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7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8. 푸른도적단과 마녀의숲 (3)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28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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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대로 해. 바깥 세계 정보 문제는 네가 맡기로 했잖아.”
리온의 제안이 멍 때리던 윤혁의 귓가를 때리자 윤혁은 잠시 진지한 고민에 잠겼다. 과연 하늘도시 시스템의 진실에 대해서 밝혀도 될까? 어느 정도 선까지 허용될까? 혹 예전처럼 비밀 유지를 위한 보안 시스템이 발동하지는 않을까? 초인들이 이런 행위를 용납할까? 여러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칼티엔뉴르라는 세계는 애초에 그저 잘 짜인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의 뿌리는 다른 곳에 존재합니다. 그곳에서 탄생한 인류연합이라는 범세계 조직이 우주를 정복한 뒤, 수많은 인조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후손을 양산하여 각 세계에 심었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당신들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마법을 포함한 이능력들도 그들, 인류연합이 창조해서 심어준 것입니다.”
윤혁은 계속해서 초인들, 그리고 그들의 왕인 위버멘쉬에 대해 말해주었다. 의외로 이번에는 제재가 없었다. 담력을 얻은 그는 인공지능이나 시뮬레이션 우주를 비롯한 인류연합의 첨단 시스템까지도 언급하였다. 나아가 인류가 계획 중인 장래 우주 정복 계획까지도.
그런데 청중의 반응이 참으로 기묘했다. 보통 이런 우물 안 개구리 주민들은 세계관 너머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폭소를 터뜨리며 비웃거나 진지하게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마땅하거늘 청건당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새로 얻은 깨달음으로 두려워하거나 기뻐하는 모습도 없었고 충격적인 섭리를 이해한 것 같은 기색도 없었다. 그저 무신경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않는 것처럼. 같은 설명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의 반응만 돌아왔다.
“일단 당신들의 말은 잘 알겠습니다.”
해명을 마친 뒤, 선교사들은 구금실로 옮겨졌다.
‘잘 알아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아닌데?’
조금 전 대화 분위기의 기억을 한참 곱씹어본 후에야 이 상황의 의미를 얼추 알아차렸다. 청건당은 윤혁의 설명을 듣는 내내 아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치 못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어떤 간섭이 작동해 아예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옳으리라.
“너희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
윤혁이 동료들에게 확인차 질문했다.
“그래.”
“응, 분명 넋이 나간 사람들 같았어.”
리온과 루디아도 비슷한 감을 느낀 듯했다. 이에 조심스레 윤혁은 자신이 진에게서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추론을 말했다. 위험한 정보이기는 해도 언젠가는 말해주어야 하니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이 섰다.
“아무래도 하늘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일괄적으로 모종의 정신 간섭에 걸려 있는 것 같아. 그것도 세대에 걸쳐 대대로 대물림되는 아주 강력한 ‘광역 정신 간섭’에 말이야.”
그 추론의 첫 번째 근거는 아이카르 황자의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호의적 행동, 그리고 두 번째 근거는 외계 세상에 대한 정보를 받았을 때 최면에라도 걸린 듯 이해를 도통 하지 못하는 청건당 일행의 반응이었다. 이 두 정보만 놓고 보면 귀납적 추론에 의존해야 하겠지만 전문가이자 관리 당사자인 진의 증언으로 교차적 검증을 해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무리한 논리 비약은 아닐까?”
세상의 깊고 복잡한 사정에 접촉해보지 못한 루디아의 상식으로는 한꺼번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노예 상태로 감금하는 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건 생각보다 더 끔찍한데.”
리온은 선교팀 프로답게 냉철한 표정을 유지했으나 그 역시도 속에서 당장에라도 끓을 듯한 의분을 절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술력의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발칙한 금기가 암암리에 남용되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내밀한 분노를 일으켰으리라.
‘어르신께서도 정신 간섭 기술을 짐승의 표의 발판쯤으로 여기셨지.’
리온도 에드레이와 동일한 영적 경각심을 느꼈다. 정신 지배라니. 차라리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조성해서 사람들을 가난의 고통에 몰아넣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라 여겨졌다. 윤혁은 친구들에게 해명하는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꼈다. 어쨌건 이런 일들의 최종 책임은 자신의 형에게 돌아갈 테니까.
“아무튼 내 미약한 추리력으로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야. 여기 이 청건당 사람들도 인류연합의 하늘도시 시스템 유지용 복속 장치에 제어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겠지. 아마 칼티엔뉴르뿐 아니라 나머지 하늘도시들도 전부 피장파장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윤혁은 친구들의 눈치를 봐가며 설명을 겨우 마쳤다.
“하지만 조금 이상해.”
루디아가 의구심을 드러냈다.
“어떤 게?”
“우리는 여기서 내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와중에 지구에 대해서도, 더 나아가 바깥 세계에 대해서도 종종 언급했었잖아. 비록 이번처럼 대놓고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그때는 왜 지금이랑 달리 정신 간섭이 발동되지 않았을까?”
순간 두 친구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 부분을 점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분명 모순이 있었다. 어찌 해석해야 할까? 대강 두 가지 가설이 나온다. 첫째는 윤혁의 추론이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는 해석, 즉 정신 간섭이란 것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해석. 하지만 마냥 단정 짓기에는 꺼림칙한 면이 있었다. 리온은 조심스레 둘째 해석을 제시했다.
“어쩌면……, 영(靈)들의 영향 때문은 아닐까?”
“영적 존재라고?”
“윤혁 너는 정신 간섭 기술에 대해서 우리보다 박식하겠지?”
리온에게 정확히 정곡을 찔린 윤혁이 움찔했다.
“네 후원자라는 그 사람이 뭔가 알려줬을 거 아니야. 맞지? 그가 그 기술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했어? 금기 정보만 아니면 우리도 알고 싶은데 말이지.”
이에 윤혁은 황급히 옛 기억을 되짚어 올라갔다. 일전에 제로원에서 진을 처음 만났을 때, 그자는 직접 윤혁의 정신에 강제 접속을 시도한 바 있었다. 마인드 트릭 혹은 마인드 리딩으로 분류되는 기술적 조작이었겠지. 그때 진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도 얼추 설명했었다.
“맞아. 그 기술……, 인간 뇌 입자의 움직임을 읽거나 원격 조종하는 방식이야. 뇌란 것도 결국 신경세포들의 전기화학적 상호작용으로 작동하는 물체니까. 원격 물리 조작으로 그 패턴을 변형하거나 관측한다면 마음을 읽거나 조종하는 일도 가능해.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피상적인 수준까지만 허락되지만.”
하지만 그 기술력은 결코 전능치 못한 유한한 능력. 진은 마인드컨트롤 및 마인드 리딩 계열 기술력을 한껏 자랑했으나 동시에 그 한계 또한 분명히 인정했었다. 그는 인간 마음의 구성물 중에는 물리적인 요소인 뇌 말고도 다른 요소가 작용한다고 했었다. 유신론자인 윤혁은 그 요소가 바로 영(靈, Spirit)과 혼(魂, Soul)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혹시 리온 네 말대로 영적 존재들이 간섭했던 것이라면……, 뇌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인류의 정신 간섭 기술력은 영들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교란당했을 수 있겠네. 마음의 구성 요소는 뇌만이 전부가 아니니까.”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물론 에드레이 같은 천재와는 달리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청년들로서는 마음의 물리적 요소와 영적 요소가 얽힌 원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로 영과 육이 상호작용하는지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진리 분별에 쓸 수 있는 기준은 하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단순 억측은 아니야. 성경에도 엄연히 기록되어 있잖아. 믿지 않는 한 사람의 회심은 단순한 심적인 변화 그 이상이야. 영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대전쟁이지.”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한 영혼의 내면에서 믿음이 발생하는 과정, 곧 구원에 이르는 과정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경유해서 벌어진다. 인간의 완악한 자기중심성과 이기심을 깨트리는 과정에서 마음을 꿰뚫는 성령의 개입이 요구된다. 동시에 하늘의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도 영계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한 사람의 영혼을 차지하고자 애를 쓴다. 믿기 힘들어도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해 성경이 증언하는 바.
그토록 높은 차원의 강력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인간의 마음을 싸움터 삼아 싸움을 벌이는 마당이라면 인류가 발명한 정신 계열 과학 기술 정도는 아무런 기세도 뻗지 못한 채 꺾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닐까?
이 추론대로라면 지금 그들이 맡은 복음에는 단순한 정보 전달과는 근원적으로 급이 다른 강력한 영적 영향력이 담겨 있다는 결론을 나온다.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그 가시적인 증거를 체험해보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교사들은 다시금 그들이 맡은 임무의 막중한 무게를 실감하였다.
이후 셋은 상향과 하향이 언급했던 청건당 내부의 세력 분쟁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청건단 리더들이 정기적으로 계시 명령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고려했을 때, 역시나 인류연합 소속 시스템이 청건당을 수족처럼 부리는 중이리라고 추측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이상한 존재가 청건단에 새롭게 개입했다는 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 존재도 시스템 안에 속하였을까?
“혹시 인류연합 내부에서 권력 분쟁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한 시스템이 두 종류의 다른 계시 루트를 이용해 청건당을 양분시킨 뒤 양쪽을 동시에 조종하며 분탕질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지.”
둘 중 어느 쪽 추론이 정답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 듯했다. 칼티엔뉴르라는 인공 세계는 이미 그 근원부터 그릇되어 있다는 사실. 그들은 인류연합의 지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 희생된 가련한 실험용 쥐였다.
그렇게 토론하는 중 감옥에서의 하루가 쏜살같이 지났다. 달아날 틈은 생기지 않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덱스트로와 레보를 앞세워서 억지로라도 벗어났겠지만, 지금은 시도할 엄두가 안 났다. 청건당의 마법은 홀로그래피 차원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것인지라 로봇의 기능만으로는 맞설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설령 달아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청건당 측에는 탈출 추적 대응책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텔레포트 기술을 소유한 자들. 엄밀히 말하면 워프나 게이트와는 달리 비좁은 칼티엔뉴르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단거리 이동용 아류 기술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윤혁 일행을 농락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적의 마법은 공간이나 확률도 부분적으로나마 뒤틀 수 있기에 무력으로 맞서 싸운다는 선택지도 위험했다.
그나마 연약한 선교사들이 모여 궁리해볼 수 있는 시도라고는 기도뿐이었다. 리온과 루디아는 번갈아 가며 인형 접속을 끊고 지구에서 깨어나 본부에 남은 동료들을 데리고 합심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중 그 밤에 기이한 일이 발생하였다. 윤혁이 보관하고 있던 텔레포트 전용 마석(魔石)이 진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전에 아이카르 황자가 선물한 물건으로 마도구라는 꺼림칙한 점 때문에 윤혁도 사용을 보류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윤혁의 의도와 상관없이 윤혁의 목걸이에 매달린 반지가 갑자기 밝은 빛을 발하더니 강제로 마석의 진액을 흡수하였다. 이내 마석은 연기처럼 흐드러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뒤 반지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원격 좌표 변환 개시. 강윤혁을 주인으로 인식.}
깜짝 놀란 윤혁이 어리둥절하던 사이 그것이 다시금 질문했다.
{경계 바깥으로 이동하겠습니까?}
구속되어 있던 처지에 이보다 더 달콤한 제안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거리낌과 망설임이 느껴졌다. 왜인지는 몰라도 덫을 피해 달아나다 또다른 올무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마석도 그렇지만 더 두려운 건 이 반지 쪽인가.’
어쩌면 그가 애초부터 경계했어야 했던 요소, 윤혁에게 있어서 ‘마법’과도 같은 올무는 아이카르의 선물이 아닌 형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쳐가자 자신이나 칼티엔뉴르의 주민이나 경각심과 허술함에 있어서 누가 더 잘했고 못 했고를 비판하는 게 의미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필드의 영향력 때문에 이동 거리는 1,000km 이내로 한정.}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반지는 윤혁을 재촉했다. 낌새를 어렴풋이 감지해낸 것인지 청건당 쪽에서도 부산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 것은 아니겠지만 들켜서 좋을 일은 없었다. 어영부영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승낙하겠습니다!”
윤혁은 진지한 의지와 상관없이 황급히 결정을 내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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