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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191회 하늘 위의 도시들 Ch 10. 인터미션 I (4) 작가 : PeaceTiger | 등록일 2023.07.04 | 회차평점 0 0

 

 

 

 

 

 

 

*

 

 

 

  그는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저편에 희미하게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상대는 몸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피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상대는 어딘가 모르게 맹수의 왕 같은 두려운 기세를 전신에서 고요히 내뿜고 있었다.

  ‘누구지?’

  나타난 실루엣은 상체가 맨몸인 남자였는데 팽팽하게 짜인 근육이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짐승 같은 위압감도 주었지만, 동시에 지극히 정교한 솜씨가 녹아든 예술 작품처럼 경이로우리만큼 아름답기도 했다. 창조주가 한 조각 한 조각을 섬세하게 깎아낸 듯한, 권능이 넘치는 팽팽한 근육들이 오밀조밀 짜여 있었다. 체격도 상대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패기와 살기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인외(人外)의 존재에게서나 느낄 법한 이질감이 공기를 채우며 피부를 찔렀다.

  ‘무서운 걸.’

  그 남자의 형상을 한 존재는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광경이거늘 어째서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이유를 알 도리는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해.’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형형히 빛을 발하는 섬뜩한 눈동자. 티 없이 맑은, 순도 100%의 순수한 금이 양안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듯했다. 광채 어린 맹수의 눈. 눈의 심장부에는 불의 고리가 자리하고 있다. 적염과 청염이 이글거렸다.

  “마지막이구나.”

  “네?”

  그 남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덕에 가려졌던 이목구비의 윤곽이 아주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둠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다. 괴물 앞에 선 인간은 마비된 듯 얼어붙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여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한참 여린 어깨 위에 손을 뻗었다. 암흑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손, 근사하고 기다란 손가락, 흉기처럼 억세 보이는 팔. 손은 닿자마자 희생양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희생양의 몸이 저절로 주춤거렸다. 동시에 압도감에 팔에서 자연스레 힘이 빠져나갔다.

  “크윽!”

  이윽고 남자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끄아악!”

  온몸이 산산이 으스러뜨려지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만둬!’

  공포감에 질린 육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원하는 게 뭐야?”

  허공에 메아리치듯 부질없이 항변의 목소리를 내뱉어보았다.

  “나를 내버려둬!”

  “…….”

  그 사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는데 그 복잡다단한 의미를 해석할 수 없어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흡사 자신의 족쇄를 끊어내려는 늑대의 흉포함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려는 자학자의 눈에서 흐르는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지?”

  “너의 본질이자 일부, 너의 그림자, 너의 족쇄.”

  입술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그 존재의 목소리가 뇌리에 스며들었다. 의미를 알기 힘든 압박감이 서서히 이지와 인식을 마비시켰다. 어두운 깊음이 흐려지는 시야를 엄습하여 희생양을 깊은 중력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바로 너야.”

  마비된 입술은 그 목소리에 저항하고자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고통의 폭풍이 뇌리를 휩쓸던 중 정적을 깨트리는 음성이 개입했다.

  “윤혁아!”

  “윤혁!”

  친구들의 부르짖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번쩍 눈이 뜨이고 정신이 차려졌다. 외마디비명을 내질렀던 윤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출발할 때 타고 온 우주선 내부였다.

  ‘꿈이었구나.’

  그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하필이면 그 사람을 보다니. 악몽도 이런 악몽이 따로 없었다. 두 달 가까이 쉬지 않고 일한 탓에 그새 몸이 허해지기라도 한 건가. 다시 체력 단련이라도 해야 하려나?

  “나는……, 나는 괜찮아.”

  윤혁이 애써 스스로를 안위해보았다.

  “괜찮긴 무슨. 요새 너무 무리했어.”

  리온은 걱정하는 심정으로 옆에서 핀잔주었다.

  “고생이야 다 같이 고생했는걸.”

  “아니야, 윤혁아. 우리와 너는 사정이 달라.”

  루디아도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감각을 공유한다고 하지만 인형이 겪은 신체적인 이상이나 피로는 본체에 전달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편한 길이지. 그렇지만 너의 경우는 다르잖아.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웠어.”

  그녀의 말에 윤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주님의 개입으로 강령술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사이 몸과 마음이 지쳐버리다니.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극적으로 꺾은 뒤에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세벨을 피해 달아나느라 우울함에 빠져버렸던 엘리야 대언자의 심정이 아주 조금은 공감이 될 것 같았다.

  “다음번에는 꼭……, 우리도 몸으로 직접 참여하고 싶어.”

  문득 리온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너 하나만 이렇게 사지에 내보자니 계속 마음 쓰여.”

  리온의 말에 윤혁은 어림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희가 안전하면 좋은 거지.”

  “하지만!”

  “좋은 선택지가 있는데 굳이 몸 고생을 하겠다고? 하나님의 뜻이 꼭 그렇게 나타나는 법은 없어. 일부러 의도적으로 고생을 하라는 명령은 그분 말씀에 없다고. 선한 일을 하다가 발생하는 자연적인 고난만 그분이 허락하실 때만 감당하면 되는 거지, 순교자 콤플렉스를 부릴 필요는 없단 말이지.”

  논리 정연한 윤혁의 변론에 리온은 입이 막혔다. 위로에 돌아온 반응치고 냉담하긴 했으나 친구들의 고난 길을 원치 않는 윤혁의 본심을 알기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반지 때문에 특수한 경우라서 어쩔 수 없는 것뿐이야.”

  정작 그렇게 말하는 윤혁이야말로 친구들 보기에는 스스로 고행을 짊어지는 모양새로 보여 안타까웠다. 나는 너희를 위해 선교의 문을 열어야 할 책무를 받았으니까 힘들어도 버텨야 해. 아마 그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그런 강변을 던지지 않았으려나? 그랬으니 지금처럼 녹초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우리가 직접 가길 원하는 건 꼭 감상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이번에는 루디아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전에도 리온이 말했던 것처럼……, 머릿속에 울리는 이상한 메시지가 자꾸만 거치적거려. 나는 과학 상식이 부족해서 기계 율법이니 하는 복잡한 건 잘 모르지만, 최소한 이 울림이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복음 전파 계획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 알 것 같아.”

  “룻…….”

  순간 윤혁은 친구들의 진정성을 오해했음을 깨닫고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 오해했다기보다는, 그 무게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는 편이 옳겠지. 그러나 친구들도 엄연히 이 일을 생명을 건 책무로 여기고 있었다.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인 원동력을 모두 동원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중대한 책무.

  “게다가 지금과 같은 전략이 유지된다면 만일 결정적인 위기에 이르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너 혼자서 덤터기로 책임을 맡아야 하는 일이 펼쳐지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네게만 짐을 떠넘기기는 싫어.”

  루디아는 오프라인으로 직접 맞부딪히는 길을 진정 원하고 있었다. 단순히 힘든 길이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쁨을 원했기에. 그리고 동료들과 책임을 나눠 가지며 진심으로 자신을 쏟아붓기 위해.

  물론 반드시 오프라인만이 복음의 정석은 아닌 것은 엄연한 사실. 셋 모두 복음이 선포될 때 역사하시는 본체는 성령의 힘임을 알았다. 그분은 만물을 초월하여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 복음을 전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의 시공간적 거리가 제아무리 멀어도 동일한 권능을 발휘하실 수 있다. 통신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전도를 시행해도 열매가 맺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윤혁은 우리 은하와 매우 멀리 떨어진 다른 은하로 여행을 갔었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 기도에 응답하시는 일도 체험했다.

  “룻, 리온, 너희 말도 이해하지만, 난 정말 괜찮아. 거리도 그리 중요하지 않고 인형 몸이냐 본체냐 문제도 중요하지 않아. 내게 중요한 문제는 비록 선교가 일 순위이긴 하지만 너희의 안전 또한 있는걸.”

  하지만 동료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고마워. 꼭 너에 대한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야.”

  리온이 나직이 자신의 의견을 개재하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어. 내가 이곳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아무래도 실제 몸이 아니면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거든. 현지 주민들과 삶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그는 윤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돕기를 바랐다. 책임 공유도 원했지만,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을 원했다. 단지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과 실제로 함께 생활하며 현지의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지구에서 선교를 많이 해봤던 리온이기에 그 차이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았다.

  “이해했어. 고마워.”

  “그래, 그리고 다음번에는 모두와 함께 가자.”

  “모두라고?”

  “지구에 있는 다른 선교팀 말이야. 그들도 내내 우리로부터 선교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쁨으로 중보 기도를 하던 중이거든. 덕분에 이제는 처음에 우리와 합류하지 않았었던 이들조차도 소식을 전해 듣고는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야. 식민지 선교의 길이 더 열리도록 한마음으로 간구하고 있어.”

  리온이 전해준 희소식에 윤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참 다행이네. 꼭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희망 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 사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주님께서는 성도들더러 담대하게 행동할 것을 명령하셨다. 아울러 그분은 직접 새로운 동역자를 보내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믿음과 인내로 기다리면 그분의 때에 적절한 응답이 있을 것이다.

  {1시간 35분 뒤에 다음 목적지에 도달할 예정입니다.}

  {출입 코드 해킹 및 연산 시퀀스를 고려하면 추가 2시간 소요 예정.}

  화기애애하게 신뢰감을 재확인하던 참에 우주선 인공지능이 일정을 브리핑하면서 분위기를 깨트렸다. 생각보다 다음 행선지 결정이 앞당겨졌다. 셋은 다시 바짝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윤혁은 홀로 곰곰이 생각했다.

  ‘효율성 한 번 무섭네. 일 처리 능력 면에서는 진을 믿어도 괜찮겠어. 그 꿍꿍이는 온전히 신뢰할 수 없으니 결정적인 순간에 타협해서는 안 되겠지만.’

 

  과연 그 시각, 진은 자신의 수하 호문쿨루스(homunculus) 유닛을 두 기 소환했다. 우주 비행 능력을 지닌 그들은 우주를 단신으로 질주하고 워프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들은 윤혁 일행을 태운 우주선 근처에 바짝 붙어서 천천히 미행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감시당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번에 진입할 때 따라 들어가.”

  진은 호문쿨루스들에게 텔레파시를 통해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측해서 내게 낱낱이 보고해.”

  -알겠소.

  인공 생체기계 호문쿨루스, 보리붓다(Bodhi Buddha), 갈색 피부로 온 몸이 덮인 대머리의 인간형 생명체가 가부좌 튼 자세로 공중을 유유이 가르며 질주했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대는 걱정과 번민을 내려놓으시오.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호문쿨루스, 미후왕(美猴王)도 대답했다.

  -맡겨만 줘. 방해하는 놈들은 때려 부술 테니까.

  두 기의 무시무시한 생체병기는 과감하게, 그러나 은밀히 준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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