는 동일 계열 기술력임이 거의 확실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최첨단 기술이었건만 이제는 양산 가능한 싸구려로 전락하다니. 내심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이 당시에는 윤혁도 아이카르도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아이카르는 결코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풀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구금, 최소한 협박을 하는 것이 그에게서 나올만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이카르는 어째서인지 정중하게 윤혁에게 떠나줄 것만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순수한 자유의지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머릿속에 심어진 어떤 암시가 그 순간에 작동했던 것이다.

  사실 칼티엔뉴르가 지어지기 까마득하게 오래전부터 모든 하늘도시의 주민에게는 보편적인 낙인이 심겨 있었다. 그 낙인에는 일종의 블랙리스트와 비슷한 데이터베이스도 탑재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충성이나 호감을 보여야 할 상대, 거부와 의심을 지녀야 할 상대를 인위적으로 지정하는 지침서였다.

  그리고 그 데이터베이스의 자료 중에는 최고 보안 등급으로 지정된 특정 인물의 정보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심어진 이 ‘충성의 표식’은 이 인물을 충성과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각 사람의 뇌를 원천적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런데 드물게 낙인은 충성 대상과 공통분모를 가진 인물에게도 반응을 보이곤 했다. 예를 들면 유전자 정보가 비슷한 상대처럼. 물론 모든 주민이 외부인의 유전 정보를 감지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카르는 특수한 경우였기에 그 감지가 가능했다. 감지된 정보에 반응한 낙인은 윤혁을 해하는 것을 금하게끔 무의식을 재조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혁은 자신의 숙적이 주민들에게 심어놓은 낙인 덕분에 목숨의 위협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여하튼 윤혁과 루디아는 리온과 다시 합류하였다. 그들은 에어바이크를 타고 길가르 제국으로 향방을 돌렸다. 그곳에서 그들은 이틀간 15개의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설파하였다. 다시금 곳곳에서 분노가 일었으나, 일부 귀를 기울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일행은 그들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남겨주고 떠났다. 가시적인 열매가 없어 실망하는 윤혁을 리온이 위로하였다.

  “하나님의 때에 그분께서 적절히 열매를 맺게 하실 거야.”

  길가르에서의 이틀이 지난 뒤에는 자리를 옮겨 디올람 제국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는 루디아가 따뜻한 친절을 무기 삼아 몇몇 이의 딱딱한 심령을 뚫어냈다. 여성 상인, 미용사, 길거리의 부랑자, 책을 읽던 깡마른 소년을 포함해 열댓 명 가량의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러나 진심 어린 회심이 일어나는 모습은 직접 보지 못했다. 아직 선교팀에게는 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낙담이나 실망은 접어두었다. 고된 연단은 겸손한 인품을 빚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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