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9. 무덤에서 온 전언 (4) |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22 | 회차평점 0 |
(이전 회차에서 계속)
윤혁은 그들의 기술력이 어디서 나왔을지 지레짐작으로 추리했다.
“어떤 식으로든 디지털 인격 기술과 연관된 건 확실해 보여.”
지나치게 탁월한 강령술의 경지가 도무지 설명되지 않긴 했으나 현대의 이종족이나 인공지능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면 죽은 사람의 몸이나 정신을 그대로 모방해내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했다.
“당장 우리만 해도 인형 몸체를 통해 본체와 거의 똑같은 육체를 생성하는 기술을 직접 체험해온 마당이지. 그것도 몇 세대 전만 해도 전혀 믿을 수 없는 경지의 기술이었으니, 지금은 뭔들 불가능하겠어.”
나아가 윤혁은 또 다른 요소, 이를테면 진이 언급한 시뮬레이션 우주나 그것의 실체화 기술도 의심하였다. 실제로 전에 진이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초기 세대 시뮬레이션 우주는 오래전에 죽은 흉악범 사형수의 뇌를 재활용해서 생성된 것이었다. 윤혁은 그 구세대 모델 속에 직접 접속해보기도 했다. 그 방식을 간접적으로 응용하면 죽기 직전의 인격체를 복제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만일 구세대 단계에서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실체화까지 완성된 지금은 얼마나 더한 기행이 가능하겠는가.
“아는 바가 없는 나로서는 네 추론을 믿을 수밖에 없겠네.”
리온은 친구의 경험적 추론을 의심 없이 수용하였다.
“하지만 기술의 원천은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결책. 한 사람이라도 미혹에서 건져내야 해.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곳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침투하지 못할 거야.”
“그래, 리온 네 말이 옳아.”
당장 미혹의 권세와 맞상대할 유일한 방도로서 주어진 해결책은 정직하게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일뿐이었다. 선교사들에게는 언데드 기술의 실상과 원리를 밝힐 능력도 없었고, 설령 밝힐 수 있다 해도 물증을 제시할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증언하여도 마음의 문을 고의로 닫을 자들은 거절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복음 외에는 썩을 대로 썩은 문화를 개혁할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나 딜레마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강령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성경적 진리를 조롱하는 문화요, 성경의 신빙성을 희석하는 치명적인 방해물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가 퇴색된다면 복음과 성경은 그 기반부터 무너져내린다(고전 15장, i). 그러므로 ‘성경적인 부활’의 무게를 멸시하는 이곳 주민들은 복음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복음의 영향력이 닿지 않으면 언데드빌리지의 완고한 악습을 깨트릴 방도도 없다. 악습이 깨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득시킬 수 없다. 진퇴양난이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끊을 방책이 절실했다.
“차라리 이성주의에 눈이 멀어 부활을 부인하는 편이 낫겠어.”
그랬다면 변증이라도 먹혔을 터. 강령술은 부활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 부활의 의미를 지워버리는 사악한 만행이었다. 인간이 직접 생명체를 창조하는 모습을 시현해 창조주의 창조 섭리를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끔찍했다. 본질을 뜯어보면 그것은 한낱 인간의 기술이요, 모방과 변형에 지나지 않음이 자명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속사정을 꿰뚫어 볼 만큼 전지하지 못했다.
마법 문화가 창궐하는 이 세계를 방문한 이래로 죽음과 환생의 땅에서만큼 곤혹스러운 이유로 거부당한 적이 없었다. 이젠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행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신원하는 기도만을 거듭 드렸다.
시간이 소모되어 귀환 날이 가까워진 어느 날, 윤혁 일행은 지금까지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강령술 행위에 대한 소리 소문을 들었다. 어떤 술사가 살아생전의 상태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망자들을 되살려내었다는 증언이었다. 도무지 이번만큼은 이 심각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셋 모두를 사로잡았다. 일행은 이 사태를 수사하고자 소문의 발원지로 서둘러 달려갔다.
“사기 행각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만약에라도 정말 그 살려냈다는 망자가 진짜 사람의 몸을 입고 살아난 게 맞다면 이야기의 심각도가 달라져. 해석의 방향을 달리해야 해.”
해석의 여지는 두 가지뿐이다. 그 강령술사의 힘이 정말로 누군가를 부활시키는 힘이거나 애초에 그 망자가 죽었던 적이 없었거나. 믿는 자로서 전자를 믿을 수는 없으니 무조건 후자가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슨 원리로?’
어느 식이건 원리를 밝힐 필요가 절실했다. 과거에는 기독교를 부정하던 세력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맹렬히 비판했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그리스도인들이 대적자들의 거짓 부활의 민낯을 들춰 파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임을 고려할 때 참된 부활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속해있음을 믿는 선교사들로서는 영적인 싸움이 불가피했다.
세 선교사는 월례 행사 때마다 망자를 무덤에서 살려낸다고 소문난 유명한 강령술사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침 마을 공터에서는 부활 의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신적 오컬트와는 결이 달랐다. 술사는 객관적인 증거 측면에서 자신감이 있었는지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술식을 벌렸다.
리온이 강령술사와 대중에게 용감히 외쳤다.
“이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두십시오. 주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뒤이어 수습하러 달려온 윤혁도 덧붙였다.
“아마 여러분은 속고 있거나 악마의 이적을 보는 중일 겁니다. 이러한 부활로는 여러분께 생명을 줄 수 없어요. 진정한 부활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속한 것이며 그것만이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덧붙여 루디아도 절박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건 결국 후회만 남을 일이에요. 소중한 사람의 영혼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지 말아 주세요. 주님께서 보시고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그러나 강령술사는 큰 소리로 껄껄거리면서 비방하고 조롱했다.
“아하, 그대들이 바로 인근 지역들에서 부활의 도를 전한다던 그 사이비들이로군. 그대들이 믿는다는 ‘죽었다 살아난 신’이 지금 내가 보이는 위대한 능력보다 더 대단하단 말인가? 고작 그 정도 증거로는 우리 모두 코웃음만 칠 뿐일세.”
잠시 발끈한 리온이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며 재차 질문했다.
“부활했다던 자들이 진짜 본인이 맞는지 확인은 해보셨습니까?”
“물론일세. 이 자리에도 있으니 한 번 직접 질문해보게나.”
마침 그 자리에는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였다가 오늘 와서 부활을 경험했다던 인간들이 여럿 있었다. 극심한 병으로 죽은 이도 있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이 손상되어 사고사로 죽은 이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소생한 현 모습은 멀쩡했다.
사람들도 긍정의 증언을 해주었다. 그들은 지금 살아난 망자들이 습관이나 언행이나 사고방식 측면에서 생전 모습과 완전히 동일하며, 자신들도 현장에서 저들이 죽는 장면을 보았었노라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이 땅속에서 섬광과 함께 망자의 몸이 올라오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고 증언했다. 한두 사람의 낭설이 아니라 수많은 증인의 일관성 높은 이야기였기에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이 중에는 늙어서 죽었다가 회춘해서 돌아온 이도 있지. 팔다리가 없어졌다가 다시 복구된 이도 있다네. 이렇게도 명확한 증거를 눈앞에서 보여줘도 못 믿겠다니. 그대들의 완고함은 참으로 놀랍구먼.”
항상 전도할 때마다 완악하게 믿음을 거부하는 자들을 그렇게 책망했건만, 이제는 전도자들이 그 말을 돌려받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저렇게 철저히 미혹된 주민들을 도우려면 진실을 찾아내어 입증해야 하거늘 현재로서는 도무지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하, 마침 지금이 딱 좋구먼. 내 직접 죽은 자를 끌어올려 보이겠네.”
강령술사는 탁월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쐐기를 박아 저 어리석은 이방인들을 짓뭉개리라는 집념으로 강령 의식을 급히 개시했다.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선교사들은 그저 벌어지는 일련의 기괴한 행사를 그대로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그들도 지금만큼 주님의 이름이 심하게 훼손된 일을 보지 못했기에 가슴이 매우 아팠다.
‘아바 아버지.’
루디아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애원하는 심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구했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그리고 이 어리석고 악한 광기가 멈추게 해달라고. 곁에 있던 윤혁이 그녀의 기도하는 손을 꼭 붙들었다. 그도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소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죽은 자의 소환 의식은 지체 없이 개시되었다.
현란한 효과가 발생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며 섬광과 불꽃이 치솟았다. 하늘에서는 뇌전과 빛의 소용돌이가 내려왔다. 그러한 효력 자체는 칼티엔뉴르의 다른 지역에서도 숱하게 보아온 영락없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물체에 있었다. 관으로 둘러싸인 물체가 용암을 뚫고 튀어나왔다. 관의 재질은 차가운 금속으로 이뤄졌는데 티 하나도 없이 말끔했고 희미한 빛까지 발하였다. 곧이어 관이 열리면서 증기가 뿜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의 형체를 지닌 물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구경꾼들 모두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선교사들도 그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그들은 망자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이내 연기가 걷히자 선명한 모습이 드러났다. 세 명의 사람이었는데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덱스트로와 레보의 감지 센서에도 평범한 인간의 생체신호가 감지되었다. 사람임이 확실했다.
“세상에나! 저들은 우리가 알던 자들 아니오! 왼쪽에 있는 자는 전에 칼에 베여 죽었고 가운데 있는 사람은 낙상으로 죽었으며 오른쪽에 있는 자는 불에 타서 죽지 않았소?”
“그래, 맞아. 정말로 그렇군.”
“정말로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왔어.”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광란에 빠져 신나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실망감에 선교사들은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절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야 하건만, 앞이 막막했다.
“저들이 깨어난다.”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소환된 망자들이 깨어났다. 대중은 기대했다. 이제 저들이 죽음에서 돌아온 생생한 경험담을 밝혀주리라. 자신들이 진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임을 증명해주리라. 어리석은 이방인들은 입을 다물게 되겠지. 그들은 그렇게 확신했다.
“크아아아악.”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깨어난 망자들이 일제히 공포감이 휩싸여 벌벌 떠는 것이 아닌가. 해괴한 흉물을 보았을 때 으레 나타나는 반응하고는 사뭇 달랐다. 무언가 엄숙하고 거룩한 것 앞에서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모두 다 증언하겠습니다.”
망자들은 벌벌 떨며 비명 질렀다. 당황한 사람들은 그들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뒤 마실 물을 주며 진정하기를 기다려줬다. 어느 정도 망자들이 진정되자 군중은 이승으로 돌아오기 전에 대체 무엇을 본 것인지 어서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챈 선교사들은 망자들의 말을 주목했다. 셋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 증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우리는 당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이 맞소.”
“내가 죽는 모습을 여러분도 분명 보았을 거요.”
먼저 망자들은 자신들이 진짜 인간임을, 그들을 둘러싼 목격자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왔던 이웃이었음을 증언하였다. 구체적인 증거를 보이기 위해 망자들은 몇몇 이웃을 지목하였다. 본인과 그 이웃만 아는 특정한 일화에 대한 기억, 특유의 습관, 은밀한 비밀들을 증언함으로써 진실성을 입증했다. 정황과 맥락을 보아 그들이 유령이나 가짜가 아닌 진짜임은 분명해 보였다.
“아니, 그러면 무덤 속에서 무엇을 보신 겁니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질문하였다.
“당신들이 이승으로 돌아온 여정을 말해주십시오.”
다시 술렁이는 소리로 인해 온 공터가 시끄러워졌다.
“자, 자, 다들 조용! 이분들이 간증하도록 기다려줍시다!”
강령술사가 강제로 침묵시킨 뒤에야 죽은 자들의 증언이 재개됐다.
“나도 사실 내가 죽었노라고 믿고 있었소. 마지막 순간에 죽었던 기억도 생생했고 분명 무덤의 심연 속에 계속 잠겨 있었으니까. 그런데 무덤 속에 있던 중 얼마 전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했다오.”
애매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끊기자 모두의 호기심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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