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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8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0. 인터미션 I (1)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27 | 회차평점 0 0

 

 

 

 

 

Chapter 10. 인터미션 I

 

 

 

 

 

 

  마도왕(魔道王) 지그문트.

  에우로페 제국의 지도자.

  그는 최근 대총통이자 제1 철인왕인 칼리드와 협업을 진행했었다. 이 불경하지만 효율적인 만남은 피차 크고 분명한 유익을 주었다. 물론 지그문트는 지구 출신이었기에 우주 출신의 칼리드를 은근 경계하였다. 지그문트 본인은 선천 각성자가 아닌 후천 각성자이기에 다른 로스트엠페러들보다는 우주 인류 출신 초인에 대한 차별의식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적(政敵)이란 결코 덜 부담스러운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거래로 얻을 것이 워낙 많았기에 그런 사적인 감정쯤은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판타지를 전부 현실화시켜보도록 하지. 신화나 전설 따위를 넘어서 인간의 집단무의식이 연상해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의 가능성을 모조리 말이야.”

  칼리드는 이렇게 과감한 제안을 던졌다. 지그문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구미가 극도로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당장은 긍정적인 뉘앙스로 응수하였다.

  “미신으로 식민지 주민의 눈을 멀게 할 작정인가? 뭐, 그것도 일시적인 차원에서는 인간들을 훈육하고 인류를 개조하는 유용한 방법이긴 하지. 좋은 아이디어야. 고전적인 면이 흠이지만.”

  그러나 지그문트는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이것저것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칼리드는 식민지의 인간에게 심어진 정신 간섭의 속박을 다양하게 활용해봄으로써 인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끌어내고 싶었다. 지구 시민에게는 그런 실험을 직접 자행하려면 불가능하진 않으나 윤리나 법 같은 성가신 걸림돌들이 많으므로 우주 인류가 현 실험대상으로는 적절했다.

  “너도 그분과 성향이 비슷하군. 장남이라서 그런지 닮은 건가?”

  “칭찬으로 듣도록 하지.”

  칼리드는 냉정하고 시큰둥하게 답했다. 냉혹하고 귀족 같은 얼굴에 어울리는 붉은 눈동자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지그문트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이참에 마도 기술의 경지를 몇 단계 이상 끌어올려 위업을 이룩할 의향이 있었기에 협력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그문트는 칼리드에게 여러 탁월한 마도 기술과 그 원리를 전수해주었다. 칼리드는 그 대가로 식민지를 경영하며 얻은 실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지그문트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그 수익은 나쁘지 않았다. 최근에 넘겨받은 데이터들은 나름 지그문트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었다. 덕분에 지구에서 혼자서만 연구했다면 지지부진한 수준에 머물러있을 뻔했던 기술들이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6세대 버전 시뮬레이션 우주……, 이건 명물이로군. 기존 기술력으로는 도무지 표현 불가능한 경지를 손쉽게 이룩할 발판이 되었어. 과연 언터쳐블의 잠재력은 급이 다른 건가?’

  언터쳐블(Untouchable), 다른 초인들은 아직 원리조차 채 이해하지 못하는, 위버멘쉬만의 비술(秘術)급 과학기술을 이르는 은어. 타임필드와 시뮬레이션 우주도 ‘언터쳐블’의 대표적인 예시였는데 그것들은 개발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언터쳐블의 자리에 있었다. 이런 기술력들을 대할 때마다 SSS 클래스 최상위 초인인 지그문트마저도 위버멘쉬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경외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6세대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첨가된 핵심은 실체화(Realization). 이는 물리법칙의 틀에서 벗어나 마도 공학을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과거에는 초거대 천체급 설비, 상위 차원 간섭, 피코머신 등의 초고난도 기술을 활용해야만 구현 가능했던 현상들을, 국소적으로도 별 장비 없이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양산형 마법이 탄생한 셈이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우주의 실체화 기술’에 더해서, 기존에 연구되던 형제 홀로그래피(Sibling-holography) 차원, 확률실체화 및 확률고정, 최신형 초 양자 통신, 신(新)물질, 칼라비-야우 차원 간섭, 단거리 텔레포트, 이매진(imanginary) 테크놀로지 등이 융합하면서 무궁무진한 다양성의 결과물이 도출되었다.

  만약에 이러한 위협적인 위력을 인간의 몸을 통해서도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면, 종국에는 모든 인간이 우주적 규모의 힘을 보유하게 되리라. 그때는 바이오닉 솔져가 아닌 일반적인 인간도 초월적인 초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공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버젓이.

  지그문트의 예측은 대부분 옳았다.

  섣부른 추측도 약간 섞여 있었지만.

  ‘다만 그런 힘이 만들어져도 온전히 오차나 오남용 없이 다룰 수 있는 것은 초인들 정도. 나약한 인간과 우수한 인간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겠지.’

 

  바로 그때.

  {마도왕이시여.}

  인공지능 비서가 갑작스레 정적을 깼다.

  {위버멘쉬께서 당신께 질책하실 일이 있습니다.}

  질책이라는 말에 지그문트는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지?”

  {당신이 하데스 챔버(Hades-Chamber)에 보관되어있던 인간 일부를 꺼낸 일 말입니다. 그곳은 하늘도시 내부의 핵심 요소. 그곳의 제어권을 빌려드린 것은 인류 문명 발전에 쓰일 마도 기술 연구를 하는 데 편의를 주기 위함이지 분란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분란이라고?”

  정황이 이해되지 않는 지그문트로서는 낯선 말이었다.

  “자세히 보고해 봐라.”

  이 명령에 인공지능은 아주 짧게 요약 보고를 주었다. 다만, 아주 개략적으로만 가르쳐줄 뿐 앞뒤 세부 사항을 전부 일러주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런 내부적 비밀 정보는 비서로서도 알 방도가 없었으니까.

  “초자연 접촉?”

  지그문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곳 사람들은 가사 상태로 있을 때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되어 있지. 그러한 상태이기에 종종 초자연과 접촉하는 예도 드물지 않아. 초자연은 현재 우리가 부지런히 연구해야 할 미지의 대상. 애당초 그 영역에 대한 단서를 파헤치려고 일부러 시행한 계획인데 문제가 있나?”

  현장에서 직접 뛰지도 않고 사무실에서 모든 기획을 조정하려는 자에게는 이해의 한계가 따르기 마련. 지그문트 역시 그런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철인왕 출신이 아닌 그에게는 하늘도시 내에서의 돌발 사태가 갖는 문맥적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그가 이해하건 못하건 이미 결정은 상부 단계에서 끝난 채였다.

  {위버멘쉬께서 당혹감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데스 챔버를 다시 봉인하라는 명령입니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 프로젝트는 무기한 승인 취소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그곳에 관여하지 못합니다.}

  ‘왜 이제 와서?’

  이미 칼리드를 통해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니었던가?

  “그분께서 아무 이유 없이 다 승인된 계획을 뒤집으실 리가 없을 터. 대체 하늘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지? 숨기지 말고 더 구체적으로 보고하라. 나 또한 그곳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겠다.”

  그러나 다그쳐 봐야 소용없었다.

  {죄송합니다. 함구를 명령받았습니다.}

  줄 정보도 적었고 그마저도 관계 대상자가 아닌 이에게는 기밀.

  {당신으로서는 내부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없습니다.}

  “……알겠다.”

  지그문트는 그의 주군인 카이젤이 왜 돌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프로젝트.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모방해낸 분신과 죽음 직전에 치료해서 깨운 실제 인간, 이 둘을 혼용함으로써 죽음 정신학(Death-psychology)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사회적 측면의 해석을 수행하는 것이 목적인 연구. 자신이 확인한 바로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식민지 내부에 예측 불허의 불확실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웠기에 안전성에 걸림돌이 발견될 이유는 없었다.

  ‘분명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셨으면서, 왜 손바닥 뒤집듯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딱히 항의할 의지도 없었다.

  ‘이런 방면에 더 능통한 분은 그분이었건만.’

 

  사실 지그문트가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 인간 생사 초월을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도 주군과의 토론을 통해서였다. 지그문트는 조용히 앉아 곰곰이 옛일을 회상하였다. 이제 막 신국을 정복하고 에우로페 제국으로의 행정 재편을 마칠 무렵, 카이젤과 지그문트는 공식적인 주종관계 계약을 맺었다. 연령으로는 카이젤이 몇 살이나 더 어렸으나 상하관계는 분명했다. 그렇게 계약을 체결한 이후 그들은 정치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토론을 즐겼다.

  하루는 주군이 먼저 이렇게 말했다.

  “신국에는 원래 사형 제도가 없다지?”

  “그렇습니다만, 그 부분은 왜 질문하시는지?”

  “아, 사형 대신에 특수한 종신형 제도가 있다고 들었거든. 부끄러워서 세상 밖에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야. 어머니도 그 제도에 제법 흥미를 많이 가졌었지.”

  콜드 슬립, 일명 사형을 대신하는 최고의 형벌로 사람의 몸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 뒤 여러 종류의 실험을 가하는 신국만의 가혹한 제도이다. 이전의 유럽 같았으면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였겠지만, 혼돈의 시대에 범죄자들의 수와 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런 제도의 정당성은 어렵지 않게 확립되었고 덕분에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핵심 처벌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와서 콜드 슬립에 관심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신국을 철폐하고 에우로페 제국을 건국하면 콜드 슬립 중인 죄수들에게 예우를 갖춰 사형을 내려줬으면 해서.”

  “예우라니요? 심상치 않은 발상이군요.”

  당시 불과 열세 살의 소년이었던 카이젤. 그의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과는 대조되는 그의 치밀하게 영악한 속내. 그 지략은 가끔 지그문트마저도 당황하게 할 때가 많았다. 소년은 시커먼 속내를 부드럽고 고운 미소로 감춘 다음 태연스러운 목소리로 본론을 드러냈다.

  “다름 아니라 사형제도 대신에 디지털 인격 플랜(Digital personality plan)을 본격적으로 시행해볼까 해서 말이야. 어차피 너도 바라던 바였겠지.”

  그 순간 지그문트는 섬뜩 놀랐다. 딱히 인륜을 벗어난 계획이라는 이유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상상으로만 떠올려온 계획을 카이젤이 미리 꿰뚫어 보고 먼저 제안한 것이 놀라워서였다.

  “디지털 인격이라니, 뭘 꾸미실 작정입니까?”

  “쓸 용도야 차고도 넘치지. 다른 건 차치하고 먼저 가상 세계를 더 구체화할 재료가 필요해. 지금의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은 그저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있어. 내가 그리는 비전은 그러한 하찮은 경지가 아니야. 허상이 아닌 실존하는 고유의 세계를 직접 창조하고 싶어.”

  “시뮬레이션–리얼리티 축을 의미하시는 겁니까?”

  카이젤과 해당 주제를 여러 번 논의했던 지그문트는 대번 알아들었다.

  “하지만 아직 가설뿐입니다. 존재성도 증명치 못한 그것을 어찌…….”

  “미안하지만 더는 가설이 아니야, 헤스. 나는 이미 그것의 실재 증거를 발견했어. 놀랄 필요는 없어. 이건 시작 단계일 뿐이야. 축의 실재성을 관측했으니 이제 남은 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차원을 빚는 일이겠지.”

  충격 선언에 기가 막혔는지 지그문트는 입을 닫았다.

  “비단 그 일에만 쓰일 예정은 아니야. 인공 지성체의 개발 문제도 여기에 걸려있어. 앞으로 인공지능의 능력을 한계를 뛰어넘어 한층 더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인간 인격을 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해.”

  “자칫하면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발맞춰서 훨씬 더 높은 영역까지 성장해야지. 궁극의 수준까지……. 디지털 인격 개발은 인공지능뿐 아니라 우리들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기도 해.”

  “명분은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이군요.”

  그렇게 지그문트는 흔쾌히 어린 카이젤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자신이 점령한 권역에서부터 합당한 연구재료를 공급해주었다. 어차피 사형에 처할 사람들이라면 조금 번거로운 절차를 한 번 더 거쳐 간다고 해도 상관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크게 양심에 걸릴 것이 없었다.

  물론 생각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실체 속에서 초자연적 요소인 영과 준 초자연적 초차원 요소인 혼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꽤 오랜 시간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부산물로 얻어진 기술만 해도 유용성은 어마어마했다. 그것들은 카이젤의 예측대로 인공지능과 마도 기술을 한층 더 도약시키는 양분이 되었다.

  한편 디지털 인격 계획을 섭렵한 카이젤은 이를 응용하여 단테 시리즈를 비롯한 복제 인격 군단을 창조한 후, 온갖 용도로 그것들을 재활용하였다. 지그문트도 따로 자신만의 관심사를 충족시켰다. 그는 강령술(Necromancy) 계열 기술을 지극히 과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연구하였다. 소프트웨어를 복제해내는 방법을 익히기만 하면 일단 정신은 만들어지니 그다음은 쉬웠다. 새로운 이종족이나 기계를 개발해서 몸을 입히기만 하면 전인격적 존재를 구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여기에 차원 기술과 아공간 기술까지 발전하면서 아예 몸 없이 유령 같은 형태로 강령체를 제작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식으로 흡족한 성과들을 거두며 오늘의 찬란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미 이토록 위대한 성과에까지 이른 상태이거늘 왜 지금 와서 되도 않게 주저하며 멈추는 것이란 말인가?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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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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