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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0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0. 인터미션 I (3)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02 | 회차평점 0 0

 

 

 

 

 

 

 

(이전 회차에서 계속)

 

 

 

 

 

  처리할 일들을 모두 마치자 둘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진은 떠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다며 의형제에게 형식상의 안부 인사를 남기고는 준비해둔 우주선에 탑승할 준비를 했다. 그때.

  “한 가지 질문할 게 있다.”

  칼리드가 내뱉은 나지막한 목소리에 진은 잠시 멈춰 섰다.

  “묻고 싶은 요점이 뭔데?”

  문득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칼리드는 형제 중 유리스 다음으로 심리전에 능숙한 자. 진은 애써 태연한 척 굴며 마음을 읽히지 않도록 방어했다.

  “요새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

  “뭐, 그런 일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이해하라고. 나는 원래 그런 역할도 겸하고 있는 거 알잖아.”

  그 말 자체는 분명 사실이었다. 초인들이나 휴먼 솔져들과 거래하여 사회에 변수를 만들어내는 일, 이종족의 능력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화하게 해주는 일, 적재적소에 조커 카드와 같은 신비한 기술을 개발해 각 세력에 배포하는 일, 그간 줄곧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 문명권 내부의 균형을 조절해온 진이었다. 그에게는 칼리드처럼 공식적으로 휘두를 권력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낼 정도의 활동 범위는 허락되었다.

  카이젤은 진의 이러한 장난스러운 성향이 장기적으로는 인류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일부러 그의 활동을 묵인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 장려하기까지 하였다. 그 모든 일들이 인류의 공공선에 유익이 되도록 배후에서 컨트롤하긴 했지만. 하지만 칼리드의 시선은 달랐다. 그의 직감에 의하면 최근 진이 보이는 행보는 어딘가 모르게 수상했다. 최근 꾸미는 일들이 특별히 전에 벌였던 일들보다 위험한 축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얌전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왜인지 촉이 좋지 않았다.

  “네가 최근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는 것……, 그것은 그저 변덕인 건가, 아니면 진정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양동 작전인 건가?”

  정통으로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비수가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차분한 모습으로 웃으면서도 진의 심박수는 조금씩 증가하였다. 칼리드는 다시 몰아붙이듯 침착히 대꾸했다.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둘은 피차 대등한 자격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기에 네 자유를 묵인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벌이는 일이 엇나가지 않도록 견제하고 억제하는 것 역시 내 역할이니 불만은 없겠지.”

  엄연한 경고 겸 선전포고.

  “하하, 너무하네.”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워우, 진정해, 형씨.”

  “왜 최근 지구 시민을 식민지에 몰래 투입한 거지?”

  결국, 회피가 불가능한, 해명이 요구되는 쟁점에까지 당도했다.

  “다른 TFE 일원들도 늘 몰래 비공식적으로 해오던 일 아닌가?”

  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막 생각해낸 변명이라 궁색하긴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구 시민과 외우주 주민의 거주 영역을 일시적으로나마 바꿔치기하는 일은 사실 지금껏 은근 비일비재했다.

  위험한 일 같아 보이지만 주동자들이 철저히 대상자의 기억을 조정해왔고 뒷수습도 철저히 해왔기에 별다른 문제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원칙적으로는 해선 안 되나 카이젤도 두 부류의 인류가 인종적으로 섞이거나 비밀이 누출되는 등 위험한 일의 발생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판단되는 한, 실보다 득이 크다고 여겨지면 적절히 자기 선에서 융통성을 발휘해주곤 했다. 더 나아가 그 스스로 뒷수습을 감당해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차피 곧 문호 전면개방 시기가 도래할 거야. 그때가 되면 우주건 지구건 가리지 않고 온 세상의 인류가 뒤섞이겠지. 지금부터 조금 일찍 시행한다고 해서 당장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걸?”

  “아직은 온전한 인류 통제 시스템이 확충되지 않았기에 시기가 섣부르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성급한 행동을 한 거지?”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였어. 지적 호기심 충족, 연구 성과 같은 것.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밝혀야 해? 다들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칼리드는 진의 너무도 당당한 항의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의심의 화살을 거두지 않았다. 진의 말대로 모든 변수를 통제할 시스템이 확충된 지금 아주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직감은 그를 괴롭혔다.

  “네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건가?”

  “그럼. 설령 네 걱정이 사실이라 해도 나에게는 너와 달리 강력한 권력이 없잖아. 내가 무슨 수로 너를 방해하겠어. 그저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생각해줘.”

  마침내 못 이기는 척 칼리드는 진의 퇴장을 허락해주었다. 대신.

  “만약 네가 벌이는 나비 효과가 인류연합에 해를 일으킨다면.”

  마지막으로 뒤끝 삼아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 손으로 너를 단죄하겠다.”

  “워우, 무서워라.”

  우주선에 탑승한 진은 수백 광년 떨어진 곳으로 워프하였다.

 

 

 

 

 

*****

 

 

 

  친구가 떠나는 모습을 다 지켜본 후, 칼리드는 조용히 별도로 준비해둔 핫라인에 접속을 개시하였다. 동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할 듯했다. 인공지능 같은 녀석들이 아닌, 훨씬 더 쓸만한 인재들의 도움이.

  “나와라, 마르바스, 발레포르, 바라바토스, 레라지에, 보티스, 살레오스, 글라샬라볼라스. 즉석 임시회의 소환이다.”

  곧바로 일곱 개의 홀로그램 형상이 나타났으니 그들은 인간들이었다.

  “갑자기 어쩐 일로 부르시나?”

  “오래간만이네요. 반가워요, 오빠.”

  “분부하실 일이 있습니까, 대총통?”  

  푸른 머리의 남성, 금발의 여성, 녹색 머리의 남성이 차례로 출현해 말을 던졌다. 전부 화려한 미남미녀에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외모였다. 나머지 네 명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서 본론이나 꺼내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너희도 나와 함께 ‘역사 조정’에 참여한다.”

  칼리드는 냉정하게 명령하였다.

  “각자가 맡을 구역을 지정해주지.”

  “72인 팀에 속한 우리까지 참여해야 할 정도로 그쪽 일손이 부족합니까? 우리는 비록 당신의 제자이긴 하나 엄연히 맡은 관리 분야가 다른데 말입니다. 기계나 시스템들의 손을 빌리면 될 텐데요?”

  고동색 머리의 근육질 남성이 의문을 표했다.

  “일손이 부족하진 않다. 내 경영권의 공백과는 별개로 별도로 처리해야 할 특별 변수가 있어서 말이지. 초인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알다시피 나 혼자서 지혜를 짜내기에는 우주라는 공간이 너무 넓으니까.” 

  이 자리의 목적은 어차피 부탁이 아닌 명령. 칼리드는 즉각 초인들에게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전해줌과 동시에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지대들을 마킹해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권리도 임시로 허락해주었다.

  “갓-딜루젼 휘하의 서브 프로그램들의 제어권을 대여해주겠다.”

  이 제안에 적발의 여성이 추가로 질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종족의 제어권도 빌리고 싶은데요? 그들도 기계들과는 또 다른 의미로 편리한 점이 많거든요. 제어가 다소 어려워서 그렇지.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요?”

  이에 칼리드는 문제없다는 듯 다시 손짓을 통해서 무언가를 소환해내었다. 공간이 흐드러지더니 그 틈으로 모종의 괴상한 형체가 출현했다. 초인들은 그 낯선 존재의 등장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통상 물체나 신물질은 아니군요. 그렇다고 허상도 아니고요.”

  머리카락이 한 올 없는 대머리의 미남자가 말했다.

  “무형 서버 관리자입니까? 정체가 무엇이죠?”

  “저것은 조율 프로그램(TUNER). 정확히 말하면 조율 프로그램의 아바타다. 인류연합 부대표가 저런 류 다섯 기를 은하계로 사출하였다. 그가 별도의 이용 제한을 걸어두지 않은 덕에 한 기는 내가 나포해서 사용하는 중이다. 100% 활용은 어렵겠지만 하늘도시 내부의 종족들만 다루려면 이것으로도 충분할 거다.”

  일곱 명의 초인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그 TUNER라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상식과 기술력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작품. 초인들은 경탄 어린 눈으로 순수하게 칭찬을 늘려놓았다. 과연 존경받을 만한 자의 솜씨다웠다.

  “이것이 바로 소문의 그…….”

  “에녹 씨가 제작했다던 초고도 시스템이군.”

  “기계 율법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제어권 밖에 있는 인공생명체나 이종족을 컨트롤하고 자율적으로 진보하게끔 도와주는 편리한 관리자…….”

  부하들이 감탄하는 사이에 칼리드는 그들의 본체가 있는 좌표 쪽으로 조율 프로그램의 인증코드를 전송해주었다. 그들은 받은 암호키를 자신의 생체코드에 접속한 뒤 자신의 뇌에 이미 이식되어있는 보조 초지능체 및 양자 두뇌와 덥석 융합시켰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그때 백발의 미녀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힘만으로는 모든 세계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칼리드 님. 하늘도시에 씌워진 보안이 워낙 강력한 것을 아시잖습니까. 칼리드 님의 통치권 코드를 빌린다 해도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칼리드는 곧바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해주었다.

  “모두를 제어할 필요는 없다. 너희는 변수가 발생할 위험 지역들만 제어하면 된다. 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마다 미리 맞불을 일으켜라. 태풍이 예상되는 경로에 맞바람을 일으켜라. 방법은 너희 자율성과 창의력에 맡긴다.”

  칼리드의 붉은 눈동자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처럼 이글거리며 짙은 불꽃에 잠식되었다. 흑발의 냉미남은 냉혹한 전율에 휩싸였다. 그는 흥분해있었다. 이토록 흥미로웠던 적이 있었던가. 종종 엠페러들과 세력 경쟁을 할 때도 이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지루하고 권태로웠던 일상에 자극이 더해지더니 확실히 생기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차례다.’

  어차피 아버지에게 허락도 받았겠다, 칼리드는 식민지 인류 역사를 마음대로 자기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그는 가능한 변수들을 철저히 차단해 전 인류를 인류연합의 힘 아래서 길들이려는 계획을 머릿속에 세웠다.

  이를 위해서는 ‘관리자’들 정도는 참여시켜주는 것이 예의겠지. 칼리드와 협력 관계를 맺었던 72인의 관리자들. 그들은 SS 혹은 최하 S 클래스의 초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후천적으로 각성한 우주 출신이었다. 전에도 종종 협력을 위해 부르긴 했었는데 이번처럼 한 번에 72인 중 일곱 명씩을 동원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더불어 지금 부른 이들은 초인 중에서도 유독 도덕관과 정의관이 독특한 형태로 빚어진,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

  “큭, 드디어 날뛸 수 있게 되었군.”

  “어머, 너무 기대돼요.”

  “어리석은 군상을 내 손으로 조종하는 짜릿함은 정말 오랜만인데.”

  “좋은 실험체와 연구 재료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참에 내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킬 수 있겠군.”

  “현실과 환상의 틈새에서 화려한 관현악의 향연을 자아내보지.”

  “어떤 느낌일지 기대되는걸.”

  그 손아귀에서 얼마간, 아니 타임필드 속에서는 수천 년간 놀아날 우주 인류 백성들의 가련한 운명. 추가된 외부 개입으로 인해 인류의 미시 역사는 예측불허의 영역과 맞닥트릴 처지에 처했다. 태풍의 눈과 같은 전운이 감돌았다.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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