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7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7. 마법과 인본주의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2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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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론의 범위가 이 같은 적나라한 폭로에까지 도달하자 회당 내 분위기는 거의 폭동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고조되었다. 사람들은 도무지 리온의 선언과 그 권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레보나 덱스트로의 조력을 당장 받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리온은 재빨리 피신 차 몸을 움직였다. 문득 너무 의로운 분노에 벅차오른 나머지 일을 성급히 그르친 것이 아닌가 후회도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몰래 나타나 그를 골목길로 빼돌렸다.
“쉿, 제가 당신을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처음에는 납치를 의심했던 리온도 주변에 폭도들이 잔뜩 깔려있음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그와 동행하였다. 마침 인형 몸체에도 몇 가지 방어용 생체 갑옷이 탑재되어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리온을 대피시킨 사람은 검은 머리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회당 한구석에서 리온의 설교를 경청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 이름은 루드비히, 오래전부터 저는 블랙아트의 가능성을 연구해왔지요. 하지만 그 힘을 받아들일 때마다 인간 내면의 사악한 본성이 증폭되는 현상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을 보리라고 믿었지만 계속 실패했지요. 오늘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디 제게 인간의 원죄란 것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시지요.”
리온은 그의 용기와 친절에 감사를 표한 뒤 성경을 펼쳐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엄격한 도덕률과 로마서에 기록된 인간 죄악의 민낯을 공개하였다. 아울러 그는 인간이 죄인이 된 이유는 특정한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죄에 물들어있기 때문임을 알려주었다.
“그 죄의 본성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선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그분을 떠난 것 자체가 곧 일만 악을 낳는 뿌리입니다. 온갖 도덕적, 영적 죄들은 그 뿌리에서 나옵니다.”
전도자 리온은 그 근본적인 악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결코 영원 형벌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음을 온유하게, 그러나 무겁게 경고하였다. 비록 그 벌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지만 인간이 절대자께 돌아오기를 거부한다면 악마들과 같은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악마들은 인간들이 이생의 편안한 삶에 취해 영혼을 방관하다가 불 호수 가운데 자기들과 함께 멸망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물귀신들이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듣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괴로운 나쁜 소식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마저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들의 목숨을 대신 바침으로써 살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리온의 가르침이 계속되었다. 악마들은 비록 강력하지만,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그 힘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절대자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기에 그 능력이 무한하시며 능히 인간들을 죄악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루드비히에게 너무도 생소하고 낯선 것이었다. 끝으로 리온은 신께서 마련한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그 절대자께서 사람이 되셨는데 그 이름이 바로 이 책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그분 스스로도 아버지와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분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을 마음으로 믿는다면 악마의 영혼 저당 계약을 무효화하고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악한 일을 무수히 많이 벌인 사람이라도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분의 긍휼은 무한하십니다.”
루드비히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가 그토록 갈구해왔던 악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는 방법이 이렇게 너무 쉬운 원리로 제시되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려면 인간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포기해야 했다. 기존의 믿음 체계를 깨트리고 진리를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거를 제시해주실 수 있겠소?”
그래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믿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다행히 성경에는 신앙에 회의적인 자들에게 보여줄 객관적 증거가 차고도 넘쳤다. 리온은 자신이 원래 알던 지식과 에드레이의 유품을 통해서 배운 성경의 정미함을, 특별히 예언의 정교한 성취를 낱낱이 설명해주었다.
“하아,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제 확고하게 말씀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루드비히는 심히 근심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처음부터 관심을 껐더라면 어리석은 궤변으로 치부하고 마음 편히 가졌을 텐데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진리를 눈으로 확인해버리고 만 뒤라 도무지 방만한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가 없었다. 본래 깨달음이란 기쁨보다는 무게감을 주는 법. 그래도 양심적인 루드비히는 진리의 초청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도망할 배짱이 없었다. 그렇게 그날 밤, 밤새 쉬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서 온갖 토론과 신앙 고백의 향연이 이어졌다.
*****
엘리바스에 도달한 지 5일이 지난 뒤 윤혁, 리온, 루디아는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제대로 된 회심자를 얻지 못했던 티라노아 대륙에서의 인고에 비하면 나름대로 위안감과 성취감을 체험했다. 대놓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는 회심자들은 지극히 적었으나 마음의 문을 조금씩이나마 열려고 시도하는 이들은 종종 나타났었다. 선교팀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일하시는 것이라 믿고 용기를 얻었다. 어렴풋이나마 그분이 함께하는 듯한 위로가 전해졌다.
‘아직은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해. 하지만…….’
윤혁은 이 시간을 성장을 위한 훈련 기간으로 여기기로 했다. 처음 전도를 시작했을 때는 부족함과 미숙함이 많았지만, 확실히 삼인방은 차츰 성장하는 중이었다.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부드럽게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과 마음을 얻는 법을 익혔으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를 얻었다. 그와 더불어 팀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과 강점을 선명하게 확립하기 시작했다. 일꾼의 다양성은 예측불허의 상황에 맞서 효율적으로 대응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채워야 할 성장의 분량이 많이 남았다. 이를 해결하는 길에는 편법이 설 자리가 없었다. 묵묵히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이기심을 깨트리면서 정공법으로 매일 도전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북쪽으로 가자.”
다시금 리더인 리온이 새로운 항로를 정했다. 목적지는 북쪽. 엘리바스 대륙 북쪽 지대는 주로 해안 지역이었다. 바다 너머에는 커다란 섬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이 대륙권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으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섬의 이름은 하그위스. 문호를 오랫동안 닫아온 곳인지라 엘리바스의 시민들로부터 정보를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윤혁, 혹시 저 섬에 대한 정보는 못 구했어?”
리온이 질문하자 윤혁이 고개를 저었다.
“바깥에서 정보가 들어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해.”
진은 아직도 텔레파시를 보내지 않은 채 깜깜무소식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도전해보자.”
“그래, 어차피 언제 올지 모르는 소식통에 의존할 수 없으니까.”
일단 해안 지역의 몇 마을을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마친 뒤 셋은 작은 반도 지역에 집합했다. 그곳은 하그위스 섬으로부터의 거리가 가장 짧은 좌표였다. 두 기의 오토바이는 풍파를 헤쳐나가기 위한 에어바이크 모드로 전환하였고 세 일행을 실은 채 하늘을 가로질러 섬으로 질주했다. 도중에 바다에서 튀어나온 물고기 형태 신수들이 쫓아오는 통에 위기에 처할 뻔했지만, 덱스트로와 레보의 신들린 기동 솜씨 덕에 회피할 수 있었다. 하그위스의 해안에 착륙한 뒤 그들은 덜컹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숨을 돌렸다.
“매번 심장이 벌렁거리네.”
나름 산전수전 겪었다던 리온도 적응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찮아, 룻?”
“조금은 무서웠어.”
잔뜩 긴장한 루디아. 걱정이 된 윤혁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곁을 지켜주었다. 인형 몸체의 장점은 본체와의 동기화에 적합하다는 점,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위기감, 두려움, 위협감까지 현장 체험과 같은 수준으로 증폭시키는 양날의 검이었다. 모험과 위기에 익숙지 못한 그녀가 두려움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며 윤혁의 마음에는 미안함이 얹혔다.
“그냥 잠시 인형 접속을 끊어두지. 그랬으면 편했을 텐데…….”
“하지만……, 그러면 너 혼자 외롭게 난관과 마주해야 하잖아.”
“나는 이보다 훨씬 험한 일도 많이 겪어봐서 이 정도는 괜찮아.”
안심시키려는 거짓말은 아니었다. 바이오닉 솔져, 시뮬레이션 우주, 그리고 우주 함대 격전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일들을 겪었던 덕분인지 윤혁은 이제 웬만한 일이 눈앞에 닥쳐도 의연하게 굴 수 있는 담력을 얻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냐. 난 성취감만 함께 나누려고 온 게 아니야.”
루디아는 고개를 저으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고생도, 고난도, 두려움도, 전부 너와 함께 나누고 싶어.”
보이지 않는 뭉클한 울림이 동료들의 심장에 은은히 전해졌다.
“나도 약속할게. 우리는 이미 운명공동체니까.”
옆에서 리온도 의연히 한마디 거들었다.
‘하여간 필요 이상으로 믿음직스럽다니까.’
말없이 웃으며 윤혁은 속으로 낯부끄러운 말을 삼켰다.
*****
하그위스 섬은 과연 엘리바스 대륙 다른 지역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문화를 지녔다. 먼저, 그 섬에서는 모든 주민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거쳐 간 지역들이 전체 인구 중 일부분만이 마법 유저였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하그위스에는 엘리바스 내륙과 달리 용이 전혀 서식하지 않았다. 그 덕에 바깥과는 달리 내부에서의 지역 교류가 활발했다.
다만 엘리바스의 특징인 다양한 마법 분파의 분화는 하그위스 섬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이 특성은 지역 간 교류가 쉽다는 특성과 만나 수시로 대결과 경쟁이 벌어지는 구도를 낳았다. 각 마법 분파는 자신들만의 방식과 정의가 가장 올바르다는 굳은 맹신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차별하거나 멸시하였다.
다섯 분파가 하그위스 섬을 다섯 등분하여 지배했다. 섬에는 크게 다섯 개의 산지가 존재했는데 분파마다 하나씩 산지를 소유하였다. 산지마다 거대한 고원 지대가 있었는데 그곳들은 문파 본부이자 마법사들의 배움의 터였다. 그곳에서 숱한 젊은 마법사들이 양성되었다. 양육된 마법사들은 성년에 이른 즉시 군인이나 노동자로 차출되어 하산하였다. 산지가 아닌 평야 도시들에서는 산에서 양육된 다섯 분파 출신의 마법사들이 섞여 살며 치열한 경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때로는 다섯 산지 내부에서 같은 분파의 학생끼리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들은 스승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동료를 짓밟으며 올라갔다. 그들에게는 모든 종류의 마법 시합이 경쟁 수단으로 허락되었는데 심지어 무력 대결까지도 그에 속했다. 딱 한 가지 서로를 죽이는 것만 금지되었다. 그 이외의 행위는 무엇이든 권장되었다.
문파와 문파가 서로 의논하여 교류전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는 평상시의 몇 배 이상으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각 문파는 상대 문파를 통째로 와해시켜 자신들에게 복속시킬 작정으로 열정을 다하였다. 참고로 일전에는 백 개도 넘는 문파가 존재했었는데 현재는 불과 다섯 개로 줄어든 것도 이러한 경쟁이 오래 지속된 결과였다.
선교사 일행은 하그위스의 다섯 산지 중 가장 고도가 낮은 키링 산을 먼저 방문하였다. 세 일행은 마치 칼로 도려낸 듯 평평하고 드넓은 산 윗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자연적인 지리학 원리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였다. 윤혁은 이를 보고 산이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임을 눈치챘다.
‘하긴 세계 전체가 인공적으로 지어진 마당에 이상할 이유도 없지.’
때마침 키링 산에는 라링고 산지에서 파견된 대규모의 마법사 무리가 주둔하고 있었다. 현재 키링 일파와 라링고 일파는 산지 위에서 일종의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의 규칙을 따르고는 있었지만, 그 치열함은 가히 실제 전쟁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왜 서로를 죽이지 않는 걸까?”
살기 어린 대결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리온이 의구심을 품었다. 싸움의 기세만으로 봐서는 선혈이 낭자해도 이상하지 않거늘, 무슨 이유로 일정 선을 지키는 것인가.
“아마도 룰을 지배하는 자들이 따로 있겠지?”
윤혁은 하그위스 섬 내부에서의 경쟁들은 전쟁보다는 링 위에서의 격투기 싸움처럼 일정 규칙의 지배를 받는 게임에 가까우리라 추측했다. 그는 그 조율 시스템을 추적해보면 인류연합과 맞닿으리라고, 최소한 관련이 있으리라고 거의 확신에 가깝게 믿었다. 아마 살육 발생을 강제로 금한 이유는 관리할 세계 내부에 혼란이 확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리라.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전쟁이 벌어져 인구가 감축되는 편보다는 생육시키고 번성시키는 편이 부강한 우주 제국의 밑천을 만드는 데 유리할 테니까.
‘그러니 겁먹고 위축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속 편하게 평화의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그리 안전한 발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선교팀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당신들은 누구의 편이오? 아군이요? 아니면 적이요?”
세 일행은 그때마다 똑같이 대답했다. 자신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저 값없이 도움을 베풀고자 왔다. 그러나 마법사 대부분은 그들을 믿지 않고 도리어 밀어내거나 마법으로 위협하여 쫓아냈다. 안타깝게도 진지하게 영혼이 구원받는 일에 관한 문제로 담화를 나눌 기회는 좀처럼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다른 산지로 떠나는 게 나을까?”
루디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마 나머지 산지들도 별 다를 바 없을 거야.”
과연 리온의 현 상황 분석은 정확했다. 하그위스 사람들은 자기네 분파만이 마법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믿음에 굳게 사로잡힌 상태였다. 한마디로 불필요한 정의감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자기네 가치관과 조금이라도 어긋난 방향으로 마법을 이용하는 이를 보면 과감히 배척하거나 죽기 직전까지 당파 싸움을 벌였다. 얼핏 보면 비정상적인 광기 같았으나 사실 이는 과거 지구에서도 자주 일어났던 현상들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법이라는 실질적인 무기 존재 여부뿐.
그렇다고 마냥 포기하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교팀은 먼저 키링 문하생들의 지도자 역할을 맡은 파르티에를 만나 대화를 하였다. 그들은 비교적 온건한 성향이었기에 대화가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파르티에도 자신의 주장만 열심히 떠들었다. 나아가 그는 세 이방인에게까지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할 의도를 드러냈다. 마법이 사회를 어떻게 지탱해야 하며 마법사들은 외부와 어떻게 교류해야 하는지 등등, 일장 연설이 그에게서 쏟아졌다. 결국, 선교사 일행은 듣고 싶지 않은 철학, 정치관, 우격다짐만 실컷 듣고 말았다. 영혼의 문제는 애초에 마법사들의 관심 바깥에 있었다.
그 후 셋은 라링고에서 파견된 일행의 우두머리인 블라트미르와도 만나 힘겹게 대화를 시도했으나, 도리어 앞선 무리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과격한 라링고 문파의 마법사들부터 욕만 얻어먹고 쫓겨나다시피 달아났다.
“사사들의 시대의 우리 민족과 똑같아.”
이틀간 키링 산지를 탐방한 뒤, 루디아는 힘에 겨운 심정으로 씁쓸히 평가했다. 택함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채 제각기 자신이 옳다고 여기던 대로 행동했던 도덕적, 영적 혼란기. 이스라엘의 그 흑역사가 이 섬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나타나는 필연적인 모습이야.”
“지구도 이들보다 낫다고 말할 자격이 없겠지.”
리온과 윤혁도 전적으로 그녀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문득 윤혁은 자신이 오르케아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소위 ‘인간들을 돕기 위한 마법’이라는 허울 좋은 말.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무엇이든 선하게만 사용하면 유토피아가 찾아오리라는 한없이 순진한 생각.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라면 모를까,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어찌 악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의 악조차 다스리지 못하거늘.
하그위스 섬이라는 작은 무대에 펼쳐진 어리석은 인간 군상의 실태는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의견이 옳았음을 확인함으로 인한 기쁨은 들지 않았다.
‘마법은 인간을 위한 선물이 아니야. 악마가 준 마법이건, 인류연합이 만든 유사 마법이건,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을 높이기 위한 마음으로 벌인 일은 동일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선교팀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서 키링 산을 떠난 뒤 하그위스 내 다른 지역들을 몇 군데 더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곳들도 키링 산지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속 깊숙이 쓰라림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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