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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89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0. 인터미션 I (2)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6.29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이해할 수 없군.’

  주군의 의견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으나 과연 무엇이 주군께 제동을 가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본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뼛속까지 물들어있는 종족이 초인이거늘, 어째서 그 종족의 수괴인 그분은 겁을 먹은 것인가?

  “너희들도 그것이 궁금하지 않나?”

  지그문트의 차디찬 목소리에 반응하여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체병기와 기계가 적절히 혼합된 몸체, 시뮬레이션 우주와 각종 무형 서버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인격. 그 둘은 초인을 원본으로 해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초인 특유의 무한한 잠재력과 창조성과 지혜를 최대한 흉내 내기 위해 만든 아류작으로 비록 본질은 원본에 미치지 못하나 쓸모는 제법 있었다.

  “벨제뷔트-02, 메타트론-02.”

  {…….}

  {…….}

  지그문트는 네크로맨서라는 부류의 오리지널이자 정점. 그는 오래전 카이젤과 함께 시작한 강령술 프로젝트를 자기 나름대로 꾸준히 연구하여 경이로운 단계까지 끌어왔다. 그의 단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저 두 개체를 비롯한 초인 유사품 카테고리였다.

  “너희가 태어난 덕분에 초인들도 많은 자극을 받겠군.”

  과거 일반인들이 갓 태어난 종족인 인공지능에 노동 주도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초인들도 동일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강화해 궁극의 존재로 도약하는 데 실패한 이들은 무한히 개발되는 인공물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리라.

  이 두 개체는 그 경쟁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 이것들의 탄생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얼마 전까지 2세대 초인들을 숙청할 전권을 맡았던 지그문트는 그 소중한 자원들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였다. 육체도 좋은 재료이지만 특별히 초인의 정신은 연구할 소지가 많았다. 그렇게 2세대 초인들의 정신을 재료로 지그문트의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었는데 그 성공적인 결과물 중에는 심지어 초인의 인격을 복제해낸 것도 있었다. 2세대 초인인 벨제뷔트와 메타트론을 원본으로 해서 만든 저 존재들처럼.

  “이제부터는 슬슬 움직여도 좋아.”

  지그문트가 초인 아류작들에 명령을 내렸다.

  “냉전이 무르익고 있으니 너희도 참여해서 다른 세력의 데이터를 얻도록.”

  {라져.}

  두 특수 병기는 즉각 순응하였다. 그것들은 인조 몸체 속에 내재된 마력 장을 발동시켜 시공간을 찢더니 텔레포트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내의 동공에는 흡족함의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

 

 

 

 

 

 

*****

 

 

 

  거대한 행성급 요새.

  그곳은 세 개의 가스행성을 몸체 삼아 고리형 특수구조물을 덧씌운 뒤 가스행성들 자체를 풍선 꼬듯 꼬아놓은 모습으로 흡사 추상파 미술가의 작품을 연상케 했다. 지구를 보호하는 ‘뫼비우스의 차원 곡면’의 응용 작품인 이 특수구조물은 시작과 끝, 앞과 뒤, 위와 아래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기이한 프랙털을 이루며 삼중 행성 융합체를 빙빙 둘러싸고 있었다. 다섯 개의 응축 핵과 열두 개의 동력원과 108개의 조정 위성이 행성들 내부에 박혀 있었다. 핵심부에 위치한 제어실에는 군사 주둔 시설과 각종 연구 시설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근방 행정 구역의 브리핑을 시작한다.”

  제어실로 돌아온 칼리드는 수하 컴퓨터들에 신속히 특수 코드로 근방 요새들과 하늘도시들에 접속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후 그는 손수 식민지 내부 상황을 하나씩 점검하였다. 철인왕 중 칼리드에게만 주어진 내부 감찰 전권. 칼리드는 이 권한을 충실하게 아비를 위해 활용했다.

  ‘데이터가 방대하고 복잡하군.’

  인류가 여러 세대를 거쳐 우주에 적합한 신체로 적응해나가는 과정, 인위적으로 역사 흐름을 조종함으로써 얻어낸 사회학적 데이터, 그리고 겸사겸사 확인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성능까지. 얻을 정보도 많았지만 내려야 할 의사결정도 많았다. 최상위 초인이 아닌 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창 작업하던 중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여어, 직접 대면하는 건 오랜만이네.”

  약간 반곱슬인 밝고 고운 금발, 사파이어색의 맑은 눈동자와 그것에서 방출된 빛의 직물처럼 짜인 나선 문양의 격자, 그리고 장난기 어린 잘생긴 동안의 얼굴이 칼리드의 냉담한 눈 속에 들어왔다.

  “진, 표정이 좋군.”

  “그러는 너는 좀 신경 쓸 일이 많아 보이네, 칼리드.”

  루비색의 눈동자가 화염 덩어리처럼 이글거리며 무질서도 높은 격진을 일으켰다. 그러든 말든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에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칼리드의 작업실에 있는 컴퓨터들을 살폈다. 남의 연구실을 엿볼 기회는 흔치 않은 법. 진의 현자의 눈이 인공지능에 강제로 접속해 정보들을 캐내기 시작했다. 칼리드는 그 행태를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묵인해주었다. 애초에 오늘 부른 건 그의 도움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으니까.

  “어쩐 일이래? 너는 이곳의 제어권을 공유하는 것을 싫어했잖아. 인간 정치와 관련된 일은 항상 자기의 몫이라면서 말이야.”

  진이 능글맞게 칼리드의 신경을 건드려 더욱 곤두서게 했다.

  “불편하게 따로 떨어뜨려 놓은 채 힘들게 교류하느니 프로젝트 공동 참여자로 두는 편이 더 편리할 것 같아서 말이지.”

  “호오.”

  “그리고…….”

  능청거림이 신경에 거슬렸던 칼리드는 엄숙하게 쐐기를 박았다.

  “뭘 할지 모르는 너를 불안하게 바깥에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이편이 감시하기도 훨씬 쉽고.”

  “신뢰받지 못하다니, 참 슬프네.”

  진은 억지로 장난스레 울상짓는 표정을 지었으나 칼리드는 그 가식적인 모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버지에게 철저히 충성하도록 의무가 지어진 자신과는 다르게 저 의형제 녀석은 처음부터 그분을 돕는 동시에 견제까지 시행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렇기에 둘은 성향이 맞을 듯하면서도 은근 맞지 않았다.

  “그럼 내가 당장 여기서 도울 일이 있을까?”

  진은 형제를 좀 달래줄 겸 선뜻 제안했다.

  “기술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오호, 또 재미있는 일을 꾸민 모양이지.”

  진의 촐랑거림에 칼리드는 대답 없이 조용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둘의 시야가 잠시 어두워지더니 주변 공간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진은 미간을 잠시 찡그렸다. 홀로그램이 아니었다. 이내 허상이 뚜렷해지더니 기이한 우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별로 충만한 일반적 우주가 아닌, 꿈틀거리는 기하학적인 형체들이 우글거리는, 그것도 정해진 모양이나 색채조차 없이 변화무쌍하게 격동하는 기묘함의 시공간이었다.

  “이건……, 그렇군. 시뮬레이션 우주의 공간 일부를 실체화한 다음 그 위에 뭔가를 더 겹쳐 넣었군. 형제-홀로그래피인가? 인류가 발견한 우리 우주의 형제-홀로그래피들의 개수는 대략 여섯 자릿수, 그중 어떤 차원이지?”

  “사천(思天)세계와 음(Negativity)의 허수계. 시뮬레이션 우주 실체화 기술은 아버지의 것을 빌렸다. 그것들을 배합함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하나의 독립 서버를 구축하였다.”

  “호, 솜씨 한 번 제법 성장했네. 정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진은 싱긋 웃으면서 재빨리 현자의 눈을 통해 칼리드가 소환한 서버의 내부 구조를 찬찬히 살폈다. 그의 현자의 눈에는 사물의 작동 원리를 해부 분석하는 고유 능력이 담겨있었기에 삽시간에 여러 정보를 파헤치기란 어렵지 않았다.

  “서버 명칭은?”

  “갓-딜루젼(god-delusion).”

  “음,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제작한 프로그램인가?”

  “그래, 아무래도 현자의 눈만으로는 폭증하는 인구를 감당하는 데 정신력 한계가 있으니까. 설령 증폭기를 빌린다고 해도 내 정신력의 용량은 무한하진 않아.”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굳이 기존 인공지능을 응용하지 않고 ‘무형 서버’를 따로 구축했네? 역시나 ‘기계들의 율법’의 구속을 당하지 않고 융통성 있는 대응 체계를 갖추지 위함인가?”

  진의 지적에 칼리드는 허를 찔렸다는 듯 쓰게 웃었다.

  “뭐 그런 목적도 있지.”

  “아버지가 잘도 허락하시겠다. 넌 강경 충성파 아니었나?”

  “실은 아버지께서 내신 계획에서 파생되었다. 그분은 내 작품을 프로토타입으로 삼아서 더 강력한 모델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내비치신 뒤 일부러 내게 이 작업을 수행토록 유도하셨지.”

  “그럼 그렇지. 네 것도 실험작이었군.”

  끌끌 혀를 차는 진. 종종 그조차도 이런 류의 기술을 보노라면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기계와 무관한 독립 서버. 하드웨어로 된 본체마저 없어서 파괴도 불가능하고, 영향력은 영향력대로 확실해서 현실 세계에 정신적 간섭과 물리적 간섭이 모두 가능한 초시공간적 시스템. 저런 류의 진화가 멈춰지지 않는다면 먼 훗날 인간들이 우주 전역으로 뻗어나가 개척의 시대를 열더라도 독재자의 수중에서 독립하기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강윤혁 일행과 조우했다는 자들도 저것의 사주를 받았겠지.’

  청건당(靑巾黨). 최근 진은 윤혁 일행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몰래 추적하면서 그들의 행적을 감시하였다. 하던 김에 윤혁 일행이 만난 정체불명의 존재들의 기원도 잠깐 조사해보았는데 그중에는 청건당도 있었다.

  진은 흥미로운 저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기존의 청건당 수장들에게 관습과 사명을 주입한 것은 역시 하늘도시의 인공지능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새로운 명령 시스템이 청건당 내부에 간섭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시스템은 기존과는 별개의 종류였다. 그간 불확실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눈앞에 당도했다.

  ‘칼리드의 간섭일 것이라고는 짐작했지만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가 실체였을 줄이야. 갓-딜루젼. 흥미로운걸.’

  진은 거룩한 성격의 윤혁과는 달리 의로운 분노는 전혀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신을 믿지 않으니 그런 감정을 느낄 이유가 일절 없었다. 도리어 진이라는 인간의 머릿속은 호기심과 지식욕과 흥미로움으로 가득 찼다. 과연 끝없이 진보하는 문명이 어떤 결말을 자아낼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갓-딜루젼에 대해 기술적 자문을 원해서 부른 것이겠지?”

  진은 칼리드에게 기꺼이 협력의 발을 걸치기로 했다.

  “다른 이유가 있겠나?”

  “나야 상관은 없지만……, 엠페러들이 알면 조금 시끄러울 텐데? 인류연합 부대표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갓-딜루젼은 식민지 인간들의 번식과 진화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으니까 아크삼형제에게 승인도 받아야 해. 우리에게는 종족의 운명과 미래를 지배할 권한이 없는 거 알지?”

  “내가 고작 그 정도도 고려치 않았을 것이라 여기다니, 너무 얕보였군. 그런 일들은 내가 모두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허락은 받았으니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

  칼리드는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했다. 진은 자기 형이 얼마나 치밀하고 의사결정능력이 탁월한지를 잘 알았기에 동의의 의미로 입을 다물고 상념에 잠겼다. 반론하거나 토를 다는 대신, 그는 지식욕 충족에 집중했다. 기회가 주어진 지금 시간을 아껴야 했다.

  “흠.”

  우선 갓-딜루젼 시스템의 상층 심도에 접속하여 차근차근 기술적 구성 원리를 파악하였다. 수많은 공식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고와 연산의 무한연쇄가 지속되었다. 진은 발생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수족인 인공지능 서버들과 정신을 연결함으로써 갓-딜루젼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연합체가 되어 분석 작업을 함께 감당했다. 이윽고 해결돼야 할 문제점 목록에 대한 대응 알고리즘들이 도출되었다.

  “우선 당장 손봐줄 것은 해결했어.”

  진은 즉석에서 대부분의 기술적 결함을 보완해주었다.

  “며칠 더 연구는 해야겠지만. 몇 번 더 초대해줘.”

  “생각보다 빠르군. 좋다, 그렇게 해주지.”

  칼리드는 흔쾌히 상대를 칭찬해주면서 관련 데이터 정리 본을 인수인계했다. 둘은 이후로도 몇 시간 더 시뮬레이션 우주에 접속하여 갓-딜루젼 서버의 전반적인 개편 방안과 향후 응용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다음 회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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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런 짓들을 벌이고도 과연 천벌을 피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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