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컨텐츠는 [유료컨텐츠]로 미결제시 [미리보기]만 제공됩니다.
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7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9. 무덤에서 온 전언 (5)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24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연속됨)

 

 

 

 

 

  “사망한 순간 이후 나는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기나긴 꿈속을 거닐고 있었소. 그러다 문득 깊은 잠에서 깨어났소. 그런데 이게 웬일인걸! 몸이 전혀 훼손되지도 않은 채 멀쩡히 있던 게 아니겠소!”

  망자의 어수선한 설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죽은 이후 내내 그는 기나긴 꿈속 차원을 방황하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꿈인 줄도 깨닫지 못했고 도리어 사후세계라고 믿었다. 그 안에서 그는 온갖 신비한 체험들을 경험하였는데 현재는 기억에서 지워지는 바람에 꿈의 내용을 다 떠올리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여하튼 그렇게 그가 꿈의 세계에서 억겁을 지내던 중,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사실 그전에도 기나긴 꿈을 거닐며 종종 외부의 소리를 듣는 일은 있었으나 그때 들은 소리는 그전에 듣던 것과는 달랐다.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대단히 엄숙한 것이었다. 내용은 깨닫지 못했다. 다만 어찌나 강렬했던지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잠에서 깨고 말았다.

  “꿈이 그때 잠시 종료되었소.”

  깨어났을 때 망자는 발가벗겨진 몸으로 어떤 유리관 속에 누워있었다. 관 내부에는 맑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몸에는 촉수들이 꽂혀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리관 너머의 광경이었다. 자신과 똑같은 몰골로 잠들어있는 사람들이 각각 유리관에 갇힌 채 모래알처럼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았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나 이성이 저절로 진실을 깨달았다. 마치 외부에서 전지한 존재가 정보를 주입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망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했다던 죽음의 진상을 깨달았다. 애초에 그들은 죽었던 적이 없었다.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유리관에 담긴 사람들은 나처럼 이승 위에서 살다가 죽었던 사람들이었소.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진정 죽었던 적도 없던, 내외부적으로 죽었다고 보고된, 스스로도 죽었다고 착각하던 사람들이었소.”

  이 대체 무슨 발언이란 말인가. 청중은 얼어붙었다.

  “나도 이게 횡설수설처럼 들린다는 건 이해하오. 하지만 맹세코 거짓말이 아니오. 그곳에서 나는 우리가 죽음이라고 믿었던 현상의 실체를 보아버렸소.”

  이어서 더욱 충격적인 망언이 그의 입술에서 이어졌다.

  “이건 우리만의 일이 아니오. 이 세계 위에 사는 모든 인간은 우리와 동일한 운명에 묶여있소. 생체 반응이 끊기기 직전에 이르면 어딘가로 소환되어 가게 되어있소. 강제적 불멸 상태에 처해 있단 말이오!

  망자, 아니 가사 상태에 빠졌다 다시 깨어난 그자는 가사 이후 내려가는 미지의 세계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유리관에 담긴 동면 상태의 사람들의 몸이 저절로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해괴하게 생긴 촉수들이 다친 몸을 말끔하게 치료하고 없어진 부분까지 교체해주고 있었다. 다친 사람도, 병든 사람도, 늙은 사람도 모두 생전의 멀쩡한 모습으로 고쳐지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 듣도 보도 못했던 이야기에 넋이 나가버렸다.

  리온도 잠깐 어안이 벙벙했으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윤혁, 지금 저들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는 황급히 동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맞아.”

  윤혁도 얼추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세포 단위로 전신을 재구성하는 프로세스야. 생명만 붙어있다면 설령 죽기 직전의 사람이라도 정상 상태로 살려내는 첨단 의료기술이지. 오늘날의 기술력 정도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솔직히 윤혁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뒤통수가 얼얼했다. 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경위로 저런 정보를 알게 되었을까? 저들의 체험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든 하늘도시 주민들은 죽기 직전에 강제로 어딘가로 워프되거나 소환되어 집중 치료를 받는다는 점.

  ‘인류연합의 계획?’

  망자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설명하였다.

  “우리는 지금껏 속고 있었소. 우리는 죽었던 자가 아니고, 이곳의 강령술도 진짜 부활과는 무관한 사기요. 죽은 자는 결코 되살아날 수 없소.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절대적 존재뿐이오. 우주의 주인 말이오. 나는 그 존재가 내게 명령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소. 너무나 두려워서 살려달라고 빌었지.”

  이어서 또 다른 망자도 먼젓번 사람과 거의 완벽히 똑같이 증언했다. 그가 겪은 일화와 체험도 완전히 같았다. 마치 짜고 지어낸 각본인 것마냥. 그러나 그 망자들은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던, 서로 모르는 자들이었기에 그러한 이야기를 꾸며내 입을 맞출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는 강령술이라는 거짓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 증언하라고 명하였소. 또한 죽은 자를 거짓으로 살려낸 척 거짓을 꾸민 것도 역겹지만, 감히 그분이 선물한 지성을 남용해 사람의 인격을 모욕하고 생명의 법칙을 거스르려 한 행위는 더욱 역겹다고 말씀하며 심히 책망하였소.”

  이어지는 말들은 주민들로서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윤혁과 리온과 루디아도 자신들이 맨정신으로 이야기를 듣는 게 맞는지 의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주민들과 달리 망자들의 체험의 의미를 얼핏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직접…….’

  ‘가사 상태에 빠진 인간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셨다?’

  ‘정말로 하나님의 개입이 맞는건가?’

  그때 거짓 망자 중 하나가 대언하였다.

  “지금부터 그 존재가 명령한 말을 전달하겠소. 그때는 그저 겁에 질려서 그대로 따르겠다고 맹세했으니 부디 우리를 탓하지 마시오. 그는 이렇게 말했소.

 

  [너희는 나의 부활을 가증한 방식으로 모방하였다. 지금껏 내 종들을 위해서 참고 배려하였으나 이제는 내 기다리지 않노라. 이제는 너희가 보고 들으라. 생사를 주관하는 권세가 인간에 있지 않으며 나에게 있음을.]

 

  또 이렇게 말하셨소.

 

  [너희의 강령술로 꾸며 만들어낸 인격은 영혼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너희 중 죽은 자 가운데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 이들은 죽음을 경험한 바가 없노라. 만일 정말로 죽음을 겪었다면 불의 호수 가운데 슬피 울며 영원토록 갇혀있었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불쌍히 여겨 죽음을 유예했고 기한이 되어 기쁜 소식을 듣게 될 그 날까지 생명을 보존하였다. 하지만 너희는 내 선의를 악으로 갚았느니라. 그러니 회개하라. 가서 이 거짓을 밝히 드러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의 생명 위에도 공의의 심판을 아끼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번 그분께 그분의 정체성에 관해 묻자,

 

  [나는 참된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나는 죽었으나 스스로 다시 살아났고 사망을 꺾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사망을 멸할 자이니라.]

 

  라는 대답만 하였소.”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증언자가 말하는 표정을 보아 도저히 거짓말을 꾸며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경외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선교사들도 거대한 경외감에, 그러나 증인과 달리 기쁜 의미의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직접 개입하여 역사하셨다. 지난 수천 년간 복음 전파가 없었던 마법의 세계에서는 결코 자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부활의 진리, 그것을 주님께서 직접 입증하셨다.

  이번에는 다른 망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분께서는 이 말 역시 전하라고 명령하셨소. 아니, 왜 내가 이런 긴 메시지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소. 나는 기억력이 짧거늘. 여하튼 그분은 분명하게 말씀하기를,

 

  [내가, 내 아들이 너희 모두를 영원무궁한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을 처처에 거하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전하기 위해 종들을 택해서 보내었노라. 너희는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따르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 소식에 대한 너희의 반응이 너희의 운명을 결정하리라.]

 

  이러한 엄숙한 선언을 전하셨소.

  그리고 그분은 또한 이런 말도 하셨소.

 

  [나의 신실한 종들에게도 말하라. 너희는 담대하고 두려워 말라. 내 명령대로 땅끝과 하늘 끝까지 생명을 전하라.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내 권세로 너희와 함께하리라. 너희는 이제 땅 바깥에 살아가는 더 많은 이들에게 갈 것이며 그곳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리라. 너희와 함께할 형제를 더 보내리라.]

 

  라고 말씀하셨소.”

  어느새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강령술사가 아닌 윤혁 일행을 향하였다. 비웃음이나 조롱의 눈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깊고 진지한 외경심만이 가득했다. 리온은 순간적으로 [보라,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시록 3:9)] 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난데없는 이 변화 앞에 사실 선교사들조차 온전히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도무지 해결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상황에 이르자 주님께서 손수 간섭하여 도움을 베푸셨다는 사실. 그 영광스러운 응답에 감격이 샘솟았다. 동시에 너무 쉽게 낙담했던 조금 전의 자신들이 부끄러워졌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망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서 전하신 마지막 명령이오.

  [들으라, 인간들의 왕이여.]”

  윤혁은 하나님의 이번 전언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아듣고 몸이 굳었다.

 

  [자기 자신의 교만함을 따라 내가 지은 세계를 모방하여 바벨탑을 쌓은 강력한 자여. 네가 네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내 손으로 우주를 차지하리라’라고 하였도다. 과연 너는 존재해왔고 존재할 모든 인간 중 가장 지혜롭고 가장 아름다웠고 가장 강했다. 그리하여 교만해진 네가 나를 거역하고 도전하였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요,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느니라. 너는 내게 원수 갚으려 하였으나 나는 도리어 사랑과 긍휼로 너를 책망한다.]

 

  그분이 초인들의 왕을 직접 질책하고 계셨다.

  “우리도 그저 그분이 전하라 하여 전할 뿐이오.”

  망자는 의미도 모르는 불안감에 벌벌 떨며 대언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내면에 심긴 모종의 복종 명령과 더 강력한 초자연적 명령에 대한 두려움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을 마무리하시며 떠나셨소.

 

  [너는 돌이켜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붙잡으라. 네 곁에 있는 목소리를 듣고 그 손을 잡으라. 그는 내가 네게 보낸 마지막 기회이니라. 그 기회를 잡지 아니하면 가까운 시일 너는 나를 적으로 보게 되리라. 그날, 내가 므깃도(Meggido) 언덕으로 너를 치기 위해 내려오리라. 엔돌의 마녀와 손잡았던 우매한 왕의 일화를 보고 깨달으라. 삶과 죽음을 네 멋대로 손댈 수 있다고 착각한 그 가증함을 회개하라. 그리 아니하면 염려컨대 므깃도에서 내 너를 대적하리라.]

 

  이 문장이 끝나는 동시에 그분의 임재감이 떠나가더니 나는 맨몸으로 유리관에 남겨졌소. 그때 촉수를 통해서 무언가가 내 몸에 들어왔소. 그리고 몸이 서서히 마비되었소. 눈을 뜨고 깨어나 보니 이곳이었지 뭐요.”

  구태여 더 증언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선교사들은 눈을 감고 신의 영광을 묵상하였다. 아련한 기분이 들며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얽혔다. 난처함 가운데서 구원받은 감격,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사와 경외 등. 특별히 윤혁의 마음속에는 형을 향해 내린 그분의 경고의 두려움,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는 숙연함,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실린 책임의 무게까지 뒤엉켰다.

 

 

 

 

 

 

*****

 

 

 

  그 사건 이후로 죽음과 환생의 땅에서의 선교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지금껏 본 소위 죽은 자의 소생들이 전부 다 거짓이며 진정한 부활은 따로 있노라는 소문이 근방에 널리 퍼졌다.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신의 사자로써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세 선교사는 경외 받기를 거절하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었다. 대신 그들은 진리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정직하게 가르쳤다. 듣는 이들 모두가 믿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가 진지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선교사들은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삶은 연약하며 죽음은 불가피하나 해답은 그리스도뿐입니다.

  (Life is fragile. Death is inevitable. Christ is the answer).”

  많은 가시적 열매가 맺혔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보다도 훨씬 값진 소득도 있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늘 함께하신다는 증거. 이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는 주님과의 동행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 정장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미리 큰 계획을 준비하셨는데, 나는 믿지도 못한 채 그분 은혜를 축소해서 생각하고 말았어.”

  윤혁은 자신의 부끄러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리온과 루디아도 동일한 심정을 고백하며 그를 위로했다. 어쨌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세 명 사이의 우정과 신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로 성장했다.

  “늘 기도를 쉬지 말자.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지.”

  루디아는 웃으면서 합심 기도 계획을 요청했다.

  “그래, 앞으로도 갈 길이 멀잖아. 전에는 내게도 흔들림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도 선명히 믿을 수 있게 되었어. 그분의 도움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야. 어떤 절망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말자.”

  리온도 이전보다 한층 더 큰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어느덧 길고도 짧은 선교 여행의 1막이 마무리되고 마법의 세계와 작별할 때가 이르렀다. 세 일행이 죽음과 환생의 땅들을 벗어나 바닷가에 도달할 무렵, 하늘 쪽에서 굉음이 들리며 공간이 갈라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인위적인 포탈 개입. 과연 진이 약속했던 대로 단거리 이동용 포탈이 개방되었다. 우주선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어서 가자.”

  윤혁이 망설이는 두 친구에게 말했다. 리온과 루디아는 뭔가를 깊이 다짐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덱스트로와 레보가 두 명의 몸을 감싸 안았다. 진에 예고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우주선 복귀 과정에서 인형과의 접속이 끊길 수도 있는데 그 상황을 대비하여 마련한 안전장치였다. 안전이 확인된 뒤 윤혁과 두 기계는 포탈 안쪽으로 몸을 내던졌다.

  ‘안녕, 칼티엔뉴르.’

  세 명은 악연으로 얼룩진,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워질 그 땅을 향해 예의상의 작별을 남기며 미련 털고 떠났다. 포탈을 통과하기 직전에 셋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인도해주신 분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

 

  지고의 하늘의 처소.

  [향로를 가져오라.]

  제단 곁에 있던 한 천사가 명을 받고는 금으로 된 향로를 하나 가져왔다. 향로 안에는 성도의 기도가 채워져 있었다. 금제단 곁에 서 있는 세마포 입은 여러 성도의 영혼들은 그 내용물을 보더니 매우 놀라 찬탄하였다.

  “저 기도들은 우리 형제들이 주님께 드려온 간구가 아닌가.”

  “그렇군. 그분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했던 기도로군.”

  성도들은 생전에 드렸던 기도를 떠올렸다. 그 시절, 주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쉴새 없이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어찌나 듣지 않았던가! 참으로 그때는 가슴이 찢어졌었다. 그들은 눈물로 간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어찌나 밤낮으로 많은 기도를 쌓았는지 일일이 기도 내용을 다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왜 살아생전에는 그토록 오랫동안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를 했거늘 뾰족한 응답이 없었을까. 그 때문에 하마터면 주의 뜻에 의문까지 품을 뻔했었다. 그러나 천성에 이른 지금에서야 그 모든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그 기도들, 지금껏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었던 것인가.”

  이에 천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대들이 이웃 나라와 선교지를 향해 열심히 바친 인고의 기도가 이곳에 쌓여있습니다. 물론 그 기도 중 일부분은 응답이 되었지만, 대부분은 기한이 차기까지 주님께서 향로 안에 고이고이 간직하셨습니다.>

  “그렇구나.”

  “우리로 하여금 더 오래 기도하도록 침묵하셨던 이유가 다 있던 거였어.”

  “그분께는 그분만의 시간표가 있었던 게야.”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성도들은 잊고 있었던 생전 시절의 절박하고 뜨거웠던 마음을 회상하며 다시금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이 갸륵한 마음에 반응하여 보좌에서 다시금 거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적절한 때가 되었으니 축적된 향을 세상에 뿌리겠노라.]

  전능자가 팔을 뻗어 향로를 소환하였다. 천사의 손에서 벗어난 향로에서부터 성도의 기도가 뻗어 나오더니 서로 얽히고 얽혀 아름다운 직물처럼 빚어졌다. 전능자의 손에서 응축된 기도들은 향과 더불어 아름다운 형상으로 빚어지더니 압축되어 하나의 깊은 정수(情首)를 이루었다.

  [일단은 십분지 일만 사용해야겠구나. 아직은 이로도 충분하겠지.]

  빛을 발하던 구체의 일부가 분리되었다. 절대자의 권세가 그 기도 응결체 위에 덧입혀졌다. 곧 그것은 물질계를 향해 떨어졌다. 유성이 땅으로 떨어지듯이. 영계 속의 실체가 피조계로 스며들자 곧 어떤 우주적 섭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작용을 감히 방해할 권세는 만물 가운데 아무것도 없었다. 초자연계의 존재들조차도.

  [내가 기도에 응답하노라.]

  묵직하고 엄위한 선포가 셋째 하늘 전역을 뒤흔들었다.

 

 

 

 
 
 
 
 
찜하기 첫회 책갈피 목록보기

작가의 말

마법의 세계 편 마무리. 짧은 인터미션과 같은 시각 지구에서의 이야기가 나온 뒤 다음 세계로의 모험이 전개됩니다.
이전회

186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9. 무덤에서 온 전언 (4)
등록일 2023-06-22 | 조회수 160

이전회

이전회가 없습니다

다음회

18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0. 인터미션 I (1)
등록일 2023-06-27 | 조회수 143

다음회

다음회가 없습니다

회차평점 (0) 점수와 평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단, 광고및도배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