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8. 푸른도적단과 마녀의숲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5.30 | 회차평점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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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이 번쩍였다. 일순간에 윤혁, 리온, 루디아, 그리고 덱스트로와 레보는 전혀 다른 배경의 공간으로 이동됐다. 워프할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제한적 단거리 순간이동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직 깨어있던 루디아는 재빨리 리온을 깨웠다. 그들은 윤혁에게 자초지종을 듣고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제야 그들은 그 반지가 단순히 출입 코드를 새겨넣은 장식품이 아닌 초고도 문명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 윤혁은 사실을 숨겨온 것을 사과하였다.
“일부러 감추려던 것은 아니었어. 이 반지는 형과 내가 하나씩 나눈 한 쌍의 물건 중 한쪽이야. 아마도 두 반지가 서로 일정 수준 공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겠지. 기능까지 공유할 줄은 몰랐지만…….”
사실 윤혁도 원래 반지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오직 하늘도시에 출입하기 위해 열쇠 기능만 이용할 작정이었다. 나머지는 건드릴 엄두도 안 냈고 실제로 탐색해보지도 않았다. 이번에 텔레포트 기능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다.
“사용하지 않았다면 청건당의 본부에서 달아나지 못했겠지. 하지만.”
정황을 이해하자마자 리온은 윤혁을 정당화해주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것은 고마운 일이어도 미래를 대비해 충고는 해야 했다. 그는 친구가 칼티엔뉴르 시민들과 같은 실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리 유용한 힘이 있어도 그것에 마술적으로 의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니까. 하물며 저 반지는 무려 인류연합의 수장이 만들어낸 물건이지 않은가.
“그 반지는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리온은 한번 강력한 힘에 맛 들인 후 변질하여 버린 사람을 자주 보아왔다. 만약에라도 친구가 그런 궤적을 따르는 모습은 결단코 보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그래.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친구니까 알아서 잘하리라고 믿어. 그래도 부디 앞으로도 세상 권력과 연계될 수 있는 힘을 주의해줘.”
윤혁도 반지가 양날의 검임을 이해했다. 세계 선교의 길을 뚫을 열쇠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한 개인을 넘어뜨릴 수 있는 유혹 덩어리였다.
‘앞으로도 끝까지 이것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자기 정신력과 신념만을 믿기에는 스스로 돌아보기에도 부족함이 많았다. 그는 삶의 모든 방식과 기준을 주님께만 두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청소년 시절에도 그분을 통해 정욕의 유혹을 견뎌냈으니 이번에도 자기 자신이 아닌 신적인 은혜를 힘입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편 선교팀은 인근 마을 사람들로부터 얻은 지리 정보와 덱스트로의 광역 관측 데이터를 조합해 텔레포트 착륙 위치를 파악했다. 그곳은 톨루미온 대륙의 남부에 연결된 페어리테일 반도(半島), 소규모의 도시 왕국과 하나의 제국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페어리테일 반도는 톨루미온 대륙에서 유일하게 청건당의 마수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 동시에 이 지역은 감사하게도 마법 기술이 차지하는 문명 내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이는 특이한 일이었다. 페어리테일 반도는 하그위스 섬처럼 자연적인 방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강력한 무력을 소유하여 스스로를 청건당으로부터 방어할 방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기현상에는 제삼의 요인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페어리테일 반도는 매우 유명한 마녀 거주지였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녀 기원에 대한 여러 설화가 떠돌았다. 대체로 페어리테일의 역사학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해석은, 그 마녀라는 존재들이 외계에서 온 인간 외의 존재라는 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마녀가 외계 존재인 것은 아니었다. 실례로 어떤 개체는 원래 인간이었다가 마녀가 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렇듯 외부 유래의 태생적인 마녀도 발견되었고 후천적인 마녀가 발견되었는데 이 둘이 뒤섞여 살다 보니 어느 개체가 어느 부류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대체로 마녀들은 깊숙한 숲속의 으슥한 지역에 살았다. 정글이나 숲 지대가 많이 우거진 페어리테일 반도는 음침한 마녀들이 숨어 살기에는 최적격이었다. 그들은 원체 인간과 잘 교류하지 않았다. 어쩌다 접촉하는 경우도 대부분 특수 거래뿐이었는데 당연히 떳떳하지 못한 밀담일 수밖에 없었다.
거래 내용은 주로 마녀들의 이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칼티엔뉴르 전체를 통틀어 오로지 페어리테일 반도에서만 발견되는 이 특이한 종족은 예지, 저주, 강령술 등의 고유 능력을 자랑했다.
몇몇 마녀는 이런 능력 방면에서 매우 뛰어났다. 그런 개체들은 역사책에 남겨질 정도의 악명을 떨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왕가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걸어 대대로 자손들이 마비 독에 찔려 동면에 빠지게 만든 대 마녀 ‘멜리파스’, 학대받던 고아와 거래하여 부유한 자의 배우자가 되도록 만들어준 ‘갓 마더’, 이종족에게 지능을 부여하여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게 했던 ‘에쉴라’ 등등 참으로 기막힌 존재들이 설화로 남았다.
하지만 실상 마녀 능력의 진상을 아는 주민은 없었다. 이 마녀라 불리는 기이한 작품은 사실 세계 외부 시스템이 만들어낸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마녀의 예언 능력은 인간의 뇌를 강제로 ‘시공간-확률 관측기반 초고도 미래예지시스템’에 공명시켜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저주는 소위 ‘마녀의 망령’이라고 불리는 차원 침식형 자율전투 인공생명체들을 마녀의 몸에 종속시켜서 이뤄낸 기술이었다. 마녀와 계약한 이 괴생명체들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산물로 칼라비-야우 차원을 헤집고 이동하면서 특정한 명령어를 현실에 시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령술은 인간 뇌세포의 전기 신호를 복제해낸 소프트웨어를 소환하는 기술이었다. 즉 실상 진정한 의미의 마법은 없었고 전부 과학에 의한 눈속임.
칼티엔뉴르를 외부에서 지배하는 시스템들은 인공생명체와 로봇을 융합시켜 초기 세대 마녀를 만들어냄으로써 Witch-King 프로젝트의 출발선을 끊었다. 그 뒤 마녀들을 각 지역에 파견하여 인간에게 힘을 공명하고 전이시키는 실험을 하였다. 대부분은 인간들은 그 힘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지만, 극소수 지역에서는 약간의 성과가 있었다. 페어리테일 반도는 그 소수에 속했다.
그런데 Witch-King 프로젝트는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점점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마녀가 되기를 자처한 인간들의 정신에 불청객들이 끼어든 것이었다. 인류연합조차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초고도 문명마저 뛰어넘은 상위차원의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분류나 해석이 불가능한 존재들이었기에 뭉뚱그려 ‘초자연’이라고 불렸다.
사실 과거에도 인간의 과학 기술이 부작용을 일으킬 때마다 이 불청객들은 파리떼처럼 몰려오곤 했다. 인간이 약물을 개발했을 때도 이 악령들은 중독을 도구로 삼아 인간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또 대중매체가 유행이었을 시절에는 그것 역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번에는 마녀의 힘에 중독된 여성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미개 문명 시절의 마녀들을 지배했던 영들이 이제는 과학 기술로 창조된 신개념 마녀들의 삶도 똑같이 간섭하였다. 물론 선교팀은 당시에는 이러한 자세한 배후 민낯까지 알지는 못했다. 훗날 윤혁은 초인들과 형에게서 과거의 문서를 받음으로써 이러한 사실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여하튼 선교팀은 각자 흩어져 이 불쌍한 땅 위에 살아가는 마녀 기술의 희생자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지역 주민들만 만나면서 복음을 전할 작정이었다. 팀원 셋 모두 마법 문명에 환멸을 느끼던 차였고 온갖 유형의 마법사들을 상대하느라 몹시 지쳐있었다. 그렇기에 억지로 오컬트 기술에 중독된 자를 찾아가 고생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을 원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세 선교사는 각자의 길목에서 마녀를 만나게 되었다. 훗날 그들은 이 체험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하였다. ‘그때 겪은 원치 않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냥 겁먹고 도망치는 대신에 도리어 가장 비참한 처지의 이들을 돌아보라는 하나님의 계시였을지도 모른다.’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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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레인은 페어리테일 반도 남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던 여인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데비레인은 이웃집 마녀의 손에 양육됐다. 안타깝게도 마녀가 정상적인 양육을 할 리는 만무했다. 데비레인은 심각한 애정 결핍을 앓으며 비뚤어졌다. 그녀의 내면에는 끊이지 않는 갈증과 공허가 늘 일었다.
데비레인은 양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히 마녀 세계에 입문하였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몇몇 동네 친구들과 함께 마녀가 되기 위한 사교 클럽에 들어갔고 거기서 진짜 마녀들의 교육을 받았다. 마녀가 될 각오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실제로 원조 마녀에게서 마녀 후보생에게로 힘이 전수되는 통로도 엄연히 존재했다. 여기에 혹한 후보생들은 힘을 얻어 욕망을 실현하기를 갈망하였다. 참고로 칼티엔뉴르 인간들의 정신 속에 공통적으로 심어진 모종의 ‘보편 장치’와 Witch-King 프로젝트에 투입된 ‘특수 공명 기능’이 그 통로의 정체였는데 이런 내막은 선교팀 일원들도 훗날 과거 문서를 참고하여 알게 되었다.
데비레인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녀 시절의 그녀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세 명의 대(大) 마녀와 한 명의 ‘태초의 마녀’의 간택을 받아 갈구하던 마녀의 힘을 얻게 되었다. 강력한 힘이 데비레인의 몸과 마음을 침투하자 그녀는 약물에 취한 듯 극한의 쾌락을 느꼈다. 실제로 마녀 권능의 본질이란 외부에서 생성된 첨단 소프트웨어의 뇌 잠식이었으니 사실상 약물 중독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데비레인이 그것까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대 마녀의 위치에까지 올랐고 탁월한 능력으로 여러 사람과 거래를 체결하여 자신의 명성과 실력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잘생긴 남자가 숲속에 들어와 그녀에게 거래를 청했다. 그는 페어리테일 제국의 열한 번째 황자였다. 그는 황위 쟁탈전에서 살아남아 승리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 근방에서 유명했던 마녀인 데비레인을 선택했다. 데비레인은 황자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황자를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마녀 마법을 남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힘에 침식된 그녀는 마음이 피폐해졌지만, 사랑 쟁취에 맹목적으로 인생을 걸었던 그녀는 눈이 멀대로 멀어 있었다.
황자는 마녀의 도움으로 형제들을 무찌르고 황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모든 것을 얻은 뒤 그는 데비레인의 애정 공세를 물리치고 그녀의 순애를 배신하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녀는 애처롭게 달라붙었으나 염증을 느낀 황제는 그녀를 자기 영토에서 쫓아내 버렸다. 결국, 분노한 데비레인은 황제의 가문에 저주를 내렸다. 그 영향으로 본인의 영혼 또한 ‘마녀의 망령’에 침식되어 살지도 죽지도 못한 신세가 되어 하염없이 유폐 생활을 보냈다.
망가진 채 버려졌던 그녀에게 세월이 흘러 어느 날 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그는 태초의 마녀가 태어난 기원인 바깥 세계에서 온 자였다. 그 지역에 생소한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한 그 손님은 특이하게도 지금껏 보아온 타인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안녕하세요, 잠시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유도 없이 기묘함이 느껴지는 만남이었다.
“저는 강윤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그날 마침 윤혁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숲속으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마침 그 근방에는 데비레인의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연치고는 흥미로운 만남이었다.
“편히 쉬고 가세요.”
그렇게 그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낯선 이방인과 가까워졌다. 이상하게도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들지 않았다. 어느덧 그녀는 자신의 사정과 속내와 고통에 대해서도 하소연하였다. 술 취한 것도 아니거늘 편안히 내면이 토설 되었다. 차별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그의 영이 희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데비레인을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았다. 나아가 그녀를 마녀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진실을 말해도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윤혁은 온유한 어투로 마녀 마법의 진상을 일러주었다.
“아마 당신은 힘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열망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은 공감합니다. 인간은 늘 내면의 부족함을 뭔가로 채우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갈망은 공허한 마음을 더욱 심하게 망가뜨릴 뿐입니다. 진정한 힘은 남들을 저주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데서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부드러운 훈계와 조언이 그날따라 유난히 옳게 들리고 납득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황자를 향해 품었던 실패한 사랑이 실은 뒤틀린 감정에서 유래한 왜곡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람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인간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이 존재합니다. 당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 어두운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구세주의 사랑이죠.”
그날 그녀는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창조주께서 외아들을 보내셔서 이루어내신 위대한 업적을 들었다. 언뜻 듣기에는 동화처럼 막연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증거의 여부나 역사성을 따지며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녀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이 평생 갈구해왔던 진정한 사랑이 그 이야기 안에 녹아 있음을 느꼈다.
‘내 인생은 너무 엉망이 되었어. 이제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
그녀는 이방인이 전해준 그 위대한 신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그토록 괴롭혔던 뒤엉킨 어두운 목소리들이 일순간에 일제히 침묵하였다. 여전히 Witch-King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뇌 후유증은 남아있었지만, 그 대신 고통을 상쇄할만한 기쁨이 몰려왔다. 청년의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이었음이 그녀 안에서 명확히 입증되었다. 실존하던 괴로움을 단번에 치유해준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또 있겠는가.
“제게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요?”
“아무래도 당신을 옭아매던 모든 악령이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벌벌 떨며 쫓겨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당신의 안에서 치유의 사역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속박에서 놓인 데비레인은 큰 소리로 울며 감격을 쏟아냈다. 평생 그 어떤 것도 그녀의 공허를 채워주지 못했거늘, 단 한 번의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 너무도 쉽게 충만함을 얻다니. 지난날의 부질 없는 노력들이 허탈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제 증오심이나 복수심, 힘에 대한 갈망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난 잘못의 무거운 죄책감도 눈 녹듯 사라졌다.
또 한 명, 그녀의 기쁨 어린 고백을 들은 청년도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뭉클함에 압도되었다. 기나긴 인고의 여정을 통과한 끝에 드디어 한 영혼을 추수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는 산모의 기쁨이 이런 느낌일까? 벅찬 감정을 절제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 귀한 첫 열매에 대한 수고의 영광을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전적으로 올려 드렸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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