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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7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7. 마법과 인본주의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18 | 회차평점 0 0

 

 

 

 

 

*****

 

 

 

  한편 비슷한 시각, 엘리바스 서쪽 지역 연합의 영토로 향한 루디아는 뜻밖으로 어느 저택에서 융숭한 손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였다. 길거리에 있는 어려운 처지의 이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위로와 도움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던 중 루디아는 부랑배를 만나 곤경에 처했다. 물론 인형 몸은 내구성이 매우 높았기에 별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 싸워본 경험이 없던 루디아는 머리가 하얘져 당황하여 움츠러들었다.

  그때 지나가던 중 그녀의 곤경을 본 이가 해결의 손길을 내밀었다. 붉은 머리의 남성 하나가 나타나 부랑배들을 제압하고 그녀를 곤란에서 구해주었다. 그는 루디아와 비슷한 스무 살 남짓의 연배로 보였고 키는 조금 작았으나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옷차림으로 보아 상당히 유력한 집안의 자제 같았다.

  “묵을 곳이 없다면 저희 가문의 집에서 하루를 머무르시겠습니까?”

  대화 중 낯선 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느낀 그는 그녀를 손님으로 대접하기로 하였다. 기회를 얻은 루디아는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거대한 저택으로 지구의 동서양 전통 가옥이 적절히 혼합된 모양과 비슷한 양식이었다. 루디아를 구해준 남자는 그 집안 가주의 열두 자제 중 하나였다. 가문의 가주는 근방 도시 전체를 사실상 지배할 정도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여러 시종을 거느린 권세가였다.

  대륙 너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돌자 가문의 가신들과 후계자들이 여럿 찾아와 루디아와 대화를 나누고자 하였다. 친목 모임에 서투른 그녀는 조금 난처해했지만, 최대한 예의와 친절을 다하여 상대를 맞이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인형의 몸에도 식사 기능은 있었다), 가문의 장남이 루디아와 함께 다과와 차를 나누기를 청했다. 서쪽의 지혜자라고도 불리는 그는 학식과 철학관이 풍부했기에 대화 상대로서 만만치 않았다. 윤혁과 달리 인류연합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었던 루디아는 오로지 자신이 온 목적과 자신이 전하려는 신앙의 진리만을 알려줬다.

  이미 엘리바스와 인근 대륙들의 철학 사상에 정통했던 장남은 그녀가 말한 색다르고 새로운 철학에 대해 처음에는 조금 호기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지는 않고 그저 많디많은 철학 중 하나로 여겼다.

  이후 루디아가 저택의 정원에 앉아 쉬면서 시편 송가를 부르는 동안, 노랫소리를 듣고 가문의 두 여식이 찾아왔다. 그들은 경이로우면서도 심령에 은은한 울림을 남기는 그 노래가 무엇을 기리는 것인지 호기심을 표출했다.

  “창조주의 솜씨를 찬양하는 동시에 그분의 보호와 구원을 간구하는 시랍니다.”

  “창조주라니요?”

  “네,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 세계와 우리 인간들을 지으신 분이시죠.”

  두 여식은 온 우주의 창조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즉각 흥미를 보였다. 그녀들도 꽃과 나무, 강과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이 풍부한 여인들이었기에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이에 관한 이야기에 쉽게 끌림을 느꼈다. 창조주를 향한 인간 본연의 본능적 호기심도 이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막상 루디아가 모든 인간이 신 앞에 죄인임을 선포하자 둘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들은 신의 자비로운 면에 대해서는 흥미를 품었으나 심판이라는 불편한 진리는 선뜻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토록 선하시다는 분이 왜 인간을 심판하신단 말인가요?”

  아무리 변증에 변증을 더해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어도 각자의 가치관은 두 평행선이 만나지 않듯 전혀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루디아는 그녀들을 설득하려는 의욕을 반강제적으로 굽혀야만 했다.

  루디아가 발코니를 떠나 저택 안의 가신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번에는 가주의 둘째 아들이 찾아와 그녀를 꼬치꼬치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낯선 이방인이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첩자일 수도 있다. 무슨 의도로 우리들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사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파하고 다니는 거지?’

  그러나 루디아에게서 아무런 적의나 잘못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는 그녀가 설파하는 소위 그리스도라 불리는 신에 대해서 캐물었다. 그는 신학자들조차 손쉽게 질문하지 못할 날카로운 질문들로 몰아붙였다. 리온처럼 전문적인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그녀에게는 나름 위기일발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날따라 그녀의 머릿속에 지혜가 잘도 샘솟았다. 주관적인 현상인지라 위기의식을 느낀 뇌가 각성한 것인지 아니면 성령께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인지는 객관적으로 구분할 길이 없었다. 다만 유대인들이 대대손손 늘 깊이 상고하던 유산인 구약성경(타나크)이 그녀에게 놀라운 접근법과 해답을 준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리온이나 윤혁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온유한 지혜를 발휘했다. 결국, 대답할 말이 없다고 판단한 차남은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가 물러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번에는 또 다른 오누이가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형제자매들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 이방인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그들은 심지어 성경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이 책은 언제 쓰인 것입니까?”

  “이곳 기준으로는 수만 년도 더 전에……,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에서만 살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인류의 고향으로 지으신 땅이었죠. 그곳의 창조 이후 수천 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창조주께서는 진리를 계시하시기 위해 여러 저자를 선택하셔서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말씀이랍니다.”

  오누이는 어찌 각기 다른 시간, 각기 다른 장소의 인물들이 아무런 사전 회의도 하지 않고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담은 글을 쓸 수 있냐면서 좀처럼 믿지를 못했다. 그러나 루디아가 성경책을 직접 펼쳐 66권의 각 책의 긴밀한 유기적 연계성을 증명해주자 그들은 내심 경악하였다. 그들은 의외로 손쉽게 성경책의 역사적 가치 앞에서 흔들렸다.

  “후세 사람들이 야합해서 한꺼번에 편집한 게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 아니에요. 믿으실지 말지는 여러분의 선택이지만요.”

  루디아는 자신이 속한 민족인 유대인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책의 주제이자 주인공인 ‘그리스도 예수’를 맹렬히 싫어하던 민족이었음을 고백했다.

  “근세기에 이르러서야 저희 민족 중 일부가 진실을 발견했답니다. 저희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율법서와 선지서들이 계시했던 존재가 바로 예슈아이심을요. 그제야 우리는 눈물로 회개하며 그분께 무릎을 조아렸어요.”

  오누이는 여전히 의구심을 완전히 씻지는 못했으나 성경에 대해서 한 번쯤 상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루디아는 기꺼이 공용어, 히브리어, 헬라어 버전을 탑재한 성경책을 건넸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그 내용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 책의 사본까지 선물해주었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데려온 붉은 머리의 남성이 그녀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왔다. 루디아는 정중히 그에게 답례 인사를 했다.

  “대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별일 아닙니다.”

  “답례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도울게요. 뭐든 말씀하세요.”

  “어차피 신하들이 많으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전하는 말씀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집안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요. 누군가는 그 가르침이 괴이하고 발칙하다고 경계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영험하고 신비롭다면서 막연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죠.”

  이에 그녀는 붉은 머리 사내와 함께 성경에 대해 깊은 상고를 나누었다. 아직 완전한 이해와 회심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사내의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그는 긍정적인 검토를 생각해보겠노라는 의사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근 도시들에 철학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전해준 책을 그들과 함께 공유하며 토론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저희가 사본을 양산하도록 한 권만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루디아는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 이리하여 저택에서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하룻밤이 지나갔다. 루디아는 그곳에서 머물며 말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남겨둔 후 다음날이 되자마자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했다.

 

 

 

 

 

 

*****

 

 

 

  그리고 그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또 한 명의 믿음의 전사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수고하고 있었다. 상냥한 태도로 사랑에 초점을 두어 전하는 것이 루디아의 방식이라면 리온의 방식은 반대로 엄격한 공의의 경고에 초점을 두는 것. 사실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 모두를 전하는 것이 전도자의 마땅한 의무인 만큼 둘이 전하는 내용의 본질 자체는 완전히 같았다. 다만, 개인적 성향에 따라 이웃에게 다가가는 접근법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여하튼 리온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지혜롭게 처신하는 중이었다.

  에어바이크가 없는 리온은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자 가까운 마을들 위주로 향했다. 그렇게 여러 곳을 거닐다가 어느 한 마을에 당도했는데 마침 그 근방에는 블랙아트(black-art)를 구사하는 마술사들이 당파를 이루고 있었다. 그자들은 이미 이전부터 그곳에 요새를 건설해둔 상태였는데 그간 그곳을 거점 삼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시 말해서 리온이 이번에 전도하러 찾아간 지역은 지극히 위험한 악의 소굴이었다.

  리온은 지혜롭게 사람들을 살폈다. 공의에 대해 경고하기를 두려워 않는 그였지만 무작정 반발심과 혐오를 드러낼 어리석은 자들을 섣불리 자극할 만큼 부주의하지는 않았다. 리온은 누가 과연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만한 자 일지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였다.

  그렇게 사람을 찾으며 기도하던 중, 뜻밖의 섭리로 응답을 받았다.

  때마침 어떤 회당을 발견하게 된 리온. 그 회당은 블랙아트를 연구하는 학자와 마술사 중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이들이 모여 담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그들은 블랙아트가 사람들의 인성에 적잖은 악영향을 끼쳐왔음을 분명히 인지하는 자들이었다. 마침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 기술을 선하고 건설적인 목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을지를 두고 심각하게 토의하는 중이었다. 이에 리온은 마치 자신도 같은 무리인 마냥 몰래 그 가운데 숨어 들어갔다. 인형의 몸에 탑재된 형태 변환 기능 덕에 그들이 입는 특유의 복장을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회의가 한참 진행되어 토론이 열을 띨 무렵 불쑥 발언을 꺼냈다.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본질부터 악한 힘을 빌려서 선한 용도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과연 근본적으로 유익성이 있는 일인지를 반문하고 싶습니다.”

토론장이 술렁거리며 의혹의 파도가 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그런 망발을 하는 거요?”

  “진실을 전해주러 온 사람입니다. 믿을지는 당신들 뜻에 달렸지만요.”

  당황을 틈타 리온은 블랙아트의 진상에 대해서 차분히 밝혔다.

  “제 동역자인 친구는 이 세계의 마법의 근원이 바깥세상 인간들의 기술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도 동의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기술에도 언제든 악령들의 힘이 간섭될 수 있으니까요.”

  “악마?”

  “만물의 진정한 주인이신 창조주께 반역을 일으킨 악한 천사들 말입니다.”

  리온의 변증이 이어졌다. 그는 지금의 칼티엔뉴르처럼 외부의 기술이, 설령 그것이 인간의 기술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문명 속에 수용될 경우 악마들의 악한 목적의 노리개로 노략당할 위험이 큼을 경고했다.

  “아니, 어째서입니까?”

  “그 이유는 저와 당신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본성이 철저히 원죄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며 단지 그 죄의 본성을 부추기는 촉매제일 뿐입니다. 악의 본성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인간 세계는 일절 예외 없이 마귀의 지배 아래 놓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블랙아트 역시 기술과 죄가 만난 산물입니까?”

  “물론입니다. 배설물을 아무리 보약으로 이용하려 해도 신체를 더럽히기만 할뿐 유익한 일에는 도무지 쓰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와 연접할 수 있는 통로인 마법을 송두리째 금지하셨습니다.”

  리온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검은돈의 비유를 들었다. 간혹 누군가가 불법과 살인으로 모은 검은돈을 다른 사람에게 제공해주었다고 하자. 그 검은돈을 제아무리 선한 용도로 쓰려 한들 무슨 소용일까. 결과적으로는 돈을 제공받은 자까지 함께 범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검은돈을 제공한 자는 마귀, 검은돈은 마법, 그리고 그 돈을 받은 자는 마법에 심취한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었다. 검은돈이나 마법을 선히 이용하려는 자도 불법에 연루되기란 마찬가지. 이 불편한 진실은 듣는 이의 마음에 불편하고 괴로운 가책을 주었다.

  “그렇다면 블랙아트를 내버려야 한다는 말이오?”

  청중 중 누군가가 분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질문했다.

  “블랙아트뿐이 아닙니다.”

  리온은 한 술 더 떠서 더 엄격하게 선포했다.

  “애초에 블랙아트라는 용어에는 이것이 여러 종류의 마법 중 특별히 더 사악한 것이라는 구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죠. 하지만 실상은 그런 구분은 잘못된 것입니다. 착한 마법과 나쁜 마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마법은 하나도 예외없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죄악입니다. 검은돈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도박을 하건 자선을 하건 똑같이 범죄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처럼요.”

  아울러 리온은 설령 마법을 다 버린다고 해도 인간의 죄성을 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죄에 대한 결과는 악마들이 처할 운명, 곧 영원 형벌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다음 회차에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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