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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5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9. 무덤에서 온 전언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2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 연속됨)

 

 

 

 

 

  공작 부인은 정령술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소환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공간에 서식하는 아종 신수를 소환하는 능력을 소유했다. 이 소환 술식은 본인의 신체를 매개로 했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많은 소환을 해온 공작부인은 이미 기력이 상당히 쇠약해진 상태였다. 더불어 수십 년간 신수들과 끝없이 의사소통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목소리에 섞인 희미한 노랫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탓에 그녀는 평소에도 좀처럼 편히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혹시 부인께서도 그것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까?”

  윤혁의 질문에 부인은 화들짝 놀랐다.

  “그 사실을 그대가 어찌 아신단 말입니까?”

  “저 역시 비슷한 존재들과 대면했었기 때문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세계에도 이곳의 신수들과 비슷한 신수들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영향력입니다. 그것들이 활보하는 통에 우리 세계의 사람들은 영적으로 침체하고 말았습니다.”

  윤혁은 우상숭배라는 개념을 알려주었다.

  “먼 옛날, 사람들은 참된 한 분의 절대자만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그분을 미워하여 그분을 떠나갔죠. 이 배신이 죄악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차차 악한 마음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공작부인의 머릿속에 호기심을 유발했다.

  “그래도 인간들은 마음 한쪽 편에는 신적 존재를 찾으려는 갈망이 남아있었죠. 마치 아이가 탯줄을 잘라도 배꼽이 남는 것처럼요. 그러나 죄의 본성 때문에 원래 섬기던 진정한 신께는 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허상 속의 가짜 신들을 발명하여 참 신을 대신하여 섬기기 시작했죠.”

  그 가짜 신들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으니, 때로는 인간 자기 자신이 신이 되기도 했고, 가족이 신이 되기도 했으며, 돈과 재물이 신이 되기도 했다. 신화라는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했고 말 못 하는 목상을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는 이도 있었다. 이러한 왜곡된 예배는 회복은커녕 더욱 큰 죄악의 올무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한 영들은 기회를 틈타 만들어진 우상 뒤에 숨어 사람들을 간교하게 조종했는데 이로 인해 인류의 삶은 죄로 얼룩져졌다. 쭉 이어지는 윤혁의 해설을 들으면서 그녀는 점차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시대가 많이 지나 인간의 과학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습성은 변치 않았죠. 인간들은 기어코 살아 움직이는 우상마저 창조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으로 쓰도록 주신 지성을 남용해서 말이죠. 그 움직이는 우상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세계와 당신들의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신수들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에는 거짓 선지자가 짐승의 우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서 움직이도록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윤혁은 비록 지금 당장 그 일이 현실화하지는 않았어도 현시대 문명의 흐름은 최소한 그러한 종말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굳게 확신했다. 물론 그 부분까지 공작부인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한 번에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너무 큰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과연 공작부인은 크게 고뇌하였다. 지금껏 평생 함께해온 강력한 힘을 내어버리자니 참으로 근심되었다. 하지만 잠잠히 지난 생애를 돌아보니 그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부분이 너무도 많았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우상을 버려야 함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죄를 지어서 참 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금 우상을 버리고 그분을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분이 만나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이때 문지방에서 듣고 있던 리온이 정중히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분께서 당신께 먼저 다가오셨다면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제게 그분이 다가오셨다니요?”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리온은 신께서 직접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오신 뒤 죄지은 인간을 향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신 그 위대한 사건에 관하여 조목조목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여기며 믿지 못하던 그녀도 성경에 기록된 예언과 예표의 오묘한 짜임새를 확인하더니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수십 년간 곪아왔던 마음의 고름들이 터뜨려져 말끔히 씻겨졌다. 그날로 그녀는 즉시 회개를 행동으로 옮겼다. 소환술과 관련된 각종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저택 안에 쌓아둔 매개체들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선교사들에게는 정중히 부탁했다. 자신도 이제부터는 이 기쁜 소식을 직접 남편과 하인들과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고 싶으니 성경의 모든 진리를 가르쳐달라고.

  당연히 일행은 감격하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녀에게 올바른 교리 지식과 성경적 세계관을 확립해주고자 핵심적인 것들을 요약해서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모든 양육을 이루기엔 시간이 부족했기에 나머지는 성경 그 자체에 맡기기로 했다. 그들은 공작부인에게 날마다 성경을 직접 탐구하며 묵상할 것을 권고했다. 혼자서만 공부하면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해 주석 책도 덤으로 선물했다. 그녀는 희락에 충만하여 감사 인사를 표하였다.

  이튿날, 선교사들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 길을 재촉했다. 공작부인은 나그네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과 물품들을 마련해주었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호의의 선물을 받은 뒤 저택을 떠났다.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가 이 뒤를 맡아주리라는 기대감 덕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 그들은 칼티엔뉴르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를 믿음으로 점령하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힘을 내어 나아갔다.

 

 

 

 

 

 

*****

 

 

 

  칼티엔뉴르 단기 여행의 끝자락에 만난 선교지는 여러모로 다른 곳과는 달랐다. 그곳에 대해 묘사하려면 ‘기괴하다’, ‘흉악하다’, ‘당혹스럽다’ 등의 형용사가 필요했다.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대적하기 몹시 곤란한 난관에 봉착했다.

  무력 대립이나 맹렬한 핍박이나 치밀한 훼방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류는 이미 실컷 상대해본 바 있었기에 이골이 나 있었다. 그러한 난관들은 감당하기 어렵긴 해도 하나님의 보호를 힘입는다면 능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요컨대 사람들의 거절이나 무관심은 전도자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정한 위협은 따로 있었다. 기독교 신앙의 근간 자체를 흔들려는 미혹, 그리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현란한 거짓 기적. 칼티엔뉴르에서도 최후에 마주할 최강, 최악의 적수는 미혹의 권세였다.

  사실 이는 딱히 새로운 패턴이 아니었다. 근현대 시대 지구에서는 무신론과 유물론에 기반한 이론들이 범람했었다. 그 신봉자들은 각종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를 내세워 ‘마침내 우리 인간이 신이 설 자리를 없애버렸다’라는 신성모독적인 선언을 외치며 사람들을 배도의 길로 이끌었었다. 이후 과학이 발전하여 유물론은 반증 되어 폐기되었으나 인류는 고의적인 미혹 행위를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속임수를 끝없이 생산해왔다.

  문제의 땅은 소위 ‘죽음과 환생의 터’이라는 지역에 별칭으로 불리는 언데드빌리지(Undead Village)들이 옹기종기 모인 지대였다. 그 지역은 통일된 행정 체계가 없이, 각 고을별로 세력이 나누어진 지역이었다. 사람들의 생활 양식 자체는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기이한 점이 있었으니, 이 지역에는 온갖 엽기적인 ‘사후세계관’이 성행하였다. 더욱이 사후세계관을 뒷받침하는 현란한 기적들도 자주 발현되었다. 쉽게 말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강령술과 부활술이 성행하였다.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그 지역에 전파하면서부터 강령술의 심각성을 철저히 인지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늘 그래왔듯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의 역사성과 부활의 명확성을 모든 이 앞에서 담대히 전하였다. 그런데 듣는 이들의 반응이 참으로 요상했다. 보통의 거절자였다면 ‘아니, 세상에,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살아난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라는 식으로 대꾸해야 하거늘,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

  “아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 그러오?”

  “우리는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은 수도 없이 보아왔소.”

  “당신들이 믿는다는 신의 증거가 고작 그런 하찮은 것이오?”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전 정보를 미리 접하지 못했던 일행은 당혹스러워했다. 윤혁은 침착하게 현지 정보 조사에 착수했다. 그는 소위 죽은 자를 살려낸다는 그곳의 마법도 거짓된 기적 혹은 과학 기술로 흉내 낸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는 일은 별개였다.

  언데드빌리지들에서 강령술은 꽤 깊은 전통성을 지닌 유산이었다. 이런 류의 기술은 대부분 강령술사에 의해서 시행되었는데 언데드빌리지마다 각기 다른 유형의 강령술사들이 존재했다. 어떤 이는 죽은 사람을 유령의 형태로 만들어내었고, 다른 이는 사람이나 이종족 위에 죽은 사람의 인격을 씌웠다. 그보다 더 신비한 유형은 아예 땅속이나 무덤에서 물리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시체를 꺼내는 술법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소환된 시체는 살아움직였다. 나아가 살아생전 기억과 인격 특성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시체는 종종 기괴한 모습을 띠기도 했으나 반대로 생전보다 오히려 더 아름답고 완성된 외향을 보이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이런 식으로 살려낸 망자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다양한 방법으로 재활용되는 일도 자행되었다. 여러 소프트웨어를 다중 인격의 형태로 융합시키거나, 한 인격을 소환한 후 복제해서 수백만의 군단을 형성하거나, 망자를 이종족의 모습으로 환생시키거나, 망자를 하나의 수호신처럼 만들어버리는 등 별의별 기생들이 벌어졌다.

  “이건 악질이로군.”

  세속의 도덕을 기준 삼아 생각해도 심히 뒤틀린 풍습이었다. 그런데도 선뜻 계몽이 일어나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증거가 너무나도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언데드빌리지의 강령술은 부두 같은 미신적 술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갖가지 흑마술적 미신과 흡사했으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성공률에 있었다.

  선교팀은 근방을 돌아다니면서 강령술이 시행되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했다. 하나같이 무서울 정도로 실제적이고 적중률이 높았으며 영매가 아닌 누구라도 육안으로 강령된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이 단지 미신이었다면 극소수 술사의 눈에만 한정적으로 보였을 것이고 그마저도 누군가가 허점을 찾아내어 사기꾼의 술법임을 입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데드빌리지들에서 벌어지는 강령 현상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명료한 과학 현상과도 같았다.

  원리에 대해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정령, 신수, 환수, 요정, 소환수, 마녀 등이 그러했듯 저 강령된 유령들도 초고도 문명의 힘을 빌려 공상을 현실로 구현시킨 결과물이리라. 부두와 같은 미신적 술법을 통해서도 속아 넘어감이 발생하다면 첨단 기술의 힘을 빌린다면 얼마나 더 쉽겠는가. 일행은 비밀을 고발함으로써 계몽을 유도하고자 했다. 원리만 드러난다면 마술의 신비성은 감퇴하기 마련.

  하지만 이번에는 술법의 민낯을 들춰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회유하기 힘들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강제로 살아난 망자들 모두가 선명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망자의 몸은 일시적 소환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언데드빌리지마다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존재라고 믿는 수십 가지 유형의 언데드들이 활보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가히 죽음의 땅이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사람의 의식을 복제라도 할 수 있는 거야?”

  리온은 몹시 당황하며 윤혁에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아는 윤혁도 뾰족한 도움은 주지 못했다.

  “다만, 인격 복제와 관련된 연구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야.”

  이를테면 단테도 유사한 경우였다. 에드레이도 인류연합의 디지털 인격 연구에 대해 얼핏 경고해준 바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격 모방 식 인공지능 제작에 불과한 줄로만 알았지 저렇게까지 영혼을 비슷하게 모방하여 디지털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마당이라 윤혁도 혼동되어 다음 상황을 가늠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 과연 뭘 상대하고 있는 걸까?”

  한편 루디아는 언데드들을 보며 속으로 탄식하며 애통했다.

  “사람들의 존엄성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바닥에 떨어졌을까?”

  윤혁은 그 징그러운 광경이 도를 지나칠 때마다 그녀가 무서운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일부러 눈을 가려주었다. 자신은 닳더라도 그녀의 상한 심령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범람하는 광기의 악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 광기들의 쇄도 앞에서 청년들의 내면에 깊이 억눌려왔던 의로운 분노가 조금씩 비집고 나왔다. 사실 그들은 인류연합이 칼티엔뉴르 속에 의도적으로 마법을 범람시킨 행태로 인해 여태껏 내내 적잖은 분노를 삭여왔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인간의 유익을 위한다는 명분이라도 참작하여 인내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인을 조롱하고 인간의 생사를 농락하는 것은 선을 넘어선 일이었다.

  비록 선교사의 일차적인 사명이 현지 사회의 개혁은 아니라지만, 그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 모든 행태를 뻔히 보면서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권력도 힘도 지식도 능력도 부족한 그들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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