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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2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8. 푸른도적단과 마녀의숲 (6)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06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공적이고 중차대한 주제로만 대화하다 보니 부담감에 분위기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일행은 환기가 필요함을 느꼈다. 마침 어느덧 이야깃거리가 떨어졌고 이에 팀원들은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지 한복판에 의지할 사람이 서로밖에 없다 보니 평소보다 타인 앞에서 솔직해지기 쉬웠다. 그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을 어찌 보내왔는지, 고향과 가족들에 대해서, 자신의 두려움과 고민은 무엇인지 등을 공유하였다.

  “나는 이집트의 소외 구역에서 태어나서 줄곧 자랐어.”

  리온이 먼저 화두를 열었다.

  “이집트는 지금이야 사하라 연합 내지는 남부 섹터로 재편성된 지역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모양새나마 주권 국가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 대가로 줄곧 낙후되고 소외되었지. 가뜩이나 혼돈의 시대 때 큰 손해를 입은 탓에 사회 인프라를 아직 회복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개략을 알던 윤혁도 자세한 사정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우리 고향의 주류 기독교 종파는 서방 개신교와 잘 교류하지 않았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끝까지 세계 선교에 동참하지 않았겠지. 나도 그랬어. 나보다는 오히려 내 친구 마라크가 선교에 뜻이 있었어. 그런데.”

  폐쇄적이었던 그를 세상 밖으로 떠민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생각지도 못하게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예측지 못한 흐름에 휘말렸지.”

  ‘사부라는 그 사람인가?’

  문득 예전부터 자주 언급되던 리온의 사부, 그 사람 이야기가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러고 보니 에드레이도 그 사부라는 자를 잘 알던 기색이었다. 그녀라고 대명사를 칭했던 것 같으니 아마도 여인이리라. 한편 예측하지 못한 흐름이라는 리온의 표현에 윤혁은 자신과 형과의 만남을 짐짓 떠올렸다.

  “처음 사부를 만난 건 여덟 살 무렵이었어.”

  황량해진 근동 지역을 구하고 주민들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찾아온 평화의 사자. 그때의 세상은 위대한 문명으로 진보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으나 여전히 곳곳에는 신음하는 이들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평화를 설파하며 민족과 종교를 초월한 협력을 외쳤다. 인류가 이룩한 놀라운 물질문명의 혜택을 소외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구제 사업에 힘썼다.

  “그녀는 우리 지역 주민 모두에게 신망을 얻었어. 내 가족도 포함해서. 원체 여러 지역을 순회하던 사람이라서 우리 고을에는 잠시 발만 담그고 갔었지. 그것만으로도 무너진 일대를 다시 세워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세계를 누비던 시절의 그녀는 발이 닿는 곳마다 ‘성녀’라는 칭송을 받았었는데 이는 리온의 고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 개인적인 친분이 특별하지는 않았어. 그저 후원자와 피 후원자의 관계였지. 그녀는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선행을 많이 베풀던 사람이었기에 나 같은 피 후원자를 전 세계 곳곳에 숱하게 뒀었지.”

  명망 있는 지식인이 어려운 지역의 불우이웃을 후원하는 좋은 그림.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럴싸한 그림은 아니었다. 사부는 리온이 만나온 이들 중 최고로 지혜로운 자였고 넘치는 선행이 몸에 밴 자였다. 아름다움 또한 굉장했기에 성녀라 불리기에 지극히 어울렸다. 그래서 여덟 살 무렵 그녀와 만났던 마라크와 리온은 나름 그녀에 대한 좋은 기억을 새길 수 있었다. 가난하기 그지없던 소년들과 선량한 후원자는 짧은 조우를 마무리하면서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맺었다.

  놀랍게도 사부는 떠난 지 약 4년이 흐른 뒤 정말로 소년들을 다시 방문하였다. 소년들은 용기를 내어 자신들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꺼냈다. 처음에는 상냥히 거절했던 그녀도 거듭되는 부탁에 마지못해 수락하였다.

  사부는 모든 능력이 탁월했으나 특별히 교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이로운 재능을 지녔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에게라도 어느 한두 분야에서만큼은 독학으로 높은 경지로 올라갈 재주를 새겨주는 재주. 굼벵이도 쓸만한 재주꾼으로 만드는 마술사. 그녀는 세상 그 어느 선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대 스승이었다. 리온과 마라크는 그 가르침에 힘입어 놀랍도록 성장했다.

  “그녀는 나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 오늘날의 나를 빚는 데 그녀도 엄청난 영향력을 남겼어. 하지만 결국 나는 그녀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지. 사부의 지식을 배우면 배울수록 마라크와 나는 그녀와 우리 둘이 극명한 대척점 위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윤혁이 궁금해하며 되물었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하나로 만날 수 있다고 믿었어.”

  루디아와 윤혁은 화들짝 놀랐다.

  “그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던 선생이었거든.”

  종교다원주의자. 그리고 종교통합주의자. 참으로 아이러니한 노릇이었다. 모름지기 스승은 제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거늘, 어찌하여 종교통합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자에게서 복음주의자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답은 의외로 매우 간단했다.

  “난 그녀에게 배우기 이전부터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어.”

  어린 시절의 리온에게는 이미 절대 불변의 뿌리가 있었다.

  “사부에게 배운 것은 주로 철학, 수사학, 논리학, 사회과학, 종교학 등이었지. 나는 그녀 덕에 도리어 세상 모든 종교, 철학, 가치관의 허와 실을 뜯어볼 수 있었어. 흥미롭게도 그 덕분에 성경과 나머지 모든 것을 명료하게 비교하고 분석할 기회를 얻었지.”

  흥미롭게도 그 사부라는 이의 교육 방식은 리온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는 그녀를 반면교사로 삼도록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사상을 되도록 제자에게 강제 주입하지 않는 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세뇌하기보다는 끝없는 의심을 주입하여 스스로 직접 진리를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순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리온이 가장 순수한 초교파적 복음주의자로 각성한 데는 그녀의 기여가 컸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답을 점검해본 뒤에야 무엇이 진실인지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가장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지금도 비슷한 관계를 체험 중인 윤혁은 그 처지가 쉽게 이해되었다. 당장 자신이 현대 문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나름 이 팀에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대척점인 인간과의 관계’에서 훈련된 기반 때문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뒤에는 그분과 어떻게 된 거야?”

  루디아는 뒷이야기를 궁금해하자 의외로 리온은 평소의 의연함과 안 어울리게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스승에게 교육받았던 과거의 2년, 안타깝게도 그 마지막 대목은 슬픈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열네 살 무렵이었어. 나와 마라크의 식구들은 사부께 감사 인사를 할 겸 소소한 만찬의 계획을 잡았지. 우리는 어느 날을 잡고 약속 시간을 정했어. 그런데 마침 그날이 이르렀을 때…….”

  리온은 다음 대목을 털어놔도 될지 한참 고민한 뒤에 입을 열었다.

  “마라크의 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어. 나와 할아버지는 마침 건물 밖에 있었기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내 친구의 가족은 어린아이 하나만 제외하고 몰살당했어. 내 식구 중 몇몇도 타계했지.”

  뜻밖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질문을 던진 루디아는 몹시 미안한 심정이 들었다. 다만 윤혁은 이미 그 이야기를 켄 할아버지에게 들어 대강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끄덕거리기만 했다.

  “이젠 괜찮아. 옛일인걸.”

  리온은 도리어 걱정하는 친구들을 위로했다.

  “사부라는 분은?”

  “그날의 사건 이후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어. 그 이후로는 인연이 끊어졌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때의 폭발은 그녀를 표적으로 노렸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이젠 베일 속에 묻힌 진실이지만.”

  더 장황하게 담화를 펼칠 수도 있었으나 리온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루디아는 혹시나 자신의 경험이 동료를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도 자신이 타지를 떠돌다 공동체 식구들을 잃었던 비극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고백하였다.

  “원래 내 어머니는 나를 낳은 이후에 예슈아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어.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나는 일곱 살 이전까지는 다른 메시아닉 가정에서 키워졌어.”

  어머니의 상실도 비극이었으나 진짜 비극은 그 뒤의 일이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본국에서 쫓겨났어. 그 당시의 우리나라는 심각한 혼란 가운데 있었지. 우리 때문에 이스라엘이 인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며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불평했었지.”

  당시의 루디아는 어렸기에 사정을 잘 몰랐지만, 그 술렁거림의 결정적 계기는 이스라엘 시민들이 당시 막 성립되었던 신(新)경제 시스템에서 축출된 사건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 인류가 풍족히 누리는 ‘자본 포인트’ 체계는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만 교묘히 박탈되었다.

  불행히도 그 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분노는 메시아닉 동포를 겨냥하였다. 이전 세기부터 국가의 배신자 취급을 받던 이 불쌍한 무리는 이스라엘 경제 대란 이후로는 더할 나위 없이 극렬한 핍박에 휘말렸다. 평판이 회복 불가의 상태에까지 추락한 그들은 끝내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처우였지만 그만큼 당시의 유대인들은 눈이 멀어 있었다. 위버멘쉬를 메시아로 모시려 했던 그들은 영적으로도 어리석어질 대로 어리석어진 상태였다.

  “그 후로 나는 나처럼 가족을 잃은 다른 유대인 난민과 모여서 유사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떠돌아다녔어. 지금 나를 돌봐주시는 할아버지도 함께 계셨지.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전혀 환영받지 못한 채 배회했지.”

  과거 디아스포라 유대인 선조들처럼 경제 활동이라도 허락되었다면 모를까. 예슈아를 믿었다는 죄로 억울하게 쫓겨난 22세기의 유대인들은 경제력조차 사용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떨어져 궁핍이라는 고난까지 이중으로 겪어야 했다. 불행히도 고난의 절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열두 살 때, 우리 공동체에 큰 재난이 벌어졌어.”

  산림 지대에서 살던 루디아의 소속 공동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돌발적 재앙을 맞이하여 몰살에 가까운 폐해를 입었다. 폭격, 안드로이드 군단, 총을 든 갱들의 공격. 중동의 범죄자와 테러 집단이 유대인 난민의 마을을 엄습했다. 영문도 모르고 어린 루디아는 또다시 가족들을 잃어야 했다. 아렌과 루디아 단둘만이 살아남았다. 그때는 앞길이 막막했다.

  “낙담한 나머지 모든 것을 저버리고 싶었지.”

  하지만 그렇게 절망하던 중 기적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었어. 그 사건이 있는지 몇 달 후, 전 세계에 흩어진 난민들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나선 세력가가 나타났다. 그녀는 전령들을 세계 각지에 파견하여 본국에서 쫓겨났던 유대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 안에 그들이 거할 터전을 제공하였다. 그렇게 수년간의 고통스러운 피난 생활도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그 혹독했던 시련으로부터의 건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이야. 물론 섬의 주인께도 고마워하고 있고.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고향 이스라엘을 메만지고 있어. 언젠가는 돌아가야만 할 우리 터전이니까.”

  듣는 내내 일행 모두는, 특히 윤혁은 마음이 숙연해졌다.

  ‘다들 자신만의 고난이 있었구나.’

  서로 걸어온 길도 달랐고 각자의 사연과 그 사연의 수용도 달랐기에 누가 누구보다 더 아팠고 편안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쁘고 슬픈 여정들이 하나로 엮여 이들을 이 한자리에 모아주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셋은 아픔의 기억을 초월하여 이 현재의 순간을 감사하였다.

  이렇게 담화를 나누며 선교사들은 각자가 겪어온 각기 다른 협로와 그 길을 극복해온 여정을 전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영혼의 공감대는 한층 더 깊어졌다. 대화가 계속 무르익으며 해후의 향기가 세 친구의 심령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어찌나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는지 셋 모두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새벽이 오는 줄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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